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왕샘의 교단독서일기]슬픔의 강을 건너는 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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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1-16 22:50 조회 6,939회 댓글 0건본문
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잃어버린 아이들
재작년 가을 2학년 아이들과 다녀온 수학여행이 떠오른다. 저녁 6시에 인천여객터미널에 모여든 아이들은 배에 오르기도 전에 가방 안에 들어있던 음식물을 꺼내 먹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시간에 출발한 배는 다음날 오전에 제주도 앞바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맞추어 갑판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아이들은 밤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불꽃을 향해 스마트폰을 꺼내들었고, 선생님들이 아무리 잠을 자라고 재촉해도 문을 열 때만 잠자는 모드를 취하던 아이들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베개 삼아 모처럼 허락받은 공인된 외박을 즐겼다. 밤을 새고 새벽바다에 떠오른 일출은 엽서처럼 아름다웠다.
그때 우리를 제주도 여객터미널에 내려준 배가 구조 변경된 세월호의 쌍둥이배로 알려진 오하마나호였다. 세월호의 아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여행을 꿈꾸었을 것을 생각하니, 씁쓸함과 공허함이 차갑게 이마에 부딪혀 오면서 퇴락했던 낡은 배의 면모가 떠올랐다. 불편하고 고단했지만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했던 우리들의 지난 여름을, 얼마 전 진도 앞바다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에게 입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 꿈만이 위로할 수 있는 슬픔
정신분석 용어사전에서 애도는 의미 있는 대상을 상실한 후에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으로 정의한다. 프로이트는 대상을 상실한 후에 점차 현실을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애도라고 했고, 잃어버린 대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우울증이라고 했다. 참척의 슬픔을 안게 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님들의 아픔을 함부로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고통을 대신해 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통한의 감정을 보게 된다. 그것은 애도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연시키고, 우울의 심연 속으로 슬픔을 가라앉힌다.
물은 무서워하는 게 당연한 거야.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게 더 위험한 거지. 아빠도…, 어릴 때는 물이 무서웠어. 물에 들어가면 삽시간에…, 조금 전까지 들렸던 매미소리나…, 태양의 열기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소리도, 공기도 없는…, 별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아 겁이 났지. 하지만…, 용기를 내어 눈을 떠보고 깜짝 놀랐어. 물속에서 보는 물고기들은 뭍에서 보는 거랑 전혀 달라. 반짝반짝 생기가 넘치고 자유롭게 헤엄치며 돌아다니지. 아빤 그 녀석들이 너무 갖고 싶었어. 하지만 물속에선 그 녀석들이 훨씬 빠르거든. 좀처럼 손에 넣을 수 없어…,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사이에… 강의 포로가 되어 버렸단다.(145쪽~147쪽)
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겨 사라질 마을은 폭포 아래 용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좀처럼 수영 실력이 늘지 않고 물을 두려워하는 아들 스미오에게 아빠 타츠미는 세상의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용기를 주려던 아빠의 충고는 결과적으로 아이를 강의 포로로 만들어 버렸고, 수영하는 재미에 빠져버린 아이는 폭포에서 실종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마을이 수몰되면 폭포와 함께 스미오가 진흙에 파묻힌다고 믿어 끝까지 마을에 남으려는 아빠 타츠미와, 손녀 치나미에게 고향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는 엄마 키요코의 모습은 스미오를 잊지 못하는 각자의 방식이다. 커다란 슬픔은 몸과 정신을 마비시키며, 커다란 감정적인 동요가 있을 때는 위안이나 설득도 소용이 없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이를 잃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다음은 죽은 아이를 만나는 일이다. 이 작품은 꿈길이라는 다리를 건너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그러한 위로의 판타지를 완성한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용신이 꾸며놓은 공간에서 아빠와 살고 있는 스미오는 자신의 동생과 엄마를 누구인지 모른 채 만나게 된다. 비록 용신이 떠나고 마을과 함께 스미오도 사라지게 되지만,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 위에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수역을 만들어 낸다. 응어리진 슬픔이 재회의 꿈으로 정화되면서, 비로소 애도의 시간이 시작된다.
지금도 할머니의 마음 가슴 저변에는 물에 잠긴 그 마을이 있고, 그것은 이맘때 즈음, 종종 수면 위로 나타난다. 아마도 그건 엄마한테도 할아버지 안에도 있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여름 이후, 내 안에도 생겨났다. 깊고 깊은 물바닥에, 덩그러니. 지금은 더 이상 없는 장소를 머금은…, 수역(水域)(237쪽~239쪽)
『수역』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미우|2011
마을 소년들이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리며 과시하는 다이빙은 심장과 두 손에 어떠한 무서움도 지니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려는 일종의 신고식이자 성인식이다. 강물이 언젠가 바다를 만나야 하는 것처럼 졸업하는 아이들은 학교를 벗어나고, 부모의 품 안을 떠나 세상의 거센 물살에 몸을 맡겨야 한다. 아빠 타츠미가 그랬듯 어른들은 아이들을 품 안에서 보내는 일이 불안하다.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가는 동안 손을 잡아줄 수는 있지만, 대신 헤엄칠 수는 없다.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들에게도 수역이 생겨났다. 아직 세상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아이들이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고, 우리는 아직도 그 물가를 서성거린다. 댐으로 인해 수몰된 마을을 떠나 온 사람들이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여생을 보내야 했듯, 우리는 세월호의 가족들이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힘쓰고, 더 이상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죽음과 슬픔 앞에 내어 주지 말아야겠다.
보이지 않는 용신의 존재감
비 부족 사태로 호수 물이 말라가는 무더운 여름, 졸음이 쏟아질 때마다 꿈속에서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물의 고장을 찾아가게 되는 수영부 소녀 카와무라 치나미는 그곳에서 할아버지 연배의 아빠를 모시고 사는 소년 스미오를 만나게 된다.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던 곳이었지만, 이제 마을에 사는 건 두 사람뿐. 혼절할 때마다 꿈속에 보이는 마을로 찾아가는 치나미의 꿈여행은 계속되고 그때마다 의문점은 늘어난다. 전작 『충사』에서 알 수 없는 생명체인 벌레와 인간의 기묘한 공존을 그려낸 작가는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용신을 통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을 신비로운 비의 고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경외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무서운 신이 아니라, 마을을 지켜주고 키요코의 기도에 응답해 스미오를 깨어나지 않는 꿈을 꾸는 하동으로 만들어주는 너그러운 형상이다. 죽은 자와 산자, 수몰된 마을과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공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용신이 품고 있었던 구슬을 통해 개연성을 얻는다. 사라진 마을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미려하면서도 흐릿한 그림체와 독특하면서도 따뜻한 상상력으로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