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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그림책 일기]수평, 수직, 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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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0-31 15:00 조회 10,92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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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지난 글을 읽은 뒤 그림책을 펼쳐 놓고 캐릭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지 살펴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주요 캐릭터 각각의 시선들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있으며, 어떻게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되면 그림책 읽기는 더 재미있어집니다. 그 시선으로 인해 주제가 더 선명해졌는지, 그 시선들이 전체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롭습니다. 연령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그 시선들을 굳이 찾아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과를 먹을 때마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성분은 무엇인지, 그것이 가진 영양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요. 다만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그림책들이 가진 숨은 요소들을 알게 된다면 구매자 입장에서는 책 고르기가 좀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좀 더 고민을 하게 될 것도 기대해 봅니다.
이번에는 수평선과 수직선, 사선 구도는 그림책의 서사에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수평과 수직
수평이 주는 느낌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로쓰기가 기본인 책에 익숙하다 보니 수평선만큼 자연스러운 선은 없습니다. 수평선은 디자인에서도 가장 중요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나 사진을 찍을 때면 늘 구도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 컷의 그림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그림책인 만큼 이미지를 연결하는 데에 특히 수평구도가 중요합니다. 이야기 그림책에서는 각 장면마다 선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수평적 흐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선을 따라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몇몇 장면에서는 선이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일단 수평으로 흐르는 선을 연결해 보면 이야기의 큰 흐름이 잡힙니다. 그러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구조적으로 실 하나에 죽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림 1>© 아키바 수에키치,『수호의 하얀말』, 한림출판사

『수호의 하얀말』은 몽골의 초원이 배경이라 유난히 수평선이 두드러집니다. 수평선은 상황과 감정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수호가 하얀 말을 타고 말 타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떠나는 장면(<그림 1>)에 쓰인 수평선은 이제껏 평화롭게 진행하던 이야기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예고합니다. 앞 장면까지 정확히 수평을 달리던 선의 오른쪽이 조금 올라가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미세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독자를 설득하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실이 등장하는 몇몇 그림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림책 안의 수평선은 실이 없어도 마치 실 하나가 수평으로 죽 연결된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책의 판형은 대부분 수평에 기대고 있어서 수직선상에 나타나는 요소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수평선에 직각인 수직선상의 요소들은 캐릭터의 위치나 핵심 요소의 움직임으로 드러납니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면서 위치가 생기는데요, 안정감을 주는 1/2, 1/3 위치에 있는 캐릭터나 요소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수평과 수직이 만나 만들어 낸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
캐시 스틴슨 지음|듀산 페트릭 그림|전미나 옮김|책과콩나무              <그림 2>© 듀산 페트릭,『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책과콩나무
                                                                 
 
최근 출간된 『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은 표지부터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구도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표지부터 조금 긴 제목 글씨가 수평 요소가 되고 군중들 사이로 마주 보는 아이와 바이올리니스트의 위치는 수직 요소로 작용합니다. 색감과 배열과 함께 공간적으로도 교차하는 듯 대면한 상태인 두 사람의 위치는 확장된 공간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이 책에는 적절히 배치된 수평과 수직 요소, 사선과 나선, 여러 가지 파행선들이 나옵니다. 각각의 선들은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바이올린 선율이나 소음을 표시하기도 하며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입니다. <그림2> 장면은 바이올린 소리는 물론 주변 어떤 것에도 관심 없이 지나가는 엄마와 아이 뒤에 수평의 빈 공간을 배치했는데요, 그래서 캐릭터의 성격과 함께 속도감마저 느끼게 해줍니다.
수평과 수직 요소는 이미지와 활자를 연결시키는 방법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일부 토이북을 제외하면 책은 거의 사각형이 기본입니다. 사각형에는 수평선이 두개, 수직선 두 개가 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펼치지 않은 책에도 수평선과 수직선이 두 개씩 있습니다. 책은 여러 낱개의 사각형이 연결된 것 이므로 기준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각각의 사각형의 연결 기준이 되는 것이 수평선은 위쪽, 수직선은 왼쪽 것입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왼쪽 위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리 넓지 않은 간격을 두고 나란히 놓인 두 사각형을 볼 때 자연스럽게 연결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오른쪽의 그림을 보면 기준이 되는 수평선끼리 나란히 놓여 연결된 느낌이나 연결해야만 할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이미지들끼리도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 수평의 흐름을 갖게 되는데요. 이미지로 인식되는 글 덩어리와 이미지 사이의 연결에도 수평과 수직 요소가 적용됩니다.
글이 모여 있는 문단을 사각의 덩어리로 보며, 글과 글, 글과 이미지, 이미지와 이미지들의 연결에 적용된 수평 수직 요소들을 찾아볼까요? <그림3>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줄짜리 문단과 아이 이미지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수평의 글줄을 따라 읽고 나면 수직 요소인 아이 이미지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발이 땅에서 떨어져 하늘로 수직 상승하는 아이의 기분이 읽힌다는 것입니다. <그림4> 장면은 수직 요소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몸을 아이 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미지는 문단과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그 손잡이 끝에 보이는 아이입니다. 수직, 수평, 사선 요소가 모두 적용되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림3>

 <그림 4> © 듀산 페트릭,『아무도 듣지 않는 바이올린』,책과콩나무
 
그림책에서는 특히 수평 요소와 수직 요소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라도 두 요소를 꼭 만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두 가지 요소가 만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구도를 가진 책도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소중한 자각을 보여 주는 『나무집』은 반복 구도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주제가 살아나는 책입니다. 동판으로 똑같이 찍어낸 장면에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그려 넣어 반복화면에 생동감을 줍니다. 다양한 수평 요소에 수직으로 버티고 선 나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지고 생태적 감수성에 새로운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 마리예 톨만・로날트 톨만, 『나무집』, 여유당
 
사선
 
『부엉이와 보름달』제인 욜런 지음|존 쉬헤르 그림ㅣ박향주 옮김|시공주니어
 
© 존 쉰헤르, 『부엉이와 보름달』, 시공주니어

<그림5>                                                                                              <그림6>

 
수직과 수평 요소가 절묘한 책으로는 『부엉이와 보름달』이 있습니다. 표지에서부터 본문까지 문단과 이미지의 계산된 배치가 놀랄 만큼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 만들어내는 감흥을 넘어서는 ‘사선’ 배치가 돋보입니다. 사선에는 상승하는 사선과 하강하는 사선이 있습니다. 그림에서는 수평이나 수직 요소보다 사선 요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평과 수직이 만들어내는 요소들이 평이한 이야기 흐름에 작동한다면 사선은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적용됩니다.
<그림5>에 비해 <그림6> 장면의 더 기울어진 사선은 서로 시선이 마주친 상황의 놀라움과 부엉이의 불안이 더 고조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표지를 한번 볼까요? 뒤표지에서부터 이어지는 수평선이 앞표지 왼쪽의 가느다란 나무와 만나 수직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만나고 눈 쌓인 언덕을 오르는 사선이 시작되는 자리에 주요 인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보름달과 아빠와 아이가 있는 자리에서 수직으로 올라가보면 ‘부엉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와 만납니다. 수평에서 완만하게 상승하는 사선에 서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올라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사선 배치가 두드러지는 『내가 책이라면』에서는 표지 제목 글자의 배치에서부터 책을 만나는 장면과 책을 읽고 책 속에 빠져드는 상황을 사선 구도의 연결로 보여 줍니다.
 
©
『내가 책이라면』 쥬제 죠르즈 레트리아 지음ㅣ안드레 레트리아 그림ㅣ임은숙 옮김|국민서관
 
시각 이미지가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계산이 필요합니다. 시각 디자인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면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림이 말을 하고 내용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책은 더 소중해 집니다.
자, 이제 오늘 소개한 그림책부터 펼쳐 놓고 한 장씩 넘겨가며 수평, 수직, 사선 구도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구도가 이야기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그림책의 장면과 장면을 잇는 방식을 영화의 말하기 방식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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