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잡이 길잡이 지금은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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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12:44 조회 5,798회 댓글 0건본문
이제 곧 초여름으로 달려갈 기세입니다. 책 읽기도 좋은 계절이지만 무엇보다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
음이 절로 드는 시간 아닌지요. 삶의 단조로움에서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분되
는 일입니다. 때론 고생을 자처하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여운과 흥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여행은 쉼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쉼은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와 일상에 충실할 때만 가치 있는 것이기에, 특별한 여행은 평범한 일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여행의 목적은 떠나는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동행이 있다고 해도,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며,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며 자신의 속마음과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인류는 역사 이래로 수
많은 여행을 통해 삶의 온전한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때론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여행은 언제나 인류의 삶에 커다란 자양분이었고, 때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분수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세계인혜초와 『왕오천축국전』
여행은 인류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처定處가 없었던 초기 인류들은
먹이와 잠자리를 위해 여행 아닌 여행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삶의 터전을 찾아 정착한 후 인
류는 영역 확장을 위한 여행을 거듭했고, 그 결과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순수한
모험심 혹은 종교적 열심이 만들어낸 여행도 있었습니다. 세계 3대 여행기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
문록』와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모험심이 만들어낸 여행기라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종교
적 열심이 만들어낸 여행기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 경덕왕 때 스님 혜초가 인도 5국 부근 여러 나라를 순례한 행적을 담은 여
행기입니다. 혜초는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아랍을 여행한 한반
도 최초의 세계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 둔황 막고굴에서 출토된 유물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왕오천축국전』이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파리 국립박물
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프랑스가 소장하고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 국내로 반환되었습니다. 『왕오천축국전』도 빠른 시
일 내에 반환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바닷길을 따라 인도에 도착했던 혜초의 행적을 따라 8
세기 인도와 중국 그리고 주변 여러 나라들의 풍습은 물론 그 땅에 터 잡고 살던 사람들의 삶이 궁
금하다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학고재)이 읽음직한 책입니다.
한권의 책이 주는 영향력 『동방견문록』
많은 분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어릴 적 보았던 만화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금
도 아동도서로 만들어지고 있고,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13~14세기 유럽은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
러도 될 정도로 폐쇄적인 사회였습니다. 다른 대륙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운 판에, 어떻
게 자신들보다 앞선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편견과 아집을 깬 것이 바
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입니다.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몽골과 중국, 티베트 등을 20여 년 동안 체험하고 돌
아와 쓴 동양의 문화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성서』 다음으로
『동방견문록』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물론 『동방견문록』의 진위 여부를 두
고 논란이 있긴 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구술하고 함께 수감되었던 작가 루스티첼로가 썼다는 사실
은 익히 알려졌으며, 심지어 마르코 폴로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초판본이 유실
된 상태에서 수많은 판본이 횡행하며 가감과 첨삭이 이뤄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르코 폴로가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동방견문록』이 당시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수많은 모험과 탐험이 이어지면서 세계 역사가 요동쳤다는 사실입니다.
한 권의 책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방견문록』인 셈입니다.
이븐바투타와 알하산알와잔, 세상을 품다
30년에 걸쳐 12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12만 킬로미터, 지금 생각하면 그리 긴 거리
는 아니지만 14세기, 그러니까 오로지 도보와 몇몇 짐승들의 도움을 간헐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
던 시절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거리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븐 바투타입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1325년 7월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를 시작으로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
시아, 중국 등 대륙과 대륙을 넘나든, 그리하여 1354년 고향 모로코로 다시 돌아와 기록한 장대한
여정의 기록입니다.
이븐 바투타는 여정을 기록함에 있어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을 더듬다 보면 중세의 종
교,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일별할 수 있습니다. 음식과 접대문화, 성性, 종교적 기적 체험, 의복 등의 일상이 조목조목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도 앞뒤가 맞지 않는 여
행 일정,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여행 경로, 표절 의혹 등으로 지금도 논란이 많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행이 주는 참된 의미, 즉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세밀하게 기록한 치열한 기록 정신입니다.
사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보다 제가 더 ‘좋아라’ 하는 책은 『책략가의 여행』입니다. 14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알하산 알와잔은 1518년 카이로에서 근거지 파스로 돌아가는
도중 지중해상에서 에스파냐의 기독교 해적에게 붙잡힙니다. 대략 10년 동안 자신이 살았던 세계
와는 다른 이질적 환경이었지만, 그는 숱한 여정을 통해 삶으로 굵직한 족적을 남깁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쳐진 알와잔은 『성서』 중 일부인 「바울서신」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등 다양한 학문
활동을 벌이고, 이슬람 신앙에 관한 유럽인들의 시각 형성에 큰 공헌을 합니다.
『책략가의 여행』의 저자인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 전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 “침묵과 모순, 미스터리”라는 고도의 문화적 생존 전략을 추구하며 두 세력 모두에게 긍정
적 영향을 준 알와잔을 “책략가”라고 규정합니다. 종교적 신념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것도 남다른
선택이지만, 비록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으나, 적대적인 관계인 두 종교의 공존을 위해 애쓴 것도 탁
월한 선택인 것입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알하산 알와잔이 주인공인 『책략가의 여행』을 읽
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에 대한 충분한 역사적 이해와 오늘의 시사점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
는 이점도 있습니다.
조선변혁의 시작점 『열하일기』
지금은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중국을 여행하기 위해 과거 사람들은 몇 달, 몇 년을 소요하
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여행기로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
인지요. 바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이르는 말입니다. 1780년, 40대 중반의 나이를 통과하고
있었지만 연암은 부와 명예도 없는 일개 서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때 넓디넓
은 중원을 여행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만수
절 사절단으로 가게 되었는데 자제군관, 즉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당대의 사
회질서와 지배계급이 가진 편견과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 사회의 변
화와 그 지향점을, 알듯 모를 듯한 반어와 유머를 통해 형상화했습니다.
장장 6개월, 중원의 여정을 담은 『열하일기』는 패관소품, 즉 명말청초에 유행했던 표현과 형식이
자유로운 문장으로 사용해 쓰여졌습니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 성리학의 대척점에 서있었던 양
명학자나 고증학자들의 주로 사용했던 패관소품류가 박지원 등 선구적 실학자들에 의해 조선에도
유행하게 되자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킵니다. 성리학적 사고에 반기를 든 패관소품을 혹세무민하
는 불온한 사조로 여긴 까닭입니다.
개혁 군주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켰다? 의아해하실 분들도 있을 테지만, 아무리 개혁 군주라 해
도 정조 역시 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왕이었고, 패관소품류는 조선의 지배사상인 성리학의 전통에
반하는 사조였던 것입니다. 정조의 통치철학과 당시 시대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열하일기』와
더불어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을 함께 읽으시길 권해 드립니다.
괴테와 빌브라이슨의 한판승부?
여행에 관한 책 중에 제가 마음을 빼앗긴 또 하나의 책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입
니다. 1774년 비극적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괴테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아 성찰
과 예술적 탐구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괴테는 그 돌파구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온갖
의무와 사랑의 고통을 잊고 안식을 찾고자 했습니다. 마침 18세기는 유럽에서 여행이 붐을 이루었
고, 괴테는 어려서부터 이탈리아를 동경했습니다.
괴테는 자연과 인간사회, 예술을 기본 테마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그만의 독특한 사상과 철학
을 완성합니다. 이 시기 괴테는 1810년 무렵 펴낸 『색체론』에 대한 기본 구상을 마치게 되는데, 『색
체론』을 통해 근대 과학의 결정론적,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자연과학론을 주장합니
다. 근대를 살며 근대를 넘어서는 생각을 했던 괴테의 주장은 이후 150년 넘게 논란의 중심에 서있
었답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기행』은, 비록 괴테의 이탈리아에서의 2년여 행적을 담고 있지만
괴테의 온전한 사유의 산물이자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책은 생뚱맞게도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입니다. 1년 10개월의 이탈리아 여행이 괴테에게 위대한 예술혼과 창조적인 자연관을 터득하게 했
다면, 빌 브라이슨은 3,360킬로미터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산길에서 우정과 대자연의 일치를 경험합
니다. 대문호 괴테와 재기발랄한 작가 빌 브라이슨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요. 감히 오독
도 책 읽는 즐거움의 하나라는 말로 항변을 대신해 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못지않게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 주는 감동이 커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또 하나, 이 땅을 여행하며 예술적 감동을 더불어 만나보기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기필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서점가에 문화유산 답사를 위한 지침서들이 나오
고 있지만, 문화유산 답사기의 효시이면서, 여전히 그만한 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문
화유산 답사기』는 필독의 가치가 있습니다.
거저 왔다 거저 가는 순례자이자 나그네 인생이 우리네 삶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여행이고, 그 여행
은 우리를 날마다 성숙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 곁에 한 권의 책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
일까요. 여행과 관련한 고전은 무궁무진합니다. 세상 모든 책은 미지의 세계를 안내하는 여행 안내
서이기 때문입니다.
음이 절로 드는 시간 아닌지요. 삶의 단조로움에서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분되
는 일입니다. 때론 고생을 자처하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여운과 흥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여행은 쉼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쉼은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와 일상에 충실할 때만 가치 있는 것이기에, 특별한 여행은 평범한 일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여행의 목적은 떠나는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동행이 있다고 해도,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며,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며 자신의 속마음과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인류는 역사 이래로 수
많은 여행을 통해 삶의 온전한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때론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여행은 언제나 인류의 삶에 커다란 자양분이었고, 때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분수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최초의 세계인혜초와 『왕오천축국전』
여행은 인류가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처定處가 없었던 초기 인류들은
먹이와 잠자리를 위해 여행 아닌 여행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삶의 터전을 찾아 정착한 후 인
류는 영역 확장을 위한 여행을 거듭했고, 그 결과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순수한
모험심 혹은 종교적 열심이 만들어낸 여행도 있었습니다. 세계 3대 여행기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
문록』와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모험심이 만들어낸 여행기라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종교
적 열심이 만들어낸 여행기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은 신라 경덕왕 때 스님 혜초가 인도 5국 부근 여러 나라를 순례한 행적을 담은 여
행기입니다. 혜초는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아랍을 여행한 한반
도 최초의 세계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 둔황 막고굴에서 출토된 유물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왕오천축국전』이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파리 국립박물
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프랑스가 소장하고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 국내로 반환되었습니다. 『왕오천축국전』도 빠른 시
일 내에 반환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바닷길을 따라 인도에 도착했던 혜초의 행적을 따라 8
세기 인도와 중국 그리고 주변 여러 나라들의 풍습은 물론 그 땅에 터 잡고 살던 사람들의 삶이 궁
금하다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학고재)이 읽음직한 책입니다.
한권의 책이 주는 영향력 『동방견문록』
많은 분들에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어릴 적 보았던 만화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금
도 아동도서로 만들어지고 있고,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13~14세기 유럽은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
러도 될 정도로 폐쇄적인 사회였습니다. 다른 대륙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운 판에, 어떻
게 자신들보다 앞선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편견과 아집을 깬 것이 바
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입니다.
이탈리아 상인의 아들이었던 마르코 폴로가 몽골과 중국, 티베트 등을 20여 년 동안 체험하고 돌
아와 쓴 동양의 문화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성서』 다음으로
『동방견문록』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물론 『동방견문록』의 진위 여부를 두
고 논란이 있긴 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구술하고 함께 수감되었던 작가 루스티첼로가 썼다는 사실
은 익히 알려졌으며, 심지어 마르코 폴로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초판본이 유실
된 상태에서 수많은 판본이 횡행하며 가감과 첨삭이 이뤄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르코 폴로가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동방견문록』이 당시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수많은 모험과 탐험이 이어지면서 세계 역사가 요동쳤다는 사실입니다.
한 권의 책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방견문록』인 셈입니다.
이븐바투타와 알하산알와잔, 세상을 품다
30년에 걸쳐 12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12만 킬로미터, 지금 생각하면 그리 긴 거리
는 아니지만 14세기, 그러니까 오로지 도보와 몇몇 짐승들의 도움을 간헐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
던 시절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거리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븐 바투타입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1325년 7월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를 시작으로 인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
시아, 중국 등 대륙과 대륙을 넘나든, 그리하여 1354년 고향 모로코로 다시 돌아와 기록한 장대한
여정의 기록입니다.
이븐 바투타는 여정을 기록함에 있어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을 더듬다 보면 중세의 종
교,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일별할 수 있습니다. 음식과 접대문화, 성性, 종교적 기적 체험, 의복 등의 일상이 조목조목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도 앞뒤가 맞지 않는 여
행 일정,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여행 경로, 표절 의혹 등으로 지금도 논란이 많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행이 주는 참된 의미, 즉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세밀하게 기록한 치열한 기록 정신입니다.
사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보다 제가 더 ‘좋아라’ 하는 책은 『책략가의 여행』입니다. 1480년대
후반에 태어나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알하산 알와잔은 1518년 카이로에서 근거지 파스로 돌아가는
도중 지중해상에서 에스파냐의 기독교 해적에게 붙잡힙니다. 대략 10년 동안 자신이 살았던 세계
와는 다른 이질적 환경이었지만, 그는 숱한 여정을 통해 삶으로 굵직한 족적을 남깁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쳐진 알와잔은 『성서』 중 일부인 「바울서신」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등 다양한 학문
활동을 벌이고, 이슬람 신앙에 관한 유럽인들의 시각 형성에 큰 공헌을 합니다.
『책략가의 여행』의 저자인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 전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서 “침묵과 모순, 미스터리”라는 고도의 문화적 생존 전략을 추구하며 두 세력 모두에게 긍정
적 영향을 준 알와잔을 “책략가”라고 규정합니다. 종교적 신념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것도 남다른
선택이지만, 비록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으나, 적대적인 관계인 두 종교의 공존을 위해 애쓴 것도 탁
월한 선택인 것입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와 알하산 알와잔이 주인공인 『책략가의 여행』을 읽
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에 대한 충분한 역사적 이해와 오늘의 시사점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
는 이점도 있습니다.
조선변혁의 시작점 『열하일기』
지금은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중국을 여행하기 위해 과거 사람들은 몇 달, 몇 년을 소요하
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한 여행기로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
인지요. 바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이르는 말입니다. 1780년, 40대 중반의 나이를 통과하고
있었지만 연암은 부와 명예도 없는 일개 서생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때 넓디넓
은 중원을 여행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70세 생일을 축하하는 만수
절 사절단으로 가게 되었는데 자제군관, 즉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당대의 사
회질서와 지배계급이 가진 편견과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 사회의 변
화와 그 지향점을, 알듯 모를 듯한 반어와 유머를 통해 형상화했습니다.
장장 6개월, 중원의 여정을 담은 『열하일기』는 패관소품, 즉 명말청초에 유행했던 표현과 형식이
자유로운 문장으로 사용해 쓰여졌습니다.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 성리학의 대척점에 서있었던 양
명학자나 고증학자들의 주로 사용했던 패관소품류가 박지원 등 선구적 실학자들에 의해 조선에도
유행하게 되자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킵니다. 성리학적 사고에 반기를 든 패관소품을 혹세무민하
는 불온한 사조로 여긴 까닭입니다.
개혁 군주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켰다? 의아해하실 분들도 있을 테지만, 아무리 개혁 군주라 해
도 정조 역시 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왕이었고, 패관소품류는 조선의 지배사상인 성리학의 전통에
반하는 사조였던 것입니다. 정조의 통치철학과 당시 시대상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열하일기』와
더불어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을 함께 읽으시길 권해 드립니다.
괴테와 빌브라이슨의 한판승부?
여행에 관한 책 중에 제가 마음을 빼앗긴 또 하나의 책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입
니다. 1774년 비극적인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괴테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아 성찰
과 예술적 탐구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괴테는 그 돌파구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온갖
의무와 사랑의 고통을 잊고 안식을 찾고자 했습니다. 마침 18세기는 유럽에서 여행이 붐을 이루었
고, 괴테는 어려서부터 이탈리아를 동경했습니다.
괴테는 자연과 인간사회, 예술을 기본 테마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그만의 독특한 사상과 철학
을 완성합니다. 이 시기 괴테는 1810년 무렵 펴낸 『색체론』에 대한 기본 구상을 마치게 되는데, 『색
체론』을 통해 근대 과학의 결정론적,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자연과학론을 주장합니
다. 근대를 살며 근대를 넘어서는 생각을 했던 괴테의 주장은 이후 150년 넘게 논란의 중심에 서있
었답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기행』은, 비록 괴테의 이탈리아에서의 2년여 행적을 담고 있지만
괴테의 온전한 사유의 산물이자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책은 생뚱맞게도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입니다. 1년 10개월의 이탈리아 여행이 괴테에게 위대한 예술혼과 창조적인 자연관을 터득하게 했
다면, 빌 브라이슨은 3,360킬로미터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산길에서 우정과 대자연의 일치를 경험합
니다. 대문호 괴테와 재기발랄한 작가 빌 브라이슨을 연결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요. 감히 오독
도 책 읽는 즐거움의 하나라는 말로 항변을 대신해 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못지않게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 주는 감동이 커 보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또 하나, 이 땅을 여행하며 예술적 감동을 더불어 만나보기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기필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서점가에 문화유산 답사를 위한 지침서들이 나오
고 있지만, 문화유산 답사기의 효시이면서, 여전히 그만한 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문
화유산 답사기』는 필독의 가치가 있습니다.
거저 왔다 거저 가는 순례자이자 나그네 인생이 우리네 삶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여행이고, 그 여행
은 우리를 날마다 성숙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 곁에 한 권의 책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
일까요. 여행과 관련한 고전은 무궁무진합니다. 세상 모든 책은 미지의 세계를 안내하는 여행 안내
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