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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학교도서관 분투기 - 내 귀에 행복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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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5 15:52 조회 5,5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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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아침 8시 10분. 이른 아침 닫힌 도서관 문 앞에서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어~ 선생님 집은 학교에서 멀어서~ 늦어서 미안해.”
오늘도 이 녀석들 보다 학교에 일찍 오려고 새벽같이 서둘러 나왔는데 실패했습니다. 철컥하고 도서관 복도의 철문이 열리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이 채 켜지지도 않은 도서관 복도를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다치니까 뛰지 말고 걸어가라고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소용없습니다. 빨리 도서관 앞에 줄을 서서 맨 처음 들어가고 싶어 하니까요. 맨 처음 들어오는 사람에게 사탕을 준다거나 하는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제일 먼저 도서관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면 이번에는 한 학급 아이들이 단체로 옵니다. 1학년 아이들도 있고 4, 5학년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우르르 몰려와 끊임없이 자기들이 찾는 책을 말합니다.
“선생님, 강아지똥 있어요?”
“선생님, 수학귀신 있어요?”
아마 이번 주 학급 독서퀴즈 대상도서로 담임선생님께서 읽으라고 지정해주신 것이겠지요. 아이들이 찾는 책을 정신없이 챙겨주고 어제 반납된 책을 정리하다보면 벌써 1교시 시작할 시간입니다.

하루 두세 시간 배정된 수업을 진행하고, 방과 후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방과 후 제일 먼저 도서관에 들어오는 아이는 2학년 성빈이입니다. 안경을 쓰고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약간 섞인 성빈이는 빌려갈 책을 스스로 책꽂이에서 찾아 대출합니다. 부끄러운 듯 무뚝뚝한 듯 말이 없던 성빈이는 어느 날부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보여주면 기뻐하고 예쁘게 웃어줍니다. 성빈이가 가고 나면 아이들이 친구들 손을 잡고, 또는 할머니와 엄마, 가끔은 할아버지와 아빠의 손을 잡고 하나 둘 도서관에 들어섭니다.

“할머니~ 이거 꼭 빌려가야 돼.”
“시간 없어! 학원 차 올 시간 됐단 말이야!”
한 두 아이들은 꼭 이렇게 실랑이를 합니다. 학원에 늦게 가더라도 도서관에 들러 책을 꼭 빌려가야 한다는 아이의 말이 단호합니다. 이 승부의 승자는 지금 제 앞에서 대출증과 빌려갈 책을 내밀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어디서 이런 녀석들이 왔는지 볼 때마다 예뻐 죽겠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가고 나면 오후 1시 반 이후에는 고학년 아이들이 각종 학습지와 문제지, 필통, 공책 등을 품에 안고 도서관에 들어옵니다. 처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이미지는 독서실 같은 부분이 많아서,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만큼은 도서관을 그런 답답한 공간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 읽는 아이들과 따로 열람실처럼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공부하고 나서는 꼭 책을 빌려가도록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둡니다. 지난 2년 동안 학생들을 만나면서 제가 원하는 도서관의 모습과 아이들이 원하는 도서관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처음 교사가 되고 제가 꾸려나가고 싶었던 도서관은 ‘조용한 도서관, 공부하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제게 도서관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정숙’입니다. 칸막이가 있는 열람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한 기억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뛰어다니는 모습에 무척 놀랐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쉽게 조용해지지 않고 뒤돌아서면 바로 뛰어다니지요(가끔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현실과 제 이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할 즈음 여러 어린이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을 견학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에 대한 책도 틈틈이 읽어가며 아이들 편에서 도서관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편히 쉴 수 있는 곳,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곳, 즐거운 곳,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도서관을 이용합니다. 가끔은 ‘읽어야 하는 책’이 있어서 억지로 발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학창시절에는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심에 도서관과 제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올해 우리 도서관은 종합문화공간으로 변화 중입니다. 책만 보는 곳이 아닌, ‘아이들이 참여하는 행복한 공간’으로 말입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는 아이들의 떠들 권리를 인정했답니다. 소음공해에 엄격한 독일에서 아이들의 소리를 소음의 범주에서 제외한 것입니다. 우리 도서관도 아이들이 내는 소리가 소음이 아닌 즐거운 소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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