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앞잡이 길잡이 [왕샘의 교단독서일기] 애증으로 묶인 아버지와 딸의 초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0-31 15:39 조회 8,172회 댓글 0건

본문

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아버지가 힘든 딸
전문계 여자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담임교사 생활을 해오며 아침에 매일 하는 업무 중의 하나는 아직 학교에 오지 않은 아이들의 등교 여부 확인과 결석, 다른 용건으로 부모님과 통화하는 일이다.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대개는 어머니들께 연락드리지만, 때때로 부득이하게 아버지들과 통화할 때가 있다. 어머니가 이혼으로 별거 중이거나 돌아가신 경우, 유일한 보호자로서 아버지들은 대개 무뚝뚝하긴 해도 딸아이에 대한 관심은 여느 부모 못지않다. 다만, 어머니들의 경우보다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딸바보를 자처하는 아버지들이 많아진 세상이지만, 아직도 많은 아버지들이 엄격하고 때론 무서운 보호자로 딸에게 군림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들은 한없이 자상하고 너그럽게 대하고 있지만, 자녀의 행동이 자신이 생각한 일정한 선을 넘어 버린다고 여겨지는 순간 상황을 한 번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몽둥이를 드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용돈을 주지 않고 집에서 내쫓는 것이기도 하며, 머리칼을 자르거나 심지어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며 교복을 찢어버리는 것이되기도 한다. 아버지들은 버릇을 고쳐놓기 위한 제스처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해서 자녀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여학생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도 불편함이나 어떤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아버지께는 학교에서의 일을 절대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거나, 경찰서에 아버지를 폭행죄로 신고하는 일도 잦아진다. 태어나 처음 만나게 되는 이성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타인과의 소통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2. 강한 아버지의 초라함
 
 아이의 문제로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실 때가 있다. 상담 내용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 어릴 적 아이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신다. 얘기가 진행되다 보면 아이에 대한 고민보다 지금 현재 아버지를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두서없이 꺼내 놓으실 때도 있다. 집을 오랫동안 비워 두게 되었던 사정이나, 언니와의 비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딸아이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는 등의 이야기. 실제 나이보다 삶의 고단함이 많이 묻어나는 아버지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들이 가족들로부터 가장으로서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견한다.

아담의 후예 복덕방 까마귀 행복 토성랑』오세영 그림|주니어김영사|2012
 
초시는 늙어가는 것이 원통하였다. “예순이 낼 모레 ……. 젠장할 것!” 어떻게 해서라도 더 늙기 전에 적으나마 돈 만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다시 한 번 이 세상과 교섭해 보고 싶었다. 지금 이 꼴로서야 문화 주택이 암만 서기로 나와 무슨 상관이며 자동차, 비행기가 개미 떼나 파리 떼처럼 퍼지기로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냐, 세상과 자기와는 자기 손에서 돈이 떨어진 그 즉시로 인연이 끊어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송장이나 다름없지 뭔가. 무슨 수가 없을까? 무슨 그루터기가 있어야 비비지. 그래도 돈냥이나 엎질러 본 녀석이 벌기도 하는 법이지.”(496쪽)

만화가 오세영이 그린 이태준의 단편소설 「복덕방」에는 노쇠한 몸만큼이나 옹색한 처지의 세 늙은이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서참의 영감은 합병 전에는 칼을 차고 훈련원에 나가 병법을 익히고 호령하였으나 지금은 만인에게 허리를 굽실대야 하는 집 흥정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서글프다. 안초시 영감은 드팀전을 하다가 실패하고 집까지 저당 잡히며 실패를 거듭하여 지금은 서참의 영감의 복덕방에 나와 일을 도와주면서 화투패로 심심풀이 운수를 떼고 있다. 유명한 무용가를 딸로 두고 있으나, 쥐꼬리만한 용돈을 받으니 기를 펴지 못하고 딸 눈치만 본다. 박희완 영감은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을 준비하며 가끔 복덕방에 놀러와 아웅다웅 다투는 두 영감을 달래 주는 역할을 한다. 세 사람은 한때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치며 아내와 딸을 먹여 살리겠다고 큰 포부를 펼치기도 했으나 이제는 존경과 권위에서 멀어진 초라한 인생들이다.
강하고 엄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힘없고 늙은 아버지 또한 딸에게 무시당한다. 매를 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붙들어 주길 바라는 모순된 요구가 동시에 발생한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안초시 영감의 불행은 딸에게 아버지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것에 기인한다. 당사자인 안초시조차 아버지로서의 대접보다는 금전적 행운과 재기를 꿈꾸었다. 부러진 안경다리를 고칠 돈조차 인색했던 딸은 매달 붓는 보험금으로 아버지에 대한 경제적 의무를 다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안초시 영감의 죽음은 딸의 가혹한 홀대뿐 아니라, 경제적 전락으로 생긴 공허감에서 오는 자괴감과 복덕방 주인이었던 서참의 영감을 통해 느낀 비교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아버지들의 비극은 아내와 딸 앞에서 비범함을 지닌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범한 아버지는 약해빠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으로 인해 무리수를 둔다.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가 생긴다.
집에서 큰소리를 치는 아버지일수록 사회적으로는 열패감에 시달려 타인의 시선에 무력해질 때가 많다. 잘못된 것이었다고 하나 박희완 영감에게서 황해 연안이 개발된다는 정보를 얻은 안초시는 딸에게 출자를 권유하며 이미 수중에 돈이 들어온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십수년을 해왔던 일이기도 했지만 딴 사람인 듯 딸을 홀려 이야기를 하는 안초시의 모습처럼, 아버지들은 딸의 어린 시절 자신을 흠모하던 바로 그 시선을 돌려받고 싶은 것이다.
 
3. 서로를 보살피다

감정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딸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어쩔 줄 모르며 움츠러드는 아버지들도 많다. 영악하게도 아이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포기해 주길 바라며 끊임없이 통제에서 벗어나려한다. 그들은 아버지가 생각보다 강하지 못한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강한 의지를 보여 주려는 생각이 어긋난 소통으로 금이 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모든 것은 역전된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건 실패를 했건 우리는 인생을 살며 크고 작은 부침을 겪는다. 고통과 쾌락이 교차하며 엮어가는 인생 속에서 인간관계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딸이지만, 언젠가는 아버지가 다 자란 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때가 온다. 나약한 아버지가 아니라 솔직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처음 말을 배우려는 아이에게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던 그 마음으로 아버지와 딸의 이름을 돌려받길 바란다.
 
문학과 만화로 만나는 아버지들의 삶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 나온 단편소설을 만화로 각색한 오세영 화백의 작업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산업화 이전 생활의 흔적과 정서를 접한 마지막 세대로서 남북한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여러 번 곱씹으며 사라져버린 말투와 물건을 고증하고 박물과 답사를 통해 견문을 넓혀 완성한 그의 작품은 문학과 만화의 화해로운 공존을 모색한 수작들로 교과서에서도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만화 한국 대표 문학선’(주니어김영사, 전 10권, 2012)에 소개된 다른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여러 아버지들의 모습을 만난다. 「홍수」에서는 노름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사공 지영호의 무뚝뚝하지만 자애로운 모습이 드러나고, 「경칩」, 「남생이」에서는 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노마 아버지의 번민과 갈등을, 「행복」에서는 강도질로 징역을 살고 돌아다니는 아들을 만나러 가던 군밤장수 황영감의 짧은 기차여행을 통해 뭉클한 비애를 느끼게 만든다.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