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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편집자의 수작]동화는 예쁘고 행복한 것만 보여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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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0-06 17:06 조회 5,61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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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버그 가는 길』
베벌리 나이두 지음|배수아 옮김
내인생의책|2011

작가 황선미는 작품에 그려지는 세계가 어둡고 우울하다는 평에, 어릴 적 경험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릴 적 경험의 독특한 분위기가 지금까지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작품 세계의 고유한 아우라나 오랜 시간을 들여 천착하는 주제를 형성하곤 한다. 여기 유년기 잊지 못할 경험을 바탕으로 줄기차게 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에서 흑인 노역으로부터 오는 편안함을 누리며 백인으로 살아간 베벌리 나이두가 그렇다. 사실 불평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기 힘들고, 혹은 객관화하더라도 불평등에서 오는 혜택을 포기하기 싫어 부당한 현실을 눈감기 십상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수혜 계층으로 살았지만 베벌리 나이두는 인종 차별이라는 일대의 주제를 여전히 붙잡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과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를 통해 그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자.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은 아픈 동생을 돌보기 위해 엄마를 찾아간다는 아이다운 설정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주인공 날레디와 티로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일하는 엄마를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어른들의 보호 아래서 볼 수 없었던 세상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흑인들은 어떠한 자유도 허락 받지 못했다. 돈을 지불하더라도 백인이 타는 버스는 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행도 제한되어 있어 이동할 수 있는 구역이 표기되어 있는 통행증이 없는 흑인은 무자비하게 잡혀간다. 보호자도 없이 길 위에 선 날레디와 티로는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일하는 집에 도착한다. 엄마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지만, 백인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 역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일터를 떠날 수 없는 몸이다. 엄마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험난한 세상과 부딪히며 날레디와 티로는 훌쩍 성장한다.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베벌리 나이두 지음|고은옥 옮김
내인생의 책|2011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베벌리 나이두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귀족과 같은 삶을 누리는 백인 소년 매슈와 그런 매슈의 가족을 주인으로 받들고 사는 흑인 소년 무고의 갈등과 우정을 섬세하게 그린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에서도 이어진다. 흑인들을 철저하게 불신하고 하대하는 백인과 이것에 맞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투를 준비하는 흑인들의 갈등 때문에 두 소년의 관계 역시 와해된다. 마냥 친구처럼 놀고 싶지만, 어른들로부터 주입된 의심과 불신은 소년들을 갈등 상황에 놓이게 하고, 순수한 마음마저 때 타게 한다. 결국 무고의 가족들은 모함을 꾸민 혐의로 쫓겨난다. 이를 보고 뒤늦게 뉘우치며 마음을 전하려 하는 매슈의 모습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속에 살았던 베벌리 나이두 작가 자신의 뜨거운 반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매슈의 반성을 뒤로 한 채 불길처럼 타오르는 분노를 안고 무고가 떠나고 그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진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가슴에 불꽃을 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린다. 결코 포장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보여주며, 작가는 어설픈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냉정한 결론에서 반성과 죄의식이 묻어나기까지 한다. 때때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예쁘고 희망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려 한다. 세상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이 현실에 등을 돌리는 것이다. 베벌리 나이두와 황선미 작가의 어린 시절이 그랬듯 오늘의 아이들도 녹록치 않는 삶의 짐을 어깨에 지고 산다.

그리고 그 짐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형적인 세상으로부터 기인한다. 자식이 남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은 일찍부터 사교육에 의지하며 경쟁한다. 성적과 사는 곳으로 아이들을 편 가르는 세태는 또 어떤가. 이러한 현실은 우리 안에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아름답지 않다고 불평등한 현실을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순응이 가져다주는 안온한 혜택에 취해 불평등한 세상에 눈을 감지 않도록 부당함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베벌리 나이두가 그리고 있는 남아공만큼이나 극적이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는 소외되고 희생해야 하는 세상에서 그 대가를 치르며 살아간다. 이러한 세상을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고 성찰했던 베벌리 나이두의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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