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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읽어볼 만화면]유머와 만화: 편견에서 미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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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7 13:34 조회 7,81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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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편견 중 하나는, 웃겨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편견들이 그렇듯 도움보다는 굴레로 작용하곤 해서, 진지하고 깊이 있지만 유머는 사용하지 않는 좋은 만화작품들이 “만화답지 않다”며 외면당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예술에서 유머 자체가 종종 마치 가장 비속한 것으로 취급당하곤 하여, 만화 자체를 낮은 문화 형식으로 보던 옛사람들의 저열한 인식수준의 바탕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유머는 사실 가장 고도화된 문화적 맥락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메시지와 감성을 뛰어나게 전달해내는 방식이다. 나아가 과도한 편견의 피해가 있다고 해서 만화와 유머의 관계를 무조건 단절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스위스 작가 로돌페 퇴퍼가 1800년대에 서구 근대만화의 역사를 열었을 때도, 100년 전 한국의 신문 시사만화들이 세태풍자를 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웹툰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끄는 작품들 중 상당수도, 결국 유머라는 요소를 장점으로 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략화된 선으로 구현하는 만화의 그림은 유머 효과가 뛰어난 과장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며 발생하는 여백과 상상의 미학은 유머에 필요한 매우 복잡한 연상 작용을 공략하기에 좋다.

유머를 아예 전면에 내세워서 장르틀로 삼는 것을 흔히 개그만화라고 부른다. 개그만화는 그날그날의 연재분을 보며 한번 웃고 넘어가기에도, 차곡차곡 쌓아서 도서관처럼 보관하는 것에도 적합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에서는 개그만화의 몇 가지 주요 방식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풍자의 재미
당대 현실의 문화를 반영하면서 만화의 재미를 살리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은 역시 세태풍자다. 만화 특유의 캐리커처 구현능력으로 상황을 과장하여 비틀고, 복잡한 사안을 다른 좀 더 쉽게 와 닿는 것으로 시각적 비유를 하여 독자들에게 즉각적인 이해와 공감의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정쟁이 동네 꼬마들의 골목싸움이나 궁중암투가 되고, 독단적 지도자는 고질라가 되며, 뇌물을 받는다는 음험한 행위는 돈다발을 입에 무는 해학적 묘사로 풀어낼 수 있다. 모든 시사만화가 개그만화인 것은 아니지만, 유머의 코드를 강하게 구현하는 시사만화들이 대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더 효과적이다.



현재까지 연재중인 국내 일간지의 4칸 시사만화 가운데 가장 유머의 완성도가 뛰어난 시사 만화로는 경향신문의 <장도리>(작년 출간된 단행본 제목은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던져라』 박순찬, 책보세)를 꼽을 수 있다. 4칸이라는 형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두 개 이상의 상황들을 서로 자연스럽게 대비, 사회적 사안들의 모순을 자연스럽게 꼬집어낸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가혹하고 권력자들에게는 관대한 사회제도들, 겉으로는 시민을 위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는 정치지도자들, 오만가지 방식으로 허리 휠 일만 생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 등이 그림과 글의 반복적 각운으로 구현된다. 그리고 그 절묘함이 바로 웃음의 원동력이다. 혹은 정치사회에 대한 복잡미묘한 이해득실과 합종연횡을 대중문화 패러디를 통해 전달하는 『본격 시사인 만화』(굽시니스트, 시사IN북)의 개그 방식도 있다. 서로 맞물려 있으면서 견제를 해내야 하는 모습의 미묘함을, 전적으로 어느 쪽으로 몰입할 수 없는 상황 그대로 그려내어 그 난감함을 보여주는 것이 유머의 첫 번째 층위고, 다양한 대중문화 캐릭터의 모습을 차용하여 매니악한 독자일수록 더 많은 웃음의 코드를 발견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두 번째 층위다.

시사풍자의 유머라고 해서 반드시 시사만화라는 정체성을 내세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시민쾌걸』(김진태, 학산문화사)은, 정의봉이라는 이름의 동네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정의의 용사 역할을 맡게 되면서 겪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상점가는 한국사회의 여러 모습과 인간 군상들을 고스란히 풍자하는 곳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얼굴을 하고 있는 상점 주인들부터 시작해서, 연재 당시 벌어진 시사적 이슈를 그대로 반영하여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80년대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나 ‘탱자 가라사대’ 같은 코미디 코너들이 해주었던 역할을 한층 충실하게 수행하는 뛰어난 개그만화다. 이외에도 어린왕자의 구도를 가져와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들을 풍자하는 『어린왕자의 귀환』(김태권, 돌베개)의 사례처럼, 교양만화라 할지라도 개그만화의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다.



돌 발적 상황들
상황 그 자체에서 웃음을 찾고자 하는 것이 상황 코미디 즉 시트콤이다. 이쪽 접근법은 풍자라는 사회적 맥락보다, 극 안에 집중하게 된다. 정해진 설정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엉뚱한 상황이 발생한다. 캐릭터들은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처하려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소동 자체로 웃음을 주거나,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소동을 결국 어떻게든 봉합해내는 결말로 다시 한번 웃음을 준다.

시트콤 방식의 장점은 극의 흐름으로 웃음을 주기에 작품에 몰입시키기에 유리하다는 것이고, 반면 단점은 일정 부분 반복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트콤은 성격상 주로 에피소드 방식으로 전개되곤 하는데, 아무리 신선한 설정과 전개방식을 처음에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캐릭터 집단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는 비슷해진다. 그렇기에 장편이 되어갈수록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무리한 소재를 넣다가 망가지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미리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최고 수준의 코미디로 시작했으나 3~4권을 넘어가면서 이런 반복의 함정에 빠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와카스기 키미노리, 서울문화사)다.

이 작품은 부드러운 톤의 ‘슈가팝’ 가수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정작 진짜 재능은 과격한 데스메탈 장르에 있는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재능도 인기도 없는 무명 가수로서의 자신, 그리고 신도 같은 팬들을 거느리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데스메탈 스타로서의 자신을 수시로 오가는 이중생활이 재미의 원천이다. 하지만 그런 정체성 괴리에서 발생하는 소동들이 익숙해질 때 새로운 코드를 찾지 못해 후반은 시들해진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좋은 방식 가운데 하나는, 캐릭터 성장극으로써 소화해내는 것이다. 『강특고 아이들』(김민희/서울문화사)은 초능력 청소년들이 강원도 산골짜기 특수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수한 능력들을 가지고 열악한 산골짜기 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캐릭터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이 될 수있겠지만, 영리하게도 이 작품은 학교라는 설정을 잘 활용하여 이를 극복한다. 연초에는 신입생 입학이라는 명목으로 새 캐릭터들이 유입되고, 기존 캐릭터들도 능력이 성장하거나 관계의 발전에 따라서 다른 경험을 하는 등 성장을 한다. 그리고 너무 길게 끌지 않고 결국 졸업과 후일담을 통해서 단행본 7권 분량으로, 근래 출판만화잡지의 연재 중 손꼽힐 정도로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한다.



혹은 사연 위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개그 웹툰 연재작 가운데 하나인 『생활의 참견』(김양수, 소담출판사)은 마치 오후 무렵의 라디오방송들처럼, 자신의 사연 혹은 제보 받은 재미있는 사연을 만화로 만들어낸다. 패턴 반복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한 방식이다. 다만 매번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연출해내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예 부조리로 허를 찌르는 황당한 전개도 강력한 웃음 코드가 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는 돌발 상황이 정말로 계속 돌발적이어야 하는 문제, 즉 매번 더욱 높아지는 독자들의 예상을 깨야 하기에 가장 극단적이다. 한국에서 부조리 개그만화라는 코드에 커다란 영향을 준 『멋지다 마사루』(우스타 쿄스케, 대원CI)이래로, 인터넷게시판 문화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결합하자 우수한 작품들이 여럿 만들어졌다.

그 중 『이말년씨리즈』(이말년, 중앙북스)는 그 기대치를 계속 갱신하며 연재되고 있는 희귀한 작품이다. 소위 ‘병맛’만화라고도 부르는 강력한 비약으로 가득한 전개 방식, 독특한 패러디 감각 등이 돋보인다. 혹은 원래 시트콤식 자전적 사연 소개에 가까웠던 인기작 『마음의 소리』(조석, 중앙북스) 역시, 장기화되면서 반복의 함정에 빠졌다가 점차 부조리 개그에 가까운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일정한 재미를 회복한 경우다. 단순히 의도된 엉성함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도, 공군 용병부대의 활약이라는 줄거리 틀과 인문학적 지식을 부조리 개그코드로 활용하여 의외의 황당함을 만들어내는 『에이스 하이』(이창현・유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역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고 전의 향기
지나간 시대의 유머는 문화적 공감대가 달라진 만큼 오늘날 독자들에게 더 이상 원래의 폭발적 웃음을 자아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개그만화의 고전(단순히 옛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원형적 우수함이 담겨 있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참조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으로 불러 마땅하다. 스토리성에 섞이는 우아한 매력, 예전이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어떤 기본적인 인간군상 생활 모습들을 유머의 소재로 삼는 것 등이 공통된 특징이다. 캐릭터 상품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80년대 한국 명랑만화의 가장 빛나는 업적 가운데 하나였던 『아기공룡 둘리』(김수정, 대원CI)가 대표적이다.

귀여운 공룡 캐릭터 이전에, 빌붙어 사는 군식구와 집주인의 갈등과 유사가족적 관계 등을 재치 있는 슬랩스틱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성인용 에로티시즘 유머를 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에 집어넣어 해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고인돌 왕국』(박수동, 우석)도 돋보이는 고전 개그만화다. 남녀상열지사(혹은 남남, 여여)만큼 시대를 초월하여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는 것도 드물고, 그것을 노골적인 묘사가 아니라 상황 연상에 의하여 전달하는 것의 우아함으로 구현하기에 생명력을 유지한다.

좋은 개그만화는 개그라서 깊이가 떨어지기보다, 오히려 개그를 더욱 추구하면서 깊이가 생겨나간다. 왁자지껄한 고전 캐릭터 소동극 『시끌별녀석들』(다카하시 루미코, 서울문화사)은 분방한 상상력의 시트콤이면서, 동시에 각종 일본 민담의 코믹한 재해석으로 가득하다. 인물들의 물고 물리는 애정 관계는 일회적 웃음을 넘어, 셰익스피어 희극을 연상시킬 정도다.

유머가 보여주는 경박함의 정서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접근방식일 뿐이며, 그것도 매우 훌륭한 접근방식이다. 다만 관건은 내용과 감성을 전달하며 여운을 유도해내는 완성도다. 완성도 높은 개그만화는 한 시대의 문화코드를 이끌어나갈 힘이 있으며, 때로는 가장 묵직한 고민들을 공감시키기도 하고,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여러 문화들을 하나로 묶어내기도 한다. “잘” 웃으면, 정말로 복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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