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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청소년성장소설의 최근 경향 - ‘성장’보다 ‘이야기’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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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31 17:09 조회 12,27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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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다
최근의 문학판은 청소년이 점령했다. 청소년 작가군이 문단을 대거 휩쓸었다는 뜻이 아니라, 청소년문학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최근 2~3년 사이에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그 배후에는 여러 가지 사회학적 현상이 뒷받침되어 있지만,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청소년문학상 공모제이다.

출판계는 ‘독자로서의 청소년’을 ‘발견’하고 공모제를 통해 청소년문학 작가군단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마침 독자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 그동안 친절한 논술용 다이제스트와 오래된 필독도서 목록에 어지간히 질려있던 청소년들은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어른들이 건네는 이야기가 과연 ‘나’의 이야기인지 의심하던 청소년들은 이제 제법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대형서점에 별도로 마련된 청소년문학 코너가 그걸말해주고, 그 주변에서 열심히 책을 고르는 아이들이 그걸증명하고 있다. 청소년문학상 공모에 도전하는 신인 작가들이 악착같이 청소년에게 귀를 열고 마음을 기울인 결과,



그들과 이야기하는 법을 조금은 터득할 수 있게 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세계 1위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문학은 ‘성장소설’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용어와 장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이고, 성장소설은 성장을 중심 주제로 서사를 끌어가는 소설이다.
청소년문학이 반드시 성장소설일 수만은 없고, 성장소설이 반드시 청소년문학일 리도 만무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혼돈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용어가 종종 눈에 띈다.

아동문학이 오랫동안 어린이의 교육을 담당해온 것처럼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의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이 ‘성장’을 부르짖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성장을 목표하고 있으며 이는 ‘각성’, ‘성찰’, ‘사유’ 등의 의미로 치환된다. 그러나 청소년문학에서 보여주는 성장은 거칠게 말하자면 ‘어른이 된다는 것’ 정도
에 머물러 있었다. 청소년의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고,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일 뿐이며, 세상이 어떤 곳인지 깨닫고 꿈을 키우며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가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청소년문학은 성장소설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2007년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완득이』 이후 청소년문학의 발전과 진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완득이』 역시 전형적인 성장서사를 갖고는 있지만,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로 청소년문학의 양상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본고에서는 2008년 공모를 통해 2009년에 출간된 문학상 수상 작품인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2009년 3월), 최민경의 『나는 할머니와 산다』(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2009년 7월), 박선희의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제3회 블루픽션상, 2009년 10월)를 중심으로 최근 청소년문학의 경향을 살피고자 한다. 이 작품들에 앞서 2008년
도에 출간되었던 수상작들에 대해서는 졸고 「‘성장’ 강조하는 청소년소설의 성장 가능성」(『어린이책 이야기』, 2009년 봄호, 240~255쪽 참조)을 통해 살펴본 바 있다. 여기서는 그 이후 작품들을 중심으로 논하기로 한다. 아직까지 청소년문학은 문학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수상작들의 경향을 살피는 작업이 최근 청소년문학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은 대부분 매우 잘 된 소설들이다. 모두 신인들의 작품이지만 캐릭터, 문장, 구성, 주제, 소재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작가와 작품의 성과를 분석하고 평가하기보다 작품에 나타난 특징들을 살펴 청소년 성장소설의 최근 경향을 파악하려고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개별성보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언급하게 됨을 미리 밝혀둔다.



2. 청소년 ‘나’는 인문계 고등학생
흔히 청소년문학을 ‘1318문학’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청소년문학의 선두주자라 할 만한 사계절출판사의 청소년문학선
이름은 아예 ‘1318문고’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청소년 독자의 나이를 만 13세부터 18세까지
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학제로 상정하였을 때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까지를 일컫는 셈이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인 13세의 청소년과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의 청소년을 하나로 묶기에
는 이들의 간격이 너무 넓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초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입학을 앞둔 6학
년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려주는 것과 같다. 정신적 신체적 차이가 지
나치게 벌어진다. 6-3-3제의 단선적인 학제를 탓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춘기의 시작
부터 완전한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를 청소년이라 규정한다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대학생
이상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청소년’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이 겨냥
하는 독자가 대부분 고등학생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2009년도 수상작
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교 1학년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 ‘나’, 『나는 할머니와
산다』의 ‘나’인 은재,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의 두 주인공 강호와 도윤도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2008년도에 출간된 수상작 『완득이』(창비), 『하이킹 걸즈』(비룡소), 『직녀의 일
기장』(현문미디어), 『열일곱 살의 털』(사계절), 『꼴찌들이 떴다!』(제2회 블루픽션상, 2008,
비룡소) 역시 주인공들도 모두 고등학생이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3인칭 소설인 양호문의
『꼴찌들이 떴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 ‘나’가 화자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 1~2학년인 점은 우연이기보다 하나의 현상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이와 같이 편중된 현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독자의 문학적 성숙도를 고려할 수 있겠다. 작가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포
독자를 설정하고 작품을 쓰게 된다. 누가 읽을 것인가.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을 독자로 설정할 때
작가에게는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말하자면 고등학생은 ‘문학적으로 대화하기’가 더 수월한 상대라는
말이 된다. 인생과 인간에 대한 통찰을 필요로 하는 문학의 본질은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에게 더 가까이
닿게 된다.


둘째, 부모의 간섭과 통제가 중학교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에서는 중학생 정도가 되어도 부모나 교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
만큼 어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기를 쓰기 때문에 가장 많은 갈등에 부딪히는 시
기이기도 하다. ‘중2병’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로 사춘기의 정점에 오르게 되는 것도 중
학교 시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를 지나 고등학생은 되어야 부모의 통제로부터 어느 정
도 놓여나고 비로소 ‘나’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진다. 초등학생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대한민
국 중학생의 위상은 대학 입시가 코앞인 고등학생보다도 자유롭지 못하다. 독자로서의 중
학생도 마찬가지다. 중학생을 독자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서 가출을 하고, 사회를 비판하
고, 임신과 낙태를 고민하고, 제도권에 대항하고, 심지어 자살을 하기에는 부모의 눈초리
가 따갑다. 독자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면 돌파에 한계가 생긴다. 그러나 현실
적으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나 모두 겪는 일이다. 오히려 중학
생에게 더 빈번한 일일지도 모른다.

셋째, 입시생인 고3도 독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상작이 모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좀처럼 3학년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드물게 『꼴찌들이 떴다!』에서 고3 남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실업계 학생들의 왜곡된 실습 경험과 농촌 현실들이 어우러
진 이야기다. 모두가 인문계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할 때 실업계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린
작품이라 주목을 받았다. 결국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역시 청소년문학의 독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직녀의 일기장』이 고등학교 졸업식까지를 시간적 배
경으로 삼고 있지만 1~2학년과 다를 것 없는 생활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용감(?)한 설정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본격적으로 문학을 즐길 수 있는 고등학생을 독자 대상으로 하되 대학입시에 직면
한 고3을 제외하면, 작가들이 선택하게 되는 일차적 내포독자는 생각과 행동이 비교적 자유
로운 고등학교 1~2학년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의 서평 등을 기웃거려보면 이러한 추측들이 실제 독자들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의문이다. 청소년문학 작품에 대한 고등학생, 중학생, 학부모, 교사, 일반
인 등 다양한 독자들의 서평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아동문학
상 공모 수상작들을 대부분 고학년 동화가 차지하자 몇몇 출판사에서는 저학년과 고학년으
로 응모부문을 나누어 공모, 심사하기로 했다. 청소년문학도 중학생 대상 소설과 고등학생
대상 소설이 분류되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일반적으로 아동청소년문학의 독자
들은 주인공을 동일시하게 되는 첫 번째 조건으로 나이나 학년을 고려한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청소년문학의 활황에 비해 중학생들이 읽을 작품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편중된 주인공의 배경 또한 다양하게
확장될 필요가 있다. 실업고등학교, 정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등 다양한 특목고, 대안학
교 등 갖가지 형태의 학교가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또,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학교 바깥의
청소년에게도 시선을 돌려야 마땅하다.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다수의 청소년에게만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소외된 비주류의 청소년에게 무관심의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물 설정과 관련한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수상작들이 모두 1인칭 주인공을 화자로 서술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도에 출간한 수상작 이전의 2008년도 수상작들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주인공 청소년과 동일시되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며
그들의 마음으로 고민하려면 아무래도 1인칭 시점이 유효할 것이다. 독자로서도 친근감 있
는 작품이 되어 읽기에 편할 수 있다. 그러나 3인칭으로 바꾸어도 작품의 효과가 별반 달라
지는 게 없다면 1인칭의 설정은 무의미하다. 청소년문학이라고 일단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우선시하여 작품의 화자를 1인칭으로 설정할 게 아니라, 작품 자체의 문학적 필
요와 적정성을 먼저 따져볼 일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인문계 고등학생 주인공의 1
인칭 시점 소설로 편중되는 현상은 극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 영원한 테마, 가족?
청소년문학의 테마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문제아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들
의 일탈과 방황,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중압감, 친구관계로 인한 갈등, 장래와 현실에 대
한 괴리,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실제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러한
테마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러한 다양한 테마들이 결국은 가족 이
야기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2008년도의 『완득이』는 완득이와 담임 똥주가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갈등의 축은 완득
이의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엄마라는 가정사가 쥐고 있었다. 『하이킹 걸즈』는 여로형 소설로
실크로드에서 도보여행으로 교화과정을 갖게 되는 소녀들의 이야기인데 역시 중간 중간 등장인
물들의 그렇고 그런 가족사가 끊임없이 끼어든다. 두발 단속 폐지를 주장하고 나온 『열일곱 살의 털』
역시 오랜 세월 집을 나가있던 아버지가 어느 날 돌아오자 서먹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가 차츰
친근한 부부로 전환되는 것으로 결말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제법 풋풋한 여고생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직녀의 일기장』에서도 해체 직전의 가족사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이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가족에 대한 담론은 전혀 새롭지 않다. 다만 불안정한 가
족이라는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따뜻한 마음이 진
하게 우러날 뿐이다. 어째서 굳이 이렇게 가시적으로 불우한 가정환경을 만들어놓고 위로하
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비단 이러한 위기의 가족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집착으로 보일 만큼 ‘가족 이야기’에 대한 비중이 크고, 가족의 행복
에 대한 추구가 강렬하다. 수상작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청소년
의 삶이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민감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가족과 무관
한 개인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문제아의 뒤에 문제부모가 있다는 식의 식상한 공식이 아니
더라도 가족의 서사는 때로 작품의 본래 테마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강하게 나타난다. 이혼
의 급증으로 불안정한 사회의 가족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인지 의문이다.

가족이 화두가 되는 작품들은 2009년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심사위원들에게 ‘미스터
리, 호러, 판타지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은 『위저드 베이커리』가 갖는 기상천외
한 마법사의 빵 이야기도 판타지 요소를 한 껍질 벗기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족 서사가 중심
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자주 가던 단골 빵집으로 숨게 되면서 위저드 베이커리의
판타지를 실컷 경험하게 된다. ‘나’는 아버지와 새엄마 배 선생, 그녀의 딸 무희를 둘러싼 성
추행 사건에 휘말려 도망치게 되었지만, 결국 성추행의 진범은 아버지라는 충격적인 사실
을 목격한다. 주인공 ‘나’의 말 더듬는 습관, 빵을 자주 사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빵집으로
도망치게 되는 계기, 마물에게 당하는 고통 등 작품의 중심 사건들은 모두 주인공의 오래된,
그러나 현재까지 이어지는 절박한 가족서사로부터 기인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낯설
고 신기한 빵집의 판타지서사가 주인공의 가족서사와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한 채 작품은
가족서사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는 빙의를 소재로 한 가족소설이다. 죽은 할머니의 혼이 열여섯 살 여
고생인 ‘나’에게 들어오게 되는데, 빙의를 통해 입양 가족의 갈등과 해소를 다루고 있다. 본
격적으로 가족 자체를 테마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 당사자와 그 남동생이 입양되어 온
아이들이고, 할머니에게는 외국으로 입양 보낸 딸이 있었다는 다소작위적인 설정이지만 작가는
탁월한 솜씨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1인칭 화자임에도 작중 인물들과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여 신선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전한다.
그러나 입양을 둘러싼 눈물겨운 사연이 ‘가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이끌어내는 데까지 닿지 못한 점
은 아쉽다.

『파랑치타가 달려간다』는 ‘부류’가 다른 아이들 강호와 도윤의 1인칭 교차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부류’를 구분짓는 도윤 엄마로 인해 상처받은 강호는 도윤과 거리를 두며 두 아이의
갈등이 깊어지지만 마침내 밴드부 활동으로 갈등을 종결하게 된다. 가출을 일삼고 주유소에서
일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에 가담하는 강호와 엄마의 철저한 감시 아래 모범생으로 살아가는
도윤은 둘 다 나름대로의 가족 갈등에 시달린다. 가출, 폭주, 우정, 방황, 일탈, 공부, 밴드부 등 청소년
들의 관심 코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면에 가족 갈등을 깊게 내세우고 있다. “어제,
세 번째 엄마가 집에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밴드부 공연장에 가족이 기꺼이 와주는
가족 화해 무드로 마무리된다. 가족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님에도 가족서사를 전후로 배치함으로
써 영화에서 자주 봄직한 신파조의 결말이 되고 말았다.

수상작은 아니지만 배유안의 『스프링벅』(2008, 창비)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생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연극을 통해 가족 갈
등이 마무리된다. 형인 성준은 엄마의 계획으로 과외 선생에게 수능 대리시험을 치르게 하
고 그 죄책감에 끝내 자살을 한다. 주인공 동준은 이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되는데, 작품 중간
중간에 연극 연습 장면이 삽입되고 연극의 주제는 작품의 주제를 대변한다. 어른들의 욕심
과 아이들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려 한 흔적이 분명하지만, 가족서사가 지나치게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2009, 창비)은 아이들 사이의 왕따와 미묘한 갈등 관계에 천착해
자살 사건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그러나 역시 가족서사의 비중이 만만치 않게
차지하고 있다. 문학의 매력이 일상의 탈출에 있다면, 가족에게서 쏙 빠져나와 ‘우리들만의
세계’에 푹 빠진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가족에 대한 강조로
인해, 청소년의 시선이 아닌 어른의 시선을 자꾸만 감지하게 된다. 청소년문학이 가족을 버리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4. 세상과 맞짱, 뜰까 말까
2008년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연일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무엇보다 주목을 끈
것은 10대 촛불소녀였다. 그들은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 회원을 모으고, 집회 현장에서 각
종 봉사활동을 하고, 공연을 펼치고, 무엇보다 열렬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목청껏
외쳤다. 그 즈음 『열일곱 살의 털』의 주인공 일호는 두발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다. 폭력교
사의 태도에 화가 치민 일호는 모범생이자 이발소집 손자임에도 두발자유를 외치며 학교를
향해 피켓을 든다. 『꼴찌들이 떴다!』의 공고 3학년 재웅, 기준, 호철, 성민이는 늦어지는 월
급을 받기 위해 천마 회사 측과도 맞짱을 뜨고, 추동리 주민들과 한편이 되어 조폭들과도 맞
짱을 뜨고야 만다.


“아니, 그럼 우린 돈 한 푼 구경 못해요?”
“돈이 뭔 필요가 있냐?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다 하는데! 돈을 줘도 이 산골에
어디 가서 쓸래?”
“그,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117쪽)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러는 게 어딨어요?”(118쪽)
그때 재웅이가 소리치면서 앞을 막고 서 있던 덩치를 힘껏 밀쳤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쇠파이프를 주워 들고 이장을 향해 뛰어갔다. 기준이와 세연이
도 각목을 들고 뒤따랐다. (271쪽)

그들은 그저 어른들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
고, 정의의 편에서 맞서 싸울 줄도 안다. 그러나 현실이든 소설 속이든 어떤 투쟁도 성공하
지 못한다. 촛불소녀들이 들었던 촛불은 막강한 권력과 학교 시험으로 꺼져버렸고, 일호의
두발자유 투쟁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활약으로 바통 터치를 했으며, 공고 3학년 꼴찌들의
맞짱은 마음씨 좋고 훌륭한 어른인 회사 사장이 해결했다.

그런가 하면,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의 인물들은 제법 끝까지 세상과 맞짱을 뜨겠다는 태세
다. 현실이었다면 분명 촛불소녀였을 것만 같은 진이경은 청소년문화기획단에 참여하고자
밴드부를 구성하여 교장과 담판을 짓는다. 결국 학교 안에서의 밴드부는 무산되었으나 ‘달
리는 파랑치타’는 비록 오프닝이지만 공연을 감행한다.

한창 온몸의 피가 끓는 시기, 10대. 한편에서는 청소년 범죄가 들끓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불
의의 세상과 맞짱 뜨고자 주먹을 움켜 쥐고 눈에 힘을 준다.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기에 청
소년들의 맞짱은 실패로 돌아가기 일쑤다. 촛불소녀도,『열일곱 살의 털』의 일호도,『꼴찌들
이 떴다!』의 꼴찌들도, 『파랑치타가 달려간다』의 파랑치타들도 하나같이 세상과 맞짱 떠서
이겼다고 자랑할 수 없는 처지다. 다만, 맞짱 뜬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후련하게 세상
과 맞짱 뜨고 보란 듯이 이겨서 의기양양한 작품을 만나기는 요원한 일이기만 하다. 세상은
커녕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맞짱 뜨기 어려운 게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청소년은 끊임없이 세상과의 맞짱을 도모한다. 김종광의 『착한 대화』(문학과지성
사, 2009)에서처럼 ‘이빨’로라도 맞짱을 뜬다. 오로지 대화로만 구성된 14편의 연작 소설은
형식도 독특하지만,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고 노골적인 청소년들의 고백과 욕망을 드러낸
다. 기존 소설의 서사 구조를 갖진 않았지만 청소년들이 읽으면 속이 후련할 수다들이다. 사
회 비판적인 대화가 특히 많이 오가는데 심지어는 청소년소설까지 비판하기에 이른다.


“요새 1318소설이니 청소년소설이니 하던데, 난 다 재수 없는 헛소리들이라고
생각해. 어른들이 꿈꾸는 청소년상을 자기들 입맛대로 적어놓은 것에 불과해.
그러니 학부모들이나 읽지.”(107쪽)

물론 작가의 견해겠지만 어쩌면 이러한 수다가 청소년들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착한 대화』
의 화자들은 사회, 정치, 교육, 연애, 섹스 등의 잡다한 대화를 나누며 언제든 잘못된 세상과
는 맞짱 뜰 태세를 갖춘다.

청소년 시기는 세상과 불화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착실한 모범생으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오히려 건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어딘지 병들어 있
는 것이다. 청소년문학은 청소년의 팔팔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가족과 학교
의 굴레에서 괴로워하고, 도망치고, 결국 적당히 타협하는 과정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기
를 기대한다면 문학은 존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청소년이 처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고 위로도 해주어야겠지만, 치열한 한판 승부로 세상과 맞짱 뜨며 시원
하게 한번 빵 터트려주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가족, 학교, 친구, 폭력, 공부, 암담
한 장래로부터 뚝 떨어져 신나게 모험하고 새롭게 경험하고 충만한 용기를 얻어낼 작품이
필요하다. 현실의 고민 따위 훌훌 털어버리고 맹렬하고 기운차게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란다. 청소년문학의 생명력이 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5. 낯설고 새롭고 다양한
문학의 변화와 발전은 장르를 불문하고 새로움에 있을 것이다. 문학용어 ‘낯설게하기’가 하
나의 명사로 자리 잡은 것만 봐도 이는 명징한 사실이다. 2008년에 비해 2009년도에 출간
된 작품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움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우선 ‘성장 강박’에서 훌쩍 물러나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청소년기에는 성장이 필요하고,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어른의 시각일 뿐이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문학이다. 2008년도의 작품들이 열심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도 은근 슬쩍, 때로 노골적으
로 성장을 강요하고 있었다면, 2009년도의 작품들은 이야기 자체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런 면에서 또 한번의 분기점을 마련한 작품이다. 『완득이』가 개성
강한 캐릭터와 유머를 무기로 청소년문학의 돌풍을 일으켰다면, 『위저드 베이커리』는 빵
이라는 달콤하고 고소한 소품을 매개로 도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성폭행 범인을 추리하게 만들며,
인간의 심리에 깊숙이 밀착해 들어가는 내적 성찰을 추구하고, 마지막 결말을 두 갈래로 상정하여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등 ‘낯선 이야기로 서의 매력’을 실컷 발휘하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노골적인 주인공의 성장서사는 드러나지 않지만 작품은 조용히 독자를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의 경우 이야기의 씨줄 날줄이 잘 엮인 작품이다. 빙의로 할머니와 소
통하는 주인공 은재의 행보를 따라 움직이며 하나씩 하나씩 할머니의 비밀이 벗겨지고 고
모와 재회하기까지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하는 흡인력이 있다. 빙의라는 발상 자체는 사
실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여기저기서 많이 써먹은 흔한 장치이다. 그러나 청소년문학에서
는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획득한다. 게다가 빙의는 보통 인간과 영혼의 관계에 집
중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할머니의 과거사를 따라 영혼의 욕망을 해소하고 은재의 현
재를 통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서사가 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파랑치타가 달려간다』는 평범한 에피소드들이 잔뜩 엮인 작품이다. 게다가 등장인물을 모
두 한 자리에 모아놓은 밴드부 공연 장면으로 결말마저 신파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
의 진정성은 감동을 확보한다. 게다가 청소년과 친숙한 소재들인 가출, 오토바이, 주유소
알바, 십자수, 밴드 활동, 공부, 뒤틀린 우정, 부모와의 불화 등이 적재적소에 다양하게 포
진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성장에 대한 강요보다는 억눌린 현실들에 대한 시원한 해소에 집
중되어 있다.

그동안의 청소년문학이 회고담 일색에서 차츰 개성있는 캐릭터, 유머 코드, 가족 이야기,
여로형 소설 등으로 변화되었다면, 2009년의 작품들은 섣불리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
한 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예고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작품들 외에도 공고 학
생들에게 시선을 돌려 새로움을 확보한 『꼴찌들이 떴다!』, 여학생 천지의 자살을 놓고 그 주
변인들이 펼쳐가는 슬프고 끔찍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인 『우아한 거짓말』, 작품 전체
를 대화체로만 진행시키면서 각종 주제를 청소년의 담론으로 발전시킨 『착한대화』 등도 눈에
띄게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잡지에 청소년소설 발표 지면이 생기고, 단편 부문 공모도 생기면서 앞으로는 단편집의 깔끔하고
쿨한 재미도 만끽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도에 출간된 공선옥의 『나는 죽지 않겠다』,
이현의 『영두의 우연한 현실』 등의 단편소설집들도 쇄를 거듭하고 있다.



6. 다시 이야기를 기대하며
지금까지 최근, 특히 2009년도에 출간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청소년문학의 경향을 살펴보
았다. 이미 여러 잡지에서 수상작들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거니와 특별히 논쟁이
될 만한 문제작보다 장점을 두루 갖춘 작품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기에 작품의 개별적인
성과를 따지는 데서 한 걸음 물러나 살펴보았다. 이들 작품의 전체적인 특징으로 ‘성장’보다
는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귀중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청소년소설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잇따랐다. 청소년소설은 곧 성
장소설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었고, 이미 지나간 작가의 청소년기를 추억하는 회고담 소설
류가 풍미했다. 공모제를 통해 회고담 소설은 자취를 감추고 성장의 의미를 찾는 본격 청소
년소설이 쏟아져 나오더니, 이제는 청소년소설도 훌쩍 성장하였는지 문학의 본질인 이야기
자체를 열렬히 추구하는 것으로 진화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제는
회고담이든 성장서사든 얼마든지 나와 주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한두 가지 경
향으로 치우치면서 이야기의 폭이 협소했으나 이제 청소년문학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시작
했다. 그러므로 회고담이나 성장서사들도 다른 유의 작품들과 어우러져 하나의 장을 형성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글에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역사 이야기, 성에 관한 이야기, 현재
성을 확보한 회고담, 리얼리즘 계열 소설 등 다양한 청소년소설들이 드문드문 출간되며 다
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문학은 어떠해야 한다는 필요충족조건은 어디까지나 문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소년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해서, 새로운 소재나 기법이라고 해서 주목할 것이 아니라 문학적 완성도로서의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기왕에 힘차게 출발한 새로운 장르이니 작가와 독자, 교사, 학부모들이 올바른 문학적 태도를 갖고 양질의 작품이 계속 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믿는다. 문학과 인간과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 윤소희
동화작가. 문학박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대학에서 아동청소년문학과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제13회 MBC창작동화대상을 수상하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공저 『편견』, 『성적을 올려주는 7가지 공부동화』, 『특별한 나를 만드는 7가지 동화』, 『지구반 환경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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