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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그림책 읽기+]그림책의 장면 안에서 서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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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8-15 02:26 조회 7,69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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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의 장면과 장면 사이의 빈자리, 그것은 쉼표가 아닙니다. 책장을 넘기는 시간으로 따지면 아주 짧은 순간일지 모르나 이제까지의 서사와 연결하여 뒷이야기에 맞닿아 가는 치열한 서사 지각이 작동하는 자리입니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연결된 서사를 한정된 장면으로 구성되는 끊어진 서사로 바꿔 책으로 만들어 내면 독자는 다시 연결된 서사로 읽는다는 것, 지난 시간까지 강조했던 부분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장면 안에서 서사를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요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움직임과 속도를 조절하는 요소들
정지 상태였던 사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의미가 생깁니다.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일정한 방향을 갖게 되고 느리건 빠르건 제 속도도 생깁니다. 만약 그림책 표지에 주인공이 나와 있었다면 책장을 넘기면서 동시에 주인공도 움직임이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움직임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겠지요. 독자들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건강하고 안정된 결말을 향해 주인공과 더불어 다른 등장인물들과 함께 서사를 완성해 나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서사가 있는 문학 책이라면 그 책장이 넘어가는 방향이 곧 시간이 흐르는 방향입니다. 사이사이 일어나는 사건이 시간 순서를 위배하게 될지라도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순차적으로 정리가 됩니다. 문학 작품 속 시간은 서사담화의 구성에 따라 빨리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가기도 합니다. 문학 그림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책의 각 장면에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책장을 넘기는 동작을 머뭇거리게 만들어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책장을 후딱 넘기게 만들기도 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배치된 그런 요소들은 정지된 장면에 속도를 부여하고 심지어 그 속도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복잡하게 써 놓은 것 같지만 장면을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만약 우리의 시간이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흐르거나 거꾸로 흐르기도 한다면 어떨까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는 이론적으로 완전히 팽창한 뒤에 다시 축소되는 과정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 역시 방향을 바꾸어 흐르게 된다면 우리 삶을 드러내 주고 발견하게 만드는 서사의 형식 역시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간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니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가 볼까요?
 
구조와 비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을 두고 회화니, 디자인이니 구분 짓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학의 교육과정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에 따른 문제에서 출발한 논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림책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걸로 봐서는 아직도 해결이 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은 시각디자인의 하위 개념으로 설정해 놓은 상태고 그 안에서 그림책 강좌가 진행됩니다. 아동학과나 교육학과에서도 그림책을 다루기는 합니다만 그런 경우 대체로 즐기기 위한 문학으로서의 그림책보다는 목적이 분명한 내용을 담은 그림책에 대해 논의하게 됩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그림책에 관한 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마땅히 참여하되 문학과 심리학은 물론 철학까지를 아우르는 협의가 있어야 할 듯합니다. 거기에 그림책 장면 안에서 이미지나 글의 크기, 배치, 디자인, 레이아웃 등을 모두 포함하는 ‘구조’가 시각 디자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명확하고 의도적인 비례 방식들이 우발적인 비례 방식들보다
유쾌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얀 치홀트, 『책의 형식』(1975)
 
얀 치홀트는 20세기 초 타이포그래퍼이자 북디자이너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당시 그가 정보 전달을 위해 적용했던 디자인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선구적이었습니다. 책이라는 형식, 그 안에 담긴 글과 그림에 적용된 디자인을 독자들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내용을 좀 더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는 무언가가 책 안에 있다는 걸 짐작할 뿐입니다. 위에 소개한 얀 치홀트의 생각은 타이포그래피가 기본이 된 책의 형식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림책에도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비례는 우리 실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실은 그것을 다 의식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기본은 황금비율(1:1.618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A4용지나 B5 용지는 루트2 직사각형을 기준으로 하는 유럽의 종이 크기 방식의 표준 비례(1:1.414)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루트(√) 사각형은 루트3, 루트4 등 루트를 씌우면서 무한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실은 책의 가로와 세로 길이도 그런 비례가 적용된 것이며, 책 속 각 장면 안에서도 적절한 비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 1/3
그림책 안에서 작용하는 비례의 힘은 전체 디자인에 미치면서 장면을 그릴 때 구도에 영향을 줍니다. 구도는 주인공 또는 중심인물이 풀어낼 이야기가 책 속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고민한 결과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구도를 지배하는 가장 안정적인 비례는 1/2과 1/3입니다. 장면의 정중앙이나 3분의 1 위치에 중심인물이 자리를 잡게 되는 구도입니다. 그 위치는 시각적으로도 편안한 것이어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비례에 근거합니다. 그 위치를 벗어나거나 방향을 조금만 틀어도 이야기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림책 표지만 살펴보아도 그런 구도가 적용된 장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책 표지를 빨리 넘겨보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조금 머뭇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안정적인 구도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주제를 암시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구요? 그런 비례를 적용한 그림을 찾아보기 쉬운 만큼 내용과 비례에 상관없는 장면을 찾기도 무척 쉽습니다. 이미지 속에 서사를 구현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절대로 잡아먹히지 않는 빨간 모자 이야기』
마이크 아르텔 지음|짐 해리스 그림|문학동네|2006
 
여기 소개한 표지들은 대부분 1/3 위치에 주요인물이 자리 잡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잡아먹히지 않는 빨간 모자 이야기』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화면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악어의 위치는 1/3에서 좀 더 중앙으로 연장된 구도이며, 빨간 두건을 쓴 오리는 역시 1/3 위치로부터 최대한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는 형태입니다.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악어에게서 달아나고 싶은 빨간 모자의 심정을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악어 때문에 아이들은 머뭇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이렇듯 1/3 위치를 조금씩 벗어나 있는 경우 그것이 이야기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고로 그림책 속 대부분의 악당들은 주인공의 시간(책 속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의 반대편 즉 오른쪽에서 등장합니다.
 

 『소년 정찰병』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앤 그리팔코니 그림ㅣ북비|2011
 
『소년 정찰병』의 눈은 정확히 1/3 위치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주제를 암시하는 것은 물론 책장을 넘기기 전 잠시 멈춰 숨을 고르게 만듭니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존 버닝햄 지음|비룡소|1995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는 정면을 향해 질주하는 기차에 탄 흰 개의 시선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증기 기관의 발명으로 가속화된 산업 혁명 이후 드러난 여러 사회 문제 중 환경오염에 관한 은유입니다. 질주하는 증기 기관차를 탄 흰 개의 위치는 1/3지점, 개의 시선은 책의 진행 방향도 기차가 달려오는 정면도 아닌 쪽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기본 흐름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돌아선 흰 개가 무엇을 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한동안 집중하게 됩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에런 프리시 지음|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ㅣ사계절출판사|2013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의 표지는 정중앙에 주인공 소녀가 있지만 이야기 흐름과 정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전통적인 주제와 작가의 의도가 명확한 구도입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는 1/3지점에 있는 금지 표지판입니다. 장면의 중요한 위치에 놓여 아이가 가는 길을 막고 서 있습니다. 작가도 독자도 아이를 계속 가게 내버려둘 수 없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존 클라센 지음|시공주니어|2013
 
『이건 내 모자 아니야』의 표지는 이미 2/3 지점을 헤엄쳐 1/3 위치로 간 모자 쓴 작은 물고기를 뒤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독자들은 궁금해서 책장을 얼른 넘기게 됩니다.
 
글 자리
글을 깨우치지 못한 독자들에게 그림책 장면 안의 문장이나 문단은 검거나 회색인 덩어리로 인식됩니다. 그러니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겠으나 그것의 위치는 중요합니다. 이미지와 잘 어우러진다면 크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시간이나 방향을 조정하는 요소로 작동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글자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 덩어리는 더 이상 덩어리가 아닙니다. 이미지에 앞서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문자는 그만큼 강력합니다. 그러니 작가로서는 글을 더욱 최소화해야 합니다. 아주 짧은 한 문장뿐일지라도 단숨에 눈길을 빼앗아 장면 전체를 설명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이야기를 위한 묘사는 그림으로 충분히 구현하면 됩니다.
이때 문장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되도록 시간이 흐르는 순서에 맞게 배치해야 합니다. 문장이 길고 지나치게 설명적이게 되면 더더욱 이미지는 그것에 묻힐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이미지를 읽어 내기도 전에 이야기를 설명하는 글을 읽느라 멈춰 서게 되고 시간은 뒤엉키게 되겠지요. 하지만 글이 그림에 없는 앞뒤 상황을 말할 때에는 위치만 제대로라면 오히려 서사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 수있습니다. 그러니 그림책의 글은 그림과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거나 다음 장면을 보충해 주기도 합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중에서(모리스 샌닥 지음|시공사)
하지만 글이 그림에 없는 앞뒤 상황을 말할 때에는 위치만 제대로라면
오히려 서사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많은 형식 중 하나인 그림책은 독자로 하여금 장면과 장면 사이 간극을 채우며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를 줌으로써 서사를 완성하는 데 참여하게 합니다. 독자의 서사 지각을 깨우고 서사에 대한 감각을 세련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독자가 그림책의 서사에 적극 참여하도록 만드는 일은 작가의 몫입니다. 그것은 독자의 서사 지각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어떤 장면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구성은 독자들의 서사 지각을 깨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서사에 대한 감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며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유아기부터는 서사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가시화됩니다. 서사는 이미 아이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그림책이 그 감각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줄 수 없다면 독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모들의 선택이 당장은 먹힐지 모릅니다. 힘없는 아이들은 보호자의 취향에 자신을 끼워 맞춰 그들의 기쁨에 답하기 위해 부모가 사다 준 그림책을 기꺼이 봅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금방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언제부터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는지, 내가 사다 준 책은 어떤 것이었는지 부모들은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서사에 작용하는 요소로서 기능하는 글 자리에 대한 보충과 그림책에서 ‘시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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