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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만화는 책읽기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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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4:34 조회 5,83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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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만화에 얽힌 추억은 있다
춘천에서 살던 때의 일이랍니다. 아버지는 성남의 한 공장에 가 계셨고, 어머니가 뒷바라지
를 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셨더랬지요. 곧 이사를 가 합쳐야 하니 미리 해놓으실 일이 많으셨
을 터입니다. 일요일,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자니 심심해서 만화방에 갔더랍니다. 기억나기를,
빌리면 돈이 더 드는 듯싶었는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만화책을 한 아름 안고 와 집에 틀어박
혀 읽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집에 혼자 있자니 적적했을 터입니다. 그런데 만화책은 흥미롭
고 기발하고 재미있지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을 겁니다. 한 무더기 빌려오기
는 했지만, 금세 읽은 지라 몇 번이고 읽었을 겁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찬 기운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 일어나보니, 날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순간 들었던 생각
이 이크, 큰일 났다는 거였습니다. 빌려온 날 돌려주면 괜찮은 대신, 하루라도 늦으면 벌금
을 내야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부지런히 달려가 주면 주인이 벌금을 받지 않을 수도 있
으려니 해서 만화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숨넘어가듯 달려와 책을 넘겨주니 주인이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 급하게 올 이유가 없어서였지요. 하루를 꼬박 넘긴 것이 아니라, 그날 늦은
오후에 깨어났던 겁니다. 아침과 이제 곧 해가질 오후를 구별하지 못해 일어난 웃긴 일이
었습니다.

만화방, 하면 생각나는 내 어린 시절의 이야깃거리입니다.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할
이야기가 너무 많지요. 우리 때는 텔레비전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것도 흑백텔레비전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만화방에 열 번 가면 한 시간쯤 텔레비전에
서 보여주는 만화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거야말로 도랑 치다 가재 잡는 격
인지라, 만화방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도 들렸고, 도서
관에서 세계 명작동화를 읽다가도 들렸고, 시험공부하다가도 부모님 몰래 들리기도 했습
니다.

만화방이 없었더라면 내 유년시절은 잿빛으로 기억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니, 내
가 만화 예찬론자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살아오면서, 특히 어린 시절에 그 어떤 것을
보면서 행복하고 신나고 위로받고 격려받으며 희망을 품은 적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애정
이 얼마나 클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푸대접 받던 만 화 , 날개를 달다
그런 나에게 과연 만화책을 읽어도 좋으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학부모님들
도 그러고 선생님들도 그러십니다. 우리 아이가 만화책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를 어쩌면
좋지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 듯한가요? 답이 뻔하지요.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만화광이었습니다. 만화가 나쁘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만화야
말로 상상력의 보고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면 반응이 어떨 거 같아요? 반신
반의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 벌어지지요. 전문가라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로 보
아서는 괜찮을 듯도 싶은데, 과연 우리아이에게도 같은 효과가 있을까 여전히 의심이 가시
지 않는 표정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한테 만화책을 읽어도 되냐고 물으면, 나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
말씀드린 대로 분명히 괜찮다고 대답할 겁니다. 만화도 분명히 책입니다. 더욱이 만화는
글로만 이루어진 책과 달리 그림이 있습니다. 둘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다 그 둘이
합쳐져 읽는 이를 사로잡는 뛰어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뛰어난 만화는 그 어떤 것과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왜
만화를 부정인 시각으로 볼까요?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 부모님들이 만화를 공부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서 그랬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을 제일로 쳤지요. 그런데 아이가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에 집중해 있으면 부
아가 났을 겁니다. 학교 공부하는 것보다 만화책 보는 게 백배천배 나은 건 우리 모두 인정
하는 바이지요? 그러니, 어렸을 때 만화책 보다가 혼난 기억이 있는지라 만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요.

옛날에는 영상매체가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화에 나오는 폭력적인 장
면이나 선정적인 장면에 대해 엄하게 대응했습니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시각매체인지라
영향력이 크다고 보아서 더 까다롭게 대했던 겁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보는 책에 그런 장
면이 나오는 것은 굉장히 해롭다는 생각이 널리 공감을 얻고 있었지요. 거기에다 만화는 일
종의 하위 장르 취급을 받아 안보아도 되는 매체 취급을 받았더랬지요. 요즘 만화가들이 명
사 대접을 받고 이름난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만화책을 내려고 하는 세태를 보면 참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무리 편견이긴 하지만, 어른들이 만화책
보는 것을 걱정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은 여러분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제 당당하게 만화책을 펼치자
내가 만화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비록 그림으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영화와 달리
상상력을 자극해서입니다. 나는 그것을 칸과 칸 사이에 있는 상상력이라 말합니다. 영화는
움직임을 다 보여주어야 하지만, 만화는 다 보여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다 보여주지 않습니
다.

사실 다 보여줄 수도 없지요. 그러다 보니 한 칸에서 다음 칸으로 넘어갈 때 상상력에 기
대는 건너뛰기가 있고, 이 작은 건너뛰기가 모여 큰 상상의 비약을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만약 영화로 찍어야 한다면 엄청난 돈이 들어 포기해야 할 대목도 만화는 과감히 그려낼 수
있습니다. 화성으로 가는 이야기를 영화로 꾸민다면, 정말 화성까지 가지는 않지만 간 것
처럼 보이기 위해 세트를 정성스럽게 만들어야 할 터입니다. 이미 있는 시설을 쓰더라도
그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요. 만화는 어떤가요? 그리기만 하면 되잖아
요.

만화가의 품이 많이 들겠지만,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이를 마다할 작가는 없겠지요.
더욱이 만화는 문학에 기대하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상식화한 내용
에서 벗어나 파격적이고 기발하고 의외성이 높은 내용을 다루는 예가 자주 있습니다. 물론
모든 만화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만화도 많다는 뜻으로 새겨들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그것을 글로 쓸라치면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필요로 하는데
다, 정작 읽어봐야 뭔 말인지 모르는 것도 단 한 컷의 그림으로 쉽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만화는 정말 진가를 발휘하지요. 이러니, 문자만 가득한 책보다 만화
책을 즐겨 보는 이유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법입니다.

만약, 그동안 만화책 읽는 것 때문에 주변에서 핀잔을 들었던 경험이 있어 주눅 들었다
면, 이제 당당하게 만화책도 읽을 만한 것임을 주장하기 바랍니다. 만화책은 책도 아니라
고 하는 말은 편견이며, 만화책이 얼마나 우리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지를 몰라서 하는
생각이라 여기세요. 숨어서 보지 말고 책상에 올려놓고 보고, 좋은 만화책이라면 친구들에
게 권하기도 하세요.

편향된 취향과 즐기는 차원을 넘어
그런데 한 가지 말할 게 있습니다. 오로지 재미있고 재치 있고 웃긴 것만 읽지 말았으면 합
니다. 그런 만화책을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만화만 보려고 하
는 것도 편견입니다. ‘만화는 으레 그런 거지’라는 생각이 만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죽이고 있
기 때문입니다.

만화책 가운데는 우리의 아픈 현실을 감동 깊게 그려낸 작품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왜곡되었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어려운 고전
을 풀어내 알기 쉽게 전달하는 만화책도 있습니다. 나중에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이야기가 탁월한 만화도 있습니다. 이처럼 뜻 깊은 만화책들이 많은데 오로지 즐기려고만 보
아서는 안 되지요. 어른들이 만화책 보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이런 유의 작품은 보지 않고 일
회성의 즐거움만 주는 만화책을 주로 보기 때문일 겁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어른들이 만화책 보는 것을 걱정하는 이유는 오로지 만화책만 본다는
것입니다. 뜨끔한 친구들 많지요? 만화책 보는 것이 나쁠 리 없습니다. 그러나 만화책만 보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화책은 밤새 읽으면서 어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은 보지
않거나, 학교 공부는 아예 작파해버린다면 큰일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새로운 지식과 교
양은 대체로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그림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만화는 아무래도 그림 위주이지요. 그래서 지나치게 만화만 읽으면 글 중심의 내용을 받아들
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만화가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영역을 다룬다
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글 중심으로 이루어진 빛나는
책들이 많습니다. 만화책만 본다는 것은 이런 책들을 등한히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읽고 고민할 책이 수두룩한데, 이를 읽지 않는다면 걱정하지 않을 어른이나 선생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화방을 뻔질나게 드나들던 나도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만화책보다는 소설을 주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주변에서 좋은 만화라 권하면 게걸스럽게 읽어치웠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좋은 만화는 신나게 읽고 있습니다. 만화책이라면 무조건 사갈시하거나, 쓸데없는
것이라 여기는 편견은 잘못되었습니다. 아직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친구라면, 만화
책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그 이야기의 세계에 흠뻑 빠져보는 것은 중요한 경
험입니다.

만화책을 즐겨 보는 친구라면 주변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말고 계속 보십시오. 그
러나 주의할 것은 있다고 말했지요? 두루 좋은 만화라 추천하는 것을 보기, 만화만 보지는 않
기. 이것만 지킨다면 만화책은 독서의 적이 아니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답니다. 늙은 만화광
이 만화만 좋아하는 여러분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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