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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세계의 십대와 함께 즐기는 문학] 모든 거리의 아이를 구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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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3-17 22:36 조회 5,65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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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작가. 번역가
 
중고서점에서 구매한 『청소년 사전』(마음의숲)을 이제야 펼쳤다. 속지에 짤막한 두 줄 메모가 보인다. “청소년의 웃음소리는 하느님의 음악입니다.” 만년필로 쓴 그 글 밑에는 ‘조재연 신부’라 적혀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이름과 동일하다. 저자가 누군가에게 선물한 책이 돌고 돌아 내게로 온 것 같다. 그런데 얼굴이 좀 화끈거린다. 나 역시 내가 쓴 책이나 옮긴 책에 서명을 하고 준 적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상담 사례들은 고길동(조재연 신부의 별명) 상담실로 배달된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가출을 다룬 꼭지를 슬쩍 넘겨 보니, 국어사전에 실린 공식적 의미와 달리 요즈음 청소년들이 공유하는 ‘가출’의 정의가 이렇게 내려져 있다. “가출: 가정이 제발 다시 가정이 되기를 바라며 집을 나감” 이번엔 얼굴이 좀 더 화끈거린다. 저자에게 선물받은 책을 버리게 된 사정은 부모들이 방치한 가정을 떠나야 했던 청소년들의 속사정에 비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놈의 집구석!
집인데 더 힘들어요!
『열다섯의 가출』
미셸 바야르 지음|행복나무 옮김|큰북작은북|2012
 
사춘기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시기다. 한부모 가정이나 재혼 가정이나, 그 안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심하게 성장통을 앓는다. 열다섯 살 스테파니라고 예외는 아니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 소식을 듣고 난 뒤 자신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부모의 불화가 자기 때문이 아닐까, 숨이 막힌다. 때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아빠 엄마에게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스테파니보다 속이 한결 더 시끄러운 부모님은 딸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한다. 오히려 “난 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라며 힐난하는 쪽은 엄마다. 부모의 불화에 뒤따른 살얼음판 같은 집안 분위기를 겨우겨우 견디고 있던 스테파니는 참다못해 기숙학교로 가겠다며 말대꾸를 한다. 그러나 엄마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변함없는 몰이해뿐이다. 억울함과 외로움을 마땅히 호소할 곳이 없는 스테파니는 더는 냉랭한 집안 공기를 버텨 내지 못한다. 부모의 잦은 다툼에 양쪽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압사당하기 전에 스테파니가 내린 결정은 가출이다. 하지만 스테파니의 가출은 소심하다. 기껏 생각한 곳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생앙토냉이다.
한편 아버지와의 이혼 이후 심해진 엄마의 과잉보호에 포로가 된 열네 살 소녀 아델은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집을 떠난다. “엄마는 내가 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아. 엄마가 사주는 비싼 선물보다 내겐 자유가 더 필요해.”라는 문구를 넣은 한 장의 편지를 집에 남겨 두고서. 아직 철부지인 아델은 이 한 장의 편지로 인해 가출 내내 경찰의 추격을 당하게 되리란 걸 모른 채, 길거리에서 만난 스테파니와 함께 툴루즈 행 기차에 오른다. 신중한 성격의 스테파니와 달리 즉흥적이고 애교 많은 아델은 툴루즈에 사는 아빠에게 함께 가자며 조르지만, 스테파니는 자신들을 계속 따라다니는 중년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따돌리기에 바쁘다. 기차 안에서는 검표원에게 무임승차 사실을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위장을 하거나, 뒤쫓는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숨거나 도망쳐야 한다.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여행을 시도했던 두 십대 소녀는 갑작스러운 자유를 감당하기가 버겁기만 하다. 돈 한 푼 없이 길을 나선 십대 소녀들을 노리는 낯선 이들은 호의를 베풀며 접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낸다.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흥분으로 들뜬 아델이 호기심을 앞세워 행동하는 바람에 스테파니는 여러 차례 귀찮은 일을 겪게 된다. 스테파니 입장에서 보자면, 충동적인 아델을 홀로 남겨 두고 생앙토냉에서 제 갈 길을 가려는 판단을 내리고 모질게 행동한 점이 이해된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아직 아델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느끼곤 쏜살같이 기차로 돌아간다. 둘의 가출은 기차에서 히치하이킹한 자가용으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흡사 한 편의 로드무비와 같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아델은 스테파니와 함께 아빠의 집을 찾아가지만, 아빠의 새 부인은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이쯤 되자 아델이나 스테파니 모두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은 지긋지긋한 구속이 있지만, 자신들이 편히 잠잘 수 있는 엄마의 품임을 알게 된다. 이들은 부모의 무관심이 미워서, 또는 지나친 간섭이 숨이 막혀서 여행 가방을 쌌다. 일반적으로 가출은 아이들이 집을 나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부모가 아이를 집에서 떠밀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청소년 시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고, 자신을 믿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혹시라도 가족 구성원 중에서 “이놈의 집구석! 집인데 더 힘들어!”라고 속내를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여행 가방을 싸는 건 어떨까? 그런 다음 다 함께 가출을 하는 것이다. 일시적이지만, 즐거운 가출을. 조만간 다시 모두 웃으며 돌아오는 여행이란 이름의 가출을.
 
 
누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언니가 가출했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최정인 그림|한기상 옮김|우리교육|2007
 
『오이대왕』(사계절출판사)이란 작품을 통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를 알았을 때, 이 작가는 재치와 기지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의 소통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란 점에서 짐짓 무겁게 흐를 수도 있었는데, 얼토당토않은 기발한 상황 전개로 시종 코믹하고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그녀의 책 『언니가 가출했다』에 나오는 화자는 열세 살 소녀 에리카이다. 에리카에게는 일제라는 열다섯 살 언니가 있다. 평범한 외모의 에리카와는 달리 일제는 누가 봐도 다시 쳐다보고 싶어질 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제는 빼어난 외모 못지않게 빼어나게 거짓말도 잘한다. 마치 환상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인 것처럼 자신의 배경을 허위로 꾸미기도 하고, 동정이 필요한 대상 앞에서는 입에 침 한 번 바르지 않고 자신을 비참한 신세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에리카는 일제 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친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기에 그런 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일제와 에리카 자매의 친할머니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가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그리고 잘 돌봐 줘야만 하지.”
사실 일제가 거짓말로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속이는 데는 나름대로 심각한 원인이 있다. 자매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한동안 친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 집에서 배다른 형제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이야기의 처음 부분에서 필자는 거짓말을 일삼고 책임감도 없이 툭하면 집 밖으로만 나가려 드는 일제란 캐릭터에 공감할 수 없었다.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 간에, 일제의 행동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성숙한 공감 능력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일제가 가출한 동기가 서서히 밝혀지면서부터, 일제에게 향했던 공격의 시선이 일제의 엄마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상대의 입장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알려 하지 않고 딸보다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엄마의 모습이 중반 이후에 또렷하게 드러났다. 칭찬보다는 질책을 일삼고, 보듬어 주기보다는 아이를 궁지로 내모는 엄마의 태도는 인생을 고민하며 산 어른의 자세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야기는 “언니는 집을 나갔고, 나는 언니가 다시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라는 에리카의 독백에서 시작되었는데, 본격적으로 독서에 들어가기 전부터 과연 무슨 사연이 있기에 언니의 귀가를 기다리지도 않을까, 라는 호기심이 앞섰다. 하지만 이내 나이 문학보다 침착하고 조숙한 에리카를 통해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럴 만한 이유가 드러나리란 예감을 받았다. 에리카는 그저 어른들이 경찰에 가출 신고만 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언니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모습으로써 내 예감에 협조해 주었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차츰 반듯했던 에리카도 언니의 가출 동기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사건을 경험한다. 에리카가 일제의 행방을 수색하던 중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 약속된 귀가 시간을 어기게 되었을 때이다. 일제의 행방불명 이후 초긴장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에리카의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일제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에리카의 따귀를 때린다. 이 일로 에리카는 자신의 언니 일제가 느꼈을 외로움과 참다운 어머니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일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에리카가 어머니에게 직접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 문제에 대해 작가는 일제의 가출 동기는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기 위해서라고, 친할머니의 입을 빌려 표현한다. 또한 물질적인 측면에서만 부모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을 향해 이렇게 질책한다. “매 끼니를 챙겨 준다고 해서 엄마가 할 일을 다한 건 아니지요. 방이 예닐곱 개가 되더라도 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의붓아버지가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고 그냥 있다면, 그건 친절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책을 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아이들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세심하게 잡아내는 데 천재적이다. 그녀는 1936년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1970년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서 무려 200여 권의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썼다. 『언니가 가출했다』를 통해 작가는 묻는다. 무엇이 아이들을 집안에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가? 그러고는 근본적 해답은 바로 부모에게 있다고 답한다. 가출 원인을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의 이기심이라고.
 
 
조금은 색다른 가출, 이런 가출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클로디아의 비밀』
E. L. 코닉스버그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비룡소|2000
 
이야기는 바질 부인이 주인공 클로디아의 할아버지이자 자신의 변호사이기도 한 색슨버그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편지에 호기심을 느끼고, 엄청난 갑부인 바질 부인을 찾아간 클로디아와 동생 제이미는 부인으로부터 엄청난 비밀이 담긴 미켈란젤로의 천사조각상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는 방법을 듣는다. 그 말에 혹한 클로디아는 제이미를 데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가출을 한다. 그러니까 일상에 불만이 있거나, 가족들이 싫다거나, 학교 생활이 시큰둥해져서 가출한 게 아니다. 클로디아는 그야말로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 밖 세상을 온전히 느끼며 성장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제이미와 함께 시작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가출 생활은 만만치 않다. 관리인들의 눈을 피해 잠 잘 곳을 찾아야 하고, 화장실에서 마음껏 샤워도 못하고 끼니때마다 배불리 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 둘은 철저한 계획하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관람한다. 비록 미술관에 전시된 16세기 침대에 숨어들어 잠을 자고, 분수대에서 남몰래 목욕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하루하루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커리큘럼에 따라 자율학습으로 채워진다.
추리와 모험 소설 형식을 띤 이야기는 이 둘이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에 얽힌 비밀에 접근해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그리고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마지막에 바질 여사는 둘과 거래를 한다. 자신에게 미술관 가출 모험담을 들려주는 대신, 자신은 남매의 가출사건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클로디아가 가출을 통해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신들만의 비밀 만들기였다. 안전하면서도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 주는 비밀, 자신에게만 의미를 갖는 비밀 말이다.
이 책의 가출은 분명 일반적인 가출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성장을 위해 스스로의 울타리를 잠시 빠져나오는, 어디까지나 행복한 가정으로의 귀환이 약속된 가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요즘은 가출 경향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질풍노도기의 아이들은 뚜렷한 동기가 없이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혹은 무관심한 부모를 골탕 먹이기 위해 시위 성향이 농후한 가출을 하기도 한단다.
 
 
거리에서 집으로
 
우리나라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이다. 결혼한 커플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꼴이다. 그런데 편모나 편부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혹은 재혼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이 더 빈번히 가출하는 건 아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아이들은 돌보는 사람이 부모가 아니더라도, 따듯한 배려와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마음을 열고 이들에게 의지한다. 오히려 친부모와 더불어 지낸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불안과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젠가 신문에서 ‘말 없는 폭력’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관계에서 서로에게 욕을 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 무관심이라고 한다. 조용한 폭력에도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다치고, 마음의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간다.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청소년도서
『길 위의 소년』
페터 헤르틀링 지음|문성원 옮김|한길사|2002
『나는 아버지의 친척』
남상순 지음|사계절출판사|2006
논픽션(르포)
『거리의 아이들』
치 쳉 후앙 지음|이영 옮김|북로그컴퍼니|2013
인문서
『가출 청소년의 회귀과정』
정운숙, 정서숙 지음|한국학술정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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