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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별이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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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3:39 조회 5,5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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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하얀 별이 반짝했다.
동생 선우와 자전거로 천변을 신나게 달리고 오던 길이었다. 어스름한 저녁, 엄마가 말
한 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려 마음이 급했지만, 선우는 언제나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해야만 한다. 천변을 벗어나면 우선 아파트 앞 상가의 좋아하는 간판과 전화번호를 읽
는다. “나는 가수다 노래방 587-1212, 굿모닝 슈퍼 587-5995….”

그리고 멈추는 곳이 있다. ‘랄랄라 치킨점’에서 꼬지에 꿴 바비큐 치킨이 빙글빙글 돌아
가는 걸 잠시 들여다봐야 한다. 배가 안 고플 때도 침이 꼴까닥 넘어가는데, 오늘처럼 저
녁밥 먹을 시간을 넘겼을 땐 맛있는 치킨 냄새를 맡으며 동생을 기다리는 게 힘들다. 그
다음은 ‘친구찾기 애견센터’앞, 여기는 나도 좋아하는 곳이다. 나와 동생은 유리문 너머
로 강아지들을 한참 동안 구경한다.

이렇게 해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고, 주차장을 지나 우리가 사는 107동 현관 앞으로
갈 때였다. 별이 반짝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자세히 보니, 차들 사이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하얀 털이 살짝살짝 보였다. 집안에서 키우는 작은 강아지였다. ‘주인을 잃어버렸나 보
네.’나는 걱정과 호기심이 생겼지만, 동생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
다. 그렇지 않아도 늦어서 엄마에게 혼날 게 뻔한데, 선우가 관심을 갖게 되면 더 늦어지
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이 눈치채지 않게 강아지를 흘끗 보았다. 그때 강아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이 녀석은 나를 졸졸 따라왔다. ‘어떻게 하지?’라고 잠시 망설였지만 그냥 두었다.
어두워지는데 위험하게 밖에서 돌아다니라고 쫓아버릴 순 없었다.
아파트 일층인 우리 집으로 선우를 먼저 들여보내고, 내가 뒤따라 들어갔다. 나는 현
관문을 활짝 열고 천천히 자전거를 옮겼다.

“진우, 선우, 너희들 지금 몇 시야? 아빠도 퇴근해서 저녁 못 드시고 기다리잖아.”
엄마가 부엌에서부터 잔소리를 퍼부으며 현관으로 나왔다.
“어어, 미안해요.”
당황한 선우의 말에 엄마가 존댓말로 다시 말했다.
“죄송해요.”
선우가 엄마 말을 따라했다.
“죄송해요.”

이제 엄마가 내게로 눈을 돌렸다. 형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훈계가 시작될 것이다. 그런
데, “으악, 이게 뭐야!”엄마가 놀라 소리치며 한쪽으로 물러섰다. 나를 뒤따라오던 강아지
가 어느새 쏜살같이 집 안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크크크. 언젠가 별똥
별이 휘익 하고 순식간에 떨어지는 걸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나는 아까부터 자꾸만 이 녀
석을 보며 별이 생각났다. 그래, 네 이름은 별이야.

엄마의 비명에 선우는 엄마 품에 안겼고, 아빠가 안방에서 뛰어나왔다.
“너희들이 데려왔어? 저 강아지?”
엄마가 물었다. 나는 씽긋 웃던 표정을 얼른 바꿔 시치미를 떼었다.
“아니요, 모르는 강아지인데요.”

그동안 아빠는 거실을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잡아 안았다. 엄마는 다른 층
에 사는 강아지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 둘러보고 왔다. 우리는 평소보다 늦은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밥을 먹자마자 엄마는 관리실에 연락해, 강아지를 잃어버린 사람
은 107동 101호로 찾으러 오라는 방송을 부탁했다.
“근데 강아지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떡해요?”

나는 아까부터 하고 싶던 말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강아지 절대 못 키워. 집에서 동물 키우는 거 좋아하지도 않고, 털 날리는 것도 건
강에 안 좋아. 무엇보다도 세 남자 뒷바라지도 벅찬데 강아지까지 뒤치다꺼리 할 기운 없
어.”
엄마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이전에도 들었던 말이다.

“그렇지만 주인이 안 나타나면 버릴 수는 없잖아요.”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아빠는 “흠, 흠.”하며 우리처럼 처음부터 강아지에게서 눈
길을 떼지 못하고 계셨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의 말에 “그럼, 그럼.”하고 맞장구치지는
않았다.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고 있었다.
“아이, 몰라. 내일 아침 방송도 부탁해 놨으니까, 내일까지는 찾으러 오겠지. 이 조그만
녀석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왔겠지. 설마 더 먼 데서 오기야 했겠어?”

엄마의 바람과 달리 강아지 주인은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강아지 주인을 찾는다’는 방송을 듣고,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의 광고문을 보았
다.

그동안 나는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아무데나 싸 놓는 똥을 치웠다. 선우는 내가 시키
는 대로 제법 잘 따라했다. 아빠는 평소에도 우리랑 잘 놀아주지만, 매일 보는 텔레비전
아홉시 뉴스도 보지 않고 우리와 함께 강아지랑 놀았다. 엄마는 강아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불만스러워했고 강아지 때문에 힘들다며 불평을 했지만, 사료를 사다가 꼬박꼬
박 챙겨주었다. 강아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엄마가 거실에서 이모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우리가 키워야겠어. 선우를 위해서도 괜찮을 것 같아. 선우도 강아지를 돌보면서
배울 게 있을 것 같아. …… 아니, 진우처럼 좋아하고 잘 돌보지는 못하지. 형 옆에서 쳐다
보고, 시키면 따라하고 그 정도야.”

앗싸! 선우가 더 어렸을 때는 기침감기에 잘 걸리는 선우 때문에 강아지를 못 키운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엄마는 선우, 선우, 선우를 위해서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말하고 있었
다. 그런 건 상관없다. 그동안 형답게, 동생을 위해서, 엄마를 힘들지 않게 하려고, 아빠의
기대를 알기 때문에, 참고 견뎌온 시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 같았다. 여덟 살이지만 생
각은 네다섯 살 수준이고, 몸은 자라도 생각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거라는 내 동생 선우.

어린아이가 있는 집은 언제나 웃음꽃이 핀다며, 그래서 우리집은 영원히 행복할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런데 너무 행복하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까봐, 그걸 일깨워주
는 일이 가끔 생기는 거라고 아빠가 말했다. 그래서 엄마가 동생 때문에 가끔 힘들어하거
나 슬퍼할 때마다, 나는 나라도 엄마를 울게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나는 잽싸게 아빠에게 이 소식을 문자로 알렸다. 퇴근해서 집에 온 아빠의 손에는 예쁜
강아지 집과 철로 만든 울타리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이미 지어 놓았던 별이의 이름을 발
표했다.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봤지만, 이어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낸
자료 뭉치를 건넸다. 거기에는 개 키우는 방법과 훈련 방법, 주의할 점 등이 좌르륵 담겨
있었다.
“별이 키우기는 무조건 남자들 몫이야. 그 약속이 깨지면 그 땐 바로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낼 거라는 것 모두 명심해.”

아빠와 나와 선우는 엄마 앞에서 손을 들어 선서하고, 엄마와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다. 그제서야 엄마가 웃었다. 나와 아빠는 서로 바라보며 눈을 찡끗했다. 이건 엄마를
웃게 했을 때 우리끼리만 통하는 신호다. 우리가 웃으니까 선우도 덩달아 펄쩍펄쩍 뛰며
웃었다. 엄마는 그런 선우를 꼬옥 안아주며, “이제부터 선우가 별이 오빠니까 잘 돌봐줘
야 돼.”라고 말했다.

새로운 가족 별이와의 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걸어 다닐 때 별이는 내 품에 안겨
있고, 내가 앉아 있을 땐 무릎 위에서 떠나질 않았다. 텔레비전도 같이 보고, 컴퓨터도 같
이 하고, 간식도 같이 먹었다. 별이는 나만 바라보았고, 내 기분을 잘 알고 맞춰주었다. 온
전히 나만 바라보고 무조건 따르는 별이를 나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엄마
의 잔소리와 차가운 눈초리가 살아나고 있었다.

“개집에 가둬 두는 것도 훈련이라잖아. 자꾸 풀어주면 혼자 있을 때 불안한 병이 생
겨.”
“네 간식 자꾸 주면 사료는 안 먹어서 영양에 문제가 생겨. 위염에 걸릴 수도 있다잖
아.”

그래도 안쓰러워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진우야, 선우 자전거 타고 싶어 하는데 좀 데리고 나갔다 올래?”
“진우야, 선우가 심심하잖아. 같이 블록 놀이 좀 해줘.”
엄마의 부탁에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건성으로 들어주는 척했다.

별이가 우리 가족에게 적응하며 커갈수록 별이에게도 서열을 따지는 개의 속성이 드러
났다. 나를 가장 잘 따르고 아빠와 엄마를 그 다음으로 따랐다. 그리고 선우는 잘 따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따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했다. 다가오는 선우에게 짖어 댔
고, 선우가 갖고 노는 장난감들을 흩어 놓거나 물고 갔다. 그럴 때마다 선우는 울먹거리며
엄마 뒤로 숨었다. 나중엔 아예 별이만 보면 방으로 도망을 갔다. 아빠와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선우가 거실에 나오지 못하자 방문을 닫고 혼자 있지 못하는 선우를 위해, 엄마는
선우 방에 울타리를 달아주었다. 선우가 갇힌 거다. 그걸 보는 건 나도 마음이 아
팠다. 이제 엄마와 아빠는 별이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선우
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나는 별이가 점점 더 불쌍해
졌다. 별이도 어려요, 아직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요. 나는 엄마 아빠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동안 나를 위한 건 하나도 없었잖아요. 이번엔 나
를 위해서, 나만 위한 것도 한 번쯤 들어주면 안 되요?
그날 밤 내가 잠을 못 이루며 뒤척일 때, 거실의 별이도 낑낑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깜짝 놀랐다. 별이가 사라진 것이다. 나는 학교가 끝나는 시간부
터 언어치료와 독서치료, 수영을 배우는 선우를 데리고 다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
슴이 두근거리고 목이 메었다.
“별이 어디 갔어요?”
“위염에 걸려서 동물병원에 입원시켰어. 분리불안증도 심해서 치료가 필요하대. 며칠
있어야 나올 수 있어. 그동안 너도 별이 없이 지내봐.”

일단 다행이었지만 별이가 아픈 게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맨 처음 알아서 훈
련시키고 돌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내 잘못이다. 안쓰러워서, 사랑이 지나쳐서
병이 난 것이다. 집은 별이가 오기 전처럼 고요했다. 나는 엄마와 선우가 돌아오는 저녁때
까지 알아서 간식을 챙겨 먹고, 알아서 학원을 다녀오고, 알아서 학교 숙제를 마쳐야 한
다. 텅 빈 별이의 집을 바라보기도 힘들었다. 별이도 혼자 있는 시간은 이렇게 힘들었겠지.

별이가 없는 동안, 나는 시험공부를 핑계 삼아 주로 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선우는
방에서 거실로 나와 마음껏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별이가
없는 셋째 날,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나는 거실에서 엄마와 아빠가
얘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처음부터 별이를 키우는 게 아닌데. 선우가 별이에게 쫓기는 걸
보면 속상하고, 진우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보내자고 할 수도 없고, 별이가 아무도 없을 때
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걸 보면 말 못하는 짐승에게 못할 짓을 시키는 것 같
아. 다 내 잘못이야.”

“아니야. 내가 처음부터 별이 키우는 일에 좀 더 관여했어야 하는데, 한다고 해 놓고 언
제나처럼 아이들과 당신에게 미룬 내 잘못이 더 크지.”
그리고 엄마가 울었다, 나 때문에.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내가 말했다.
“이제 됐어요. 별이를 보낼게요.”

며칠 후, 아빠는 나에게 산책을 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찻길을 건너 주택가를 돌았다.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담장이 낮고 마당이 예쁜 집들이 많은데, 언젠가 저런 집에서 살자
며 우리 가족이 가끔 산책을 오던 곳이다. 아빠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언덕 위까지 올라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파란 대문 집 앞에서 아빠가 멈췄다.

“이 집 어때? 별이를 키워주겠다는 분들이 사는 집이야. 아빠 회사 직원의 친척인데 할
아버지 할머니라 거의 집을 비우는 일이 없으시단다. 게다가 별이만한 남자친구도 이미
키우고 계신대. 집에서 가까우니까 언제든지 보러 와도 된다고 하셨어. 네가 만나보고 결
정해. 지금 들어가서 만나볼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당엔 꽃나무가 보이고 잔디밭은 푸르렀다.
“마당도 있고, 친구가 있으면 별이도 정말 좋을 거예요. 엄마한테 말해서, 내가 내일 학
교에 간 사이에 동물병원에서 찾아다 보내라고 해주세요.”
“별이랑 새 주인이랑 만나보고 보내지 그래?”
“아니요, 그럼 더 못 헤어질 거예요.”

나는 조금 울면서 언덕을 내려왔다. 아빠는 그런 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조금 앞
서서 걸어주었다. 잠들기 전 또 울음이 나와 동생이 모르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
다.
다음 날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선우가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했
다.

“별이 엄마 아빠 찾았어. 별이 막 뛰었어. 별이 짝꿍 있어.”
아마도 엄마와 별이를 새 집에 데려다 준 모양이었다.
“별이 갔어. 형아 울었어. 형아 미안해.”
나는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도 미안해.”
엄마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천변을 달렸다. 언제나처럼 아빠가 맨 앞에 서고,
다음은 선우가, 그 뒤를 내가 선우를 살피며 따랐다. 그리고 엄마는 순전히 실력 때문에
맨 뒤에서 쫓아오느라 바쁘다. 언제나 행복하면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잊어버릴 수 있
다. 별이는 그걸 가르쳐주려고 별처럼 반짝하고 다녀간 것이다. 별이도 행복하라고 보
낸 내 마음을 알려나? 참, 지금 내가 탄 자전거는 열두 번째 생일선물로
받은 반짝반짝 빛나는 새 자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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