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잡이 길잡이 [왕쌤의 교단독서일기]혼자서는 빛날 수 없는 별들의 궤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1-24 12:43 조회 6,474회 댓글 0건본문
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떠나는 아이, 붙잡는 학교
막무가내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나면서 지각과 결석이 많아지고, 차츰 연락이 되지 않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한다. 어머니와 통화를 해 보면 아침에 멀쩡히 출발했다고 하는데, 학교에는 도착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아침에 교문까지 바래다주었다는데, 아이는 교실로 가는 척하다가 몰래 학교 밖으로 나가버리거나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등교해 급식실로 향한다. ‘학업중단 숙려제’에 따라 ‘Wee 클래스’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학이 힘들자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해서 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국 유월에 일주일간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고, 입교를 허락받았다.
그러나 아이는 대안학교로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이미 40여 일의 결석일수를 껴안고 있던 터에 또다시 지각과 결석이 잦아지더니 결국, 대안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정 수업일수의 1/3을 수료하지 못할 경우, 자퇴나 퇴학이 되는 규정에 따라 퇴교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대안학교에서 퇴교되면 본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보니 아이는 검정고시를 치르겠다며 자퇴를 희망한단다. 결국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 한 달이 못 되어 자퇴원을 제출했다.
학업중단 숙려제를 통해 유예되었던 아이들의 자퇴가 2학기에 개학과 더불어 급증한다. 유예는 유예였을 뿐, 결국 학교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학교를 벗어나려는 아이들의 원심력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아이들을 붙잡아 두려는 구심력이 아슬아슬한 원운동을 하며 위태로운 궤도를 그리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위태로운 힘의 줄다리기는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2. 궤도를 벗어나다
『트윈 스피카』는 2010년에 순수 일본기술로 제작된 첫 유인우주탐사 로켓 ‘사자호’가 발사된 지 72초 만에 불길에 휩싸여 유이가하마 시가지로 추락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가상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고로 엄마를 잃은 가모가와 아스미는 도쿄 우주학교에 들어가 우주비행사의 꿈을 키워간다. 아스미의 눈에만 보이는 사자호의 유령 라이언 오빠는 지구에서 350광년 떨어진 처녀자리 알파별 ‘스피카’의 존재를 알려 주며, 소녀는 평생 별을 동경하게 한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라고 해도 가모가와 아스미와 그녀의 친구 우키다 마리카는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는 캐릭터다. 아스미가 답답할 정도로 착하고 여린 심성으로 주변의 친구들을 끌어당기는 구심력의 존재라면, 마리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인들의 시선에 냉대와 조소를 퍼부으며 밀어내는 원심력의 존재다. 아스미가 우주를 향하는 자신의 꿈에서 함께하는 기쁨과 동행을 원한다면, 마리카는 지구를 떠나 자신을 구속하는 아버지의 꿈에서 홀로 서는 자유와 탈출을 갈망한다.
나도 …… 나랑 닮은, 나랑 똑같은 얼굴을 가진 또 다른 우키타 마리카가 있었어. 완전히 동일한 유전 정보를 지닌 진짜 마리카. 난 그 복제 … 체세포를 가지고 인공적으로 그 유전자를 이어받게 만든 복제품이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진짜마리카의 일부에서 태어난 가짜 마리카. 보통 사람과 달리 약이 없으면 살아갈 수도 없어. 난 항상 달아나고 싶었어.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먼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어. 순수한 마음으로 우주를 꿈꾼 게 아니야. 난 그저 나 자신을 외면하고 달아날 생각만 했어…. 난 … 필요 없는 인간이니까…. (4권, 86~88쪽)
학교를 벗어나려는 아이들과 아버지의 그늘을 떠나려 하는 마리카의 일탈에는 홀로서기를 앞둔 극심한 자기 혼란과 정체성의 분열이 엿보인다.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울타리를 뛰어넘기 위해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은 어른이 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일 수 있다. 반면에 가고자 하는 방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일탈은 때로 일탈 자체가 목적이거나 지금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학교나 가정에서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로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의식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심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죽은 딸아이의 유전자를 이용해 복제해낸 마리카의 아버지는 불완전한 약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마리카를 항상 집안에 구속 하려 하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 진정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마리카의 외로운 존재 증명을 가로막으려 한다. 아버지와의 분리에 힘쓰던 마리카는 어느새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녀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아버지만큼이나 거추장스럽다. 학교를 떠나려는 아이들 또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 때가 많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좌표에 버려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공간 역시 무의미해진다.
학교를 떠나려는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은 유예된 시간이 아니라 훼손된 자아존중감을 보듬어 주고, 그들이 자신의 능력과 역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아이들이 모든 문제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공간, 장소에 있다고 여긴다면 새로운 곳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찾기 힘들 것이다.
3.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꼬마야, 봐라? 1등성이야. 여기서 보면 저렇게 작은 별 같아도 실제로는 태양의 수십 배나 되는 커다란 별이라고. 하지만 하루하루 그저 무심하게 살다보면 우리로서는 그 진짜 크기를 깨닫기 힘들지.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한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 수 없는 법이야.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1권, 24~25쪽)
예정된 작별과 뜻하지 않은 이별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매년 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아닌거 같다고 말하는 아이들. 학교와 아이들의 헤어짐은 이별일까, 작별일까. 끌어당기는 힘인 구심력과 벗어나려는 힘인 원심력이 평행을 이룰때 행성은 안정된 궤도를 그리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가질 때 우리는 내가 보지 못한 나의 크기를 볼 수 있다.
누군가는 헤어짐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어떤이는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 아스미는 수많은것들을 떠나보내며 성장해왔다. 사고로 엄마를 잃고,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별이 빛나는 한 함께 있어주겠다던 라이언 오빠 역시 마찬가지다. 마리카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다. 일탈을 꿈꾸던 그녀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각자의 사연으로 상처 입은 친구들이지만, 함께 있어 빛나는 쌍둥이별 스피카를 닮았다. 그들이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주인공 아스미가 아닌 스즈키 슈의 말로 옮겨진다. “전 무엇보다 먼저 동료를 찾을 겁니다. 혼자서는 우주에 갈 수없으니까요.”(5권,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