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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새책 [나와 청소년문학]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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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5-17 23:12 조회 4,67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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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 소설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며 출판계가 신음 소리를 낸다. 출판계와 인연 맺고 산 30년 동안 늘 들은 말이다. 출판계는 언제나 ‘단군 이래~’ 를 들먹여서 요즘 그런 소리를 들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언제 출판계가 호황인 적이 있었던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로 심각한 모양이다.
출판계가 어려운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도서정가제를 비롯해 책에 관한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보다 근본적인 까닭은 책을 읽는 사람이 없어서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전철을 탔을 때 앞자리에 앉아 있는 승객은 물론 서 있는 승객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다. 예전엔 종이책은 물론 무가지 신문이라도 펼쳐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거의가 전화기만 들여다본다. 이런 판국이니 출판계가 호황일 수 있겠는가?
내 주변의 지인들을 봐도 책을 읽는 이들이 많지 않다. 책이라면 작가에게서 한 권 얻어 보아야 되는 걸로 안다. 나름대로는 전문가 행세하며 사는, 제법 배웠다는 지식인조차도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펴낸 뒤 언론 매체에 서평같은 게 실리면 필자의 책을 사보는 게 아니라 전화해서 책 좀 보내달라고 한다. 필자도 책을 사서 보내 주어야 한다. 책값은 물론 우편료도 만만치 않다.  내색을 하면 쩨쩨한 사람이 된다. 그런 요구다 들어주면 작가는 뭘 먹고 살지?
그런 세상이니 책 읽기가 진즉에 ‘운동’이 되었다. 예전엔 독서가 이력서의 ‘취미’ 란을 많이 채웠다. 그런데 이제 독서는 취미 수준도 아니다. 예전엔 “밥이 육체의 살을 찌게 하는 거라면 독서는 영혼의 살을 찌웁니다.” 라는 말도 곧잘 했다. 그런데 이제 독서는 영혼의 살을 찌우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모두 ‘외출 중’이고 저마다 밥벌이에만 목을 매단다. 그러면서 언제 책 읽을 시간이 나서 책을 읽겠냐고 비명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독서는 영혼의 살을 찌우는 정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다! 특히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영화의 말투를 빌려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나 잘하기 위해선 자기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책을 읽으면 된다. 그게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에 부합된다. 인문 정신의 첫걸음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 ‘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 하나를 보탰다. 물론 보태고 싶어서 보탠 것은 아니다. 누가 읽는다고…. 그런데 세상일은 알 수 없다.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한 게 본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내가 청소년소설을 쓸 줄이야! 시로 문단에 나오자마자 시집에 들어 있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동화나 소설로 쓰면 좋겠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짧은 시가 이야기가 된단 말이지? 그거 재미있겠다! 순전히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이야기 몇 편을 완성했다. 근데 이것들이 묘했다.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른들을 독자로 한 소설도 아니었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존재하는 청소년! 그들이 읽으면 딱 알맞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내 자신의 성장 정도가 청소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때 고산 윤선도가 대나무를 두고 노래한 게 떠올랐다.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데, 곧고, 속은 비어 있고, 사철 푸르러서 좋다고 노래했다. 청소년소설이 딱 그 짝이었다.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지만 분명 존재하는 청소년. 세상에 대해 선입견 없이 말할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기도 하지만, 아직 내면이 단단히 여물지 않은 청소년. 그래서 더욱 푸른 모습을 띄기도 한다.
1990년 대 말과 2000년 대 초중반에 출판계는 활로를 동화책 시장에서 찾았다. 게다가 이른바 ‘386 세대’라는 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들의 책 읽기에 관심을 가진 시기와 맞물렸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웬만한 출판사가 다 동화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돈 있는 데 마음 가는 게 인지상정인가? 하여튼 출판계도 그러했다.
다들 동화 시장이 천년만년 갈 줄 알았다. 몇 년 지나자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읽을 책이 마땅치 않았다. 동화책을 계속 읽기도, 어른 책을 읽기도 좀 그랬다. 게다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극성이던 부모들도 자녀가 청소년이 되자 책 읽기에는 무관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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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독서를 운동 차원에서 많이 해오긴 했는데, 그때부터 더욱 활발해졌다. 단지 초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중·고등학생도 독서 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히 대학입시의 논술 시험을 치르는 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수준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청소년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어 갔다. 따돌림, 낙태, 자살, 가출, 학교 중퇴, 대안 학교 등등.
이런 때에 나는 청소년소설 『봄바람』을 비롯해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독자의 반응이 좋았다. 동화책은 거의 엄마가 사 주는 데 비해 청소년소설은 중,고생이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운동 차원에서 책 읽기를 펼치던 단체의 반응도 좋았다. 386세대인 부모들이 무관심한 공백 부분을 독서운동단체들이 메워 주었다. 하지만 문학평론가들은 내 작품에 대해 쓰다 달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반문학 평론가들은 아예 눈길을 주지 않았고, 아동문학 평론가들은 언급할 동화도 많은데 굳이 청소년소설까지 영역을 확장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혼자서만 청소년소설을 쓰고 발표했다. 오로지 독자를 믿었고, 독서 운동 단체의 지원에 힘입은채 말이다.
지금은 청소년소설을 쓰겠다는 작가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소설의 소재나 문장도 달라졌다. 뒤늦게나마 안도감이 든다. 일단 문을 열어 놓으니 많은 작가들이 그 문으로 들어온 것 같아서 말이다. 작가들만 청소년소설을 쓰자고 달려드는 게아니라, 출판사들도 잇따랐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고 신음 소리를 내던 출판사들 가운데 동화책을 펴내던 출판사는 지금 거의 모두 청소년소설도 같이 펴내고 있다. 동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청소년소설에 눈을 돌린 것이다. 순수하게 동화를 펴내던 출판사들이 싸잡아 욕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너나 나나 청소년소설을 펴내고자 하니, 이를 무어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청소년소설 때문에 요즘 무척 바쁘다. 출판계가 불황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더 바빠졌다. 책을 펴내기 위해 작품을 쓰는 시간보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청소년의 삶과 문학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은 제목을 정하지 않은 어떤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를 그치고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촛불은 다 타서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네
(蠟炬成灰淚始乾납거성회루시간)

시의 앞뒤 행을 보면 연시로 짐작 되지만 위의 두 행만 떼어서 보면 살아 있는 동안은 바쁘다는 걸 나타내는 시 같다. 나는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청소년소설을 쓰게 된 뒤로 내 삶의 방향도 달라졌지만, 무엇보다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어졌다.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청소년소설을 쓰고 못 다 쓴 이야기는 들려주러 다녀야 할 운명이다. 이런 내 처지를 만해 한용운은 일찍이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노래해 주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을 모르고 타는 나의 작은 가슴은 누구의 밤
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물론 시 전체를 보면 다른 의미가 들어 있다. 시는 시인이 쓰지만 해석은 독자 마음대로이다. 촛불은 다 타고 나서야 촛농을 흘리지 않지만, 그 촛농은 다시 기름이 되어 그칠 줄 모르고 탄다. 그 기름을 담은 내 가슴은 누구를 지켜야 할까?
내가 『봄바람』을 펴낸 뒤 10년쯤 지나면서부터 다른 작가들이 청소년소설을 펴내기 시작했다. 한 권 한 권 음미해 가며 당시의 시대상과 얽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청소년이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작가인 나도 어떻게 견뎠는지…. 하여튼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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