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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책 그리기]오월의 광주는 지금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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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6-28 11:04 조회 2,8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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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
소설 『소년이 온다』

거의 십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5.18을 다룬 상업영화 두 편이 개봉했습니다. <화려한 휴가>(2007)와 <택시운전사>(2017)는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합니다. 영화가 다루는 포커스나 시선은 조금 다르지만 둘 다 그날의 광주를 기억하고 재연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휴가>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당시 시민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입장에 포커스를 둔다면, <택시운전사>는 그 당시 광주의 참상을 보도했던 독일인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운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와 함께 광주의 오월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소설이 있습니다. 맨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입니다. 한강 작가는 1970년, 광주 출신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그녀가 열한 살일 무렵의 일입니다. 소설은 그녀보다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던 열세 살 앳된 소년 동호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당시의 인물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살아남은 인물들은 그 시간에 갇혀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리며, 그 영혼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기록하며 5월의 광주가 1980년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글로써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오월의 광주,
무엇이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나
1979년 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여 암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10.26 사건) 이후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이 김재규를 체포하고 권력을 잡습니다. 전두환은 당시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의 주요 핵심 인사였습니다. 같은 해 12월 12일, 전두환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국을 차지합니다.(12.12사태) 독재정권을 유지했던 박정희가 죽었지만 또 다시 군권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죠. 이후 신군부의 군권 장악과 안개정국을 규탄하기 위한 전국 시위가 잇따라 일어나게 됩니다. 이들은‘ 계엄철폐’와‘ 신군부 퇴진’ 그리고‘ 민주화’를 요구합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인근에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서울 시내 대학생들과 서울 시민이 운집해 계엄철폐와
민주화를 외칩니다.(서울의 봄) 그러나 신군부의 2차 쿠데타로 인해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을 염려한 시위 지도부가 해산 결정을 내립니다. 신군부 세력은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사실상 국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이지요. 한편 광주에서는 계엄령 확대에 분노한 전남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신군부 세력은 대학에 휴교령을 내리고 광주 지역에 군대를 보내 강도 높은 진압을 실시합니다. 일명‘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명을 단 이 작전은 민주화를 외치는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로죽인 살상이었습니다.
 
군대를 동원해 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정부를 향해 수많은 광주 사람들이 계엄철폐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군인들은 광주 시민들을 ‘빨갱이‘,’ 폭도’로 규정하고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쏩니다. 시민들을 구타하고 군화발로 짓밟으며 잡히는 대로 끌고 가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광주는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서 총을 들고 맞서지만 탱크를 끌고 총을 들고 무장한 군대에 맞서 일반 시민들이 맞서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죽어갔습니다. 열흘간의 시위와 대치 끝에 전남도청에 남은 시민들을 모두 사살하는 것으로 이 항쟁은 막을 내립니다. 공식적으로만 700여 명에 가까운 광주 시민들이 사망하고 2,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하거나 사망했습니다. 정부가 사상자 수를 은폐하며 공식적으로 밝힌 숫자가 이만큼이었으니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겠지요.
 
시민들은 자신들이 피를 흘리며 저들의 총에 맞아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군홧발에 짓밟혀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리로 나왔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분노하게 했을까요, 아니 무엇이 이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을까요.
지난겨울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1980년 5월
의 광주의 거리로, 2016년 서울의 거리로 나온 사람들….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요. 이들은 어쩌면 모두 같은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영화 <택시운전사>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광주의 일이 전국으로 보도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광주에서 타 지역으로 나가는 모든 교통을 통제하고, 광주 시내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도 막았습니다. 전화도 불통이 되어 몇날 며칠이고 광주 지역은 다른 지역과 통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언론을 장악한 정부는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광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불순분자들의 폭동‘’,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살상을 정당한 진압으로 보도했습니다. 한국 기자들의 취재는 당연히 금지되었습니다.
이때 이 상황을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외신기자들뿐이었습니다. 그때 광주의 상황이 외국으로 알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한 독일인 기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힌츠페터였습니다. 그는 광주의 상황을 듣고 이를 알려야겠다
고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광주로 내려갑니다. 도로가 통제되어 광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산을 넘어 돌아서 광주 시내로 들어갑니다.
 
광주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대병원 장례식장은 시신들로 넘쳐나 장례식장이 모자랐고 수많은 시신들은 학교 체육관으로, 강당으로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동호와 은숙 누나가 이 시신들을 수습하는 역할을 합니다.) 거리는 총에 맞아 나뒹구는 수많은 시체들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힌츠페터는 위험을 무릎 쓰고 그 상황들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그리고 이를 외국에 보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영화 <택시운전사>입니다.
이를 보며 우리는 미디어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언론의 역할, 미디어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광주 이야기를 합니다.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알려야 했는가에 대해서 말이지
요. 이는 비단 이때뿐만이 아닙니다. 그 후로도 많은 시간 동안 언론은 국가에 의해서 통제되고 검열되었습니다.
오늘날은 SNS가 활성화되고 1인 출판과 1인 방송, 개인 미디어가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민
주화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민주화의 요구와 자유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론의 자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언론과 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를 지나서 우리는 이제 언론과 미디어를 창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창조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올해는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이 되는 해입니다. 서두
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한민국의 봄은 역사의 많은 아픔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들은 과거에서 끝난 안타까운 참상에서 머무르는 것일까요?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일곱개의 뺨」(102쪽)

체육관 강당에서 동호와 함께 시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은숙 누나는 해마다 몇 번이고 시청에 전화를 겁니다. 분수
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들을 제발 멈춰달라고.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면 안 되지 않느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날 밤, 도청에 함께 남았던 대학생 진수 형 역시 교도소에 다녀온 후 남은 삶이 피폐해집니다. 진수 형의 얼굴 한 자리에는 늘 어둠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그는 삶을 등지고 맙니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134쪽)
1980년 5월 18일은 지나갔지만 광주를 겪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시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그날의 오월에 갇혀 있습니다. 역사가 개인의 인생에 어떤 아픔과 상처를 남기는지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 역사 또한 이러한 개인들의 삶이 모
이고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반대로 역사의 아픔은 고스란히 개인들을 통해 여전히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단 그들의 삶뿐만이 아니겠지요. 그 시대를 지나 태어나고 현재의 역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그 아픔의 역사는 재연되어 반복됩니다. 2009년 용산에서도, 2014년 진도에서도, 2016년 광화문에서도 말입니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 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쪽)
1980년 오월의 광주는, 지금 여기에도 있습니다. 전남도청에 남은 이들은 그날 밤 방송으로‘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광주가 있는 이 페이지를 채워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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