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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그림책 읽기 +] 그림책에 대한 오해와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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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5-31 18:26 조회 7,16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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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교사와 학부모, 혹은 편집자나 기획자들이 그림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매체나 강연 등을 통해 피력하곤 합니다. 그 의견들 중 그래도 교육계에 계시는 분들의 의견이 좀 더 현실적인 의미에서 많이 수용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의미란, 글자를 가르치고 지식을 전달하거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도 하고 행동을 교정할 목적을 가졌다는 뜻에서 주로 부모나 교사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혔더니 아이가 이렇게 변하더라, 아이 발달이 이 정도면 어떤 책이 좋다더라, 그림책을 읽고 나니 내 삶도 이렇게 바뀌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림책의 구조나 형식, 내용 등에 관한 분석적인 글도 있습니다. 대개 편집자나 그림책 작가들이 그림책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요구되는 정보들입니다. 번역서의 경우는 그림책을 읽어 내는 방식에다 문학 연구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분석을 적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연구자들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연재 원고를 준비하면서 이 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일까, 목적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었습니다. 형식이나 구조에 관한 고민 이전에 그림책을 만나는 독자 입장을 반영할 수는 없는지,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지가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그림책을 보는 제 시선에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의 그림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야기 그림책, 서사가 있는 문학 그림책을 말합니다.)

 

그림책에 관한 몇 가지 오해

그림책은 유아용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림책의 1차 독자가 유아들인 까닭은 그림책 안에서 그림의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읽어 주는 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처음 보게 되는 것은 그림입니다. (책은 읽는 것인데 책을 보다라고 하기 시작한 것도 책에 그림이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런 유아들에게 어떻게 무엇으로 그린 그림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림에 이야기가 있는가, 즉 서사 담화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는지에 주목합니다. 유아들이 서사니 담화니 하는 말을 알 리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그림을 보여 주면 틀림없이 눈을 돌리거나 무관심합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아이들의 경험에 비추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어야 합니다. 조금 더 복잡한 상황이 담긴 그림은 더 큰 아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림책을 읽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글을 읽거나 쓸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림책 읽기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읽어낸다는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림 속 이야기를 통해 문학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재미를 알게 된 아이는 다음엔 이야기를 더 세련되게 그림으로 표현한 책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유아기에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다면 희망적입니다. 그 기억은 글자를 다 배운 아이들에게도 소중합니다.

공공도서관에 가면 그림책은 유아용으로 분류되어 있고 거의 유아용 서가에 꽂혀 있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는 그림책을 따로 두거나 주제별로 분류해서 수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글을 깨우친 아이들이 그림책 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독서 단계를 정해놓고 글 밥이 많은 글 책으로 옮겨가기를 원합니다. 아이들도 그런 마음일까요? 글자를 알더라도 문맥을 파악하는 훈련은 더 필요합니다.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글자와 함께 보이는 그림입니다. 초등학생에게서 그림책을 빼앗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림책을 읽는 3학년 학생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의 독서 교육은 단계, 연령 나누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강요된 단계, 수준별 독서가 이미 나누어 놓은 학제에 따라 학년별 책을 추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거기에 독서라는 것이 과제, 수행평가 항목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기는 더 이상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책에서 점점 멀어지게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이미 책을 떠난 수많은 청소년들에게도 그림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글을 읽을 수 있거나 그렇지 않은 것과 관계없이 문학을 처음 만나고 발견할 수 있게 하는 데 그림책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그림책 읽기의 효과를 잘 알지 못하는 부모님들도 함께 읽었으면 합니다. 그림책은 유아에서 성인, 노년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이면 좋다?

최근 등장하는 그림책의 그림들은 완성도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젠 수준급의 필력을 갖춘 화가들이 아니면 그림책 작가로 나서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인들의 그림에 대한 안목도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보는 눈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안목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취향이 한껏 개입되는 부분입니다. 해서 사람마다 좋아하는 그림도 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취향이 그림책의 그림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이들이 그림책을 볼 때는 흑백인지, 색연필인지, 유명한 화가인지 신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야기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재료와 기법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 독자들이 인식하지 못할 뿐 그림에 스며들어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순수 회화일 수도 시각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려진 책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야기 속 한 순간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이야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의 역할입니다.

그림의 이야기를 읽어 내는 즐거움은 그림책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화려한 기교와 다양한 재료로 정성껏 그린 아름다운 그림에서 아무 이야기도 읽어 낼 수 없다면, 그런 그림들을 묶었다고 그림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담고 글과 상호작용하면서 앞뒤의 장면들과 연결하는 방식을 계산한 그림들의 묶음이라야 합니다.

그림책의 그림에 대한 안목을 갖는다는 것도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에 대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이야기에 대한 감각은 천부적입니다. (구매자 입장에서)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이라도 아이들은 한 번 읽어 보기는 하겠지만 말 없는 그림에는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훈련된 감각은 나중에 문학작품을 골라보는 데도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림책은 그림+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책이 글과 그림으로 되어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무슨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까요? 그 두 가지 외에 그림책을 구성하는 것이 또 있는 걸까요?

그림책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이라는 것입니다. 그림책이 그림과 글을 이라는 매체에 담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넣은 낱장의 종이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정돈하여 묶어 놓아야 비로소 가치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게 책이 되어야 글도 그림도 제 몫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읽을 때는 대부분 그림에 집중하게 됩니다. 책을 한 장 한 장 손가락으로 넘기면서도 자기가 만지고 있는 책의 물성은 의식하지 않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그 행위가 낱낱이 떨어진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하는 각각의 이야기들을 연결하고 통합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종이 위에 정지 화면으로 인쇄된 그림들은 독자가 책장을 넘기는 행위의 결과

로 움직임이 생깁니다. 책장과 책장 사이의 이야기가 비로소 이어집니다. 물리적으로는 불연속적인 것을 책장을 넘기며 읽는 동안 정신적으로 연속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끊어진 그림들이 연결되면서 움직임을 감지하게 되면 그것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끊어진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연결됩니다.

가장 빨리 넘어가는 책장은 영화입니다. 1초당 24프레임, 24장의 끊어진 그림을 1초 동안 넘기는 것, 그것이 1,440장이 되면 1분이 됩니다. 그림책은 좀 더 느슨한 영화라고 보면 됩니. 책장을 넘기는 사이의 시간 간격을 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주인공은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였는지, 앞뒤 장면 사이의 이야기를 유추해서 연결 짓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사고가 확장됩니다. 영화를 볼 때는 간극이 없다시피 하니 추측이나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림책을 보는 것은 빨리 넘어가는 필름(영화)을 볼 때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기법 중 몽타주 기법을 그림책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몇 개 장면을 의도적인 순서로 배열했을 때 하나의 서사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몽타주 기법과 그림책에 관한 것은 나중에 따로 다룰 것입니다.

글보다 그림이 더 중요하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림이 주가 되어야 한다거나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림책이니까 당연히 그림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그림이라면 글보다 중요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책도 글 책도 시작은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그림책 작가들은 처음부터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야지하고 시작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가 먼저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가장 적절한 것으로 선택한 형식이 바로 그림책인 겁니다.

한편, 그림책의 글도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그림과 마찬가지입니다. 글은 그림책의 일관된 서술을 위해 사건과 사건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독자들이 주의를 기울일 방향을 제시해 주고 해석의 실마리를 던져 주기도 합니다. 그림과 글이 함께 나올 때 글자를 알고 있는 독자들은 책을 펼치는 순간 글을 먼저 읽게 됩니다. 따라서 글이 놓일 자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불필요한 글은 최소한으로 줄이되, 화면의 가장 적절한 자리에 놓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거기에 활자체, 활자 크기, 활자들의 관계, 활자 영역 전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 등을 유념해야 합니다. 특히 문단의 경우, 글을 모르는 독자라면 커다란 검은 덩어리로 인식될 수도 있으므로 어디에 자리를 잡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독자들이 그림을 읽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에서는 글도 그림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요소로서 같은 비중을 가집니다. 글은 읽어 주게 되는 만큼 유아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여유로운 형태를 갖춘 글이라면 읽어 주었을 때 듣는 사람이 안정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과 그림의 관계를 볼 때 그림이 글에 나온 상황을 똑같이 재현 반복함으로써 효과적일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글에는 없는 상황, 즉 앞이나 뒤에 오는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이야기의 속도를 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글에 없는 상황이면서 다른 장면을 그릴 필요조차 없게 만드는 그림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논쟁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면에서 실상 눈으로 보고 있지만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덩어리로 인식하는 유아들은 하나의 시각 이미지로서 보게 됩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독자라면 글을 읽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글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상황이 이미지로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보는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림책에서의 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관련된 그림책과 함께 예시를 들어 별도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림책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동의하시는 분도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도 있겠지요. 이것 말고도 그림책에 대한 의문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해결점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편집부로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계속 질문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준비할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그림책 몇 권을 정해서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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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뒤늦게 그림을 배우고 좀 게으르게 일러스트레이터 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요구에 따 라 주로 학습물과 전집 일을 했습니다. 그림책을 만 들고 싶어서 그림책이란 이름만 붙어 있으면 어떤 강좌든 쫓아다녔습니다. 아직도 제 그림책은 완성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다니며 배운 것을 토대로 지금은 좀 더 나은 그림책을 고르고 소개하는 일(학교 도서관저널, 동아일보)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 들이 그림책을 고르고 읽어 내는 일에 혼란스러울 때 약간의 도움이 되었던 것만으로 이 무모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을 후회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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