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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그림책 짚어보기]그림책은 학습의 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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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2-11 15:31 조회 7,0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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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시선’ 코너에 글을 의뢰 받은 뒤 맨 처음 한 대답은 “저는 편집자가 아닙니다.”였다. 머릿속으론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린이 책을 전문으로 만드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어떤 분야의 최근 흐름이나 앞으로의 방향을 논하는 것은 내 깜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림책에 대해 하고 픈 말이 있어서다.

‘단군 이래 쭉 불황’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싫어하지만 이쯤 되면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출판계는 하루가 다르게 침체되어 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린이 책 분야, 그 어린이 책 분야에서도 그림책 분야는 최고 난이도의 불황이라 초판을 소진하면 다행이라는 게 요즘의 분위기이다. 출판사를 창업하고 작년부터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12권, 그 중에서 여덟 권이 그림책이다. 애초부터 그림책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니만큼 당연한 결과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계속 고집을 부려도 되는 건지 고민의 연속이다.

올해의 그림책 출판 시장을 하나로 아우르는 단어를 들자면 ‘안정 지향성’이다. 모든 방향타가 안정적인 판매를 보장해주는 쪽으로만 쏠려 있는 것 같다. 최숙희, 백희나 같은 대형 작가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사랑해 자장 자장 사랑해』 같은 베스트 시리즈의 후속권이 끊임없이 출간되는 것은 불황 속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장수탕 선녀님』처럼 구매 주체의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풍 내용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내용만 그런가? 그림도 무난하고 예쁜 그림들이 늘어난다. 이런 안정 지향 속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림책의 도구화, 즉 실용성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요즘 출간되는 그림책의 대부분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애초에 지식그림책이거나 학습 그림책인 경우는 물론이고, 식습관, 낮잠 자기부터 친구 사귀기, 자존감 키우기, 감정 조절 및 표현까지 그림책은 오로지 아이를 가르치기에 열중하는 것 같다. 이는 그림책을 구매하는 부모의 니즈를 반영한 것도 있지만 그림책의 중요한 판매처인 교육기관에서 활용 가능하도록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최소한의 판매를 보장해주는 곳의 필요에 책을 맞춤 제작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만들 때는 그냥 좋아서 만들어 놓고, 정작 책을 출시할 때는 꿈보다 해몽인 실용코드를 끼워 넣는 일이 다반사다.

어린이 책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가진 바람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수없이 많은 그림과 색으로 전하는 것이었다. 그 다양성으로 아이의 감성을 키우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럼 나는 어떤 그림책을 좋은 그림책이라 생각하고 선택해 왔을까? 이 지면을 빌어 지극히 주관적인 ‘좋은 그림책’의 조건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부모와 아이의 교감을 키워 주어야 한다. 마음의 접점, 몸의 접촉을 늘려 주는 것이 좋은 그림책이다. 『태어나서 세 돌까지 행복한 말놀이』는 그런 의도로 기획되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아주 짧은 시간에도 많은 스킨십과 대화가 가능하도록 만든 이 책은 부모와 아이의 교감이 가장 필요한 시기를 행복하게 채울 수 있게 해준다.

둘째, 다양한 그림과 색깔로 아이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워 주어야 한다. 몇 가지 색으로 채워진 옷장이나 낮은 채도의 차들로 채워진 길보다는 수많은 색이 모여 만든 숲을 보여 주고 싶었다. 10년도 더 전에 『다음 분!』이라는 책으로 내 눈을 사로잡았던 크리스토퍼 인스의 『출동! 장난감 구조대』, 『시끌벅적 변장파티』를 연달아 펴낸 것은 오롯이 그 이유다. 국내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우스꽝스런 그림과 잘 쓰이지 않는 과감한 색깔이 아이들의 감각을 깨워 준다.

셋째, 거듭 보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겐 상상 속의 친구가 존재한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게 아이들이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좋은 그림책이다. ‘바무와 게로’ 시리즈는 볼 때마다 장면에 숨어 있는 재미를 찾아내 아이들을 재잘대게 만드는 그림책인데, 그런 책을 만들고 싶어 기획한 것이 『마법의 빨간 수레』다. 애착을 갖고 있는 빨간 수레가 세상 모든 탈 것으로 변신해 상상 속의 여행으로 이끈다는 줄거리도 재미있지만 배경 그림 속에 숨겨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천개의바람’이라는 출판사 이름은 아이가 천 명이라면, 희망도 천 개였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천 권의 그림책이 있다면, 거기에서 천 가지 이야기와 그림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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