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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기러기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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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3 22:13 조회 5,29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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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들아 잠 안자고 뭐하니?

응, 가을밤이 얼마나 긴지 재어보는 중이야!

시인의 말
여름 참 길지요. 언제 끝나려나? 장맛비는 또 얼마나 끈덕지게 내리던지요. 지긋지긋하던 그 빗줄기가 안도현 시인의 상상력처럼 면발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그 ‘즉석면발’을 젓가락으로 걷어먹느라 분주했겠지요. 접시를 들고 비오는 창가에 서 있다가 면발이 굵다싶으면 칼국수로 먹고 얇다싶으면 냉면이나 소면으로 먹으며 여름을 건널 수 있었겠지요.

아니, 정말이지 그 무섭기까지 하던 빗줄기가 진짜 면발이었다면 그것들을 먹어 치우느라 배 터져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자나 옥수수뿐 아니라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푹푹 삶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악다구니로 내려 쬐던 땡볕은 또 어떻고요. 휴우. 하여튼 별스럽던 여름 무사히 건너시느라 고생들 했습니다.

구월입니다. 처서 지난 가을입니다. 올해는 추석도 일찍 들었군요. 그새 햇과일이며 햇곡식이 나온다 생각하니 좀 쓸쓸해지기까지 합니다. 뭘 했다고 벌써 결실의 계절이? 에휴, 공기는 또 일순간에 확 바뀌겠지요. 올해도 빈손인가? 아, 손바닥에 올려진 쭉정이 날리는 소리 들립니다. 어느 날 문득, 멍하니 빈손 쳐다보다 하늘 올려다보면 거짓말처럼 기러기 떼 날고 있겠지요. 그럼 기러기 떼가 당신을 보고 이렇게 물어올지 모르겠습니다. 잠 안자고 뭐하세요? 그럼 뭐라고 대답하실는지요. 머지않아 차고 긴 밤들이 찾아오겠지요. 외로움이 얼마나 긴지, 가을밤이 얼마나 긴지, 궁리해보게 만드는 밤들 말입니다. 장마철 빗줄기를 길게 이어 엮어두었다가 그런 것들이나 재어볼 걸 그랬나. 외로운 척 쓸쓸한 척 폼 잡기 좋은 계절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맑아지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요. 모두모두 한껏 고요하게 높아지고 맑아지는 구월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참, 명절들 잘 쇠시고요.

박성우 ◉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동시집으로 『불량 꽃게』, 청소년시집으로 『난 빨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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