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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슈퍼히어로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스파이더맨, 삶의 미덕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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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8-20 16:31 조회 6,34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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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
 
어릴 적, 개미는 내 밥이었다. 물론 먹지는 않았다. 다만 과학 실험이라는 미명 아래 그 작은 개미를 잡아서 다리를 하나씩 떼어내거나 통째로 불에 태운 적도 있다. 얼마나 많은 개미에게 위해(危害)를 가했는지 언젠가는 개미지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런데 개미와 잠자리, 나비 등 만만한 곤충들은 수도 없지 괴롭혔지만 유독 이 곤충만은 섣불리 괴롭힐 수 없었다. 나뿐 아니다. 우리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출몰했지만 동네 악동들도 이 곤충만은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바로 거미였다. 이유는 하나, 모든 거미가 독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마크 웹 감독|앤드류 가필드 외 출연|2014
 
어리바리하고 찌질한 스파이더맨?
전 세계에 서식하는 거미의 종류는 3만 5천여 종. 그중 독이 있는 거미는 30여 종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미들은 독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대개의 사람들은 거미를 두려워한다. 미묘한 생김새도 그렇고, 주로 음습한 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거부감은 더 크다. 살갗에 닿으면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미줄의 촉감도 한 몫 한다. 이런 생각도 해 봤다. 모험이나 탐험 영화의 단골 무대인 동굴에서 거미는 주인공을 가로막는 최대 적이다. 사방에 거미줄을 치고 먹잇감을 기다리는 거미는 영화 속 주인공과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거미는 그렇게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모든 거미가 전 세계인들에게 홀대받는 것은 아니다. 타란튤라 같은 독거미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진짜 거미는 아니지만 전 세계인들에게 제법 친근한 거미도 있다. 방사능에 노출된 거미에 쏘인 뒤 가공할 능력을 얻은 거미 인간,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시작으로 2002년부터 올해까지 5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스파이더맨은 전 세계인들의 친구가 되었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뽐내는 슈퍼히어로들이 남성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스파이더맨은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여성 팬들까지 사로잡으면서 명실상부한 슈퍼히어로 반열에 올라섰다.
사실 스파이더맨은 독특한 구석이 많은 슈퍼히어로다. 여타 슈퍼히어로들이 성인인 반면, 스파이더맨은 고등학생 때 이미 활동(?)을 시작한, 나이로만 보면 슈퍼히어로 계의 아이돌이다. 문제는 어리바리한 캐릭터다. 슈퍼맨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어리바리한 척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슈트를 입지 않으면 어리바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처음 만화로 기획되었을 때, 마블 코믹스 사장은 어리바리한 고등학생 슈퍼히어로는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리고, 거기다 어리바리하기까지 한 스파이더맨은 어떻게 성공을 거둔 것일까. 이구동성 지적처럼 그것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캐릭터의 힘이다. 스파이더맨은 제대로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젬병이다. 학교 성적은 그저 그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번듯한 직장을 잡지도 못했다. 스파이더맨 사진을 팔아 근근이 살아야만 하는 소시민이다.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슈퍼히어로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물론 영화지만) 스파이더맨의 현실은 찌질하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인들은 스파이더맨의 찌질함을 더 사랑한다. 삶은 비록 찌질하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만큼은 슈퍼히어로이고 싶은 우리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맨몸과 슈트 사이에서
스파이더맨의 찌질한 일상은 최근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헐크는 예외지만 슈퍼히어로들은 자신만의 의상을 고집한다. 슈퍼맨은 꽉 붙는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한동안 입었고, 배트맨도 비록 어두운 색이지만 나름 멋을 낸 슈트를 입는다. 스파이더맨도 거미를 형상화한 슈트를 입고 정의를 위해 싸우고 또 싸운다.
그런데 혹시,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은 안 해봤나. 슈퍼히어로들은 한 번 출동한 후 슈트를 세탁할까 아니면 다시 입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야말로 슈퍼히어로에 대한 사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슈퍼히어로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은 세탁기로 ‘빨아서’ 입는다. 그것도 손수 빨래를 한다. 자신이 슈퍼히어로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피터 파커(앤드류 가필드 분)는 더러워진 슈트를 빨기 위해 자신을 키워 준 숙모와 실랑이를 벌인다. 성인이니 내 속옷은 내가 빨아야 한다는 스파이더맨과 어려서부터 널 키웠는데 뭐가 문제냐는 숙모의 대립에서 슈퍼히어로만이 느낄 수 있는 애환이 묻어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예로부터 옷은 정체성을 규정하는 잣대였다. 조선은 세종 때부터 복색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세종 당시에는 하급 관리와 지방관리, 상공(商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붉은색 옷을 입을 수 없었다.조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에도 관직의 위계에 따라 옷의 색을 달리했다. 일품에서 삼품, 즉 고위직만 붉은색 관복을 입었고, 그 밑은 파란색, 더 밑은 초록색 관복을 입었다.
조선 시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세 유럽도 복색으로 위계를 구분했다. 붉은색은 색을 내기 어렵고 비쌌기 때문에 귀족들만 입었는데, 색이 선명할수록 지위가 높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옷은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대명사였던 것이다.
옷은 정체성을 규정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역동성을 좌우하는 사물은 아니다. 삶의 진솔함과 진정성은 옷이 아니라 몸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파이더맨을 포함한 슈퍼히어로들의 옷은 슈퍼히어로들만이 갖는 딜레마를 상징하는 그 무엇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잘 조화된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의 영웅이지만, 그것을 벗고 있을 때의 스파이더맨은 고뇌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사랑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밥벌이의 지겨움에 한숨 쉬어야 하는 생활인인 것이다.
생활인으로서의 고뇌가 스파이더맨을 하찮게 만든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르네상스 예술품 중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포함해 벌거벗은 육체를 표현한 작품이 많다. 인문정신이 부활하는 시기에 왜 하필 육체를 드러낸 작품이 많이 탄생한 걸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옷을 벗은 육체는 자유 그 자체다. 활동도 편하지만 옷이 상징하는 다양한 굴레, 즉 신분이나 차별의 굴레를 벗어버리겠다는 결연한 표현인 것이다. 르네상스 당시 벌거벗은 육체를 드러낸 작품들은 대개 노동으로 다져진 강인한 육체였는데, 그것은 성적 매력도 드러내지만 용기와 지혜를 상징한다. 여성의 풍만하고 아름다운 육체는 생명창조의 원천을 상징한다. 이처럼 몸에 대한 자각은 언제나 중요하다.이성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빛내는 존재이자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있을 때가 아니라 맨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때 더욱 빛나야 한다는 말이다. 스파이더맨처럼 얼떨결에 슈퍼히어로가 되었다면, 이 질문과 대답은 더욱더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은 슈퍼히어로가 희망을 선사하기를 학수고대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슈퍼히어로로 세상에 희망을 주기에 앞서 자신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비록 찌질한 삶일 지라도 스스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스파이더맨>
샘 레이미 감독|토비 맥과이어 외 출연|2002
 
 삶의 미덕을 가르쳐 주는 스파이더맨
슈퍼히어로의 딜레마는 슈퍼히어로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피터 파커와 그의 친구 해리 오스본(대니 드한분)은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눈다. 백만장자이자 이후 악당으로 변신하는 해리 오스본은 스파이더맨이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친구 피터 파커의 말에 이런 뉘앙스로 대답한다. “어느 세월에.”
하나둘 난관을 헤쳐 나가다 보면 좋은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아니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해리 오스본의 말마따나 현대 사회의 난관은 하나둘씩 해결해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슈퍼히어로들도 한계가 있다. 슈퍼맨이 전 지구적인 슈퍼히어로라면 스파이더맨은 고작 미국 뉴욕이 주 무대다. 여자친구 그웬(엠마 스톤 분)이 영국 옥스퍼드로 유학을 가려고 하자 영국에도 범죄가 많다며 따라나서려고 할 정도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스파이더맨은 뉴욕에서는 희망일지 몰라도 악과 맞서 악전고투하는 지구 어딘가에서 단지 희망고문이 될 수밖에 없다.
‘악’이라는 존재만 해도 그렇다. 영화 등 미디어가 만들어낸 악은 비교적 선명하다. 편을 갈라야만 이야기가 탄생하고, 그래야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 발딛고 사는 이 땅의 현실에서 선과 악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진심으로 권하건대, 나는 항상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이라고 자문해봐야 한다. 거대한 악의 존재는 없다. 사람들은 단지 살기 위해 악의 편에 선다. 그것도 악인지 모를 때가 많다. 때론 악의 편에 선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 그 파괴력이 커지기도 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해리 오스본처럼 말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주장한다. 나치 일원으로 수많은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내몬 아돌프 아이히만은 교수대 앞에서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내가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따지고 보면 아이히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사유하고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어떤 의지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단지 히틀러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아이히만에게는 히틀러의 명령을 올바로 수행하는 것이 곧 선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 판단도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악은 더 이상 선명한 실체를 드러내며 우리 곁을 배회하지 않는다. 악은 이처럼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우리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선도 불분명한 실체가 되었다. 선은 선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 혹시 선한 의도를 가장한 악한 의도는 아닐까 의심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세상,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그저 스파이더맨과 같은 슈퍼히어로가 등장해 악을 제어해 주길 기다리지만, 슈퍼히어로들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슈퍼히어로들의 미덕은 삶이 오로지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준다는 사실이다. 재미가 아닌 삶의 미덕을 가르쳐 주는 슈피히어로, 뭔가 더 있어 보이지 않는가.
 
 
 
슈퍼히어로가 되려면 먼저 하루를 단단히 채워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2002년 <스파이더맨>이 처음 영화로 개봉될 당시 회자되었던 말로,자신을 키워 준 숙부가 강도의 총에 맞아 죽어가며 조카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분)에게 남겼던 대사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죽어가는 숙부를 보며, 치기 어린 장난으로 특출난 능력을 낭비하던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렇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책임을 다해야 한다. 때론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슈퍼히어로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올바로 쓰는 방법을 배워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슈퍼히어로만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스로 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진 저마다의 재능을 올바로 쓸수 있도록 그 방식을 배워야 한다. 스파이더맨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 한마디에 대오각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슈퍼히어로가 아니기에, 그 배움의 기간은 길고 더딜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실망부터 할 필요는 없다. 하루는 슈퍼히어로에게나 우리에게나 24시간이다. 그 하루를 빛나는 보석과도 같이 만들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 결정에 달렸다. 슈퍼히어로의 삶을 동경한다면 하루부터 단단하게 채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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