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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어린이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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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5:41 조회 7,2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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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어린이는 참 불가분의 관계다. 사실 만화가 딱히 어린이용 매체로 탄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 만화는 성인용 사회풍자물로 먼저 발달했고, 만화의 원류가 되어주는 연속 그림 양식 역시 대중 일반을 대상으로 했지 딱히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들도 즐길 만큼 접근성이 뛰어난 매체라는 점에서 어린이용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어느 틈에 만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범주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하필이면 한국 현대사회의 흔한 양육 방식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 즐겨하던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식의 괴상한 사고가 포함되어 있기에 (“아직도 애처럼 그런 걸 하고 있냐.”), 만화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편견은 더욱 발전하여, 어린이와 만화의 교집합에는 교훈적 학습 아니면 유치함을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어린이와 만화는 그보다 훨씬 풍부한 재미를 주는 결합이 가능하다. 어떤식의 작품들을 끄집어내고, 어떤 식으로 읽는가에 달려 있다.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만화를 추천하는 것이 아닌, 어린이라는 키워드를 지니고 여러 방식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만화를 몇 가지 발굴해보자.

어린이스러운 상상력은 유치한 것이 아니다
우선 가장 커다란 편견부터 살짝 깨면서 들어가고자 한다. 마치 어린이들이 할 법한 상상력이라고 해서 “유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세계의 인과적 제약이 덜 반영된, 좀 더 분방한 상상일 뿐이다. 반면 어린이스러운 상상력에는 가장 원형적인 즐거움과 경이에 대한 추구가 종종 구현된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기에 유치하고 미숙한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말은 안되지만 흐뭇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은근히 많다. 어린이들을 독자층으로 흡수하기 위해 그런 식의 상상력을 구현한 작품들을 읽을 때, 팔짱 끼고 논픽션 사회고발 드라마의 재미를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를 고문하는 일이다. 그 대신 원형적인 모험과 소동과 화해의 스토리라인 위에 마음껏 펼쳐지는 분방한 상상을 즐기는 것이 좋다.

80년대까지 한국 아동/청소년 독자들에게 가장 주류적 인기를 끌었던 장르 중 하나인 명랑만화 계열의 명작, 『아기공룡 둘리』(김수정)를 예로 들어보자. 스토리의 뼈대는 다소 가부장적이지만 번듯한 가장 고길동, 그리고 그의 집에 눌러 살며 집안 살림 파괴를 일삼고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객식구 4인방(공룡, 외계인, 타조, 아기 조카)들의 일상이다. 이야기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소동, 그리고 갑자기 떠나게 되는 이세계 모험 등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에피소드들로 펼쳐진다. 일상물 부분은 사회고발르포가 아니고, 모험 부분은 <반지의 제왕>이 아니다. 하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오징어들이 끌어주는 라면박스로 만든 썰매로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배달하는 모습이 펼쳐질 때, 어린이스러운 상상력을 유치하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정글에서 식인종들에게 잡혀갔다가 도망치면서, 평소에 아무리 티격태격해도 어쨌든 미운 정 고운 정들어버린 식구들을 슬랩스틱 코미디 흐름 속에 같이 데리고 나오는 대목들이 과연 미숙할까. 비단 『아기공룡 둘리』 말고도 분방한 상상력의 명작들은 적지 않다. 풍부한 캐릭터성, 잘 버무려진 유머감각, 유연한 연출 속에서 어린이스러운 상상으로 가득한 작품은 여느 성인들에게도 조금도 덜하지 않은 원형적 즐거움을 준다. 어린이용이라서 유치한 것이 아니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일 때 유치한 것이다.



어린이를 빙자한 성인 감성
어떤 작품들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어린이만화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상 그 속에는 어린이의 모습을 한 성인 취향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주인공이고 어린이들의 사회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고 해서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성인들을 위한 즐거움을 비유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담아낸다. 『어덜트 베이비』(토미사와 치나츠)는 30대 야쿠자 조직원 아저씨가 엉뚱한 사연으로 비명횡사하고는 어른의 정신 그대로 아기로 환생한 후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는 코미디다. 어른의 속마음을 지닌 아기라는 설정은 80년대 영화 <마이키 이야기> 등 여러 장르에서 적잖게 다뤄진 바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는 성숙함의 괴리는 물론이고 에로틱 개그 코드까지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성인물임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부류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는 『크레용 신짱』(우스이요스토)이다. ‘짱구는 못말려’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가 원제목그대로 다시 출판된 사연이 있는 이 작품은, 말썽꾸러기 유치원생 신노스케(신짱구)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생활을 다루고 있다. 신노스케는 중년 아저씨들을 연상시키는 예쁜 여자 밝힘증이나 상황 대처를 보여주는데, 그렇다고 정말로 음흉하다기 보다는 버릇이 그런 엉뚱하고 순진한 유치원생일 따름이다. 이런 괴리나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정서 등이 성인 독자들의 유머코드에 더 걸맞은데, 여기에 유치원중심의 일상이나 어쩌다가 한 번씩 이세계 모험을 섞어 넣으며 어린이 독자들도 포섭해낸다. 어린이들의 세계에 어른들의 세계를 패러디해내는 솜씨 역시 양쪽의 독자들에게 함께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어린이를 관찰하기
분방한 상상과 과장의 즐거움과 반대 방향이라고 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시점에서 육아의 즐거움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한층 어린이의 세계가 중심에 있는 작품으로도 가능한 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관찰이다. 나름의 복잡한 사연들도 있겠지만 즐겁고 솔직하게 살아가는 어린이를 관찰하는 흐뭇함은 정서적 치유를 주는 듯한 만족감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그들의 상황 반응들을 더 현실적이고 자세하게 보여주는 느낌을 줄 때 더욱 효과적이다.『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은 호기심 많고 발랄한 꼬마 여자아이 요츠바와 그주변의 어른들이 벌이는 일상이다. 커다란 시련과 모험도 없고, 분방한 상상력으로 세상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집에서 피자를 시켜먹고, 옆집 언니의 고등학교 축제에 놀러가고, 밤을 주우러 뒷산에 올라간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매일이 가장 즐거운 날"이다. 즐겁게 사는 아이, 그 아이를 억지로 깨우치기보다는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놔두고 함께 하는 다른 꼬마들, 어른들 역시 즐거움에 동참하게 된다.

그보다 좀 더 어두운 면들도 함께 하지만 마찬가지로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작품으로 『토끼 드롭스』(우니타 유미)가 있다. 독신 청년 다이키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가 그가 노년에 남겼다는 딸, 즉 친척관계로는 자신의 이모가 되는 6살 꼬마 린이 따로 지낼 곳이 없어지자 같이 살기로 하고 데려온다. 조숙하지만 여전히 꼬마인 린, 갑자기 아빠 아닌 아빠 역할을 하게 된 다이키치의 생활 속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이어진다. 그 생활 속에서 각자 가지고 있던 갑갑함에 대해 위로 받는다.

어린이들을 매개로 한 통찰
하지만 어린이를 중심에 놓는 작품들 가운데 가장 야심찬 기획은 역시 어린이 만화의 모습 속에 속 깊은, 거의 철학적 화두들을 가득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잘 버무려내며 성공하기 힘들기에 더욱 값지다. 어린이들의 사회와 그들의 대화를 통해 세상사일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면서도 그냥 어린이 탈을 쓴 어른들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고, 그 이전에 애초에 통찰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는, 『피너츠』(찰스 슐츠)가 있다. 늘 뭔가를 시도하지만 실패투성이인 찰리 브라운과 그의 이야기를 냉정하게 들어주는 루시의 심리상담 소꿉놀이, 자신만의 상상 속에 작가를 꿈꾸는 강아지 스누피, 나름대로 성숙한 편이지만 담요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라이너스 등 현대인의 여러 모습들과 아이들의 순박함을 마법처럼 적절하게 녹여낸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코믹스트립 형식으로 에피소드들이 진행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반세기가 넘도록 전 세계 독자들에게 즐거운 통찰을 던져주었다. 혹은 좀 더 피상적으로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도 최소한 귀여움으로 효용을 주었든지 말이다. 이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날카로운 정치・사회 풍자를 담아낸 코믹스트립 『마팔다』(끼노)도 비슷한 범주로 볼 수 있다. 어린이를 중심에 놓는 작품이라고 해서, 어린이 독자들도 보는 만화라고 해서 반드시 어린이의 전유물인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얻어내는 수준의 즐거움에만 머물고, 그 이상의 즐거움을 읽어낼 생각이 없을 때 놓치는 좋은 작품들이 얼마나 많을까 상상해보며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쪽이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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