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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애프터 팬데믹, 얼굴을 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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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6-02 11:18 조회 7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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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얼굴로 등교를 시작한

중학생에게 물었다


남양주 마석중 학생들 (지도교사: 김애란 사서교사)




Q1. 마스크를 벗고 등교한 첫날 기분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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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마스크를 쓰던 때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보며 소통하는 요즘을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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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마주 보며 이야기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을 이야기해 본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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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교실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싶나요? 친구의 어떤 표정을 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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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감정이 있지요. 그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선택해서 얼굴을 그려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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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마스크 해제를

할 수 있으려면


최김소연 이천 아마초 교사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손 소독제가 곳곳에 비치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간격을 유지하도록 권하는 표식이 붙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감염병 대응 시기를 지나, 올해 3월부터는 실내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다. 지난 3년과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새 학기 적응 기간, 동료 선생님들을 마주치면 새로 만난 학생들과 학급 분위기에 대한 기대와 걱정, 다짐을 나누곤 한다. 어떤 어린이가 눈에 띄는지, 학급 학생들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특별한 질문 한 가지를 더 나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마스크 어떻게 하고 계세요?” 코로나19 초기 2년 동안은 비대면 원격 수업을 병행하면서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짧았다. 전면 등교로 전환된 작년부터는 충분한 간격을 두기엔 좁은 교실 안에서 방역 수칙을 유지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다. 한편 책상에 가림판을 부착하고 마스크를 쓴 채로 체육활동을 하며 짝이나 모둠 활동보다 개인 활동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새 학기부터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어린이들


학생들에게는 이 변화가 어떻게 다가올까? 정부의 마스크 해제 방침이 발표되자마자 바로 마스크를 벗어 던진 어린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부분은 급식 시간, 체육활동을 하고 난 후 덥거나 숨이 차는 상황, 미술 시간에 자화상을 그리는 활동을 할 때 마스크를 벗고 해도 되는지 묻는 등 상황에 따라 잠시 마스크를 벗을 뿐 여전히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생활하고 있다. 우리 반 학생들을 살펴보면 마스크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 어린
이가 20% 정도인데,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는 어린이의 비율 역시 20% 정도 된다. ‘절대’로 분류할 수 있는 학생들은 급식을 먹는 중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살짝 틈을 만들어 음식을 입에 넣고, 도서실 대출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때도 마스크 차림이다. 심지어는 고학년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학생 건강체력 평가제도 중 하나인 오래달리기를 하는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작년에는 마스크 필수 착용으로 인해 교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면서도 어린이들의 얼굴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탓에 급식 시간 마스크를 벗은 어린이의 맨얼굴이 낯설어 ‘얘가 누구였더라?’ 싶었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가 해제되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절대 마스크 사수’를 유지하는 몇몇 어린이들의 맨얼굴은 모르는 상황이다.
마스크 해제를 앞둔 시기, 외모를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마스크를 벗지 않는 청소년이 많다는 내용의 기사가 발행되었다1). 마스크 착용과 관련하여 ‘마기꾼2)’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2, 3년 동안 교실에서 외모를 평가하거나 지적하는 말을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듯하다. 우리 반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유도 정말 외모 때문인지 궁금해서 마스크 착용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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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을 작성한 학생만 남학생이고,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모두 여학생의 답변이다. 학교생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학생 중 남학생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과 반대로,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학생 중 여학생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이는 우리 학교만의 상황이지만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을 때 다른 학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들 역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얼굴 보이기가 어색하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닐 듯하다. 마스크 덕분에 화장하지 않아도 돼서편하다는 사람이 많아진 것만큼 마스크를 쓰면서도 꾸밈에 대한 노력을 지속하는 사람이 많았다. 화장이 묻어나지 않는 마스크가 새로 개발되거나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화장법과 화장품이 인기를 얻을 정도로 말이다.


1) “청소년의 외모지상주의... 마스크 대신하는 심리적 방패막이 필요”(<한겨레>, 김아리 객원기자), 2023.02.28.

2)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성한 낱말로 마스크를 벗으면 마스크를 썼을 때보다 못생겨 보이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가 놓친 교실 속 '사회적 성장'


물론 마스크를 계속 쓰는 이유에 외모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와 독감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들의 수가 가장 많았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되는 등 ‘민폐를 끼칠까 봐’ 걱정이 들기 때문에 마스크를 계속 쓴다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19 초반 확진자 또는 전파자라는 낙인을 우려하며 학급 친구들에게 감염 여부를 쉬쉬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표정 등 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눈맞춤을 어려워한다는 전문가 의견들도 발표되었는데3), 코로나19가 남긴 후유증은 이뿐만이 아니다. 수업 시간에 바르게 앉아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주5일 등교하는 것을 힘들어하며 ‘월요병’을 호소하는 어린이가 많아졌다. 심지어 대면 수업이 재개되었음에도 비대면 원격 수업을 요구하며 학교 가는 것을 거부하는 어린이, 온라인 활동의 즉각적인 피드백 등에만 익숙해 교사와 학생이 1대 다수인 교실 상황에서도 주변 친구들을 배려하지 않고 단둘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어린이를 교실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감염병으로 인한 사회 활동의 공백은 신체적인 면을 넘어 사회·정서적인 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학교에 못 가는 상황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하락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정작 우리가 놓친 건 어린이들의 사회적 성장이 아니었을지 걱정이 든다. 학교는 학습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또래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남을 미루는 동안 어른들은 소중한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기 위해 애썼지만, 학교가 닫히면서 아픈 친구를 걱정하고 보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의 다정한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다행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동안 미뤄 왔던 대면 소통의 공백을 채우려는 것처럼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 친구들과의 관계를 발달시키는 과정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디귿자 모양으로 칸막이가 설치된 책상이 따로따로 떨어져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칸막이를 떼어내고 짝이나 모둠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덕분에 어린이들은 친구들과 수월하게 소통할 뿐만 아니라 교실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의사소통을 돕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과 다양한 대화 기술 및 태도의 적절한 예시를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3)“코로나19 유행이 영유아 지능 발달 방해했다”(<동아사이언스>, 미 브라운대 연구팀), 2021.08.24.,
“마스크 착용 장기화… 아이들 언어 능력 떨어진다”(<헬스조선>, 전종보 기자), 2021.04.02.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습


모두를 힘들게 한 감염병 상황은 각 분야의 약자들을 더 거세게 할퀴었다. 성적 하위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습 의욕이 더 낮아지면서 학습격차가 벌어진 것처럼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교실에 적응하기까지 본인은 물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관계를 새로 맺거나 유지하기 어려워하는 어린이가 있는지 섬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잘생겼다거나 예쁘다는 말을 칭찬 삼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외모를 비교하는 상황을 조성하면서 외모 칭찬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든다. 광고를 보면 마스크를 썼을 때도 브이라인이나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얼굴이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고를 떠나서 자신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따라서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주고받지 않도록 하는 교실 분위기를 위해 교사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학생들의 외모 칭찬이나 지적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쪼그라든 마음의 주름이 하나하나 펴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안전망이 절실한 때이다.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그라들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때를 맞이하고도 다른 걱정으로 인해 계속 마스크 쓰는 것을 선택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이 줄어들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교실이 편안하게 느껴져야 비로소 진정한 맨얼굴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어린이들 각자의 개성 넘치는 표정이 다채롭게 피어나는 교실, 학교, 마을을 기대한다.

 



그림책 속 얼굴,

페미니즘 관점으로 마주 보기

 

윤아름 서울청량초 교사, 전교조 성평등특별위원장



전교조 여성위원회 선생님들과 같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림책 속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제를 인식했다. 성평등한 그림책을 찾아 헤매다가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에 참여했고, 다움북클럽과 함께 성평등한 어린이·청소년책 목록과 칼럼을 담은 『오늘의 어린이책 1, 2』를 썼다. 책의 바다에서 예민한 젠더 감수성으로 책을 건져 올리다 보니 성인지 감수성은 물론 높은 예술성을 갖춘 많은 그림책을 만났다. “페미니스트라고 저절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페미니스트가 아니면서 좋은 교사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1)라고 말한 최현희 선생님의 말을 빌려 오자면, 성평등 관점을 가진 어린이책이라고 모두 다 좋은 책은 아니겠으나 성평등하지 않으면서 좋은 책일 수는 없었다. 

『오늘의 어린이책』이 제시하는 ‘어린이책 서사와 인물에 대한 26가지 질문’은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책을 고르는 유용한 기준이며, 페미니즘 교육 및 포괄적 성교육 도서를 고르는 분명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26가지 질문 중 ‘인물의 개성이 성별 고정관념으로 결정되지는 않나요?’, ‘표정, 자세, 차림새 등의 그림이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표현되지는 않나요?’를 준거로 그림책 속 인물의 얼굴이 어떻게 통념적으로 드러나는지 분석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다채로운 얼굴을 담은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최현희 외 지음, 동녘, 2017.



해적만 안대를 차는 것은 아니다


제주의 독립서점 ‘책은선물’에서 『오늘의 어린이책 2』 출간 기념으로 선정 도서를 전시하고 서점에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행사를 하였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책은 『나의 몸 너의 몸 다른 몸』(서맨사 커시오)이었다. ‘크기, 색, 장애, 젠더를 넘어 바라보는 우리 몸의 다양성’이라는 부제와 책 속에서 재미있게 표현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어린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중 다양한 얼굴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얼굴에는 눈이 두 개, 어쩌면 하나만 있을 수도 있어.”라는 글과 검은색 한쪽 눈 안대를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장면을 본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후크 선장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후크 선장은 갈고리 팔을 갖고 있을 뿐 안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한쪽 눈 안대=해적’이라는 익숙한 공식이 후크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해적 말고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했지만 생각해 보면 해적 말고는 안대를 한 사람을 그림책에서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사 “다양성도 조기교육이 효과적입니다(김효실 기자, <한겨레21>, 2023)”에서 소개한 얼굴에 흉터 등 눈에 띄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체인징 페이시스(Changing Faces)’의 캠페인 ‘나는 당신의 악당이 아니다(#IAmNotYourVillain)’를 보면 어린이들의 반응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영화 속 악당이 주로 흉터나 변형된 얼굴을 갖고 있어서 어린이에게사회·문화적 편견을 갖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림책의 등장인물이 어떤 얼굴로 어린이를 마주하고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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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1. 아줌마, 엄마의 역할을 고정하는 얼굴

얼굴 표현이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작용하는 것은 여성에게 많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파마머리=아줌마’, ‘안경=매력적이지 않은 여성’, ‘진한 화장=똑똑하지 않은 여성’, ‘큰 리본핀=공주병’ 등등 예시는 다양하다. 과거에 비해 이러한 통념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그림책과 최신작에서도 고정관념에 기대어 표현된 얼굴을 많이 볼 수 있다. 『엄마 자판기』(조경희)에서는 첫 장면부터 빨간 고무장갑과 앞치마 차림의 전형적인 아줌마의 뒷모습으로 나타난 엄마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파우더를 바르고, 눈썹, 입술 화장을 하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퇴근 후의 엄마는 마스크팩을 붙인 얼굴로 등장하는데 이를 본 아이는 “괴물”이라고 말한다. 새벽부터 김밥을 싸는 가사노동을 하고, 출근을 위한 꾸밈 노동과 아이의 일과를 챙기는 돌봄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엄마의 현실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얼굴의 잔소리쟁이로 표현된다. ‘○○맘’ 딱지가 붙은 엄마의 얼굴이 가득한 표지를 봤을 때의 불편함이 책을 보는 내내 이어진다.


CASE 2. 성별 정체성을 협소하게 표현한 얼굴

『진짜 일 학년 책가방을 지켜라!』(신순재)의 주인공 준수는 자꾸 물건을 잃어버리는 1학년 남성 어린이다. 준수는 혼날까 봐 걱정하는 표정, 시무룩한 표정, 뿌듯한 표정 등 보통의 어린이들이 갖고 있을 생생한 표정을 짓는다. 반면 쌍둥이 누나들은 복제인간처럼 항상 같은 얼굴로 나타난다. 언제나 똑같이 양 갈래로 묶은 머리를 하고 똑같이 ‘얄미운’ 표정을 짓는다. 일란성 쌍둥이에게도 고유의 인격과 개성이 있는데 누나들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 똑같이 그려지는 단일한 ‘잔소리쟁이’, ‘여성’의 묶음으로 나타날 뿐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성별 고정관념은 누나가 빌려주는 분홍색 필통을 보고 준수가 고개를 푹 숙이고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망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CASE 3. 가해자다운, 피해자다운 얼굴

가해자, 피해자의 얼굴을 표현할 때에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진다. 푸름이닷컴의 성교육 도서 전집 중 『네 잘못이 아니야!』(김현정)에서 성폭력 가해자는 뿔 달린 괴물의 그림자를 가진 얼굴로 나타나는데, 언론 기사의 삽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표현 방식이다.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2023)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의 60.9%는 가족·친척 외 아는 사람, 9.2%는 가족·친척으로 대부분 면식범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악마 같은 얼굴로 표현하는 것은 성폭력이 일상 속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가린다. 또한 이 책의 표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우는 얼굴의 피해자와 엄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성폭력 피해 어린이의 회복 과정을 담은 『말해도 괜찮아』에서 주인공이 웃는 얼굴로 표지에 등장하는 것과 매우 상반된다. 피해자의 나약함, 엄마의 보호자 노릇 같은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표현은 2차 가해로 이어지기 쉽지만 피해 생존자의 능동성과 회복 가능성의 강조는 그들의 정신 건강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에 효과적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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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투운동 지켜본 성폭력 피해자, 우울감 큰 폭으로 줄었다”(<한국일보>, 홍인택 기자), 2022.8.15. 참조.


다채롭고 자유로운 얼굴을 그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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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가 옷을 입어요』(피터 브라운)의 주인공 프레드는 얼굴만 봐서는 성별을 구별하기 어렵다. 다만 이름으로 남자아이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프레드가 화장을 하고 머리를 치장하는 것은 세상을 탐색하는 과정이자 즐거운 놀이이다. 『발명가 로지의 빛나는 실패작』(안드레아 비티)이 그리는 교실에는 다양한 피부색, 머리 모양의 어린이들로 가득하다. 선생님과 이모들은 짙은 화장,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장신구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로지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발명품을 만드는 과정을 응원한다. 앞의 두 책에서 립스틱은 여성만의 것도 아니며, 멸시의 대상도 아니다.

『혼자 갈 수 있어』(현이지)의 여성 아동 주인공은 킥보드로 온 동네를 용감하게 누비기 위해 단단해 보이는 파란 헬멧을 쓰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진보라)의 여성 인물들은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숨이 가빠 표정이 일그러져도 최선을 다해 달리는 데만 집중한다. 『파도야 놀자』(이수지)와 『파도가 차르르』(맷 마이어스)에서는 여성 어린이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바람에 머리카락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내며 바다를 탐색한다. 『일곱 할머니와 놀이터』(구돌)에서는 짧은 파마머리 대신 단발머리, 올림머리, 땋은 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개성 있는 머리 모양만큼이나 특별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갓난아기에게도 딸을 표식하는 리본을 달아 주고, 여성 스포츠 선수의 숏컷 머리가 비난받고, 여성 연예인의 무표정함이 ‘인성 논란’을 불러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린이책 속에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얼굴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성차별적인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에게 보여 줘야 할 세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성별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자유롭게 하고, 남을 위한 애교스러운 미소가 아니라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의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세계여야 할 것이다. 때로는 세상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얼굴이 등장하는 그림책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세상은 더디더라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것이 루딘 심스 비숍(Rudine Sims Bishop) 박사가 아동문학 애호가가 갖고 있다고 말한, 좋은 책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경향일지도 모르겠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3 <학교도서관저널> 6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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