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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7. 좋을 호(好) 자 만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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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7:04 조회 8,4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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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로 뜰에 나온 춘향은 몽룡을 보자 황당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것다. 춘향이 미처 뭐라
말을 건넬 틈도 없이 몽룡은 마치 제 집이나 되듯이 섬돌을 성큼 걸어 올라 춘향의 방으로 갔으
니. 함께 서 있던 방자조차 짐작 못한 일이렷다.
“어, 어, 허! 저, 저, 저기, 되련님! 이라면 겁나게 거시기하지라. 아무리 급해도 넘의 집인디, 방
주인이 들어오라하믄 그때 들어가야 예의 갖춘 양반의 도리이지라.”

“이런 날이 오기를 한양 살 때부터 내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금 예의 갖출 새가 어디 있느냐?
방 주인이 나온 곳이 내 들어갈 곳 아니더냐.”
“그래유? 허, 그라고 본께 오는 새에 공부한 것들 지대로 알아묵었구만! 잠깐 사이에 우리 되
련님 많이 컸어! 허, 이쪽으론 배움이 참 빠르다니께! 인자 혼자서도 잘허네. 지 들어갈 구녘도 바
로 알아서 잘 찾아가고 말이여!”
춘향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몽룡을 따라 자기 방으로 들어갔것다. 월매는 경황없이 닥친 일
이라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 몽룡의 거동을 바라만 볼 뿐이구나.

몽룡은 춘향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경상이 놓인 방 가운데에 다리를 틀고 앉았것다. 춘향이
뒤따라 들어가 급히 보던 책을 덮은 뒤 상 위에 놓인 다른 책 위에 얹어 경상을 한쪽으로 치우고
다소곳이 앉아 눈을 내리깔았으니, 그 모습 바로 선녀의 자태로다.
“춘향아, 고개 좀 들어보아라. 공자님 말씀 하시기를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즐거운 일이
라고 하셨다. 우리 우정이 밤길을 나서게 만들더구나.”

몽룡은 제 입으로 춘향이에게 벗이라 하며 너스레를 떨었것다. 그럼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춘향은 만복사에서 볼 때와는 달리 몹시 부끄러워하며 되레 뒤로 몸을 더 빼는구나. 몽룡은 그런
춘향이 더욱 사랑스럽기만하여 몸이 달아오른다. 춘향은 세상에 태어나 한 방에 남자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기는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판이다. 임의로운 사이였던 방자하고도 한 방
에 있지는 않았다. 더구나 방자한테선 남자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엉거주춤이다. 엉뚱
하게도 이런 때를 나타내기 위해 엉거주춤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거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몽룡이 어색한 순간을 견디느라 춘향이 보던 책들을 뒤적거려 본다. 얼핏 보니 경서 책들 사
이에 『금병매』도 끼어 있다. 몽룡이 『금병매』를 집어 들어 춘향에게 말을 걸어 보는데.

“『금병매』라, 이거 얘기 책 아니던가? 이런 책도 보는구나?”
춘향이 부끄러워하며 나직이 대답한다.
“경서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들어 있어서…….”

“경서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면 아주 대단한 것이겠구나.”
“그게…….”
“나도 한번 읽어 보고 싶구나.”

“도련님은 성현들의 경서만 열심히 읽으셔야 합니다. 이런 책은 저 같은 아녀자들이나…….”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욱 궁금해지는구나. 대체 이 책 내용이 무엇이냐?”
“글쎄, 그게 말하기가 쪼깐 거시기 한디요…….”
“허허, 내 모르는 건 네가 일러주고, 네 모르는 건 내가 일러주어야 벗을 넘어 일심동체가 되지
않겠냐. 그래야 부부도 될 수 있을 테고. 그러지 않겠느냐?”

“부부라뇨?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부부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그리고 그런 책은
과거엔 나오지 않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니까 도련님 같은 분은 굳이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할수록 더 보고 싶구나! 그 책 나 좀 빌려다오.”
몽룡이 『금병매』를 따로 챙기자 금방까지 다소곳이 있던 춘향이 얼른 손을 뻗어 책을 뺏는다.
춘향이 당황스러워하는 몽룡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책 내용을 정말 몰라서 그러십니까?”
“책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실물은 처음 보느니라. 무슨 책이냐?”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것이라 내놓고 말을 달기가 몹시 거시기한 책입니다…….”
“방자 왈, 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 그러던데, 귀신도 모르는 거시기한 책을 보았단 말이지?
그렇다면 더 잘되었구나. 우리 같은 청춘 남녀가 귀신도 모르게 알아야 할 게 바로 서로 같이 기
뻐하는 남녀상열 아니겠느냐? 아무튼 남녀상열지사라 하면 그 옛날 고려 왕조 때 「쌍화점」이나
「서경별곡」 따위의 노래가 유명했다는데 지금은 금지곡 아니더냐? 그런데 『금병매』가 그런 내
용을 담고 있는 책이란 말이지?”

“남녀상열지사이긴 해도 그런 노래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가 훨씬 길고 우리나라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내가 네 덕분에 좋은 책을 하나 더 알게 되어 고맙구나. 예로부터 책을 읽는 까닭은 책
의 내용을 본받아 구체적으로 실행을 해보자는 것이니라. 마침 오늘 우리가 만났으니 네가 읽은
책을 바탕으로 남자인 몽룡과 여자인 춘향이 서로 어울려 기쁜 열자로 마구마구 열나게 상열해
보자꾸나!”

몽룡은 방자한테 들은 대로 기회 보아 혀를 써서 진도를 빼고 마침내 나머지 몸을 써 보고 싶
어 안달이 났것다. 춘향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로다.
마침 밖에서 문고리 기척이 나더니 월매가 들어오는데, 꽤나 긴장한 거동이렷다.
“아까는 몰라보고 이 늙은 년이 귀하신 도련님께 주둥아리 함부로 놀렸습니다. 모르고 그런
것인께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지요.”
“그런 땐 그렇게 거침없이 시원하게 말하는 것이 나는 훨씬 더 좋소!”

월매는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고 곰방담뱃대와 재떨이를 몽룡이 앞으로 내밀었것다.
“나 아직 담배는 태우지 않소. 이것 대신 술상이나 봐주시오.”
“내 보매 사또 자제 정도 되믄 어미 뱃속에서부터 담배를 배워가지고 나오길래 도련님도 그
런 줄 알고……. 술상이야 당연히 보고 있습니다요. 귀하신 도련님께서 반백 넘게 다 늙은 저를
찾아주셔 고맙습니다.”

“내가 아무러면 장모를 찾아왔겠소? 춘향이를 찾아왔지.”
“오메, 뭔 말이라요? 내가 장모라고라?”
“허, 내가 오늘밤에 춘향이와 한몸 한마음이 되어 백년가약을 맺으면 장모가 되는 것 아니
겠소?”
“도련님! 당최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내 이제 늙은 호박꽃이라 벌 나비가 아니 찾은 지 오래여
서 도련님의 상대는 되지 않겄지만, 그렇다고 춘향이가 옛날 이 에미처럼 기적에 들어 있는 건
아닙니다.”

“내 이미 다 알고 있소. 그래서 백년가약을 맺으려 하는 것이오. 한양에서 춘향이 명성을 이
미 들은 터에 광한루에서 먼발치로 잠깐 보고 만복사에서 또 잠깐 만났는데 역시 명불허전이
라! 첫눈에 바로 춘향에게 끌려 내 배필로 정하였소. 그래서 오늘은 직녀를 찾은 견우가 되어
춘향이랑 평생을 함께할 인연을 맺을 터이니 그리 아소.”
월매, 기가 막혀 가슴이 내려앉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산전수전 다 겪은 월매인데 순순히
물러나겠는가.

“도련님!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런 말씀이랑 당최 허들 마시지요. 도련님은 사또 자제로 누
구 못지않게 귀한 몸이시라 앞날이 구만 리입니다. 춘향이는 비록 성 참판 대감의 골즙을 받아
낳은 딸이지만 보시다시피 저랑 이처럼 끈 떨어진 연맨치로 사는 처지라 분수를 알아야 합니
다. 딸년 두고 말하기는 거시기 하지만 내 딸이야 누구하고 대보아도 꿇릴 건 없소이다만, 세상
이치가 우리 같은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니, 그저 잠깐 놀다만 가시지요. 춘향이와 백년가
약 어쩌구저쩌구 하신 말씀은 안 들은 걸로 하겄습니다.”

월매는 말을 폭포수 쏟듯이 하고 나니 제 설움에 눈물이 나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낸다.
그렇다고 어렵게 나비가 되어 꽃을 찾은 몽룡이 쉽게 물러나겠는가.
“장모야말로 그런 소리 당최 하지 마시오. 나도 혼인 전 총각이고 춘향이도 혼인 전 처녀이
니 둘이 서로 굳게 언약을 하면 바로 부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아무러하면 양반집 아들
인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겠소?”

“아이고 도련님, 도련님이 양반집 자제가 아니믄 젊은 처녀 총각 하룻밤 정으로 가시버시
된들 뭐가 걱정이겄소? 내 겪어 보니 양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때로 한 냥반도 되고 두 냥반도
되게 허세 부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홑 반 냥도 안 되게 뒤집어버리는 사람들입디다. 기왕
오셨으니 술이나 한잔 드시고 돌아가십시오. 귀하고 귀한 우리 딸 춘향이 신세 망치지 마시고
요! 부모님 아시면 큰일 납니다. 양반 도리 어기고 천한 집 춘향이와 인연 맺으면 나중에 도련님
앞길에 먹구름이 덮일지도 모릅니다.”

“장모, 그런 소리 하면 내 많이 섭섭하오. 나도 양반 자식이긴 하되 장모가 겪어 본 그런 양반
아니오. 그리고 『경국대전』을 볼작시면 남자는 십오 세에 여자는 십사 세에 혼인을 할 수 있다고
새겨 있소. 나나 춘향이나 둘 다 이미 혼인할 나이가 지났소.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백년가약을 맺
을 것이오. 그리고 내가 좋아서 시작한 사랑에 먹구름이 끼면 얼마나 끼겠소. 그러니 장모부터 허
락해주시오.”

“시방 혼인할 나이가 안 차서 그런 것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도련님과 춘향이의 지체
가 다른 것입니다요.”
“젊은 청춘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지, 그깟 지체가 사랑하는 데에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러시오?”

“아직 도련님이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만, 도련님도 곧 후회하시게 됩니
다. 그리 되믄 우리 춘향이만 불쌍해집니다. 그러니 더 이상 딴마음 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춘향
이 젖만 띠면 데려가겄다고 한 양반 믿었다가 우리 모녀 이날 이때까지 기 한번 못 피고 요 모양
요 꼴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습니다요.”
“내 참, 나비가 꽃을 찾고 기러기가 물을 찾아 헤매다 가까스로 내려앉을 자리를 찾았는데 무
슨 말씀을 그렇게 모질게 하시는가?”

“봄 나비 여름 나비 할 것 없이 꽃 지믄 날아가 버리고, 가을 기러기 겨울 기러기 할 것 없이 물
마르믄 다시 날아오지 않습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뭇가지에 아침저녁으로 날아오던 새도
나무에 열매 떨어지면 날아간 뒤 다시 찾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 지발 혼사 얘기는 거두어
주십시오.”
월매는 숫제 울음을 운다. 그동안 아비 없이 퇴기의 몸으로 춘향이를 이만큼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고.

춘향이 제 어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지라 설운 어미를 달래본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시고 건너가 쉬셔요. 도련님이 일시 춘정을 못 이기셔서 이렇게 오셨으
니 오늘은 제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바로 그때 향단이 방자와 함께 술상을 마주 들고 들어오는구나. 몽룡은 술을 따라 월매에게
먼저 인삿술이라며 한 잔을 권한 뒤 춘향에게도 한 잔을 따라 준다. 월매는 술잔을 받아 들긴 했
지만 마음이 여러 갈래라 도시 술맛을 알 수 없었것다.

몽룡은 그저 좋아 춘향에게 혼례 치를 때 마시는 교뱃술이라며 권하고 방자에게 중매 술이라
고 권하며 자신도 한 잔 두 잔 마셔댔것다. 본디 술을 마시지 않는 향단이만 맨정신이고 다들 취
해가는데, 뜨락의 밤 벌레 소리 잦아들며 밤도 같이 깊어가는구나.
마침내 몽룡과 춘향이만 남고 다들 방에서 물러갔것다. 월매는 기대 반 근심 반으로 안방으로
들어가고 향단이는 방자를 따라 문턱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니.



몽룡은 춘향이와 둘이만 남자 사랑의 기쁨에 겨워 춘향이를 안아보고 업어보고 만져보고 핥
아보고 하는데,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으렷다. 춘향은 그때까지 흔들리는 촛불 아래 다소곳하니
앉아 몽룡이 하는 양을 두고만 볼 뿐 도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춘향아, 이제야말로 고개를 들어라.”
춘향이 마지못해 고개를 살짝 든다. 몽룡이 품속에서 춘향의 얼굴 그림을 꺼내 춘향이 코앞에
들이밀었것다.
“춘향아, 이게 누구 같으냐?”
“글쎄 누굴까요? 어느 화첩을 보고 그린 얼굴인지요?”
“화첩을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럼 실제 얼굴을 그렸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도련님이 그림도 그리셔유?”
“특별한 때에만!”
“그럼 일러주세요. 누굴 보고 이 그림을 그린 것인지.”
“허허? 네 얼굴을 네가 못 알아본단 말이냐?”

“예? 이 얼굴이 나라고라? 나는 이렇게 안 예쁜디……. 너무 예쁘게 그려져서 나를 닮지 않았
어요.”
춘향이 놀라 자빠지는 시늉을 하자 몽룡은 자신이 그린 그림과 춘향 얼굴을 번갈아 보아 가며
품평을 하기 시작하였것다.
“천하의 미인 초선을 본 달이 부끄러워 바로 보지 못하고 제 얼굴을 가렸다는데, 아무러하면
초선이 춘향이 너보다 더 예뻤을까?”

춘향이 얼굴이 화끈거린다.
“놀리지 마세유.”
춘향이 뭐라 하든 몽룡은 정색을 하고 또 품평을 한다.
“천하의 미인 서시를 본 물고기가 헤엄치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까먹었다는데, 서시
도 춘향이 너를 못 따라올 것이다.”

춘향이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끄러워유.”
몽룡은 이제 청산유수다.
“천하의 미인 왕소군을 본 기러기가 날갯짓하는 것도 그만 잊어먹고 땅으로 떨어졌다는데,
왕소군도 춘향이 네 앞에서는 울고 갔을 것이다.”
춘향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만 허셔유.”

하지만 몽룡은 끝까지 진지할 뿐이렷다.
“천하의 미인 양귀비를 본 꽃이 차마 바로 쳐다볼 수 없어 부끄러움에 잎을 말아 올렸다는데, 양
귀비도 춘향이 너를 봤으면 몸 숨길 곳을 찾았을 것이다.”
말을 마친 몽룡이 춘향의 치맛자락을 들치며 고개를 집어넣으려 한다.
“아이 참. 도련님도 망칙스럽게시리…….”

“이것이 뭐가 망칙하다고 그러느냐? 옛 성현들도 다 이렇게 놀았고, 너희 어머니도 이렇게 해
서 너를 잉태했을 것이다. 내 이 그림을 그린 까닭은 네 얼굴 옆에 내 마음을 적어 정표로 주고 싶
어서 그런 것이다.”
몽룡은 춘향이 얼굴 그림 옆 여백에 일필휘지로 ‘봄내 나는 향기에 끌려 꿈속부터 용을 타고
왔노라’라고 갈겨쓴 뒤 몽룡 이름자도 뚜렷하게 적은 뒤 수결까지 질렀것다. 춘향이 감격하여 가
슴이 다 벌떡거린다.

“춘향아,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느냐?”
춘향이 몽룡의 뜬금없는 물음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내 읽은 경서엔 사랑이 뭔지 도대체 안 나온다. 네 읽은 『금병매』에는 사랑이 뭔지 나왔을 것
아니냐. 한번 일러 보거라.”

춘향이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이런 땐 그저 묵묵부답이 최고의 대답이리라. 그러자 몽룡이
다시 나서는데.
“네가 말하기가 몹시 쑥스러운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사랑이 뭔지 공부한 대로 일러보마.”
몽룡은 다리를 고쳐 앉은 뒤 노래를 불러 본다.

사랑사랑 내사랑아
어화둥둥 내사랑아
어린너는 여자되고
어린나는 남자됐네
너는나서 계집녀자
나는나서 아들자자
계집녀에 아들자가
찰떡처럼 붙고보니
좋을호자 아니겠냐
사랑사랑 내사랑아
어화둥둥 내사랑아
오늘저녁 우리둘이
좋을호자 만든다네
이리오렴 춘향이야
내가갈까 춘향이야
어서어서 불도끄고
좋을호자 만들어서
백년사랑 천년사랑
만리장성 쌓아보자

“춘향아, 어떻느냐? 인제 사랑이 뭔지 조금 손에 잡히느냐? 하늘은 높디높고 땅은 가없이 길다.
사내 대장부 마음도 높디높고 끝없이 길단다. 바닷물이 다 말라 소금꽃이 피고 갈대 흔들던 바람 삼
천코 그물에 다 걸릴 때까지 몽룡은 춘향을 사랑할지어다. 춘향아, 이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느냐?”

춘향은 몽룡의 다짐에 가슴이 더 벌떡거리고 이젠 턱마저 덜덜 떨린다. 춘향이 달리 할 말도
없고 손도 무색하여 몽룡이 그린 그림을 고이 접어 윗목에 밀쳐 놓았다. 조용히 움직이는 몸짓 손
길 하나 기품이 묻어났다. 그런 춘향을 몽룡이 가만두고 보기만 하겠는가. 마침내 몽룡은 자기 말
마따나 아들 자(子)와 계집 녀(女)가 서로 얽히어 좋을 호(好) 자를 만들기 위해 촛불을 훅 불어
끄고 춘향을 아랫목 요 위로 끌고 갔것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자칭 형님인 방자의 훈수에 따라 단도직입을 하려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만. 몽룡이 옷을 훌훌 벗고 좋을 호자 만들 채비를 했지만 세상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겠더라. 춘향이 껍질도 어찌 벗겨보아야 할 것인데 머리털 생기고 나서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여자들 옷고름조차 어찌 푸는 걸 모르니 그간 어디로 나이를 먹었는지 스스로가 한
심스럽기만 할 뿐이렷다.

무릇 책이라 하면 이런 구체적인 것들이 적혀 있어야 할 것인데 아침저녁으로 밥 먹듯이 읽고
있는 공맹의 책엔 좋을 호 자 짓는 법이 어느 한구석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몽룡이 수작이란 게 흡사 늙은 호랑이가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이리
까불고 저리 되착이는 수준이고나.

마침내 둘은 어찌어찌하여, 위로 벗었는지 아래로 벗었는지 모르지만, 몸을 싸고 있는 껍질은
죄다 벗겨내고서 일단 한 겹 홑이불 속으로 뛰어들어 갔것다.
이젠 몽룡이 방자한테 들은 대로 혓바닥을 말하는 데 쓰지 않고 다른 데에 한번 써볼 차례이
렷다. 근데 그것도 어찌 써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막연히 생각했을
뿐인데 실전에 드니 난감하기 짝이 없구나.

몽룡은 춘향이 『금병매』를 읽었기에 어쩌면 자신보다 이런 일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춘향이를 믿어보자 생각했다. 아니면 방자한테 춘향이도 실습을 받았는지도 모를 일 아닌
가. 그러나 그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방자는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춘향이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몽룡은 그 짧은 순간에도 자기 좋을 대로 결론을 맺었것다. 마냥 그런 생각만 길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자신이 모르는 지난 일이 지금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춘향이가
이 상황을 잘 이끌어나가 주었으면 하는 심정이기도 했것다. 그래도 음양의 도리는 하늘이 사람에
게 안겨준 최고의 선물이라 몽룡은 걱정과는 달리 이불 속 공사를 제법 그럴싸하게 시작했으니.

평평하던 홑이불 아래로 사람이 둘이나 들어갔으니 방바닥에 갑자기 하얀 바위 덩이가 솟아오
른 것 같다. 어쩌면 둥근 무덤 같기도 하렷다. 몽룡은 이런저런 생각없이 그저 손길 가는 대로 혀가
미끄러지는 대로 홑이불 아래서 헤엄쳐 다녔것다. 춘향이 몸도 처음엔 굳어 있는 성싶더니 역시 뜨
거운 피가 흐르는 몸둥이인지라 금세 노골노골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조홧속이렷다.
그래서 먼저 춘향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는데.

“아이참, 거긴==============안, 돼유, 안, 돼유-----돼유--------간지럽단께유ㅋ
ㅋㅋ***************************히잉·························
·············헉!!!!!!!!!!!!!!!!!!!!!!!!!!!!!!!!! 나 몰라잉++++++++++++++
향단아, 어디 갔어????????????????????? 나 물 좀 아잉^^^^^^^^^^^^^^^^^^^^^^^^^^^^으짤라고
~~~~~~~~~~~~~~~~~~~~~~~~~.”
춘향이 내는 소리 차츰 마굿간 말의 말을 닮아 간다.

이어 몽룡이 내는 소리를 들을 차례로다.
“어휴, 이런 게=============== 숨어 있었어--------------- 엥, 똥
집 한번 장허다!!!!!!!!!!!!!!!!!!!!!!!!!!!!!!!!ㅎㅎㅎ****************************으
응························· 방자야?????????????????????어
떻게 넘는다고? 악++++++++++++++++++++어이쿠^^^^^^^^^^^^^^^^^^^^^^^^^^^^^^^^^모르긴
~~~~~~~~~ 되는대로 그냥~~~~~~~~~~~~~~~~~·.”

몽룡은 점점 단단해지는 살송곳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방자를 찾다가 제풀에 꺾인다. 춘향이
도 『금병매』를 읽었다지만 민망스럽고 망칙한 대목은 늘 건너뛰었던 바람에 사랑을 제대로 하는
지 어쩐지 모르긴 마찬가지렷다. 둘은 채 일합을 겨루기도 전에 땀만 범벅으로 온몸이 나른하다.
그렇지만 아직 초저녁이다. 둘은 심기일전하여 다시 합을 겨루기 위해 몸을 풀었것다. 처음보
단 훨씬 더 여유가 생기고 서로의 몸에서 솟은 곳 가라앉은 곳도 손에 잡히고 몸뚱이는 다시 뜨거
워진다.

몽룡은 조물주가 사람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춘향아, 나는 이제 죽어도 좋다. 방자 왈 아침에 살 섞고 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했는
데, 이제야 그 말이 실감 나는구나!”
몽룡은 이제 공자 왈인지 방자 왈인지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자 가라사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몽룡은 그 말을 방자 투로 바꾸어 제멋대
로 써먹고 있는 것이렷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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