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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착하게 살고 싶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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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0 22:15 조회 5,86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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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산다는 것은?
태어나서 가장 어릴 때부터 듣는 인생에 대한 훈계라면 대체로 “착하게 살아라”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진심은 “그저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살라”는 훈계를 하고 싶더라도, 그럴싸한 좋은 이야기의 원형 중 원형이 바로 착하게 살자는 것이다. 그런데 착하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가장 간단한 기준으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망가트리는 것인가를 들 수 있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같이 사는 동네가 더러워지거나, 그것을 막으려면 누군가가 주워야 하니까 착하지 않다. 남에게 사기를 치면 그 사람의 재산을 부당하게 훔치고 생활을 망가트리는 것이라서 착하지 않다.

어떤 거짓말은 억울한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착하지 않고, 다른 어떤 거짓말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원활하게 더불어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착한 것으로 간주된다(“예의”가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물론 그런 기준이 항상 같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사회 자체도 좀 더 작은 사회와 큰 사회들이 항상 겹쳐 있어서 가끔 가치가 충돌하기도 한다. 기업의 탈세와 공무조직의 부패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는 그가 속한 직장이라는 내부사회에서는 착하지 못한 짓을 했지만, 보다 큰 사회로 보자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한 소중한 영웅들이다.

그렇다보니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마냥 착하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이쪽이 살기 위해 다른 쪽에 피해를 주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되기 쉽다. 나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정당화를 통해 피라미드 판매로 지인들을 엮고, 친목이라느니 군기 잡는다니 하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화합을 강제하고, 내가 큰 책임을 져야 할 사고를 피하기 위해 은폐하면서 시끄러워져 봤자 아무에게도 좋을 일 없다고 자기위안 삼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어느덧 엄청난 위업이 되어버렸다. 권선징악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현실적 선의 모습을 정립하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다.

공감을 이룬 현실 반영의 상상력
<신과 함께>는 저승에 관한 만화다. 첫 번째 부분인 ‘저승편’이 단행본 3권짜리로 출간되었으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현재 두 번째 부분인 ‘이승편’이 연재중이다. 이 작품은 죽은 이들이 생전에 착하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지옥의 처벌을 받거나 환생의 문으로 통과하는 무속적 저승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만화다. 애초에 많은 종교와 신화에서 저승이란 권선징악의 궁극적 실현인데, 현실의 불공평함을 뛰어넘는 완전한 정의가 완성되는 곳이다. 평생 선한 일만 하고 살았는데 돈도 못 벌고 밥도 굶고 권력자에게 탄압당하고 불쌍하게 삶을 마감한 이를 보며 그 사회 구성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는 착하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여 다들 파괴적 폭주를 하는 것 보다는, 이 세상뿐 아니라 저 세상까지 합치면 그래도 정의가 실현된다고 희망을 가지는 쪽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정교하고 공명정대하게 삶의 과정을 평가하고, 확실한 처벌과 확실한 보상을 하는 사후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몇 가지 동아시아 종교들과 기타 여러 사상들이 섞인 전통 무속신앙의 경우, 49제 동안 망자가 8대 지옥을 차례로 통과하며 각 지옥에서 특정한 종류의 죄과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된다.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 자의 혀를 뽑아 그 위에 농사를 짓는 지옥도 있고, 마음을 상하게 한 자를 얼음에 가둬버리는 지옥도 있다.

그런데 이런 지극히 기능적으로 분류된 상상력에서 엿볼 수 있듯, 저승이라는 상상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당대 현실을 반영하여 가장 공명정대한 모습을 갖출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민담에서 그것이 염라대왕의 살생부라는 기록문화와 관료조직으로서의 저승사자들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오늘날의 이야기에서 그런 것을 해보겠다면, 두루마기 입은 저승사자가 나오는 전설의 고향으로는 곤란하다. 현대적 법정에서 법조 대리인과 함께 하는 변론, 각 판결 지점까지 지하철과 자동차로 이동하는 세상, 저승세계의 담당자들끼리도 서로 조직 속성에 따라서 협력도 하고 목표에 따라서 마찰도 빚는 그런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결국 정의는 실현되니까 착하게 사는 것이 좋겠다는 고전적이고 순박한 메시지를 유치하고 교조적이지 않게 당대 독자들에게 공감을 시켜야 한다. 요즘 세상을 무대로 그런 작품이 가능할까 싶을 때 정말로 그것을 해낸 신기한 작품이 바로 『신과 함께』다.

전통 관념을 자연스럽게 현대화한 구성
완결된 ‘저승편’은 두 가지의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듯 저승의 여러 단계를 구석구석 방문하는 이야기로, 그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이 저지르는 여러 죄과와 그것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활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특출나게 살아온 적 없이 과로사로 사망한 중년 샐러리맨 김자홍씨가 그를 돕는 신출내기 저승변호사 진기한과 함께 8대 지옥의 각 판결을 헤쳐나가며 환생의 문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줄거리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저승으로 오는 것을 거부하고 사망 후 이승을 떠도는 원귀들을 잡아오는 것이 일인 저승차사들이 주인공이다. 군 의문사 사건에 휘말려 사망한 후 원귀가 된 이를 데려오기 위해 강림도령, 덕춘, 해원맥 등의 요원들이 활약하는 내용인데, 이쪽 이야기 역시 죄를 저지르고 숨기는 것의 대가, 용기를 내서 드러내는 것의 가치, 피해를 주고 피해를 당하는 이들의 모습 등으로 가득하다. 죽은 자가 심판을 받는 이야기, 그리고 여러 가지 이승의 문제를 풀어나가며 죽은 자를 심판대로 데려가는 이야기, 그 두 가지가 결말 부분에서 하나로 이어지며 감동적 여운을 남긴다.

『신과 함께』가 자연스러운 재미를 주는 것은 불교와 민속신앙의 개념들이 결합한 한국의 전통적 지옥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옥의 구성은 전통적 구분과 같지만, 죄의 내용과 판단절차는 충실하게 현대화되어 있다.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은 혀뿐만 아니라 키보드의 시대인 만큼 손가락도 문제 삼는다. 강력범죄를 묻는 독사지옥은 단지 당사자의 죄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와 친척들의 죄를 같이 묻는데, 이런 연좌제는 서로 알게 모르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현대 ‘네트워크 사회’에서 더욱 울림이 크다.

한 명이라도 더 구제하려는 관음보살측의 사상과 죄를 보다 엄하게 다스려 일벌백계를 하려는 지옥판관측의 사상은 서로 충돌하여 검찰과 인권변호사를 연상시키는 구도로 나타난다. 원귀를 쫓아다니는 저승차사들은 수사요원의 차림새와 행동거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승의 일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하면서도 너무나 기가 막힌 사연에 대해서는 인간적 판단도 할 줄 아는 전문직으로 묘사된다.

착한 삶을 지지하는 이야기
착한 삶에 대한 대가는 판결 자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옥 사이를 여행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착하게 살아온 할머니는 유명한 고급 저승변호사가 도와주며 지옥길의 험한 구덩이를 지날 때 탱크 같은 고급차로 모셔진다. 수월하게 재판을 마치고 49제 후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쁜 짓을 해온 이들은 허름한 운송수단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통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는다. 물론 많은 지옥을 여행할 것 없이 그 중 하나에 머물며 영겁의 고통으로 속죄를 하게 되지만 말이다. 반면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 선행을 일삼은 것도 아닌 애매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는 미묘하다.

『신과 함께』의 저승은 대가를 치르는 곳이다. 이야기를 통해 점차 드러나는 김자홍 씨의 삶은 별 것 없는 소시민의 삶을 살면서도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는 못했으나 늘 생각했으며, 오히려 적당히 속으며 피해를 보면서 살아온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그런 궤적에서 선함을 찾아내 부각해줄 수 있는 저승변호사와 만날 때, 소소한 삶의 선함이 긍정된다.

악령 수거에 나선 차사들은 원래 규칙상 이승의 인간사에 개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악행 없이 악령이 된 이와 악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 그 피해를 입는 주변인들의 사연을 보며 나름의 조치에 나선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엄청난 자선기부나 초인적인 선행이 아니라도 그저 죄 짓지 않고 소심하고 착하게 사는 수많은 작은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서로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상처, 웬만해서는 사회면에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 서로 등쳐먹는 현실들에 대해 한 번씩 다시 뜨끔하게 만든다. 착하게 살고 싶어진다는 말이다.



화려한 기교 없이 뛰어난 연출
느슨한 그림체는 만화라면 응당 미소년 미소녀를 찾는 이들에게는 관심을 떨어트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이런 이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옥의 끔찍한 형벌들이 잔인하되 역겹지 않게 묘사될 수 있으며, 지옥 사이를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 철판으로 개조한 자동차 같은 소재들이 유치하기보다는 순수하게 기발한 느낌으로 다가오도록 만든다. 게다가 평범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 속 인물들의 모습이 정말로 평범하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몰입에 큰 득이 된다.

그리고 그림체의 느슨함이나 전체적으로 거의 균일한 칸 배치에서 받는 인상과 달리, 완급을 조절하고 적절한 반전이 들어가는 칸 선택과 연결을 통한 연출이 만만치 않다. 의문사당한 장병의 어머니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 망자가 저승지하철을 타고 처음 플랫폼에 내리는 대목 등의 응축력은 화려한 기교 없이도 뛰어난 전개를 보여준다.

현재 <신과 함께>는 2부 격인 이승편이 온라인에서 연재중이다. 아직 이야기의 초입이지만, 오래된 집에 붙어있는 수호귀신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판자촌의 할아버지를 데려가려는 저승차사들과 대립하는 등 오늘날 현실의 주변적 모습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만약 이런 기세로 이승편, 그리고 앞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완결편인 신화편까지 무사히 완성된다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로 꼽기에 손색없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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