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영화 읽기 책 그리기] 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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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4-10 14:48 조회 3,055회 댓글 0건본문
미투’와 ‘페미니즘’.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단어들입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 여성을 대하는 차별적 태도와 여성의 성을 물신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입니다. 문학계에서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이 인기를 입으며 대중들로 하여금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그녀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흑인’과 ‘여성’이라는 유리천장
마고 리 셰털리가 논픽션으로 서술한 이 여성들의 이야기는 1940년~19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미국 남부는 공공연하게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심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대, 미국은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버지니아의 랭글리 연구소가 있었습니다. 전시 상황에서 남성 인력들이 부족해지자 랭글리는 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한 연구에 동참할 더 많은 여성 수학자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흑인 여성들에게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들은 똑똑한 두뇌와 수학적인 영민함을 지녔으나 인종분리법에 따라 더 높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한받았습니다. 수학자로서 발전하기 위한 대학원 수학과 정도 백인에게만 개설되어 똑똑한 흑인 여성들은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흑인이 갈 수 있는 최고 대학인 햄스턴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이 천재적인 여성 대부분은 수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접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수학교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시에 랭글리는 전직 교사인 이런 흑인 여성 수학자들을 대거 채용했습니다. 이들은 웨스트 컴퓨터 그룹으로 불리며 전산원(계산원)으로서 랭글리의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었으므로 이 전산원(계산원)들은 ‘컴퓨터’로 불리며 미사일을 만드는 데 쓰이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계산해 냈습니다. (랭글리는 처음에는 무기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미항공우주국 NASA’로 이름을 바꾸어 항공, 우주 분야의 로켓 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합니다.) 랭글리에는 두 컴퓨터 그룹이 있었
는데 하나는 ‘이스트 컴퓨팅 그룹’으로 불리는 백인 전산원 그룹이었고, 하나는 ‘웨스트 컴퓨팅 그룹’으로 불리는 흑인 여자 전산원 그룹이었습니다. 미국 항공 우주의 역사를 다시 쓴 ‘히든 피겨스’의 주요 인물들도 웨스트 컴퓨터 그룹의 일부였습니다.
도로시 본- 웨이트 사이드를 지휘하는 부서장이 되다
도로시는 랭글리의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성 부서장으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물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오랜 차별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런 오래된 관습적 차별을 인내할 줄 아는 여성이었고, 2년간 임시직 상태에서 그룹의 부서장 역할을 묵묵히 해냅니다. 그녀는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웨스트 컴퓨팅 그룹의 컴퓨터들과 일해 오면서 적재적소에 그녀들을 배치할 줄 알았고 엔지니어 부서의 요청에 따라 능력에 걸맞은 전산원을 부서에 배치하면서 웨스트 사이드를 진두지휘하는 능력을 보입니다. 그녀는 오직 그녀의 능력만으로 웨스트 그룹을 이끌어갑니다. 쉽게 부서장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던 랭글리는 부서장 공석 2년 만에 그녀에게 드디어 부서장 자리를 허락합니다.
메리 잭슨- 흑인 여성 최초의 엔지니어
메리는 자신의 신념이 매우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에서 공학과 수학을 전공한 후 미국위문협회 USO의 회계비서로 일하게 됩니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교회와 걸스카우트에서 여학생들을 지도하며 그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지요. 어느 날 그녀는 교회의 분대모임에서 학생들과 함께 「목화를 딸 거야」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다 흠칫 놀라서 멈춥니다.
“잠깐” 그녀가 노래를 중지시켰다. 여학생들은 놀라서 잭슨 부인을 바라보았다. 메리는 그 노래를 처음 듣는 것처럼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이 노래는 더 이상 부르지 말자.”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 노래는 흑인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강화해 주었다. 때로 위엄과 자부심과 진보를 위한 큰 전투도 아주 작은 행동들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144쪽)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 노래는 흑인 노예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였던 것입니다. 메리는 학생들을 이끌면서 작은 것 하나에도 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자존감을 훼손당하거나 가능성이 오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녀의 이런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은 랭글리에서도 엔지니어로서 두각을 나타내며 드러납니다. 당시 계산원은 엔지니어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엔지니어가 되려면 대학원에서 공학과정을 수료해야 하는데 그 수업과정은 오직 백인들만 수강할 수 있도록 개설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법원에 흑인에게도 이 대학원에 등록할 권리를 줄 것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줍니다. 멋지게 승리한 것이죠. 그렇게 메리 잭슨은 백인들에게만 열려 있던 대학원의 공학과정을 수료하고 랭글리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됩니다.
캐서린 존슨(고블)- 머큐리 계획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이 되다
세 인물 중 영화 속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캐서린입니다. 우주항공역학부에서 도로시 본에게 자신의 팀에서 일해 줄 전산원을 요청하자 도로시 본은 캐서린을 부서에 보냅니다. 캐서린은 수학자로서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부서에서 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당합니다. (책에서는 이 부분이 영화만큼 극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랭글리에는 관습적으로 차별이 존재하나 그녀들이 부서에서 자신의 능력을 통해 동료들에게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고 좋은 동료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질문이 많았던 캐서린은 자신의 부서에서도 그저 계산원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당시 과학과 지성의 전당인 랭글리에서도 분석에 관한 건 남성 엔지니어들이 담당하고 여성들은 계산원으로서의 역할만 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주요 편집회의 또한 남성 엔지니어들만 참석할 수 있었죠.
“제가 편집 회의에 들어가면 안 되나요?”
캐서린은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그녀의 자신감뿐만 아니라 그녀의 능력 또한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마침내 그녀는 우주항공역학부의 일원이 되어 미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달로 사람을 보내는 일(머큐리 계획)’에 동참하며 그 주요 역할을 해냅니다.
무엇이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는가
랭글리는 온갖 지성과 과학의 집합체였습니다. 랭글리는 뛰어난 여성 수학자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여 그들을 채용했고, 그녀들은 랭글리의 기대에 충실하게 부응했지만 그녀들에게 주어진 업무 환경에는 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습니다. 그녀들을 상처받게 했던 건 랭글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오래된 관습 같은 차별이 아니었습니다. 능력의 평등이 가장 중요한 가장 지적인 존재의 집합에서조차 평등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 그것이 그녀들을 더욱 더 가열차게 움직였는지도 모릅니다.
랭글리에서 그 차별과 편견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 이스트 사이드의 백인들은 그냥 ‘RESTROOM’이라고 쓰여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반면 웨스트사이드의 흑인 여성 계산원들은 “COLORED ROOM(유색인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화장실만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는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자들은 사무실에서는 평등함을 느꼈다. 하지만 식당의 그 표시판과 유색인 여자 화장실 표시는 미국 공직 사회의 성과주의 속에서도, 또 행정명령 8802호 이후에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별문제 없어 보이는 그들의 부서 명칭도 설명과 기만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74쪽)
이들은 이 차별에 어떻게 저항할까요? 캐서린은 그 차별을 간단히 무시하는 것으로(자연스럽게‘ RESTROOM’을 이용함으로써), 메리는 상사에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색인 화장실의 존재를 없앱니다. (영화에서는 해리슨 본부장이 직접 유색인 화장실 표시판을 떼어버립니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오줌 색깔은 같다”라면서.) 무엇보다 그녀들은 그저 자신들의 역할을 묵묵히 해냄으로써 그들 자신의 능력을 통해 동료로 받아들여집니다.
아마도 캐서린은 동료 엔지니어들에게서 동등한 취급을 기대하는 만큼 그녀 스스로 그들을 동등하게 취급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들의 지성과 호기심이 자신과 맞먹고, 그들 역시 자신과 똑같은 공정함, 존경, 선의로 일에 임한다고 인정하는 그런 태도가 그녀의 궁극적 성공의 길을 닦아 주었다.(189쪽)
흑인 여자들은 지난 14년 동안 현저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들의 수학 능력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에 랭글리가 그들에게 문을 열었고, 그들의 능력이 뛰어났기에 그 자리가 유지되었다. 규칙적인 접촉으로 친숙함이 쌓이자 그들은 “유색인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가 되었고, 엔지니어들에게는 연구소 기계들이 쏟아내는 원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언어로 신속하게 번역해 주어서 그들이 멋진 비행기를 만들게 도와주는 믿음직한 동료였다.(227쪽)
영화의 캐치프레이즈가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인 것처럼 이들의 열정과 노력, 항공우주 분야에 대한 애정이 인종도, 남녀도, 한계도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런 그녀들을 같은 동료로서 인정하는 편견 없는 마음들을 모두가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서장 해리슨이 그랬던 것처럼, 책에 등장하는 백인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 나은 사회는 누구 일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테니까요.
<더 생각해볼 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