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앞잡이 길잡이 [나와 청소년문학]애들은 가라? 애들도 다 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01-22 15:37 조회 6,644회 댓글 0건

본문

박상률 소설가
 
예전에 시골 장터나 도회의 빈 터에서 늘 볼 수 있던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이른바 ‘약장수’가 전을 펼쳐 놓고 약을 팔기 위해 갖가지 볼거리를 ‘묘기 대행진’하듯 보여주던 모습이다. 그때 약장수는 곧잘 ‘애들은 가라!’는 말을 내뱉으며 손사래를 쳤다.
약장수 처지에서 보면 구매력이 없어 약을 사지도 않을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귀찮기만 하고 맥이 풀릴 터. 또 실제로 애들이 듣기에 민망한 ‘19금 사설’을 잔뜩 늘어놓을 생각이어서 애초에 ‘미성년자 관람 불가’ 딱지를 붙이고자 한 것이리라.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이란 게 묘해서 가라면 더 가기 싫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하라면 하기 싫다…. 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 애들은 약장수의 서슬에 눌려 그 자리에서 할 수 없이 물러나기는 하지만 돌아가면서도 힐끔힐끔 쳐다본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가 싶어서….
그때 약장수들은 대개 뱀 장수 흉내를 냈다. “이 배암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지리산에서 밤이슬만 먹고~” 어쩌구저쩌꾸하면서 듣기에 ‘쬐끔은’ 민망한 소리로 구경꾼들의 관심을 끈 뒤 본론을 꺼낸다. 약장수의 본론은 두말 할 것 없이 약을 파는 것!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달만 먹어도 요강에다 오줌을 못 눕니다. 요강이 깨져요! 요강이 깨져!”
약장수가 그렇게 너스레를 떠는 동안 약장수와 한 패거리로 따라온 이들은 구경꾼들 코앞에 약 상자를 들이민다. 그러면 어른들이 한두 사람 약을 사기 시작한다. 더러는 바람잡이 패거리가 먼저 지갑을 연 뒤 약이 좋다고 떠든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약의 효능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뒤지는 구경꾼들이 늘어난다. 사실약장수의 말을 듣고서 약을 안 사기란 어렵다. 그만큼 약장수는 그럴싸하게 말을 잘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기’를 잘 친 것이지만 그때는 약장수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 어른들이 없었다. 약장수가 파는 약은 ‘만병통치약’으로 어떤 병에도 듣지 않는 경우가 없었으니, 몸에 병을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는 어른들로선 모른 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패거리들이 약을 파는 사이 약장수는 그때까지 사라지지 않은 아이들이 있으면 대놓고 눈을 부라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앗, 뜨거
라!” 하면서 달아난다.
청소년문학을 시작할 때부터 이 광경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모습 때문에 청소년문학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짐짓 애들은 모를 거라며 외면하지만 기실은 애들도 다 알고 있다는 사실!
아이들은 이미 뱀의 효능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었다. 두 되짜리 소주병에 들어앉아 있는 뱀. 뱀술이 되기 위해 뱀은 곧잘 어른들에 의해 됫병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른들은 은밀히 뱀술은 정력제라며 “애들은 가라!” 했다. 하지만 애들은 어른들이 왜 뱀술을 담그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약장수가 왜 뱀 타령부터 하는지를 안다. 약장수가 약 선전을 하면서 그 약을 먹고 오줌을 누면 요강이 깨진다고 한 말의 뜻도 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순진해야 하니까! 되바라지면 안 되니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는 아이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춘향전’, 판소리든 소설이든 주인공 나이는 같다. 이팔청춘의 춘향과 몽룡. 춘흥 내지는 춘정을 못 이겨 공부방을 뛰쳐나가는 몽룡. 마침 단옷날 그네를 타는 춘향. 그들의 나이는 2 곱하기 8은 16, 즉 열여섯 살이다. 그 나이 대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만 하고 있기엔 너무 뜨겁다. 그런데 지금의 열여섯 살짜리들은 고등학교 교실 안에 있어야 한다. 이팔청춘이라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그저 공부하는 기계로만 살아야 한다. 목석처럼 감정도 드러내면 안 된다. 한마디로 사람이라는 족속이 속한 동물이어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유정물이면 안 되고 무정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조선시대보다 지금 시대가 더하다. 열여섯 살짜리들에게 더 가혹하다. 조선시대의 열여섯은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였다. 춘향과 몽룡의 ‘망측’한 말놀이를 보라. 그때의 아이들은 그래도 되고 지금 아이들은 그러면 안 된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청소년문학은 아이들만의 문제는 없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 어른들만의 문제일까?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집안이 망하면 아버지는 노숙을 한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다. 아이들은
친척집에 맡겨진다. 그러나 친척들은 잘 안 맡으려 한다. 그러면 만만한 게 시골 할아버지 댁이다. 이러한 행로가 거의 공식처럼 되어 있는 게 작금의 세상이다.
필자가 소설 『밥이 끓는 시간』을 쓸 무렵이 생각난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순지는 사춘기 소녀이다. 거기서도 집안이 망하니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죽고, 새엄마는 갓난이만 낳아놓고 집을 나간다. 그때 시골의 할머니가 나타나 그나마 여러 가지 문제를 헤쳐 나가게 도와준다. 그러나 할머니마저 금방 세상을 떠난다. 순지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할머니 댁에서 새로 시작한다. 이때 순지가 새로 시작하게 해 주는 건 이웃이다. 그때만 해도 시골의 공동체적 삶이랄 수 있는 이웃이 아직 작동을 할 때이다. 그 전에 외삼촌이라는 이는 어린 조카에게 ‘사기’까지 쳤지만 이웃이 있어 순지 형제들은 그나마 살아갈 방도를 찾는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밥이 끓는 시간』을 쓴 작가의 ‘상판대기’를 한번 보아야겠다며 벼르던 독자가 있었다. 어린 순지가 하도 고생을 많이 하기에 이런 글을 쓴 작가가 얼마나 독하면 이럴 수가 있을까, 했다던 교사가 있었다. 마침 그 교사의 학교에 강연을 하러 갔다. 나를 본 그 교사는 “독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소설은 왜 그렇게 썼죠?”라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작가인 내가 상상조차 못한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이 들려주어서 나는 받아 적기만 했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밥이 끓는 시간』은 순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작가인 내가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했다. 자려고 누워 있는데 순지가 ‘아저씨 잘 거예요?’ 하면 나는 ‘눈 좀 붙여야 내일 또 활동을 하지….’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면 순지는 ‘아직 더 할 이야기가 있는데….’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얼른 일어나 불을 켜고 책상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때 순지가 한 얘기는 외삼촌이 다정하게 나타나 ‘사기’를 친 이야기이다.
마치 ‘문둥이 콧구멍에서 마늘을 빼먹는’ 형국이었다. 나도 이야기를 받아 적으면서 분개하고 몸서리를 쳤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느끼면서 말이다. 어른들이 조금만 손 잡아 주면 아이들은 자신의 역량만큼 자란다. 그러나 어른들은 곤란에 빠진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기는커녕 아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할 생각을 먼저 한다.
흔히, 아이 하나를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마을이 붕괴되고 있다. 마을을 이루는 가정도 무너지고 있다. 아, 아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탄식이 나온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글로 아이들의 ‘현실’을 적는 일.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바는 소설보다 현실이 더 소설적이라는 것.
아이들도 다 안다. 예전엔 부모가 갈라설 경우 서로 아이들을 맡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아이들을 안 맡겠다며 떠넘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직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능력이 없어 부모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무슨 문제 때문에 갈라서는지 다 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기에 중재도 할 수 없고, 부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곧잘 ‘너희들도 크면 내 심정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클 때까지 기다릴 것 뭐 있나. 아이들은 지금도 다 안다. 그러나 뭐라고 한마디 했다간 ‘어린 것들이 뭘 알아!’ 이런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입을 다문다. ‘나는 아버지처럼 안 살아!’, 나는 ‘어머니처럼 안 살아!’ 하면서 말이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또 괴물과 싸우다 보면 어느새 괴물을 닮아 있다고 하는 말은 맞다. 아이들은 훗날 어느새 자신이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경악을 한다.
이러니 아이들만의 문제가 있는가? 아이들만의 문제를 다뤘다고 하는 청소년소설을 보면 기껏 이성 관계나 급우 관계, 나아가 학교생활의 어려움 정도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모든 문제는 곧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들의 문제가 어른의 문제이기도 하고….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