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오덕 글쓰기 정신을
함께 켜는 까닭
이주영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아, 짜증나.” “답답해 미치겠어.”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다!” 살다 보면 이런 생각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 없겠지요? 아예 입에 달고 사는 어른도 있지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볼펜심이 부서져라 꼭꼭 눌러 글로 써 놓는 청소년도 있고요.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이 세상을 버리고 우주 밖으로 뛰어내리는 일도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선 18세 미만 아이들이 하루에 한 명 꼴로 ‘나’를 버리고 떠나갑니다.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은 곧 ‘내가 나를 죽이는 가장 슬픈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몸을 죽이는 것만 아니라 마음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까닭은 잘못된 교육에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 가치관에 따라 상상해 온 미래를 강요하면서 아이들을 ‘점수 따기 기계’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점수 따기에서 남보다 앞서야만 미래에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돈을 잘 버는 기계 같은 인간이 되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환상, 점수 따기에서 밀리는 순간 ‘이번 생은 망한 생이 된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그런 교육에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 아이들을 살려낼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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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글쓰기, 이 좋은 공부』(이오덕, 양철북, 2017, 『삶을 가 꾸는 글쓰기 교육』 개정판),『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이주 영, 보리, 2011) |
다시 힘주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동화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욕심쟁이 주인 때문에 결국 죽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아

이들도 어른들의 점수 따기 교육에 대한 환상과 공포 때문에 죽어갑니다. 목숨을 끊는 것만 죽음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몸은 살아 있어도 마음과 정신을 이미 병들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오덕은 우리 아이들이 참된 민주교육으로 살아나기를 바랐습니다. 민주교육은 표현교육이 기본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고 정직하게 진실한 글로 표현하는 글쓰기 교육이 중요한 까닭입니다.『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제가 10년도 전에 쓴 책입니다. 이오덕은 책제목처럼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연구하고 실천한 표현교육을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라고 합니다. 삶을 가꾼다는 말은 곧 ‘생명을 올곧게 살려서 자랄 수 있도록 잘 북돋는다’는 뜻입니다. 이오덕은 글쓰기 교육이 곧 어린이를 사람답게 자라게 할 수 있는, 어린이를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이오덕이 찾아서 실천했던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솔직할 자유 주기
이오덕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일과 그 과정에서 가진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자기 표현욕이 강합니다. 표현의 자유란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①항에서도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해 놓았습니다.
둘째, 맺힌 마음 내뱉기
사람 몸은 들숨과 날숨을 잘 쉴 수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목으로 숨을 쉴 수 있어야 살아 있다는 뜻으로 ‘목숨’이라고 합니다. 들숨이나 날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 ‘기가 막
힌다’라고 합니다. 기가 막히면 목숨이 끊어집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하고 싶은말이 있는데 말하지 못하게 자꾸 막으면 마음에 덩어리가 맺힙니다. 덩어리가 맺히면 마음이 답답하고, 답답한 덩어리를 뱉어 내지 못하면 마음이 죽고, 마음이 죽으면 몸도 죽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오덕은 글쓰기를 할 때 마음에 맺힌 말을 토해 내서 글로 쓰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나만 미워해. 언니가 내 연필을 갖다 쓰면 네가 동생이니까 참아. 동생이 내 과자를 먹어도 누나니까 양보해. 나만 주워 온 것 같아.” 이 글에서도 볼 수 있듯 아이들이 집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 ‘차별, 편애, 무시’입니다. 이렇게 작은 편애나 무시도 아이들 마음을 갉아먹고, 목숨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죽입니다. 이런 맺힌 마음을 풀어내려면 말이나 글로 뱉어내야 합니다. 평소 맺힌 마음을 이렇게 토해 놓는 말이나 글을 만났을 때 부모나 교사는 그 마음을 살피고 공감하면서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보다 더한 답답하고 억울하고 두려운 일이 생겼을 때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를 믿고 자유롭게 내뱉을 수 있으니까요.
셋째, 자세히 또렷하게 쓰기
생활 주변에서 자기가 보거나 듣거나 겪은 일을 자세하고 또렷하게 붙잡아 글로 쓸 때 글 쓰기 힘이 자라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엇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것은 나 아닌 것에 관심을 갖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이 넓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2학년 어린이가 쓴 글입니다. 비 오는 소리를 들은 일, 손바닥을 내밀어 빗방울을 받아본 일에서 느낀 점을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자세하고 또렷하게 썼습니다. 비 오는 날 운동장에 나가 우산을 쓰고 맨발로 찰방찰방 걸어 다녀 보고, 눈 오는 날 하늘을 쳐다보며 손바닥을 펼쳐 눈송이를 받아 녹는 모습을 보고, 바람 부는 날 두 팔 벌려 가로수를 꼭 껴안고 귀 대고 들어보고, 길가 돌 틈에 핀 작은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렇게 몸으로 놀거나 어떤 일을 해 보고 글쓰기를 할 때 그 힘이 쑥쑥 자라납니다.
넷째, 모두 소중한 생명이라는 마음 키우기
동식물을 잘 살펴보면서 그 마음을 헤아리는 눈과 마음을 잘 붙잡아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생명을 소중하게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사람다운 마음을 잘 지키며 모든 생명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이런 눈으로 이웃과 자연을 볼 때 ‘소유 가치’보다는 ‘존재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살려내고, 나뿐만 아니라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품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3학년 어린이가 쓴 글입니다. 아이들은 무심코 짓궂은 장난을 칠 때도 있습니다. 막상 그 장난 때문에 아파서 떠는 청개구리를 보자, 잘못했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어 ‘하늘 보
고 절을 했다’는 건 잘못을 깨닫고 빌었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귀한 마음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1조 4항에서도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아니된다”고 밝혀 놓았습니다. 다른 생명에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 피해를 주었다는 걸 깨달으면 바로 사죄할 수 있는 글이 소중한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이처럼 맺힌 마음을 풀어 주어 목숨을 살리는 길이고, 세상을 자세하고 또렷하게 표현하는 길이며, 모든 생명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글쓰기를 즐겁게 할 수 있으려면 평소 글을 보는 어른들 태도와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쓰는 글들을 살피다 보면, 가까운 어른을 비판하거나 사회에 대한 원망을 쓸 때도 있습니다. 이때 야단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비판이나 불만이 정당하면 고맙게 받아들이고, 원망하거나 잘못된 비판을 말하면 그 까닭을 찾아 아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 원인을 살피고 없애야 합니다. 그 길이 우리 아이들 목숨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입니다.
“아이들에게 삶을 주자. 삶이 무엇인가? 놀이고 일이고 공부다. 놀이와 일과 공부가 하
나로 된 활동이다. 아이들은 놀이와 일이 하나로 된 활동을 하면서 깨닫고 배운다.”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목적은 아이들 삶을 참되게 가꾸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
는 데에 있다. 목적은 삶을 가꾸는 데 있고, 글을 쓰는 것은 이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된다.”
-『이오덕 말꽃모음』(이주영 엮음, 단비) 중에서
1) 청년사에서 낸 책은 절판됐으나 이후 양철북 출판사에서 복간해『 일하는 아이들』(2018)을 펴냈다.
학생들 웃음으로 글똥누기는 시작했어요. 저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요. 우리반은 ‘참사랑땀 반’인데, 여러 학급살이에서 하루를 여는 아침 활동으로 글똥누기를 해
요. 저는 2004년부터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배우고 실천하며 살고 있지요. 글쓰기 공부를 하며 ‘아침 글쓰기 또는 아침 한 줄 쓰기’라는 이름으로 아침 글쓰기를 했어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1학년 학생들과 살았어요. 아직 글자에 서툰 학생들이지만 아침 글쓰기는 욕심이 났죠. ‘1학년 아이들에게 글 쓰자는 말보다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말이 없을까?’ 이때 이상석 선생님이 하신 ‘말씀(글쓰기는 똥누기를 닮았다)’이 떠올랐어요. 그러며 우리 반 아침 글쓰기를 글똥누기라 이름했어요.
왜 글똥누기일까요?
“글똥누기 해요, 글똥 누세요.” 하는 영근 샘 말에 궁금한 생각이 들 거예요. 글똥누기라 한 까닭은 셋으로 나눠 학생들에게 안내하곤 해요.

글똥누기, 어떻게 하나요?
영근 샘은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는 편이에요. 하루하루 학생들과 삶을 담는 기록지를 한 장 꺼내요. 기록지에 오늘 날짜를 쓰고 글똥누기를 써요. 기록지 맨 위에 ‘내 글똥누기’가 있거든요. 칠판에 글똥누기를 쓰는 선생님도 있어요.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선생님이 쓴 글똥누기를 보며 ‘나도 써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테니까요.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와요. 선생님이나 친구와 인사를 주고받은 학생은 자리에 앉아 글똥누기 수첩을 펴요. 우리 반 학생들은 글똥누기 수첩을 늘 책상에 두고 다녀요. 글똥누기 수첩은 3월 첫날 영근 샘 선물이기도 해요. 2월 28일 학생 맞을 준비 마치고는 책상에 글똥누기 수첩을 둬요. 학생들은 3월 첫날 교실에 들어와 책상에 있는 글똥누기를 보며 뭘지 궁금해요. 한편으로는 ‘아, 올해는 글똥누기를 하나 보다.’ 하고 마음을 다잡죠. 글똥누기를 앞에 둔 학생들은 크게 두 모습이에요. 바로 쓰거나 생각하거나. 날마다 쓰는 글똥누기니 글똥누기를 펴 바로 쓰는 학생들이에요. 반면, 날마다 쓰는 데도 쓸 게 잘 생각나지 않는 학생들은 ‘뭐 쓰지?’ 하며 천장이나 앞을 보고 멈춰 있어요. 그러다 생각이 나면 굳었던 표정이 펴지며 글똥누기로 눈길을 옮겨요. 쓰기 시작해요. 글똥누기를 쓴 학생은 수첩을 들고 저에게 와요. 글똥누기를 선생님에게 보여 줘요. 저는 학생이 쓴 글똥누기를 봐요. 글 길이가 길지 않으니 한눈에 읽을 수 있어요. 선생님이 읽은 글똥누기는 다시 가져가 책상에 넣어 두거나 올려 둬요. 이렇게 한순간에 읽고 보여 주는 게 끝나요. 그래서 글똥누기는 가볍고 짧아요. 그러니 부담 없이 날마다 쓸 수 있어요. 물론 글자 하나, 문장 한 줄 쓰는 것도 힘들어 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 힘을 만들어 주고 키워 주는 것도 학교에서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글똥누기를 계속 쓰도록 꼬드겨요. 선생님이 학생들이 쓴 글똥누기를 정성껏 읽어 보는 게 학생들에겐 가장 큰 꼬드김이에요. 글똥누기를 읽으며, “와, 그랬군요.” “힘들겠다. 더 힘들면 말하세요.” “맛나겠어요.” 하고 말해요.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고도 말해요.
가볍고 짧지만 날마다 하는 까닭이 있어요
글똥누기를 하는 까닭은 학생들 삶을 엿보기 위함이에요. 글똥누기에는 학생들 삶이 있어요. 학생들 삶은 담은 작은 그릇이 글똥누기예요.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오늘은 감기로 힘들다.’ 하고 썼어요. 이때 “아, 감기 걸렸군요. 힘들겠어요. 더 아프면 말하세요.” 하는 영근 샘 말이 이 학생에게는 작은 위로이며 응원이에요. 또 감기로 힘들기에 이 학생은 수업에 집중이 잘되지 않아요. 이때, “야, 많이 아프니? 보건실 다녀올래요?” 하고 말해요. 학생 처지에서 몸은 아프지만 영근 샘 걱정과 관심으로 마음은 따듯해져요. 하지만 영근 샘이 글똥누기를 보지 않았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 펼쳐질 거예요. 수업하는데 집중하지 않는 학생에게, “야, 지금 뭐하니? 여기 봐야죠!” 하고 큰소리로 이름 부르며 나무라요. 학생 처지에서는 몸이 아픈데 영근 샘에게 꾸중까지 들은 셈이에요. 마음까지 아파요. 반마다 학생들이 스물 안팎이에요. 학생마다 아침에 몸과 마음의 모습은 다 달라요. 한 학생일지라도 어제와 오늘은 또 달라요. 이렇게 다 다른 학생 모습을 선생님은 알 길이 없어요. 물론 학생이 드러내 보이는 모습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학생 모습을 알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니까요. 그래서 선생님마다 아침에 학생들 몸과 마음 상태를 알기 위해 여러 방법을 쓰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글똥누기예요.
이런 방법으로 학생들 몸과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으니 좋아요. 다만 글똥누기와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그건 내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줘야 한다는 점이에요. 물론 학급 공동체라는 생각이 자리매김이 된 분위기에서는 서로를 알고서 하루를 산다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학생 처지에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게 있어요. 보여 줄 수 없는 게 있어요. 글똥누기는 선생님만 보니 그런 부담은 적어요. 이렇듯 학생들 처지에서는 삶을 솔직하게 쓰는 글똥누기예요.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도 쓸 수 있는 곳이에요. 이렇게 쓴 글을 선생님에게는 선뜻 보여 주기도 해요. 그러기에 학생 글똥누기를 보는 선생님도 다른 학습 결과물을 보는 것과는 달라요. 과제나 학습결과물을 볼 때는 검사라 할 수 있어요. 맞고 틀림을 확인하고 바로잡아 주고 고쳐주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글똥누기는 학생들이 글로 보여 주는 몸과 마음이라 검사일 수 없어요. 학생은 보여 주고 선생님은 보는 거예요. 그러니 고마운 마음으로 봐요. 정성껏 봐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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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똥누기를 쓸 때 약속이 있어요
첫째, 글보다는 삶을 먼저 봐요. 글똥누기는 학생들 삶을 담는 작은 그릇이라 했어요. 그릇보다는 그 속에 담긴 삶이 중요해요. 선생님으로 가르치는 처지이기에 학생들 글똥누
기에서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게 있어요. 맞춤법과 바르지 않은 글씨예요. 글똥누기를 볼때 맞춤법은 보지 않으려 해요. 바르지 않은 글씨도 읽을 정도만 되면 그대로 두려 해요.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 틀린 글자 있는데 알려 줘도 되나요?” 하거나, “이게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네요. 읽을 수 있게 써 주세요.” 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는 해요.
둘째, 글 내용으로 문제 삼지 않아요. 아침에 교실에 들어온 학생은 글똥누기에 하고픈 말을 써요. 하고픈 말엔 좋은 일도 있지만, 힘들거나 속상한 이야기도 있어요. 자기 고
민도 있고 친구와 다툼 그리고 집에서 있었던 속상한 이야기도 있어요. 3월부터 이런 이야기를 다 드러내는 학생도 있지만 대다수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를 보여 줘요. 마음을 열 수 있으려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받아들여요. 글똥누기에서 조금 심각하다 싶은 이야기는 따로 상담을 하되, 아침에 볼 때는 너무 깊이 들어가지는 않아요.
셋째, 함부로 공개하지 않아요. 학생들 글똥누기를 보면 감동받을 때가 있어요. 어린이만이 가지는 눈길이거나 마음일 때 그래요. 또 어떤 학생은 글똥누기로 성장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해요. 이때 이 글을 다른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감동을 함께 느끼고 싶고 성장을 응원하고 싶거든요. 한편 글똥누기도 글쓰기인 터라 다른 친구가 쓴 글똥누기를 자주 만나면 그게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욕심이 생기더라도, “야, 오늘 글 정말 감동이네요. 이 글똥누기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 읽어 줘도 되나요?” 하고 물어요.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학생이 안 된다고 하면 읽어 주지 않아요. 가끔 다른 선생님들께서 글똥누기를 한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저처럼 학생들 삶을 읽
는 도구로 쓰는 분도 계시지만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하는 분도 계세요. 또 아침을 조용히 보내려는 목적으로 하기도 해요. 저는 이렇게 하는 글똥누기가 틀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든, 아침을 조용히 보내기 위해서든, 학생들이 쓴 글똥을 귀하게 여겨 주었으면 해요. 학생들이 쓴 글똥을 귀하게 여기며 글똥누기를 잘 가꿔 간다면 그 나름으로 글똥누기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 글을 귀하게 여긴다는 건,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 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 글똥 한 번 눠 보실래요? 글똥누기 한번 해 보실래요?”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으로
꾸린 우리말 교육
2022년 봄, ‘올바른 한글사용 이끎학교’ 운영사업 공모 소식을 접했다. 예산 확보의 기회이자 평소 고민해 왔던 우리말 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리고 그해 7월, 도서관 우리말 행사를 기획하면서 우리말 교육을 제헌절과 연계해 보면 어떨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을 찾았다. 절판 상태라 원문 일부를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로만 볼 수 있었지만 다행히 행사에 필요한 ‘헌법 전문(前文)을 우리말로 바꾼 부분’(본문 26∼27쪽)이 미리보기 안에 있었다. 딱딱한 헌법 전문을 이오덕 선생님께서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꿔 두신 글은 이해가 쉬웠다. 아이들이 꼭 접하면 좋겠다 생각해 ‘정치와 법’ 교과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 2022년, ‘헌법 우리말로 바꾸기’ 프로그램의 첫발을 뗐다. 그 후 올해에도 같은 책으로 우리말 도서관 행사를 꾸렸다. 이번 글에서는 그렇게 학교도서관에서 우리말 꽃을 피운 행사들을 소개한다.
헌법 원문, 교정부호 써서 우리말로 고치기 이 프로그램은 2022년 7월 18일(제헌절 다음 날), ‘올바른 한 글사용을 위한 우리말 다듬기 도서관 행사’로 시작했다. 먼 저 헌법 원문과 이오덕 선생님이 다듬은 헌법 원문에서 단 어가 다른 부분은 빨간색으로, 띄어쓰기가 다른 부분은 파 란색으로 표시해 도서관 안에 게시했다. 그리고 헌법 원문 중 일부 구절을 가져와 ‘교정 부호를 활용한 헌법 우리말 로 다듬기 활동’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직접 원고지 위에다 헌법 원문 속 어려운 표현을 교정부호를 통해 쉬운 우리말 로 고쳐 정성스럽게 써 보는 활동이었다. 학생들은 “자유민 주적”을 “자유민주의”로, “기본질서를”을 “기본 질서를”로, “확고히”를 “튼튼히”로 바꾸는 과정에서 교정부호의 실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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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법을 익히는 동시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체험했다. 이어서는 13×6칸 원고지가 인쇄된 접착 메모지에 우리말로 다듬은 헌법 전문 중 일부 구절을 택해 직접 써 보는 활동
도 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헌법을 우리말로 다듬으니 이해하기 쉬워요. 헌법이 딱딱한 법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연결된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한 학생이 원고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평소 빨리빨리 쓰는 것에 익숙한 아이가 천천히,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글씨에는 특별한 온기가 있었다.
네 가지 활동으로 만나는‘ 우리말 헌법’
2022년 활동 때는 원고지 접착 메모지에다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리하여 올해는 ‘활동지 빈칸 채우기’ 방식을 썼다. 학생들이 할 활동이 조금 더 쉬워졌으므로(수동적이 되었으므로), 이번에는 ‘원문 헌법’과 ‘우리말로 다듬은 헌법’ 비교 게시 자료 안에서 이 두 양식을 구분케 하는 글자색(빨강·파랑)은 뺐다. 학생들이 직접 원문 헌법에 사용된 한자어가 우리말 헌법과 어떻게 대치되는지 확인하고, 원문을 우리말로 바꿔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202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7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점심시간을 활용해 ‘민주주의 꽃피는 7월 도서관 행사’라는 이름의 우리말 교육을 진행했다. 2주간 사전 준비를 거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4개의 소활동으로 구성했다. ① 헌법 속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 ② 헌법 속 사고도구어 찾기, ③ 친구에게 추천할 민주주의 책 탐색, ④우리말 헌법 만들기까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로 발전시켰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들 반응 속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정신이 새롭게 살아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5 <학교도서관저널> 11월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