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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영화 읽기 책 그리기] 너와 나의 무한대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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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7-02 14:41 조회 3,19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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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류탄이야
 여주인공 헤이즐은 열세 살 때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이 폐로 전이되고 폐렴이 오고 폐에 물이 차면서 죽을 고비를 만나지만 다행히도 살아납니다. 암환자의 70퍼센트에게 효과가 없다는‘ 팔란키포’라는 신약이 기적적이게도 헤이즐에게는 효과가 있어 더 이상 암이 전이되지 않는 상태로 삶을 유지하고 있죠. 그러나 반밖에 남지 않은 폐 때문에 늘 산소공급용 노즐을 코에 끼우고 산소탱크를 들고 다닙니다. 약간의 염세적인 시선과 시크한 성격을 지닌 탓에 딸이 걱정된 엄마는 헤이즐에게 서포트그룹(암환우들의 모임)에 나가보라고 권합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서포트그룹에 나간 헤이즐은 그곳에서 어거스터스(거스)라는 남자아이를 만나그리기게 됩니다. 거스는 골육종이라는 암을 앓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농구선수 대표를 맡을 정도로 건강했으나 골육종(암의 일종)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단해 한쪽 다리는 의수를 하고 있죠. 다행히 암세포가 전이되지 않았습니다. 둘은 서포트그룹 모임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장엄한 고독』이라는 책을 통해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장엄한 고독』은 헤이즐이 수백 번도 넘게 본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야기가 결말 없이 끝나서 더 이상 뒷이야기를 알 수 없습니다. 책의 뒷이야기를 너무도 궁금해하는 그녀를 위해 거스는 책의 작가 반 호텐에게 편지를 쓰고, 그로부터 “만약 암스테르담에 오면 결말을 말해주겠다.”라는 메일을 받습니다. 거스는 헤이즐을 위해 지니(암 환우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선재단)에게 암스테르담 여행을 소원으로 신청합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납니다. 거스는 늘 헤이즐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헤이즐은 늘 친구로서 선을 긋기만 합니다.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거스는 헤이즐에게 진심을 다해 고백합니다.
 
“난 널 사랑하고, 진심을 말하는 그 간단한 기쁨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난 널 사랑해. 사랑이라는 게 그저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도 알고, 결국에는 잊히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우리 모두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도,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날이 오게 될 거라는 것도 알아. 태양이 우리가 발 딛고 산 유일한 지구를 집어삼킬 거라는 것도 알고. 그래도 어쨌든 너를 사랑해.”(163쪽)
 
 그러나 헤이즐은 거스의 고백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고개를 돌려 창문만 바라볼 뿐입니다. 사실 헤이즐이 이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거스에게는 캐롤린이란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캐롤린은 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헤이즐은 캐롤린의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쓰인 애도의 글들을 보며 자신이 수류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사람들에게 수류탄이 터진 후의 파편 같은 아픔들을 남길 것이 두려운 것이지요. 헤이즐에게 거스를 사랑하는 일은 기묘하게 고통스러운 기쁨 속에 빠져드는 일입니다.
 
“전 말이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수류탄 같은 거라고요, 엄마. 전 수류탄이고 언젠가 터져 버릴 테니까 사상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고요. 아시겠어요?”(108쪽)
 
그러니까 어거스터스가 나를 만졌을 때 내가 긴장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불가피한 일이니까. 그게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이다.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거다. 사실이 그러니까.(110쪽)
 
그러나 암스테르담 여행 중 안네 프랑크(『안네의 일기』의 주인공)가 살았던 집을 방문했던 날, 헤이즐은 마침내 어거스터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다음날 헤이즐은 거스에게 골육종이 재발했다는, 그것도 몸 전체에 암세포가 퍼져 이미 손쓸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스가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된 것이지요.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워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헤이즐. 이제 그녀는 이 사랑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잊힌다는 것- 그리고 남은 자들의 이야기
『장엄한 고독』은 헤이즐이 수십 번도 넘게 본,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장엄한 고독』에는 암을 앓고 있는‘ 안나’라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진부한 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책의 작가‘ 반 호텐’은 죽음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졌고, 사실적인 묘사를 할 줄 아는 작가입니다. 헤이즐은 죽음에 대한 그의 사실적인 통찰을 마음에 들어 하죠. 문제는 이 소설이 결말 없이 끝나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혈액암에 걸린 안나가‘ 콜레라 환자들을 위한 재단’을 만들고 정원사 일을 하는 안나의 엄마가 네덜란드 튤립 상인을 만나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안나는 네덜란드 상인이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나는 새로운 신약을 투여하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소설은 거기서 끝을 맺게 됩니다. 후속편이 나오지도, 작가가 이렇다 할결말을 내지도 않았기에 헤이즐은 그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실은 안나보다도 그 주변 인물이 어떻게 되었나가 말이지요.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안나가 암으로 죽어서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쳐도, 안나가 키우던 햄스터는 어떻게 되었는지, 안나의 엄마는 네덜란드 튤립 상인과 결혼을 했는지, 그는 진짜 사기꾼이었는지 말이지요.
 암스테르담에서 반 호텐을 만난 헤이즐과 거스는 그 후의 이야기들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반
호텐은 두 사람에게 뒷이야기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된 듯 연신 위스키를 들이키며 무례한 말과 독설을 내뱉고 결말을 궁금해하는 헤이즐을 비하합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스웨덴어로 된 랩을 틀어놓는가 하면“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크다”는 둥, 결말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들만 늘어놓습니다. 작가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한 헤이즐과 거스는 결국 결말을 듣지 못한 채 그 집을 나옵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여행 이후, 거스는 병세가 악화됩니다. 암투병은 결코 용감하거나 아름답지 않습니다. 무엇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울부짖고 엉망진창이 되어 가는 과정이죠. 헤이즐은 그런 거스의 곁에서 함께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스는 결국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거스의 장례식 날, 장례식장에 뜻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작가 반 호텐이었습니다. 지구 반 바퀴를날아온 그는 헤이즐에게 거스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장례식 날 와서 헤이즐에게 책의 결말을 알려달라고 했다며“ 옴니스 셀룰라 에 셀룰라(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오는 것이니)”라는 이상한 말을 합니다.“ 넌 여전히 뒷
이야기를 찾고 있구나. 교활한 꼬마 같으니.”라면서 말이지요. 반 호텐에게 화가 난 헤이즐은 그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며칠 후 헤이즐은 친구 아이작으로부터 거스가 죽기 전에 헤이즐을 위해『 장엄한 고독』의 결말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말을 반 호텐에게 보냈다는 것도요. 헤이즐은 반 호텐의 비서를 통해 그 편지를 찾아냅니다. 반 호텐은 거스가 쓴 편지를 그대로 헤이즐에게 보내주라고 말합니다.

“난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하지만 반 호텐 씨, 사람들이 남기는 흔적이라는 건 대부분이 상처입니다. (중략) 난 그 애를 사랑해요. 그 애를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정말로 행운아예요. 반 호텐.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 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죽은 사람이 남기고 가는 것이 흔적이 아니라 상처뿐일지라도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는
거스. 어쩌면 남기고 가는 것이 상처뿐일지라도 상처는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남기고 가는 것이,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가 두려워서 이 무한대의 시간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지요. 반 호텐이 계속해서 책의 결말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자신이 가진 시간을 사랑하지 못하고 남겨진 이들의 결말에만 집착하는 헤이즐이 안타까워서가 아닐까요.
 헤이즐은 거스를 알게 되고 사랑하면서 거스와 함께한 무한대의 시간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반 호텐이 이야기한‘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크다’는 것이 헤이즐과 거스의 무한대의 시간들이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됩니다.
 어쩌면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거스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내와 두 딸이 죽고 혼자만 살아남은 오토 프랑크(안네 프랑크의 아빠)의 독백이 영상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혼자 살아남은 시간들을 그가 어떻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거스를 향해 입맞춤을 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주어진 무한대의 시간에 누군가를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누구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을지 고를 수 있어 행복했다는 거스를 추모하며 살아생전 그를 위해 썼던 헤이즐의 추모사를 나지막이 읊어봅니다.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과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에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죠. 물론 0과 2 사이라든지 0과 100만 사이에는 더‘ 큰’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중략) 전 제가 가질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아, 어거스
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기를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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