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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도서관 읽어볼 만화면]관계, 거짓말, 그리고 만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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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2 18:16 조회 6,6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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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즉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속이기 위해 다르게 말하는 행위는 무척 인간적이다. 다른 동물들이라고 해서 상대를 속이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발달한' 인간사회일수록 거짓말이 당연한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쟁관계 속에서 상대를 등쳐 먹기 위해서도 거짓말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거짓말하고, 그저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 거짓말하기도 한다. 어떤 거짓말은 국가 규모로 거대하고, 다른 거짓말은 아주 사소한 개인사에서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4살 때까지의 밥상머리 교육에서나 통할 이야기고, 거짓말이 전혀 없이 굴러가는 사회관계는 좀처럼 존재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거짓말을 부정하기보다, 거짓말이 존재하는 현실을 오히려 받아들이고 다양한 거짓말에 대해 여력이 되는 만큼씩 좀 더 성찰해보는 쪽이 낫다. 그리고 성찰의 입문으로는 늘 그렇듯 재미있는 대중 서사문화만한 것이 없다. 거짓말은 내적 갈등은 물론이고 캐릭터들 사이, 캐릭터와 세상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하기 좋은 장치고, 재미와 함께 우리를 돌아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만화책을 몇 종류 펼쳐보면 어떨까.

검은 거짓말, 하얀 거짓말
남을 속여서 피해를 입히고 자신은 이익을 얻는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정적의미의 거짓말을 흔히 ‘검은 거짓말’이라고 부른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수록, 더 많은 이들을 속일수록, 입히는 피해가 클수록, 자기만의 이득이 클수록 심각한 거짓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큰 검은 거짓말은 사회 전체의 권력을 쥐고 통치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 자체를 속이는 것이다. 통치를 위한 의도적 기만은 2차대전 무렵 독일 나치정권의 반유태사상이든, 현대 한국사의 맹목적 애국반공주의든, 대통령후보의 허황된 선심성 경제공약이든 현실세계의 역사에 사례가 넘쳐난다. 그렇기에 그런 거대한 거짓말의 본질을 웬만큼 절묘하게 압축해내지 못하면 거짓말의 폐해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그냥 지루한 역사 수업식 교훈에 머물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장 마르크 로셰트, 자크 로브)는 거대한 검은 거짓말에 대한 훌륭한 우화를 들려준다. 이야기의 배경은 가상의 미래 세계에 끝없이 달려가는 기차다. 기후무기 전쟁의 결과로 세계는 빙하기에 돌입하고, 때맞춰 호화 유람열차에 타고 있던 이들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달리는 열차의 마찰로 열과 에너지를 얻고, 식량 등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그러나 각 차량은 재산과 신분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어져 있고, 가지지 못한 자들일수록 뒤쪽 칸에 타고 있다. 그리고 이들만의 작은 사회에는 계급갈등, 권력구조 등 원래 인간사회의 모든 모습들이 좀 더 선명하게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세상은 하나의 엄청난 거짓말 위에 통치되고 있는데, 바로 이 세상이 이렇게 지속될 것이라는 거짓말이다. 사실은 열차가 영원히 달릴 수 없기에 점점 느려지고 있으며, 완전히 정지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가장 신분 낮은 이들이 타고 있는 맨 뒤 칸부터 하나씩 잘라내고 있다. 헛된 욕심 속에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자발적으로 믿고 불안을 뒤로 미룬다. 하필 이번에 잘려나가는 가장 뒤 칸이 바로 자신들의 칸일 때까지는 말이다.



반면 하얀 거짓말은 상대가 입을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선의를 가지고 거짓을 말하는 경우다. 결과가 늘 원래의 선의대로 풀리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거짓말이기에 좀 더 고귀하거나 애틋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섬세한 관계와 감정을 다뤄낼 줄 아는 작품에서 그런 거짓말을 볼 때, 현실에서의 상호존중에 대해서도 다소나마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야구만화를 빙자한 청춘 연애만화인 『H2』(아다치 미츠루)는 하얀 거짓말 위에 서있는 작품이나 다름없다. 이야기는 중학교 당시 한 팀에서 콤비를 이뤘던 친구이자 지금은 다른 고등학교에서 라이벌 관계인 투수 히로와 타자 히데오, 히로의 소꿉친구이자 그의 주선에 의해 히데오의 여자친구가 된 히카리, 그리고 히로에게 호감을 가진 하루카의 연애와 야구 승부들을 섬세하게 다룬다. 주선해주고 몇 년 후에야 자신이 히카리를 좋아했음을 천천히 깨달은 히로, 히데오를 좋아하면서도 히로에 대한 사랑이 있고 히로의 마음도 일정 정도 아는 히카리,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히카리와 히로를 각각 좋아하는 히데오와 하루카. 즉 주인공 네 명이 모두 서로의 꼬인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우정과 존중 또한 진실이기에 명시적 사귐 바깥의 구도에 대해서는 무심한 듯 거짓말로 일관한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들에게 하얀 거짓말을 하며 지내는 이야기인 것이다. 결국 서로 확실한 답을 찾을 때까지의 여정이 뜨거운 야구 승부와 함께 펼쳐진다.



거짓은 커지지만, 못해도 곤란하다
누구나 흔히 접해본 거짓말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속이는 상황을 지속하면 할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거짓을 도중에 들통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된다. 다른 거짓말로 돌려막거나, 거짓말에 자꾸 새로운 디테일을 붙이거나, 알리바이를 위해 더 많은 이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이거나 말이다. 비극적인 경우라면 키울 대로 키우고 정교해진 거짓말을 스스로 믿어 버리는 지경에 이른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 즈음에서 멈춰야 할지 아는 것이고, 특히 선의의 거짓말이었다면 더욱 모두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적절한 해결을 봐야 하는 것이다.

<해치지않아>(HUN)는 거짓말의 확대, 그리고 커질 만큼 커진 거짓말을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라도) 적절하게 마무리 짓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한 동네 동물원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결국 문을 닫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육사 일을 했던 주인공은 동물원 일에 대한 미련, 정확히는 자신이 대학 입학 당시부터 늘 바라만 보고 있다가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성과 함께 했던 그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동물원 재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비싼 동물들을 다시 데려오고 관리할 돈은 물론 없기에, 엉뚱한 거짓말을 시작한다. 바로 동물과 똑같은 정교한 동물옷을 입힌 사람들로 동물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천재적 솜씨를 지녔으나 여러 이유로 몰락한 여러 달인들을 모아서 동물들을 만들고, 각자의 사연이 있는 또 다른 이들이 연기자가 된다. 동물원에서 거짓말은 즐거움이 되고, 좌충우돌 사건들 속에서 점점 ‘동물’은 늘어나고 장비는 정교해진다. 그리고 결국 모든 거짓말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 거짓에 함께한 모두가 조금씩 더 성장해 있다. 커지는 거짓의 반대편에는, 아예 거짓말을 못할 때 생기는 불편함이 있다. 아니 불편함을 넘어 아예 비극이 될 수 있는데, 사회적 관습에 의한 원활한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못하고 모든 솔직한 생각이 투명하게 열려있다는 것은 부정적이고 미숙한 감정마저 제어하지 못한 채 소통되는 것이기에 관계 자체를 파괴하기 쉽다.

『돌연변이』(사토 마코토 / 원제: 사토라레)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천만 명에 한 명쯤, 뇌활동이 너무 엄청나서 온 주변에 생각이 그대로 전달이 되어 버리는 돌연변이들이 탄생하는 세상을 무대로 한다. ‘사토라레’라고 불리는 이들은 보통 엄청난 천재이기는 한데, 모든 생각이 거짓 없이 주변에 전달되어 버리기에 평범한 인간적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없을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자아상실감에 괴로워하다가 자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각 국가정부는 이들 희귀 인재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 관리를 하는데, 그가 자신이 사토라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었음을 숨기도록 하는 것이다. 즉 거짓말을 못하는 이를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 더 큰 선의의 거짓을 통해서, 어떤 거짓도 못하는 이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며 우수한 머리로 사회에 기여한다. 물론 과연 사토라레가 그런 우수한 인재가 아니라도 국가적 예산을 쏟아가며 그런 보호를 했을까 같은 차가운 현실적 질문도 해볼 수 있지만, 여하튼 사회적 기능을 위해 필요한 일정 정도의 거짓말에 대한 이보다 더 뚜렷하고 따뜻한 우화는 찾기쉽지 않다. 여기까지 읽으며 다들 눈치를 챘겠지만, 거짓말은 거짓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서로를 위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상대를 거꾸러트리려는가가 관건이다. 거짓말조차 상호 존중과 협력의 수단이 될 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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