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만화 [교사 교사의 시]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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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5 21:14 조회 6,035회 댓글 0건본문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신, 부디 헌 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거친 길 험한 길 딛고 가는
그대 발을 고이 받쳐
길 끝에 안착할 수 있다면
나를 신고 찍은 그대의 족적이
그대 삶이고 내 삶이니
네가 누구냐 물으면
그대 발치수와 발가락모양을 말해주리
끝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리
다만 그 끝의 자세가
사랑을 규정해주리니
그대 다시 나를 돌아보거나 말거나
먼 길 함께했다는 흔적이라면
이 발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신, 부디 헌 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헌신獻身과 헌 신
헌 신발을 뜻하는 ‘헌 신’과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을 의미하는 ‘헌신獻身’은 그 뜻이 전혀 다르면서도 닮았다. 물론 띄어쓰기만 다를 뿐 발음도 같다.
싫증이 나서 신다가 버린 신발 말고, 여기저기 오래 함께 내 몸의 일부와 같이 먼 길 다녔던 신발을 마지막으로 벗어 놓을 때 그 헌 신발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술집을 가든지 도서관을 가든지, 더러운 진창길을 가든지 험한 산길을 가든지 언제고 가장 밑바닥을 받쳐들고 발을 보호하며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신발이다. 그렇게 해서 낡은 신발이라면 연민의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는 없겠다. 그것이 가죽신발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소나 말 혹은 양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면 죽어서도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한 마리 충직한 짐승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오래 신은 신발일수록 발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고스란히 신발 안쪽에 담겨서 우린 발을 씻어 냄새를 없앤다 해도 내 충직한 이 신발은 그걸 안고 견뎌야 한다. 그 신발을 쓰레기통에 던지기 전에 고생했다고 한번 어루만져준 적 있는가? 이제 헌 신발 한 켤레를 버리면서 생각한다. 나는 누구에게 헌 신인 적이 있는가? 헌신한 적이 있는가?
복효근 남원 금지중 교사.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