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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방자曰曰]3. 새끼 사또가 춘향이를 데려오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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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0:18 조회 13,96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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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옆구리에 차고 온 술병이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 십육 세 몽룡과 십팔 세 방자는 주거니 받
거니 권커니 잡거니 하며 주흥에 빠졌것다.
“얘, 방자야! 방자야!”
“참 말버릇 한번 고약하구만. 앞에 사람 놔두고 꼭 방자야! 방자야! 부름시롱 말을 해야 쓰겄소?”
“알았다, 알았어. 이제 본격적인 일을 해 보아야 하지 않겠냐?”

“본격적인 일이 뭔데유? 바깥바람 쐬었으니까 된 것 아니우?”
방자가 짐짓 능청을 부리자 몽룡이 술기운에 속내를 털어놓는구나.
“분 바람도 좀 쐬야지!”
“그럴라믄 저쪽 그네 뛰는 디로 가야제.”
“사또 자제 체면에 그쪽으로 갈 수는 없고 네가 좀 다녀오너라.”
“그냥 뛰어 갔다 오기만 하믄 되우?”

“아따 고놈 성질 한번 되게 급하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봐야지.”
“어디 해 보슈, 뭔 말을 얼마나 길게 할라고 그러시유?”
몽룡이 부채로 한쪽 끝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느냐?”
“뭐 말이유?”
“저기 희끗희끗한 것 말이다.”

방자가 손을 이마에 대 해가리개를 만들고 고개를 쭉 내밀었것다.
“어디? 어디? 아, 저것 버드나무 위에 흰 구름이 떴구만유.”
“그것 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다시 내려오는 것 말이야.”
“시방 나랑 하늘로 천 땅으로 지 하믄서 천자문 공부 하자는 것이유? 진짜로 야외 수업 하는
것이유 뭐유?”
“허허, 이래서 상놈들은 별 수 없어. 도통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니, 쯧쯧. 저기 나무에 두 줄로
매달린 것 좀 보란 말이야.”

“그거야 그네 아닌갑쇼?”
“누가 그네인줄 몰라서 그러느냐? 그네를 타고 있는 옷 말이야.”
“설마 옷이 그네를 타겄소. 계집이 타겄제.”
“그래, 그 옷 주인이 누구냔 말이냐? 혹시 선녀들 아닐까?”
“선녀는 무슨 얼어죽을 선녀랴. 선녀도 지 사는 디서 바쁠 틴
디 한가하게 광한루에 와서 그네나 뛰고 있겄슈?”

“선녀가 아니고서야 저렇게 자태가 고울 수 있을까?”
그제야 방자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더니 발뒤꿈치를 들어 까치발을 하고서 멀리
 바라보았것다. 걱정했던 대로 춘향이가 향단이와 함께 그네를 뛰고 있었다.

‘저것들이 아주 날 잡아 잡수쇼 하고 나대는구만 시방.’
방자는 내심으로 춘향이하고 향단이만큼은 몽룡에게 드러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야외 수업 초장부터 걸려든 게 하필두 계집이었다.
방자가 그네 뛰는 쪽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몽룡이 다시 성화였다.
“이제 보이느냐?”
“아까도 보았수다.”
“근데 왜?”
“뭘요?”

“시치미를 딱 뗐냐고?”
“지가 언제유?”
“허참, 지금까지 그랬잖니?”
‘저것들이 하필 이 시간에 나올 게 뭐람…….’
“혼자 뭘 그리 중얼거리누?”
“아는 계집들인 것 같아서 그러우.”
“누군데?”

“누구라 하믄 도련님이 알 것이오?”
“춘향이라면 알지.”“도련님이 춘향이를 언제 봤다고 알아유?”
“보진 못했지만 그 명성은 한양서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느니라.”
방자가 픽 웃었다.



“춘향이가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네, 한양 성 새끼 한량들까정 다 알 정도믄…….”
그 대목에서 몽룡의 눈이 반짝 빛나는구나.
“진짜로 춘향이란 말이냐?”
“맞어유. 춘향이 맞슈.”
방자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사실대로 말해 버렸것다.

방자 대답을 듣자마자 몽룡의 거동이 볼만해지는구나. 몽룡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
니 까치발을 하고서 고개를 쭉 내미는데 똑 목 긴 두루미 꼴이렷다. 이마에는 손을 얹어 햇빛을
가리며 멀리 춘향이 그네 뛰는 모습을 한 동작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구나.
“햐, 천지신명이시여! 부처님이시여! 드디어 자나 깨나 잊지 못해 오매불망하던 춘향이를 만
나게 해주시는구려.”
방자는 눈꼴이 시었것다.

“춘향이 쪼깐 보는디 뭔 천지신명에 부처님까지 다 들먹이고 그러시우?”“모르면 말 마라. 이
제야 하는 말이지만 내가 춘향이 보려고 남원 땅에 왔지 방자 너 보려고 왔겠느냐.”
“그럼 나는 더 보지 말고 춘향이나 보러 가시우.”
방자가 자리에 철퍼덕 앉더니 책상 다리를 단단히 하는구나. 속이 한참 뒤틀렸다는 표시렷다.
몽룡은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입을 짝 벌린 채 그네 쪽만 바라보는데, 그 꼴이 딱 발정난 숫캐가
이웃집 암캐 쳐다보는 형세구나.

“하늘을 치고 오르는 저 버선 발 좀 봐. 날렵하기가 동헌 추녀 끝보다 더하네.”
“계집들 버선 발 첨 보나?”
“저 잘록한 허리!”
“잘록하긴, 장구 허리 보았남?”
“저 볼록한 가슴!”

“흥, 바가지 엎어 놓은 것 본 모양이네. 뭐가 볼록하다고 그랴.”
방자는 슬슬 심술이 돋기 시작하는데 몽룡은 아랑곳없으니.
“네 눈엔 춘향이 자태가 안 보이는 모양이구나.”
“그만 허슈. 여그서 뭔 허리가 보이고 가슴이 보인다고 숭하게 그래싸요?”
“아녀 다 보여. 희끗희끗한 속곳 사이로 다 보인단 말이여.”

방자는 그네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제법 거리가 있어 자세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몽룡이 술에
취해 시방 헛것을 보는 성싶었다. 그러든 저러든 춘향과 향단이는 누가 자신들을 훔쳐보는지도 모
르고 그네 뛰는 일에만 빠져 있었다. 춘향이 잘록한 허리와 볼록한 가슴은 방자 자신도 다 알지 못
한다. ‘여자’가 된 뒤론 춘향이가 쉽게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향단이 몸
치수는 방자 자신이 훤히 꿴다는 것이다. 아직 춘향이 몸 치수는 제대로 견적도 못 내보았는데, 이
제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하는 사또 아들내미가 깐죽대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것다.

“얘 방자야, 가서 춘향이 좀 데려 오렴.”
“춘향이가 뉘 집 강아지유? 돝아지유? 아니믄 외양간 송아지유? 망아지유? 가서 데려오게!”
방자는 배알이 꼬일 대로 꼬였것다.

“내 듣기론 춘향이가 기생이라고 하던데……. 양반이 기생 좀 부르는 게 큰 흉은 아니지 않느냐?”
“누가 그딴 소리를 합디까? 춘향이 어무니는 기생이었제만 춘향이는 기생 노릇한 적이 없소이다.”
“어미가 기생이면 딸도 기적에 올라 있을 것 아니냐?”“나는 그런 것 모르오. 아무튼 춘향이는
기생 노릇 한 적 없은께 꿈 깨시오. 그라고 기생이라고 오라믄 오고 가라믄 가는 줄 아시오? 남원
고을에선 그런 일 없은께 택도 없는 소리 당최 허들 마시오.”

“그렇다면 방자야, 네가 어떻게 좀 해 보면 안 되겠느냐?”
“내가 거 뭐시기 뚜쟁이유, 뭐유?”
“네가 나보다 나이도 더 먹었으니 이런 일엔 요령이 있을 것 아니냐?”
“요령 있으믄 내가 시방 이 나이 묵도록 장가도 못 가고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도령 방자질
이나 하겄소?”

몽룡은 숫제 울상이다. 몽룡은 방자 술잔이 빈 걸 보고 얼른 자리에 앉아 술을 따라주며 은근하
게 말했건만 방자는 다리만 고쳐 앉을 뿐 요지부동이렷다.“내가 저 계집들과 아무리 소꿉 동무라
지만 저것들도 인자 다 엉뎅이 커부러서 내 말 안 들어유. 다 코 흘리고 다닐 때나 너나들이 했제.”
“그래도 방자 네 말이면 무시는 못할 것 아니냐.”

“흐흠, 그러기야 하겄지만 계집 속을 내가 어찌 알겄수.”
방자, 짐짓 헛기침까지 해가며 거드름을 피우면서 몽룡의 속을 태우는구나. 그러니 몽룡은 방
자가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 걸 기다렸다가 바짝 다가앉으며 애원성을 낼 수밖에.
“방자 형님, 내 소원 한번 들어주시오.”

“아쉬울 땐 형님이고, 보통 땐 방자야 하는 속은 무엇이다요?”
“그야, 남들 눈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잖아.”
“그럼 시방 넘들 눈 없은께, 진짜 내 이름이나 한번 불러 보슈.”
“그건 어렵지 않지. 고두쇠야!”“그건 돌쇠 마당쇠 하드끼 그냥 부르는 막이름이고 내 진짜 이
름은 따로 있단께요.”

“네가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내가 네 이름을 어찌 안단 말이냐?”
“성이 쪼깐 희성이라서 알아 묵을지 으짤지 몰라 안 가르쳐 준 것이제. 아무러하면 나라고 성
달린 이름이 없겄소?”

“그렇다면 사설 그만 깔고, 네 진짜 이름이 뭔지 알려주렴. 이름을 알아야 부르든 말든 할 것 아니
냐?”“세상 물정 모르는 책방 도령이라 이런 성씨 들어보았는지 모르겄소만, 내 본디 성은 ‘아’ 가요.”
“‘아’ 씨가 네 성이라고? 우리 조선 땅에 그런 성바지도 있는 거냐?”
“그래서 희성이라고 했잖소.”

“그럼 있다 그러고, 진짜 네 이름은 뭐냐?”
“성이 희성이라 거기에 맞추느라 이름도 상당히 진기허요.”
“진기한 그 이름이 어찌 되는데?”
방자, 코를 벌름거리며 더듬거린다.
“내 진짜 이름은, 음, 바지요.”“바지? 저고리 아래짝 되는 바지가 네 이름이라고?”
“그렇소. 쪼깐 어렵게 느껴져부요?”“예끼! 좀어려운 게 아니라 조선 천지에 이런 이름이 어디있느냐?”
“여기 있제, 어디 있다요?”

“성에다 이름을 붙여봐라 어떻게 되는가.”“아바지가 어때서 그렇소?”
“부르기가 좀 그렇지 않느냐?”“강아지 돝아지송아지 망아지란 이름도 있는디
아바지가 어쨌다고 그러유? 부르기 싫으면 마슈.
내사 아쉬울 것 하나도 없소이다.”

“그러지 말고 내 소원 좀 들어주라.”“들어줄 틴께 이름이나 제대로 부르란께요.”
“나, 참…….”“부를 티요, 안 부를 티요?”
몽룡은 참으로 난감했다. 세상에 뭔 이름이 이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름 그깟 게 뭐 그리 대수
인가? 방자란 놈이 원하면 불러주고 말자. 이름을 불러주면 방자 녀석이 알아서 오매불망 춘향이를
데려올 것 아닌가.

“알았어. 부를 테니까 잘 들어. 바지야.”
“성은 홍어 좆맨치로 왜 띠어분다요? 따로 띠어뒀다가 어따 쓸라고 안 붙인다요?”
“성도 꼭 붙여서 불러야 돼?”“당연하쥬.”
“그렇다면, 얘, 아바지야…….”
“못 들었소. 다시 부르시오.”
몽룡이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아예 큰 소리로
불렀다.“아바지!”

방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냅다 뛰어나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왜 그러느냐? 내 아들놈아!”
“뭣이라고?”
몽룡은 그제야 방자한테 속은 줄 알고 펄쩍 뛰며 일어났으나, 방자는 벌써 저만치 뛰어가버렸
으니, 몽룡이 꼴 닭 쫓던 개 꼴이렷다.
몽룡을 단단히 골려먹은 방자는 한달음에 춘향이에게 뛰어갔것다.
그네를 뛰다말고 방자를 발견한 춘향이 향단이에게 외쳤다.

“향단아, 그네 줄 좀 잡아다오. 어질어질하구나.”“그러잖아도 인자 내려올 때 되었어유.”
춘향이가 그네에서 내려와 치마를 추스르며 방자가 달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 근디, 저그 벙거지 삐딱허게 쓰고 내달려 오는 놈이 주막집 고두쇠 아니냐?”
향단이가 고개를 길게 빼고 바라보자 방자가 손을 흔들었다.
향단이가 춘향이를 흘끔 쳐다본 뒤 중얼거렸다.

“고두쇠 맞는디요. 쳇, 누가 저 반긴다고 손까정 흔들믄서 온다냐?”
“누구긴 누구겄냐? 향단이 너겄지.” “무슨 말씸을 그렇게……. 내가 언제 고두쇠를 반겨유?”
향단이가 춘향이를 보고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입을 삐쭉 내밀자 춘향이가 툭 한 마디 내던졌겄다.
“그럼 내가 반길까?”
“아가씨도 참, 인자 고두쇠 같은 놈한티 너무 잘해주믄 안 돼유.”
“잘해 주어서 아니 될 거야 뭐 있겄냐만, 저것도 불알 달린 사내는 사내라서 내외는 쪼깐 해야
쓰겄지?”

향단이 얼굴이 사과처럼 벌게진다. 고두쇠와 주막 술청에서 보낸 밤이 스치듯이 지나간 탓이
렷다. 그러고 보니 고두쇠를 만난 지가 꽤 오래 된 성싶다. 고두쇠가 갑자기 사또 자제의 책방 방
자로 들어간 뒤엔 코빼기조차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대낮에 광한루에 나타난 것
일까? 단옷날이라 하루 말미를 얻어 쉬는 것일까? 자신은 자나 깨나 춘향 아가씨 곁에 있어야 한
다. 하지만 고두쇠는 방자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누구에게 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방자가
된 뒤엔 고두쇠도 매인 사람이 되어 둘이 따로 만날 겨를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대낮에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방자가 두 사람 앞에 와 숨을 헐떡이며 서더니 대뜸 안부를 묻는구나.
“춘향아! 향단아! 잘 지냈더냐?”

향단이가 속으론 반가우면서도 퉁명스레 대거리를 했것다.
“고두쇠 니가 벌건 대낮에 웬일이여?”
“나라고 밤에만 다녀야 쓰겄냐?”
향단이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춘향이가 대신 참견한다.
“여그 그네터는 사내들이 나다닐 디가 아니라서 그라제. 시방 그걸 몰라서 되묻는 것이여?”

내가 갈 디 못 갈 디가 어디 있냐? 볼 일 있으믄 댕기는 것이제.”
향단이가 방자에게 살짝 눈치를 주며 나무라듯이 말했다.
“그려도 아무 때고 주책맞게 헐레벌떡 나댕기믄 못 써. 주막집 개도 아니고 말여.”
“히, 개 같으믄 그냥 주막에 있제.”
춘향이가 픽 웃었다.

“웃지 마라 춘향아. 너 땜시 시방 일 났다.”
“야가 시방 뭔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냐? 나 때문에 뭔 일이 났다고 호들갑이다냐?
나야말로 너 땜시 그네 뛰다 낙상할 뻔했구만.”
“낙태헐 것 같으믄 그네를 안 타야제 말만 한 큰애기가 벌건 대낮에 이런 디서 왜 이러고 있디야?”
“이 머시마 말하고 자빠져 있는 꼬라지 봐라잉. 내가 낙상이라고 했제 언제 낙태라고 했냐?”
방자가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고건 시방 중요한 게 아니고…….”
“그라믄 뭐가 중요한디? 멀쩡한 처녀한티 터진 주둥아리라고 할 소리 못할 소리가 다 시부렁
거려 놓구선…….”
춘향이가 토라지자 방자가 몽룡이 있는 쪽을 슬쩍 바라본 뒤 얼른 말꼬리를 돌렸것다.
“성깔 내 보이지 마라. 새끼 사또가 너를 데려오라 했단께.”

향단이가 어이없어 하며 춘향이 앞으로 나섰겄다.
“고두쇠야. 시방 뭔 소리 하고 있다냐? 말을 알아 묵게 해야 쓸 것 아니냐?”
“시방 저쪽에 사또 자제인 책방 도련님이 와 있단께.”
“책방 도령이 왔으믄 왔제, 고것이 시방 우리 아가씨랑 뭔 상관이간디?”
“니들은 꼭 말을 다 해야 알아 묵냐?”
“야가 뜬금없이 나타나 앞도 뒤도 없이 벙거지 시울 맨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헌께 그러는 것 아니냐?”
향단이에 이어 춘향이까지 지청구다.

“니가 책방 방자 되었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같잖게 벌써부터 못된 것만 배웠냐? 시지도 않은
것이 군내부터 풍기는 꼴이잖아.”
방자, 두 계집한테 퉁바리를 맞는 게 아주 이골이 난 모습이렷다.
“아따, 니들 오랜만에 봤으믄 깎아놓은 배만치롬 사근사근은 못 혀도 풀쐐기 쏘듯 허진 마라
잉. 내가 쪼깐 서운해질라고 그란다.”
설왕설래 말이 길어지자 춘향이가 아퀴를 짓자고 나서는구나.
“그래 무슨 일 땜시 온 것이냐?”

“말했잖이여. 새끼 사또가 춘향이 너를 데려오라고 했다니께!”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
또 자제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고 데려오라 말라 한단 말이냐?” “모르믄 말을 말어라. 한양서부
터 너를 알고 왔단다!”“니가 시방 한 입으로 두 번 말하게 하는구나. 한양 살던 도련님이 어찌 나
를 안다고 데려오라 한단 말이냐? 니가 제비 새끼맨치로 지지배배 종알댄 것이 틀림없으렷다!”
“아따, 고두쇠가 어렵게 책방 방자가 되었는디 지 애비 새끼 지지배처럼 고렇게 입이 싸겄냐?”
“누가 지 애비 새끼래? 그라고 지지배가 아니라 지지배배하는 제비처럼 종알거린 것 아니냔
말이냐?”“지지배고 계집애고 나는 춘향이 춘 자도 꺼낸 적 없다.”“정말?”“정말이지 않고! 내 말
이 거짓말이믄 내가 성을 간다. 성을 갈아!”

성을 간다는 말에 향단이가 나섰것다.
“고두쇠야, 니가 갈 성이 어디 있다고 아가씨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향단이 너, 모르는구나? 내 성은 ‘아’가다.”
춘향이 픽 웃었다.
“조선 천지에 ‘아’가 성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장가도 안 간 녀석이 설마 아가를 얻은 것은
아니겄제?”

방자가 향단이를 힐끔 바라보자 향단이가 고개를 외로 꼰다.“그런 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
리 도련님 만나서 물어보고, 지금은 좌우지간 나를 따라나 가보자.”
방자가 춘향이 손목을 쥐고 잡아당기려 하자 향단이가 방자 손을 제법 세게 쳐서 떼어놓는다.
“야가 시방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어디서 우리 아가씨 몸에 손을 대는 것이여?”방자가 향단이
에게 맞은 자리를 문지르며 당황해 하는데 춘향이가 점잖게 꾸짖는다.

“새끼 사똔지 책방 도령인지 하는 네 주인한티 가서 삼강오륜에 소학에 동몽선습까지 제대
로 공부한 뒤 예의를 갖추어 다시 오라 일러라.”“삼강오소 뭐 동몽롱이?”“삼강오륜, 소학, 동몽선
습!”춘향이가 또박또박 이른 뒤 신발을 고쳐 신고 뜰 채비를 하자 방자 몸이 달아오르는구나.
“춘향아, 너는 가기 싫으믄 안 가믄 그만이제만, 내 돌아가서 도련님한티 뭐라고 전할끄나. 나
도 어린 것한티 시달려 죽을 맛이다.”

“다 얘기했다. 앞에서 말한 것 제대로 공부하고 다시 오라 혀라.”“나는 그런 유식한 문자는 알
아듣지 못혀. 몽롱이 어쩌고 한 것 말이여? 우리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란 말이여. 그란디 뭘 다시
공부하라고?”
춘향이가 어이없어 한다.
“동몽선습이라 했제, 누가 몽롱이라 했냐? 니 주인 이름이 몽룡이냐? 그라믄 이 사또 자젠께
이몽룡이겄네?”

“맞다. 근디 오늘은 왜 오나가나 이름 갖고 지랄들이디야.”
향단이가 듣자하니 고두쇠가 상소리를 하는 것 같아 톡 쏘아주는디.
“너 시방 우리 아가씨한티 숭허게 무슨 소리 한 것이여?”“아녀, 혼자 허는 소리여.”
춘향이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방자, 급하게 다시 뛰어가 사정한다.



“춘향아, 우리 옛정을 생각혀서 이러지 말고 내가 도련님한티 가서 전할 말을 알아 묵기 쉽게
해주란께!”춘향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한 말씀 던진다.
“나비가 꽃을 보러 오제 꽃이 나비를 보러 가는 법 없고, 기러기가 물을 따르제 물이 기러기를
따라 가는 법 없다고 혀라.”

“이게 시방 뭔 수수께끼 같은 소리여…….”
방자, 멀어져 가는 두 계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고 다시 몽룡에게 뛰어가자 나무 밑에 몸
을 가리고 서 있던 몽룡이 반갑게 뛰어나와 방자를 맞는구나.
“춘향이는 어찌 하고 너만 오는 게냐?”

“계집이 도도하고 쌀쌀맞게 튕기더니 골만 내고 가 버립디다.”
“한참 동안 수작 떠는 것 내가 다 봤다. 네가 잘못해서 가 버린 것 아니냐?”
“뭔 말을 고렇게 한다요? 내 딴으론 얼마나 노력했는디.”
“알았다 알았어. 근데 춘향이가 뭐라 하고 가더냐?”
“뭔 수수께끼 같은 요상한 말만 하고 갑디다.”

“수수께끼? 혹시 네가 먼저 웃국 떠먹으려 하니까 지청구 놓은 것 아니냐?”
“웃국은커녕 손목이라도 잡아 끌고 올라다가 벼락만 맞아부렀소.”
“그러니까 네가 먼저 춘향이 몸에 손 댄 게 맞잖아!”
“끌고라도 오려고 하다가 향단이한테 맞기까지 했단께요!”
“허 참. 야외 수업 끝이 어지럽구나!”
몽룡의 한숨에 땅이 꺼질 듯하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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