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잡이 길잡이 [편집자의 시선 - 어린이·청소년문학 짚어보기]보이지 않을 뿐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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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6 20:55 조회 6,070회 댓글 0건본문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도는 아동청소년문학 분야에서 최고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아동문학의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 받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그 해에 나왔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아동청소년문학은 어떠한 길을 걷고 있는가?
아동청소년문학 시장이 점점 넓어지면서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아동문학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순수 창작보다는 학습과의 연계성에 주목하면서 기획 동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동문학보다 뒤늦게 시작된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소설 1호 작가’ 박상률의 『봄바람』으로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아동문학 시장이 과포화상태에 이른 2000년대 중반에 우후죽순처럼 싹트기 시작했다. 사계절출판사의 경우 아동문학이 한창 성장하던 1997년에 ‘1318문고’라는 청소년을 위한 본격 문학 시리즈를 선보였고, 200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계절문학상’이라는 청소년소설상을 제정해 청소년소설 작가들을 발굴해왔다.
이옥수, 신여랑, 김해원, 박지리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소설 작가들이 ‘사계절문학상’을 통해 등단했고, 다른 출판사들도 청소년소설 공모를 통해 김려령, 정유정, 구병모, 김혜정, 김선영 등 실력 있는 작가들을 배출해 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청소년소설’을 일반소설에 비해 뭔가 2프로 부족한 하위 범주의 문학으로 치부한다. 또 작가들 스스로도 ‘청소년’에 방점을 찍고 교훈과 계몽의 늪에 빠져 단지 그들의 현실을 소개하는 데 급급하거나 사건의 갈등과 모순을 너무나 쉽게 낭만적으로 봉합해 버리기도 한다. 최근 쏟아지는 작품들이 청소년생활 실태조사에 그치고 마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이대로 가다간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는 작금의 아동문학처럼 청소년문학 역시 자멸에 이를 수도 있다.
청소년소설을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은 김려령의 『완득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청소년소설을 청소년 독자가 즐기는 소설에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일반 독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완득이』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기보다는 조흔파의 『얄개전』을 뒤잇는 명랑소설이다. 결코 『완득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명랑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청소년소설, 이것이 바로 『완득이』만이 갖는 개성이다. 박지리의 『합체』는 계도사로부터 ‘키 크는 비기’를 전수받은 쌍둥이 형제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는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무협소설 성격의 청소년소설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럼에도 말이 되게 만드는 작가의 입담에 있다. 구병모의 『방주로 오세요』는 작가의 정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SF 성격의 작품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건은 상위 1%만을 위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방미진의 『괴담』은 작가의 특장인 호러와 추리라는 장르문학 성격이 제대로 구현된 작품이다. ‘연못에서 일등과 이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등이 사라진다’는 학교 괴담에는 경쟁과 질투에 사로잡힌 요즘 십대 아이들의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 동화는 어린이 독자가 읽는 책, 청소년소설은 청소년 독자가 읽는 책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아이가 됐든 어른이 됐든 상관없이 동화라는 장르, 청소년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즐겼으면 한다.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처럼 문학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뛰어난 성장소설이 됐든,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처럼 판타지물 냄새가 강하면서도 뻔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결말을 보여주든, 문학 본연의 매력인 읽는 재미가 돋는 책이 계속 나와 줬으면 한다.
최근에 나온 박지리의 『맨홀』은 기존 청소년소설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맨홀’로 상징되는 열일곱 소년이 겪는 삶의 아이러니는 다양한 상징으로 환유되며, 소년의 독백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세상과의 타협에 실패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황량한 내면 묘사는 우리에게 지독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몽환적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작가는 『맨홀』에서의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부조리한 삶, 불가해한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도종환 시인은 「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외친다.
……무너진 것은 /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 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만은 없다 / 나는 가겠다 단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작가들은 오직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출판사와 편집자는 시장 논리에 휘말리지 않는 본연의 뚜렷한 줏대로, 장기 침체의 늪에서 아동청소년문학이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열어가야 할 때다.
아동청소년문학 시장이 점점 넓어지면서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아동문학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순수 창작보다는 학습과의 연계성에 주목하면서 기획 동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동문학보다 뒤늦게 시작된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소설 1호 작가’ 박상률의 『봄바람』으로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아동문학 시장이 과포화상태에 이른 2000년대 중반에 우후죽순처럼 싹트기 시작했다. 사계절출판사의 경우 아동문학이 한창 성장하던 1997년에 ‘1318문고’라는 청소년을 위한 본격 문학 시리즈를 선보였고, 200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계절문학상’이라는 청소년소설상을 제정해 청소년소설 작가들을 발굴해왔다.
이옥수, 신여랑, 김해원, 박지리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소설 작가들이 ‘사계절문학상’을 통해 등단했고, 다른 출판사들도 청소년소설 공모를 통해 김려령, 정유정, 구병모, 김혜정, 김선영 등 실력 있는 작가들을 배출해 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청소년소설’을 일반소설에 비해 뭔가 2프로 부족한 하위 범주의 문학으로 치부한다. 또 작가들 스스로도 ‘청소년’에 방점을 찍고 교훈과 계몽의 늪에 빠져 단지 그들의 현실을 소개하는 데 급급하거나 사건의 갈등과 모순을 너무나 쉽게 낭만적으로 봉합해 버리기도 한다. 최근 쏟아지는 작품들이 청소년생활 실태조사에 그치고 마는 것도 아쉽기만 하다. 이대로 가다간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는 작금의 아동문학처럼 청소년문학 역시 자멸에 이를 수도 있다.
청소년소설을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은 김려령의 『완득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청소년소설을 청소년 독자가 즐기는 소설에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일반 독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완득이』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기보다는 조흔파의 『얄개전』을 뒤잇는 명랑소설이다. 결코 『완득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명랑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본격적으로 보여준 청소년소설, 이것이 바로 『완득이』만이 갖는 개성이다. 박지리의 『합체』는 계도사로부터 ‘키 크는 비기’를 전수받은 쌍둥이 형제가 계룡산에서 도를 닦는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무협소설 성격의 청소년소설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럼에도 말이 되게 만드는 작가의 입담에 있다. 구병모의 『방주로 오세요』는 작가의 정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SF 성격의 작품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건은 상위 1%만을 위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방미진의 『괴담』은 작가의 특장인 호러와 추리라는 장르문학 성격이 제대로 구현된 작품이다. ‘연못에서 일등과 이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등이 사라진다’는 학교 괴담에는 경쟁과 질투에 사로잡힌 요즘 십대 아이들의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 동화는 어린이 독자가 읽는 책, 청소년소설은 청소년 독자가 읽는 책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아이가 됐든 어른이 됐든 상관없이 동화라는 장르, 청소년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즐겼으면 한다.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처럼 문학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뛰어난 성장소설이 됐든,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처럼 판타지물 냄새가 강하면서도 뻔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결말을 보여주든, 문학 본연의 매력인 읽는 재미가 돋는 책이 계속 나와 줬으면 한다.
최근에 나온 박지리의 『맨홀』은 기존 청소년소설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맨홀’로 상징되는 열일곱 소년이 겪는 삶의 아이러니는 다양한 상징으로 환유되며, 소년의 독백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세상과의 타협에 실패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황량한 내면 묘사는 우리에게 지독한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몽환적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작가는 『맨홀』에서의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부조리한 삶, 불가해한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도종환 시인은 「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외친다.
……무너진 것은 /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 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만은 없다 / 나는 가겠다 단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작가들은 오직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출판사와 편집자는 시장 논리에 휘말리지 않는 본연의 뚜렷한 줏대로, 장기 침체의 늪에서 아동청소년문학이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열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