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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게으른 사서의 띄엄띄엄 책 읽기]약자의 생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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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9-21 17:16 조회 6,9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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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서울 연가초 사서교사
 
학창 시절에 나는 선행상을 꽤 여러 번 받았다. 나는 단지 권력자(선생님)의 말을 잘 들었을 뿐, 반 아이들 중 소외되고 힘든 아이에게 관심 가져 본 적조차 없는 무심한 학생이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참 부적절한 상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주위의 약자들, 사회의 여러 부당한 일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런데 이 시를 보는 순간, 그동안 회색분자로 웃는 얼굴로 내 몫만 챙기고 살아온 걸 들킨 것 같았다.
 
 
참 착한 사람

                                  박노해
 
너무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 마라
그는 길들여진 자일 가능성이 크다
(중략)
 
세상에 옳음도 틀림도 없고
다만 다름이 있을 뿐이라며
진리의 등뼈도 양심의 모서리도
매끄럽게 닳아버린 사람
 
그의 열린 듯한 자기 중심주의는
엄연히 기득권 세력을 강화시킨다
(후략)
 
 
 
그랬던 내가 이제야 조금씩 사회의 약자들이 왜 약자란 이유로 더 보호받아야 하는지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소수여서 약자인 직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몰랐다. 소수의 자리는 이런 자리인지. 학교에 단 한 사람. 사서교사. 이해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음을 제기해도 전체의 편의대로 흘러가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직 안에서 좋은 사람으로 통하는 선생님도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 앞에서는 상식적인 선을 넘기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비주류에 속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실감한 10년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감동할 때도 꽤 있었다. ‘스승의 날’처럼 소외된 날에는 꼭 자기 몫을 떼어 아이를 시켜 혼자 있는 비주류 샘들을 챙기던 선생님들이 계셨고, 혼자 있는 내가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지 물어봐 주시는 샘들도 더러 계셨다. 또 심지어 나보다 내 일에 더 분노하며 관리자들에게 항의하던 선생님도 만났었다. 워낙 데면데면하고 멋쩍어하는 무뚝뚝한 성격인지라 고맙단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갔는데, 그런 마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맙고 언젠가는 보답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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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약자다, 약자의 생존 레시피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
성과급 회의를 비롯해 소수의 논리가 다수의 비논리를 이길 수 없는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그런 상황들 사이에서 『손자병법』을 보며 무릎을 쳤다. 아무리 우수한 장군도 형세를 이길 수는 없다는 내용의 골자였다. 즉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머릿수가 곧 권력이어서 우리의 머릿수가 권력이 될 때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기다려야 할 많은 세월 앞에 우리는 버티기만 해도 장한 것이다. 이기고 있는 것이다.
사서로서 여러 부당함이나 인권 침해 문제는 사명감이란 이름으로 강요당하고, 우리 스스로도 터부시하고 공론화되지 못하는 까닭이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매슬로우(A. H. Maslow)의 욕구 단계 중 진리 추구(지식과 이해, 미에 대한 욕구)는 상위단계에 있다. 아직 우리 교육 사회가 생존이나 안전의 단계를 더 중요시하고 있어서, 이 부분 역시 우리 사회의 진보가 있어야 거론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런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럽다. 자기 밥그릇 챙긴 사람의 이런 이야기가 밖의 사람들 눈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미생>의 대사처럼 여기가 전쟁터라고 불평하지만 밖은 지옥인 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합리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 불합리를 어떤 논리로도 바꿀 수 없을 때,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이치 파악만 되어도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된다.
일반 교사와 달리 우리는 관리자(우리의 업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나 동료교사들과 직접 부딪히고 설득하고 갈등하게 될 일이 많다. 동시에 우리 또한 명예사서나 학생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자리에 있다. 정치란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바르기만 한 리더는 조직을 살리기에 불리할 수도 있다.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리더에 대해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나는 소외된 직업을 택한 모든 사람들은 권력과 정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직업적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손자병법』(손무, 글항아리), 『권력이 묻거든 모략으로 답하라』(장거정, 아템포) 같은 싸움의 기술을 다룬 책이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 등 홍세화의 책들, 또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 까치글방) 같은 책들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들은 인간관계에서 권력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권력의 이치를 깨닫는 게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기본이 되는 듯하다. 특히 홍세화의 책들은 주류와 기득권의 사회에서 소수를 존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사회의 시민으로서 우리의 좌표를 어디에 잡아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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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을 위한 레시피
학교도서관에 발 담근 지 십여 년이다. 교직관을 성직관인가 전문직관인가 노동직관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줄타기를 넘어 이제는 그저 ‘밥벌이’로 버티기만 하는 날들도 여러 날이다. 젊은 날 혈기 있게 표리부동한 기득권을 비난했던 모습들이 부끄러울 만큼 자기 앞가림만 밥벌이만 계속해도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 일침을 놓은 책이 두 권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이렇게 감동적일 줄 몰랐다. 백성의 고통을 직접 살펴본 정약용이 사리사욕에만 급급한 당시의 수령들에게 백성이 편안하게 살도록 보살피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백성을 ‘구체적’으로 위하는 그의 마음에 울컥했다. 모든 공무원들은 꼭 읽어 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 『목민심서』 중에서
 
어떤 면에서 사서교사는 내 밥그릇을 잘 챙긴 기득권이기도 하다. 밥그릇 챙긴 기득권 세력이 잊어버린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부끄러워할 일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 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에서
 
우리는 같은 교사 그룹 안에서는 약자지만,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앞에서는 도서관이 내 것인 양 ‘갑질’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도 잃어버린 부끄러움을 배워야 하는 기득권뿐일 수도 있다. 학생들 눈에는 보인다. 우리의 맨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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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약자의 황금 레시피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63학급이 있다. 평일 하루 대출반납 권수가 1,000권에서 1,500권 정도고 일 년에 252시간 독서 수업을 한다. 거기에다 도서관 기본 업무에 프로그램에 동아리까지… 웬만한 공공도서관과 맞먹는다. 사서교사 혼자 할 수 있는 업무의 한계치를 초과한다. 하루 종일 쉼 없이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구성원 누구도 나의 업무량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워낙 사서의 업무가 여유롭고 한가하다는 인식이 강해서 업무적 배려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교대 출신들 사이에서 하소연이나 넋두리가 될까봐 힘들다는 내색도 하기 힘들다.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혼자 힘으로 벅차다. 안간힘을 쓰고 겨우 해내도 바뀌지 않아 무력감과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는 언제쯤 사서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약자가 승리하는 데는 많은 준비와 세월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약자의 승리는 언제나 기다려야 할까? 형세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약자의 승리 방법일까? 미래의 승리를 위해 현재는 언제나 실패로 살아야 할까? 신데렐라, 토끼와 거북이 등 수많은 이야기에서 약자는 기어이 승리하지만 현실에서 약자는 피해의식과 소외감에 시달리거나 많은 걸 포기한 방관자로 살아가기 쉽다. 하지만 승리자로 살아가도록 돕는 책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는 사서교사로서 절망을 느낄 때마다 삶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약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단 하나다.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때 승자처럼 살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겪은 아픔으로 타인(학생, 동료교사, 학부모)의 아픔을 보듬는 것. 자기연민이나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일을 충실하게 해 나가며 버티는 것. 더 나아가 즐겁게 일하고 기꺼이 돕는 하루치의 태도가 약자의 승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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