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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교사의 책]가시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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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3-16 22:11 조회 5,23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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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서울효제초 사서교사

2008년이었나, 한참 젊은 치기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시절, 지금은 널리 알려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교육운동 시민단체에서 운영한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한 적이 있다. 30여 명쯤 되는 이들과 오프라인 강의를 듣고, 토론과 글쓰기 등 후속 모임을 꾸려나가는 형식이었는데, 학부모, 기자, 대학생 등 참 다양한 이들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거기 있으면 왜 그리 가시방석이던지. 교장실에서 싸움닭 노릇하는 것보다 몇 배 더 불편했다. 자비 내고 공교육 까대는(?) 그런 곳을 제 발로 찾아가는 교사가 여럿일 턱이 없는 탓에 직업을 밝히는 것부터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교사’에게 많은 이들이 말했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가 겪은 말도 안 되는 학교의 현실, 암기식 수업, 돈 봉투, 성적 조작, 체벌, 언어폭력 등.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얼굴 벌게지는 것밖에 뭐가 있겠나. 그 불편함 때문이었을까. 부끄럽게도 결국 등대지기학교를 도중하차했다.
 
너 선생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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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입시를 넘다』홍세화 외 지음|우리교육|2014
 
그들은 사실 하소연이 아니라 이렇게 물은 거였다. 공교육이 이리 되기까지 도대체 당신은 무슨 노력을 했느냐고, 우리 아이들은 당장 어찌해야 하냐고. 그러니까 “당신은 선생님이잖아요?”이렇게 말이다. 때론 분노를, 때론 절절함을 담아 대답을 요구하는 그네들 앞에서 끝없이 죄인일 뿐, 무슨 말을 해도 변변치 않은 변명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었다. 그 불편함, 마음 졸임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모순된 내 모습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어, 반갑지만은 않은 그런 책 말이다.
이 책은 머리말부터 아예 대놓고 묻는다. “학교 바깥에서 입시 경쟁과 사교육 걱정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맹렬하다면, 교직사회에서도 이와 호응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알지 않는가. 일어날 일이 없다는 걸. 그런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사람들은 꽤 낙천적(?)이다. “변화의 구체적 신호를 보여 줌으로써 교직 사회를 일깨우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하자는 실험”을 해본단다. 거기에 “입시경쟁이라는 큰 괴물과 싸우는 새로운 교사 운동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까지 한단다. 어이구야…… 불편하다. 이 마음 가득 안고 한숨 푹 내쉬며 책장을 넘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2년에 진행한 교사 등 대지기학교의 강의록이 쭉 펼쳐진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총 7개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교사, 입시를 넘다.”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입시를 빼면 우리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좋은 대학 진학이 목표인 대한민국. 인성, 창의성, 허울뿐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가장 나쁜 시험은 수능도, 논술도 아닌, 바로 학교 시험이라는 것도.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던 그 ‘사실’들을 등대학교는 폭로한다. 학벌만 좋으면 모든 게 보장되는 사회. 단지 서울대생, 삼성맨, 김연아라는 1등 1명 뽑기를 위해 줄을 세우고, 석차를 매기는 학교. 독서와 글쓰기조차 “변별력을 끄집어내기 위한” 암기 아니지 않느냐란 물음. 거기에 프랑스는 대학교 1년 학비가 55만 원(그중 30만 원이 의료보험비)이고, 스웨덴에서는 국가 주관 일제고사조차 100% 글쓰기와 구두시험이란다. 작은 한숨이 나오다가도 쓸데없는 걱정도 든다.수많은 선생님들은 이미 지치고 무뎌졌는데, 이런 지적 앞에서도 별 감흥 없이 그냥 쉬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계실 텐데. 하지만 다음의 질문 앞에서는 그런 당신조차 순간 숨을 멈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교사의 전문성이 성적표로 표현됩니까? (중략) 평가는 컴퓨터가 다 해줍니다.”(337쪽)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온다. 게다가 황선준 연구위원은 스웨덴에서 가져온 일제고사 시험지(66~70쪽)를 보여 주는데,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눈으로 봐야 한다. 웃어야 하나? 아니면 가슴을 쳐야 하나 모르겠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평등사상”을 교육철학으로 삼은 나라를 우리가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나. 외국 시험지 한 장 앞에 허탈이고, 충격 그 자체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냈던 시험문제, 그건 차마 평가라고 부를 수가 없다.
이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교사들이 희생을 하려고 해도 자기가 모르는데 어떻게 희생을 합니까.”(79쪽)라는 위로 아닌 위로 앞에 참 할 말 없고, “대충 사는 선생님들은 논리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냅니다.”(138쪽)라는 지적과 “익명성 속에 파묻혀서 수로 밀어붙이는 저항은 저항 아닙니다.”(267쪽)라는 말은 마음에 꽂혀버렸다. 거기다 6・10민주항쟁이 박종철 군과 이한열 군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난 것처럼, “당신은 왜 그런 매개가 되지 않으려합니까?”(362쪽)라는 질문 앞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그래. 이들은 한마디로 묻는 것이다. “너선생 맞아?”
 
전쟁터를 아예 떠나 버려라
학교가 전쟁터가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한편으론 학교 안의 사람조차 교사라는 옷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 학교를 바꾸고자 고전분투하고, 다른 한편으론 아예 전쟁터를 떠나 버리는 이들도 있다. 참 신선한 문제해결 방법 아닌가? 주인공은 바로 저자 송경호의 막내딸 너굴 양.
너굴 양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교 밖 생활을 택했다. 이후 어찌 어찌 대안학교에 들어가 2~3년을 보내긴 했지만, 전후 사정을 읽어 보건데 대안학교를 위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건 아니다. 그냥 공교육이라는 울타리를 나온 것. 대안학교 졸업을 한 건 아니고 중퇴한 후 별다른 소속 없이 지냈는데, 엄밀히 말해 홈스쿨링을 한 것도 아니었다. 혼자 거리를 다니며 크는 딸아이를 아빠인 저자 송경호는 “로드스쿨러”라고 부른다. 로드스쿨러? 생소하다. ‘road’와 ‘schooler’의 합성어라는데, 길거리가 곧 학교 아니겠느냐는 뜻이란다. 그렇게 너굴 양은 도서관, 카페, 서점, 학원, 수련원, 수유너머, 하자센터 등등 발 닿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현재 그녀는 검정고시를 본 후 방송통신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단다. 하지만 대학 진학이 너굴 양의 목표일 리 없고, 그냥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로 젊음을 즐기는 듯 보인다. 그리고 아빠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록을 남겼다. 때론 아이의 행적을, 때론 대안학교에서 겪은 본인의 경험을, 때론 이 답답한 교육 현실에 대한 분노를 말이다.
그러니 부제처럼 단순한 대안교육 에세이라고 한정 짓기에는 애매하다. 무엇보다 딸아이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인데, 부모로서 어찌 조심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경험론이 보편적인 적합성을 갖는 건 아니다.”(38쪽)라고 말할 수 있는 저자가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조금 섣부르게 보일 수도 있는 책의 출판에 대해 이른바 전문가들만 판치는 세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뒤이어 ”문제는 이 땅 전문가 절대수가 돈과 권력이 쏠리는 쪽에 서서 그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한다는 데 있다. (중략) 가방 끈 짧은 학부모들은 ‘여론수렴’의 대상일 뿐.”(7쪽)이란 지적은, 학부모가 교육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알려준다. 학부모가 교사인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교육을 바라보고 있구나 생각도 든다. 뜨끔뜨끔 여기도 가시방석이다. 그러나저러나, 거리를 헤매며 변변한 교육과정 하나 이수 못한 너굴 양은 어찌 컸는지 궁금하지 않으신지. 부록으로 실린 그녀의 글 두 편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19살, 배낭여행을 준비하는 그녀는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운 것처럼 나도 내 딸을 키울 것이다.”(298쪽) 변변한 졸업장도 대기업 사원증도 없지만, 충분히 잘 컸다. “힘들면 쉬었다 가고, 가는 길이 막히면 돌아오면 되는 거다. 너굴은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이니까.”(29쪽)이라고 말해주는 아빠도, 분명 외롭고 불안했을 텐데 꿋꿋이 학교 밖 삶을 살아낸 딸도,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학교 밖 그곳은 상상 너머의 세계였지만 위험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보다 낫다고 볼 수밖에.
 
하루를 이리 살아냅니다
교사라는 이름을 달고는 이리가도 저리가도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는 걸까. 긴 한숨 내쉬며 터덜터덜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이곳이라도 힘을 준다면 좀 견딜 만할 텐데, 현실은 영 좋지가 않다. 아이들은 선생을 선생으로 안 본 지 오래고, 오히려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의 이런 상태(?)는 실업계 고교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단적인 예로 신랑이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화장실에 담배 연기는 있되 낙서는 없단다. 필기구는커녕 가방 자체를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인문계 고교의 평준화 정책 아래 깔때기처럼 걸러진 실업계 학교의 아이들. 한 학급에 20~30%가 소년원 출신이고, 한 해 동안 백여 명이 자퇴나 퇴학, 술 담배는 기본이요, 금품 갈취・성범죄에 자기 발로 뛰어드는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왜 신랑이 매일 그 표정으로 그 시간에 퇴근을 하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행히 나는 올해 전문계 고등학교로 왔다. 여기는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을 만났다는 건 쉬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가운 마음보다도,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무게를 얼치기 교사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거기에 시사만화 거장 박재동 화백이 그림을 더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책장을 넘긴다.
저자 이상석 교사는 말도 안 되는 실업계 학교 현장을, 사실은 그 이면의 사회 부조리를 낱낱이 고발한다. 겉에서 보기엔 교단일기나 아이들의 글 모음 정도의 형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건 국방부 불온서적 목록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요즘 세상에 매일 술 먹고 혼숙하고 오토바이를 탄 이야기만 늘어놓는 아이들에게 얼빠졌다고 손가락질하는 대신, 그들의 집을 찾아가는 교사가 어디 있을까. 그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가난’ 그 자체였다. 차가 다니지 못할 만큼 좁고 가파른 동네, 홑청이 벗겨진 베개와 펼쳐진 요, 노숙자들의 거처 같은 그곳에서 3주에 한 번 받는 10만원으로 산다는 아이들의 현실. 엄마 아빠가 제대로 계실 리 만무하다. 이 아이들은 곧 “자기를 썩혀서 우리 사회를 지탱”할 텐데, 하지만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갈” 텐데, 그 앞에서 저자는 분노한다.
 
“우리 공고 아이들이 소주를 사들고 폐교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져 숨이 넘어가고 있을 때, 이 아이들은 고급차를 타고 다니며 과외를 받고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노예가 되고 꼬붕이 되어 슬슬기며 한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게 억울하다. 제 생각 하나 바로 세우지 못하고 부자들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흐리멍덩한 사람이 될까 싶어 이게 억울한 것이다.”(89쪽)
 
그리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자기 능력껏 일하면 최소한의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 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싸워야 할까.”(105쪽)
저자는 아이들과 시를 쓰고 글을 쓰며 하루를 살아내며 그제야 “살 것 같다”고 한다. 때론 “어찌해야 하나 답답”해 했지만, “자기를 밝히는 글을 써서 나누어 읽으며”(353쪽), “부자들에게 맞서서 당당히 살아갈 자존심 하나, 당당한 가난의 무기를 주려 했다.(89쪽)” 그리고 말한다. 물신주의에 맞서 가난하게 살기를 각오하자고.
앞의 저자의 질문은 우리에게도 유효해야 한다. 그래서 한 해 동안 담임을 함께했지만 정 들 일이 없어 졸업식 날조차 “그냥 헛소리하면서 웃다가 헤어”지는 동료교사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만 용기를 내 가시방석에서 일어나야 할 때다.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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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 학교 밖으로!』송경호 지음|세창미디어|2014
 『도대체 학교가 뭐길래!』이상석 지음|박재동 그림|양철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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