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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읽어볼 만화면] 만화로 보는 전쟁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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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30 16:38 조회 6,3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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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만화연구가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을 상상하고 피해를 고려하며 조건을 견주어보는 고등 인지 능력, 서로의 강점과 약점들을 타협해내는 소통 능력들이 도저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한쪽 상대방 혹은 여러 당사자들의 과도한 욕심이든, 복합적으로 비극적인 불통의 축적이든, 결국 대화와 거래에 의한 해결이 무산되고 무력의 충돌이 일어난다. 작게는 미숙한 동네 꼬마들끼리의 놀이터 다툼 같은 것도 있지만, 크게는 바로 각자 사회 단위의–인종이든, 국가든, 특정 지역이든, 독재정권에 맞서는 시민 일반이든–명운을 걸고 서로 살상을 전제하는 싸움의 방식인 전쟁이라는 것이 있다.
전쟁은 큰 단위에서 이뤄지며 살상을 전제하는 만큼 가장 극단적인 폭력 행위이자,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다. 그렇기에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배경이 되어줄 수 있는데, 대중 서사문화에서는 특히 액션 활극 또는 험한 세상에서도 어떤 인간적 따뜻함이 싹튼다는 식의 두어 가지 방향에서 많이 다뤄지곤 한다(종종, 함께 결합해서). 이것은 가장 편안하게 오락성을 부여해주는 방식인데, 목숨을 건 전투라는 박진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은 살아있다는 식의 적당한 감성적 만족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전쟁의 오락성을 최대한 살려내는 방식에 슬슬 물릴 것 같을 때는, 전쟁의 현실적 광경들을 직면하며 건조한 충격을 주거나, 전쟁이라는 폭력에 대해서 좀 더 차분하게 무언가를 숙고하도록 만드는 식의 상당히 다른 방식의 재미를 추구해보는 것도 좋다. 영화로 치자면 <풀 메탈 자켓> 전반부의 빠르고 경쾌한 훈련소의 인성파괴와, 후반부의 지루하고 건조한 전쟁 현장의 인성파괴의 접근법 차이다. 전쟁에 대해서 주류적 오락성과 약간 다르게 접근하는 만화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판타지인데 묘하게 현실적인
네이버에서 18금 등급으로 연재중인 웹툰 <방과 후 전쟁활동>(하일권)은 기본적으로는 SF판타지물, 그것도 꽤 전형적인 설정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외계 물체들이 세상 전역에 대규모로 출몰하고, 그것은 가만히 있기도 하고 사람을 덮쳐 죽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가지고 대항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여기서 갑자기 대단히 현실적인 방향으로 틀어버리는데, 역부족인 상태에서 추가 병력이 필요하여, 고등학생들을 군인으로 동원한다. 특출한 재능의 고등학생 주인공이 활약한다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육군 신병훈련소로 사실상 용도변경하고, 학생들에게 군 활동을 하면 대학 입시 가산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반 단위에서 소대와 중대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딱히 어떤 실감이 없는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신병훈련을 거치고 부대에 투입된다.
이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묘사되는 전쟁의 모습은 바로 갑작스레 끌려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계속 있지만 자신에게 닥칠 때까지는 이상하게 실감이 가지 않는 무엇인데, 얼떨결에 갑자기 전쟁의 한복판에 있게 된다. 그저 떠들고 서로 소집단을 만들고 반목하고 따돌리고 또 친하던 어떤 일상에서, 갑자기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린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쟁에 대한 일상과 긴장, 즉 해소된 적 없는 정전 상태와 오래된 일상의 평화와 그 사이에 있는 징병제 모습에 대한 묘하게 현실적인 묘사가 된다.
엉뚱한 설정에서 현실감을 자아내는 또 다른 방법은 우화다. 『Cat Shit One』(고바야시 모토후미, 길찾기)은 베트남전에서 작전을 수행한 어떤 특수부대의 활동을 마치 대역 재연이 일부 들어간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고 자세하게 따라가며 묘사해낸다. 하드보일드한 경험 많고 우직한 다인종 병사들이 효율적으로 미션을 진행하는 이야기는 적절한 거리감을 주어 개별 캐릭터보다는 전쟁의 상황에 눈길을 주도록 한다. 다만, 모든 병사들이 의인화된 귀여운 동물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특징이다. 다리 짧고 털이 보송보송한 토끼, 원숭이, 고양이, 개들이 정밀하게 고증된 군사 장비를 짊어지고 그럴듯하게 재구성된 베트남전 상황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동물을 이용함으로써 희화화한 것도 아니다. 밀리터리물에서 흔히 나올 법한, 군국주의에 대한 느슨한 동경 같은 단점조차 엿보일 정도니 말이다. 이런 묘한 거리감에서, 오히려 전장의 현실감이 전달된다.

액션 없는 전쟁
『앨런의 전쟁』(에마뉘엘 기베르, 휴머니스트)은 번진 수채풍 선그림(‘잉크 워싱’)으로 그려진 제2차 세계대전 전쟁만화인데, 전쟁 하면 떠오르는 전투 장면들이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전투로서의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맥락에 놓인 한 병사의 일상적 삶을 반추하면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을 그저 배경그림으로 걸어놓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주인공인 미군 병사 앨런은 전쟁의 현장에 있고, 그 속에서 전우들과 우정을 나누고, 로맨스도 싹트며, 세상을 보는 안목도 점차 성숙해진다. 늙은 앨런이 자신의 젊은 나날을 회고한 바를 기록하듯 작가는 담담히 전쟁 속에서도 이뤄졌던 그 일상과 성장의 과정을 묘사해낸다. 과장된 인간드라마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사람은 어쨌든 살아간다는 것을 섬세한 디테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참혹한 광경, 긴박한 상황들을 앨런이라고 겪지 않았을 수 없고 작품에도 그런 상황들에 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보다 앨런이 회고하고 싶은 순간은 그럼에도 일상적이었던 어떤 은은한 순간들이다.
전쟁에서 액션 이외의 부분에 주목하는 다른 방식은, 전쟁 이후 상황에서 전쟁의 상흔과 또 다른 불씨들이 불안하게 남아있는 상황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전지대 고라즈데』(조 사코, 글논그림밭)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이 휩쓸고 간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찾아간 작가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도대체 전쟁이란 언제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상대편의 모두를 완전히 죽여 없애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언젠가 반대로 전쟁을 일으켜 피의 복수를 하지 않을까. 소위 ‘인종청소’라는 기만적 용어로 자행된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의 오랜 혈투가 그런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일종의 ‘안전지대’인 고라즈데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내전과 끔찍한 살상의 기억, 그리고 전혀 매듭지어진 것이 없다는 인식들과 여전히 꿈틀대는 폭력과 억압의 씨앗들은 독자들을 겹겹이 착잡하게 만든다. 종교로, 인종과 문화로, 그것이 반영된 물질적 계급차이로 반목과 보복을 거듭해온 여러 분파들이 결국 90년대에 서로 정치적 지배권을 차지하며 상대를 대량 학살했다. 갈등을 해결하지 않았으나 힘으로 눌러서 잠시나마 ‘평화’를 유지한 독재자 티토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도 양가적이다. 이 작품은 이런 식의 전쟁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해서 끝나지 않는지 다양한 사람들의 엇갈리는 목소리와 견해, 각자의 진솔한 사연들을 보여주며 모자이크를 그려나간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평화와 미국 청바지를 꿈꾸지만, 그럼에도 모든 응어리는 그대로다.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식의 원론적 평화주의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는 세상임을 한 순간도 망각해서는 안 되겠지만, 하다못해 전쟁이란 것이 신나는 액션이나 한번쯤 해봐도 되는 정치 수단 따위로 입에 오르내릴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쟁 만화를 읽더라도 좀 더 다양하게 읽는 정도는 우선 누구나 간단하게 시작해 볼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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