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시/만화 455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5:03 조회 5,238회 댓글 0건

본문

진주 복음병원 305호에는
버스에서 넘어져 허리 다치고
안방에서 엉덩방아 찧어 엉치뼈 금 가고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어깨뼈 부러진
할머니 환자만 여섯 명

유리처럼 깨지고 금간 뼈들이 더디게 아물어 가는 동안
물약 똑똑 떨어지는 약병을 매달고
아들 자랑에 딸 자랑을 펼친다.

침대 이름표 나이를 다 합해 보면 사백쉰다섯 살,
아들딸 낳고 키워낸 역사가
조선왕조 오백년만큼이나 깊다.

텔레비전 연속극보다
더 재미있고 때로는 눈물나는
할머니들 얘기가 끝나고
병실에 불이 꺼지면

자랑 속 주인공은
아무도 할머니들 곁에 없다.

시인의 말
그 할머니는 허리뼈에 금이 가서 입원했는데 보호자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심해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용변통을 쓰지 않고 굳이 화장실을 이용했다. 먼 데 사는 자식들이 걱정할까봐 연락도 안 한 듯했다. 평생 농사 지어 자식들 키우고 남편 일찍 떠나보내고, 살아온 삶이 얼굴 주름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도 할머니는 유쾌했다.

그 할머니는 한가위를 잘 쇠셨을까? 바빠서 고향에 내려오지 못한 자식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픈 허리로 명절 음식을 장만하고,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낼 것들을 얼마나 많이 마련해 두었을까. 손주들 재롱 보는 것도 잠시, 또 훌쩍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도 흘리셨겠지.
그러나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늘 유쾌하던 할머니, 아니 우리의 모든 어머니들. 그리고 부끄러운 자식들.

남호섭 ◉ 동시집 『타임캡슐 속의 필통』, 『놀아요 선생님』을 냈다. 지금 산청 간디학교 교사이다.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