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화 공상이 아닌 과학만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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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12:49 조회 7,318회 댓글 0건본문
과학만큼 대중문화에서 오남용 된 개념은 드물 것 같다. 한때 나름대로 초등학생 교육 측면에서 사회적 문제로 치부되었던 광고문구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 과학입니다.”에서 쉽게 엿볼 수 있듯, 일종의 그럴듯한 차별화 도구로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공상과학(SF)물은 상상의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판타지물인데, 과학적 요소들을 상상의 소재로 삼는다는 이유만으로 별도 장르로 불러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인공이 반중력 비행선을 타고 날아다니면 공상과학, 드래곤을 타고 날아다니면 판타지, 그런데 그 드래곤이 사실은 유전공학의 산물이라면 다시 공상과학이라는 식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과학은 체계적 지식탐구라는 본연의 의미가 아니라, 그런 과학을 통해 앞으로 이 세계에서 혹은 다른 우주에서 축적할 수 있을 법한 ‘기술’을 지칭한다.
하지만 가끔, 작품을 읽으며 과학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욕구를 충족 받고 싶을 때도 있다. 현상을 바라보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체계적인 분석 탐구 방법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원리를 파악해나가는 방법론으로서의 과학 말이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모험물로서의 소재거리가 아니라, 호기심을 체계적으로 해소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그런 재미를 주는 과학 말이다. 즉 탐정물에서 범행의 진실을 알아나가듯, 현상에서 원리라는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공상’ 없는 과학만화를 소개한다.
아동용으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과학만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동용 학습만화다. 아직까지도 흔히 퍼져있는 편견은, 이런 작품은 박사와 꼬마조수 캐릭터들이 나와서 적당히 단순화한 과학상식을 잔뜩 설명조로 늘어놓는 선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딱히 오락적 재미를 주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읽고 난 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언가 유익한 것을 읽혀주고자 하는 마음과 “만화나 보려고 하는 철없는 아이들”의 취향 사이의 적당한 타협에 불과하다. 물론 실제로 그런 저열한 품질의 아동용 과학만화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 잘 기획된 작품은 그만큼 더욱 밝게 빛난다.
박사와 조수 같은 오래된 기본 구도조차 원래부터 지루한 것이 아니고, 그 조수들의 눈높이와 개성에 맞추어 활달하게 잘 설명해내면 얼마든지 즐겁다. 게다가 아동용이라고 해서 굳이 아동 전용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성장하며 과학을 배워나가는 방식은 초등학교에서 세상의 여러 현상을 소개받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그 현상들의 이면을 좀 더 깊게 파고들며, 대학교부터 그 중 특정한 분야에 고정해서 전공으로 삼는 방식이다. 얼마나 과학적 탐구라는 기본 틀이 잘 갖춰져 있는가, 설명한 과학 지식이 실제 지금껏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얼마나 근접한가가 관건일 따름이다.
지난 수년간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Why?』시리즈(여러 작가, 예림당)는 어린이용이지만 어린이 전용이 아닌 과학만화의 모범이다. 이 시리즈의 첫째 미덕은 세밀한 주제 분류에 있다. 수학, 물리 그런 식으로 학교 교과목 마냥 듬성듬성 분류한 것이 아니라, 각 권이 ‘언어와 문자’, ‘궁궐 이야기’, ‘인쇄술’, ‘전통과학’ 등 궁금증을 가지고 파고들만한 현상 단위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를 연상시킬 정도로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여러 맥락을 설명한다. 나아가 중간 중간에 여러 개념들의 관계를 쉽게 정립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야기로서의 줄거리는 대부분 박사와 꼬마조수라는 틀을 활용하고 있지만, 박사 캐릭터의 권위적 색채를 거의 지워내서 주입식의 느낌도 최소화된다. 중・고등학생, 만약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라면 대학생 이상에게도 다시금 해당 분야에 관한 과학지식의 기본 얼개를 다시 훑어보거나 속성으로 익혀둬야 할 때, 적잖이 적합하다.
극적인 재미가 아쉽다고 한다면 <퍼니퍼니 과학수사대>(구구스튜디오, 지학사) 같은 스토리 서사형 과학만화도 추천할만하다. 어린이탐정물의 틀을 지니고 있으면서, 사건의 수사에 과학적 탐구를 도입하여 과학적 원리들을 소개하는 기능을 합쳐 넣은 접근법이다. 즉 탐정물의 아기자기한 서스펜스와 함께, 과학만화 특유의 과학적 배움의 재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만화로 보는 독서평설>, <어린이 과학동아> 등 과학적 탐구, 논리적 사고를 소재로 하는 잡지들의 자매지에 이런 식의 시도들이 00년대 후반 들어서 적지 않게 시도되었고, 다수의 쭉정이도 있지만 일부는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거머쥐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잡지 지면의 상대적인 영향력 쇠퇴, 양질의 작품이 반드시 높은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닌 문화 산업 특유의 우연성 등으로 인하여 여러 작품들이 마이너한 인지도에 허덕이고 있다.
전문과학 지식이 담긴
앞서 말했듯 아동용 과학학습만화의 문제는 종종 아동전용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좀 더 고연령층들을 대상으로 더 본격적인 과학지식만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결코 쉽지 않다. 만화라는 형식에 대한 우선적 선호를 보이곤 하는 어린이들과 달리, 만화에 대한 편견을 사회로부터 주입당하며 성장한 많은 청소년 이상 어른들은 극적 재미 이외의 무언가를 만화에서 얻는 것을 종종 어색하게 생각해왔다. 그나마 시사상식이나 생활정보에서 조금씩 인식 변화가 있었지만, 더 본격적인 과학 분야로 들어가면 편견의 벽은 강고했다. 여기에는 실제로 고연령층 독자는 책에서 기대하는(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세부적 지식의 수준이 더 높다는 점도 기여한다. 더 ‘그럴듯한’ 전문지식과 정보량이 담긴 과학만화는 그러나 그 전문성만큼 수요층 역시 좁아지는 반면 제작을 하기 위한 품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대형성공작이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빛나는 사례들은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1~5』로 유명한 지식만화 전문 작가 래리 고닉이 해당분야 전문가의 개론을 만화로 풀어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학』시리즈(궁리)가 그 중 하나다. 한국어로 물리학, 통계학, 유전학 등이 출간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복잡한 전문분야의 지식을 작가의 분신 캐릭터가 명쾌한 시각적 비유와 유머러스한 설명을 곁들여 풀어낸다. 단순히 교과서를 읊어내는 식이 아니라, 통계학에서 표집을 통한 모집단에 대한 통계적 추론의 오차범위 개념을 과녁과 화살에 의한 탄착군으로 비유하는 등 마치 명강사의 개론 강연을 듣는 느낌의 탁월한 설명력을 자랑한다. 나아가 이후 더 깊게 파고들 이들을 위한 문헌 추천도 잊지 않는다.
혹은 한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은 전문적 내용을 한꺼번에 훑고 싶다면 『하룻밤의 지식여행』(여러 작가, 김영사)도 훌륭한 선택이다. 예전에 ‘아이콘 총서’라는 제목으로 일부 출간된 바 있는 시리즈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극만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많은 설명문과 거친 삽화가 꼴라쥬 형식처럼 배치되어 해당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을 최대한 많이 압축해서 제시하는 식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실 초심자가 입문하는 용도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 그 분야 혹은 인접분야를 아는 사람들이 핵심 개념들과 그 맥락을 간단히 참조하는 것에 더 유용해 보인다.
이 시리즈는 흥미로운 현상 위주로 분류되었던 『Why?』시리즈나 과학 기초과목의 틀에 가까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학』시리즈와 달리 때로는 매우 세부적인 분과학문, 때로는 주요 인물 혹은 화제의 키워드 등이 모두 채용된다. 그렇기에 ‘프렉탈 기하학’, ‘비트겐슈타인’, ‘사회학’, ‘카오스’, ‘상대성이론’, ‘진화심리학’ 등 여러 차원의 소재들이 골고루 존재한다.
학습용이 아니라도 괜찮아
사실 과학만화라고 해서 반드시 학습과 지식전달 자체를 중심에 놓아야 할 필요는 없다. 장르적 즐거움의 소재로서 과학적 탐구정신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결코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몇몇 작품들이 충분히 증명해준다. 그 중 하나인 『공상과학대전1~3』(야나기타 리카오, 대원CI)은 공상과학만화를 표방하면서 사실은 그냥 과학만화를 내놓는 재미있는 시도다. 이야기는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 악당, 로봇과 초인 등을 통해 지구를 지키려는 지구방위대의 싸움이라는 흔한 공상과학만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지구의 실제물리법칙의 지배하에 놓여버리는 바람에 악당과 정의의 편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다. 정성들여 만들어낸 거대 괴수는 근력과 몸무게의 과학으로 인하여 서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거대 로봇이 마음껏 발사한 로켓펀치는 반동력으로 인해 정작 로봇 본체도 뒤로 날린다. 히어로가 거대하게 변신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단백질을 흡수해야 하고, 그나마도 신진대사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여러 시간 걸린다.
과학적 설명으로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며 독자들을 폭소하게 만드는 식이다. 단순히 공상과학만화의 허상을 과학적으로 밝힌다는 식의 모멸적 접근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공상과학물의 멋진소재들을 실현시켜보고자 물리법칙을 잔뜩 동원하는 모습, 즉 장르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혹은 그저 짧은 유머만화 연재에서도 과학만화를 실현할 수 있다. <xkcd>(랜덜 먼로, 국내미출간)는 작대기 형상의 낙서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단칸 또는 4칸 만화인데, 웹페이지 연재(http://xkcd.com)를 통해 이공계 성향의 독자들에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리즈다. 이 작품은 일상적 상황에 과학적 개념으로 대처하여 난감해지는 상황들을 자주 활용한다. “신데렐라에 아이겐백터가 있나?” “아니?” “그럼 왕자가 유리구두와 주인을 뭘로 맞춰본 거지?” 이런 식의 대화들이 넘친다. 대체로 매우 유머 넘치고, 종종 애잔한 내용까지도 등장하는 충실한 과학만화다.
과학이 그저 교과서 속의 낯설고 재미없는 무언가라고 느껴질 때, 공상과학물은 재미있지만 과학은 관심이 생기지 않을 때, 한 권의 잘 만들어진 과학만화를 펼쳐볼 것을 권한다. 만약 재미있다면, 왜 재미있는지 스스로 궁금해 하다가 아마 과학적 탐구심이 다시 지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작품을 읽으며 과학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욕구를 충족 받고 싶을 때도 있다. 현상을 바라보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체계적인 분석 탐구 방법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원리를 파악해나가는 방법론으로서의 과학 말이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모험물로서의 소재거리가 아니라, 호기심을 체계적으로 해소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그런 재미를 주는 과학 말이다. 즉 탐정물에서 범행의 진실을 알아나가듯, 현상에서 원리라는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공상’ 없는 과학만화를 소개한다.
아동용으로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과학만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동용 학습만화다. 아직까지도 흔히 퍼져있는 편견은, 이런 작품은 박사와 꼬마조수 캐릭터들이 나와서 적당히 단순화한 과학상식을 잔뜩 설명조로 늘어놓는 선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딱히 오락적 재미를 주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읽고 난 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언가 유익한 것을 읽혀주고자 하는 마음과 “만화나 보려고 하는 철없는 아이들”의 취향 사이의 적당한 타협에 불과하다. 물론 실제로 그런 저열한 품질의 아동용 과학만화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 잘 기획된 작품은 그만큼 더욱 밝게 빛난다.
박사와 조수 같은 오래된 기본 구도조차 원래부터 지루한 것이 아니고, 그 조수들의 눈높이와 개성에 맞추어 활달하게 잘 설명해내면 얼마든지 즐겁다. 게다가 아동용이라고 해서 굳이 아동 전용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성장하며 과학을 배워나가는 방식은 초등학교에서 세상의 여러 현상을 소개받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그 현상들의 이면을 좀 더 깊게 파고들며, 대학교부터 그 중 특정한 분야에 고정해서 전공으로 삼는 방식이다. 얼마나 과학적 탐구라는 기본 틀이 잘 갖춰져 있는가, 설명한 과학 지식이 실제 지금껏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얼마나 근접한가가 관건일 따름이다.
지난 수년간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Why?』시리즈(여러 작가, 예림당)는 어린이용이지만 어린이 전용이 아닌 과학만화의 모범이다. 이 시리즈의 첫째 미덕은 세밀한 주제 분류에 있다. 수학, 물리 그런 식으로 학교 교과목 마냥 듬성듬성 분류한 것이 아니라, 각 권이 ‘언어와 문자’, ‘궁궐 이야기’, ‘인쇄술’, ‘전통과학’ 등 궁금증을 가지고 파고들만한 현상 단위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를 연상시킬 정도로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여러 맥락을 설명한다. 나아가 중간 중간에 여러 개념들의 관계를 쉽게 정립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야기로서의 줄거리는 대부분 박사와 꼬마조수라는 틀을 활용하고 있지만, 박사 캐릭터의 권위적 색채를 거의 지워내서 주입식의 느낌도 최소화된다. 중・고등학생, 만약 자기 전공분야가 아니라면 대학생 이상에게도 다시금 해당 분야에 관한 과학지식의 기본 얼개를 다시 훑어보거나 속성으로 익혀둬야 할 때, 적잖이 적합하다.
극적인 재미가 아쉽다고 한다면 <퍼니퍼니 과학수사대>(구구스튜디오, 지학사) 같은 스토리 서사형 과학만화도 추천할만하다. 어린이탐정물의 틀을 지니고 있으면서, 사건의 수사에 과학적 탐구를 도입하여 과학적 원리들을 소개하는 기능을 합쳐 넣은 접근법이다. 즉 탐정물의 아기자기한 서스펜스와 함께, 과학만화 특유의 과학적 배움의 재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만화로 보는 독서평설>, <어린이 과학동아> 등 과학적 탐구, 논리적 사고를 소재로 하는 잡지들의 자매지에 이런 식의 시도들이 00년대 후반 들어서 적지 않게 시도되었고, 다수의 쭉정이도 있지만 일부는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거머쥐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잡지 지면의 상대적인 영향력 쇠퇴, 양질의 작품이 반드시 높은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닌 문화 산업 특유의 우연성 등으로 인하여 여러 작품들이 마이너한 인지도에 허덕이고 있다.
전문과학 지식이 담긴
앞서 말했듯 아동용 과학학습만화의 문제는 종종 아동전용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좀 더 고연령층들을 대상으로 더 본격적인 과학지식만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결코 쉽지 않다. 만화라는 형식에 대한 우선적 선호를 보이곤 하는 어린이들과 달리, 만화에 대한 편견을 사회로부터 주입당하며 성장한 많은 청소년 이상 어른들은 극적 재미 이외의 무언가를 만화에서 얻는 것을 종종 어색하게 생각해왔다. 그나마 시사상식이나 생활정보에서 조금씩 인식 변화가 있었지만, 더 본격적인 과학 분야로 들어가면 편견의 벽은 강고했다. 여기에는 실제로 고연령층 독자는 책에서 기대하는(실제로 필요로 하는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세부적 지식의 수준이 더 높다는 점도 기여한다. 더 ‘그럴듯한’ 전문지식과 정보량이 담긴 과학만화는 그러나 그 전문성만큼 수요층 역시 좁아지는 반면 제작을 하기 위한 품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대형성공작이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빛나는 사례들은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1~5』로 유명한 지식만화 전문 작가 래리 고닉이 해당분야 전문가의 개론을 만화로 풀어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학』시리즈(궁리)가 그 중 하나다. 한국어로 물리학, 통계학, 유전학 등이 출간되어 있는데, 이들 모두 복잡한 전문분야의 지식을 작가의 분신 캐릭터가 명쾌한 시각적 비유와 유머러스한 설명을 곁들여 풀어낸다. 단순히 교과서를 읊어내는 식이 아니라, 통계학에서 표집을 통한 모집단에 대한 통계적 추론의 오차범위 개념을 과녁과 화살에 의한 탄착군으로 비유하는 등 마치 명강사의 개론 강연을 듣는 느낌의 탁월한 설명력을 자랑한다. 나아가 이후 더 깊게 파고들 이들을 위한 문헌 추천도 잊지 않는다.
혹은 한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은 전문적 내용을 한꺼번에 훑고 싶다면 『하룻밤의 지식여행』(여러 작가, 김영사)도 훌륭한 선택이다. 예전에 ‘아이콘 총서’라는 제목으로 일부 출간된 바 있는 시리즈로,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극만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많은 설명문과 거친 삽화가 꼴라쥬 형식처럼 배치되어 해당 분야의 여러 키워드들을 최대한 많이 압축해서 제시하는 식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실 초심자가 입문하는 용도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 그 분야 혹은 인접분야를 아는 사람들이 핵심 개념들과 그 맥락을 간단히 참조하는 것에 더 유용해 보인다.
이 시리즈는 흥미로운 현상 위주로 분류되었던 『Why?』시리즈나 과학 기초과목의 틀에 가까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학』시리즈와 달리 때로는 매우 세부적인 분과학문, 때로는 주요 인물 혹은 화제의 키워드 등이 모두 채용된다. 그렇기에 ‘프렉탈 기하학’, ‘비트겐슈타인’, ‘사회학’, ‘카오스’, ‘상대성이론’, ‘진화심리학’ 등 여러 차원의 소재들이 골고루 존재한다.
학습용이 아니라도 괜찮아
사실 과학만화라고 해서 반드시 학습과 지식전달 자체를 중심에 놓아야 할 필요는 없다. 장르적 즐거움의 소재로서 과학적 탐구정신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결코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몇몇 작품들이 충분히 증명해준다. 그 중 하나인 『공상과학대전1~3』(야나기타 리카오, 대원CI)은 공상과학만화를 표방하면서 사실은 그냥 과학만화를 내놓는 재미있는 시도다. 이야기는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 악당, 로봇과 초인 등을 통해 지구를 지키려는 지구방위대의 싸움이라는 흔한 공상과학만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든 것이 지구의 실제물리법칙의 지배하에 놓여버리는 바람에 악당과 정의의 편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다. 정성들여 만들어낸 거대 괴수는 근력과 몸무게의 과학으로 인하여 서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거대 로봇이 마음껏 발사한 로켓펀치는 반동력으로 인해 정작 로봇 본체도 뒤로 날린다. 히어로가 거대하게 변신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단백질을 흡수해야 하고, 그나마도 신진대사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여러 시간 걸린다.
과학적 설명으로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며 독자들을 폭소하게 만드는 식이다. 단순히 공상과학만화의 허상을 과학적으로 밝힌다는 식의 모멸적 접근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공상과학물의 멋진소재들을 실현시켜보고자 물리법칙을 잔뜩 동원하는 모습, 즉 장르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혹은 그저 짧은 유머만화 연재에서도 과학만화를 실현할 수 있다. <xkcd>(랜덜 먼로, 국내미출간)는 작대기 형상의 낙서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단칸 또는 4칸 만화인데, 웹페이지 연재(http://xkcd.com)를 통해 이공계 성향의 독자들에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리즈다. 이 작품은 일상적 상황에 과학적 개념으로 대처하여 난감해지는 상황들을 자주 활용한다. “신데렐라에 아이겐백터가 있나?” “아니?” “그럼 왕자가 유리구두와 주인을 뭘로 맞춰본 거지?” 이런 식의 대화들이 넘친다. 대체로 매우 유머 넘치고, 종종 애잔한 내용까지도 등장하는 충실한 과학만화다.
과학이 그저 교과서 속의 낯설고 재미없는 무언가라고 느껴질 때, 공상과학물은 재미있지만 과학은 관심이 생기지 않을 때, 한 권의 잘 만들어진 과학만화를 펼쳐볼 것을 권한다. 만약 재미있다면, 왜 재미있는지 스스로 궁금해 하다가 아마 과학적 탐구심이 다시 지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