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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교사의 시]우산이 좁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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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7 20:20 조회 7,32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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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내가
오른쪽엔 네가 나란히 걸으며
비바람 내리치는 길을
좁은 우산 하나로 버티며 갈 때
그 길 끝에서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면
길이 좀 멀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내 왼쪽 어깨가 더 젖었어도 좋았을 걸 하면서
젖지 않은 내 가슴 저 안쪽은 오히려 햇살이 짱짱하여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하면서
우산이 좁아서

[시인의 말]
우산 하나를 둘이서 함께 쓰고 빗길을 걸어왔다 했을 때 누가 더 젖었는가를 보면 함께 우산을 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인지 미워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막내인 나는 응석이 많아 다 커서도 엄마 등에 업히곤 했다. 우산 하나로 빗길에 업혀 갈 때 엄마는 자꾸 우산을 뒤로 젖혀 내가 젖지 않게 했다. 그러면 어린 마음에도 나는 엄마 쪽으로 우산을 밀어냈다.

미워하는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우산을 같이 쓸 일이 많을 것이다. 우산이 각자 있음에도 하나의 우산을 쓰고 가는 단짝 친구도 보았다. 누가 더 젖을까? 사랑하는 사람 사이라면 똑같이 젖지 싶다. ‐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 두 친구가 아예 우산을 접어버리는 장면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만약 다행히도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가 덜 젖었다면 내 마음엔 햇살이 가득할 것이다. 그래도 더 젖지 않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주고도 더 못 주어, 다 못 주어 아쉬운 게 사랑이다. 또한 베풀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는 그 마음까지 없어야 진정한 사랑이다.
사는 일은 비바람 치는 길을 우산 하나를 쓰고 함께 걷는 것과 닮았다. 우산이 좁아서 행복한 순간이 있다, 가난해서, 우산이 하나여서, 서로 사랑해서.

[복효근] 남원 금지중 교사.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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