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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 승현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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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3 22:23 조회 5,74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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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부터 교육복지실 근처 화장실에 학생들이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한 낙서를 보다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마음껏 낙서를 하게 해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유리에 잘 쓰고 잘 지워지는 유리전용펜이 있었고 아이들에게 낙서를 하게 해보았다. 아이들은 신나게 낙서를 했고 멋진 작품부터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글도 보였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재미있어서 바로 지우지 않고 놔두었다. 그때 창문 밖에서 낙서를 바라보고 있는 승현이(가명, 중3 남)를 보았다. 자 주 눈에 띄는 아이 승현이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다.

1학년 전체 학생들에게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검사(K-척도)’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고위험군 학생들 12명이 집단상담을 받게 되었고 그 중 한 명이 승현이었다. 그 당시 승현이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상담사의 지시에도 잘 따랐고 공격성도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먼저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승현이는 얼굴만 알고 있던 채로 2년을 보내고 말았다. 지나가면서 계속 눈에 띄긴 했지만 항상 더 급한 아이들을 만나느라 자꾸 승현이를 한 번 봐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승현아! 너도 들어와서 낙서해도 돼.”
밖에서 창문 낙서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어서 말을 걸어보았다.
“네, 네… 들어가도 되요?”
“그럼, 교육복지실 문 앞에 쓰여 있잖아. ‘아무 이유 없이 들어오셔도 됩니다’라고.”
승현이는 머뭇거리다가 잘 들리지 않은 소리로 말을 했다.
“저… 그림 잘 그려요. 들어갈게요.”

그리고 교육복지실까지 들어오는데 또 시간이 걸렸다. 덩치가 큰 승현이는 행동이 무척 느렸다. 그런데다가 교육복지실 안에 들어서자 잘 씻지 않고 땀을 많이 흘린 냄새가 났다. 반 아이들이 싫어할 것 같았다.
“멋진 작품 기대할게!”
승현이에게 색색깔의 유리전용펜을 주고 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 당시 교육복지실을 자주 이용하는 학생들과 인권에 관한 UCC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수연이와 계속 의견을 나누고 있던 중이었는데 교과서 안에 학생이 그린 낙서들이 살아 움직이는 콘셉트가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수연이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선생님, 저기 김승현 말이에요. 교과서에 낙서 많이 해요.”
승현이는 창문 앞에 서서 무엇을 그릴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수연이에게 우리가 나갈 대회와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에 대해 승현이에게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그 동안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도 보여주고 승현이의 그림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때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승현이의 작품 활동
5교시가 끝나고 승현이는 교과서를 들고 나타났다. 얼굴이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이 그림 좀 봐주세요! 수연이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나는 대로 그렸어요.”
교과서를 수줍게 내밀었다. 급하게 처리해야할 문서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보이는 몇 개의 그림에 멋지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저기… 삼각형의 활용… 거기랑 뒤에 이차함수… 에도 … 있어요…”
거의 다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보지 못한 2개의 그림을 정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해 주었다. 건성으로 본 것이 미안하여 의자를 고쳐 앉아 승현이를 바로 바라보고 책장을 다시 넘겼다. 그리고 그 중 좋았던 그림을 펼쳐서 마음껏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감독님(?)에게 보여주기로 하였다. 승현이는 수줍게 웃었다.

“저… 동영상도… 알아요.”
수연이를 기다리는 동안 승현이에게 디지털카메라를 주고 사진을 찍게 하였다. 날씨가 그렇게 덥지 않았는데도 승현이는 땀이 교과서에 떨어질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라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힐끔거렸다. 교실에서는 험한 소리를 하는 아이들도 다행히 교육복지실에서는 대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분명 냄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승현이가 땀을 흘리기 시작하자 승현이의 냄새는 더 심해졌다. 방과 후에 승현이가 다시 들어왔다. 6교시 수업 시간 동안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또 바꾸었다고 했다.


많이 외로운 승현이
퇴근을 해야 하는데 승현이는 집에 가지 않고 계속 컴퓨터에서 작업 중이다.
“너 집에 전화 안 해도 돼? 늦었는데?”
“엄마는 집에 온 줄 알 걸요.”

승현이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다. 동생들은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에 가고 승현이는 PC방으로 간다. 부모님은 가게를 하시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는 모두 주무시고 계시고, 새벽 2시가 다 되어 들어오신다고 했다. 5년 전까지는 아버지만 일을 하셨지만 갑자기 가게가 힘들어져서 어머니도 같이 일하게 되었고 그 후로 어머니는 집안을 정리하는 것도 아이들 일상을 챙기는 것도 점점 손을 놓게 되셨다고 했다. 승현이도 처음에는 동생들처럼 학원에 다녔는데 아이들이 뚱뚱하다고, 냄새난다고 놀려서 더 이상 다니지 않았고 1학년 때 인터넷 중독 진단결과 때문인지 집에 컴퓨터도 고장난 후로 고쳐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냥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뭐가 되고 싶은 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요.”

집에 딸이 기다려서 지금 퇴근해야 한다고 하며 승현이를 데리고 나왔다. “저, PC방 가서 한 시간이면 UCC 다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 보여드릴게요.”
마침 지나가던 선생님 한 분이 승현이가 저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웃으며 지나가셨다. 헤어지면서 UCC내용이 좀 아쉬워 여러 학생들이 생각하는 학생인권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책도 읽어보라고 했다. “선생님… 다른 애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요? 정말 고민이 있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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