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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공부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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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3-16 02:42 조회 7,07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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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흔하게 접하는 말이라서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까? 학교 및 도서관 관계자들, 문인, 출판계, 수의사, 책방 주인, 여행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5명에게 공부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이어서 초・중・고교생 22명의 생각도 짧은 문장으로 들어보았다. 그들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
 
늘 배우려 하고 배운 만큼 사람들과 나누는 것
이지향 안산진흥초 사서
학생들에게 공부는 왜 하고, 언제까지 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공부는 어부가 고기를 잡기 전에 그물을 준비하는 것과 같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뜨악할지라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갇힘과 같으니, 끊임없이 탐구하고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바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늘 배우려하고 배운 만큼 사람들과 나누며 진정한 공동선을 바로 세워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입시중심의 학습으로 인해 서로 경쟁하고 누군가를 밟고 오르는 길이 자신의 성공을 가늠한다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책모임, 사서선생님들과 책 수다를 늘어놓고, 아이들의 책모임, 부모와 함께 책 읽기를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은 다름의 차이를 들여다볼 수 있고 생각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네트워킹이다
전보라 서울 경기여고 사서교사
학창 시절, 성적, 진학, 취업, 자격증 등 구체적인 실리가 눈앞에 있는 공부를 했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위한 공부는 목적을 이루면 사라졌다. 허무했지만 이와 무관한 영역의 공부가 있음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교사가 되어 학교에 돌아와 보니, 시간이 흘렀음에도 학생들의 현실은 나의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고 진짜 공부에 대해 생각했다. 답은 책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며 스스로 깨달아 가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궁극적으로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런 공부는 지겹지도 괴롭지도 않다. 즐겁기까지 하다. 그리고 책을 네트워킹을 통해 함께 읽으면 서로가 힘이 되고 그걸 통해 무언가 길을 찾아가는 기회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사제동행 독서토론 모임을 가졌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학생들이 항상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예쁜 찻잔에 차를 우려내기도 하고, 치킨과 피자 등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게 하는 등 정성껏 자리를 마련했다. 하루 종일 교과서와 문제집만 들여다보던 학생들은 즐겁게 책을 찾아 읽고, 토론하며 공부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올해에는 교육청의 지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스스로 방과 후 독서모임을 만들어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나 또한 학생들과의 새로운 독서 모임을 시도함으로써 학생과의 벽을 허물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사제 간의 네트워킹, 학생들끼리의 네트워킹은 학생들에게‘앎’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 주는지 체험하게 한다. 스승과 벗을 찾아 네트워킹을 하는 ‘즐거운 공부’가 좋은 밑거름이 되어 씨앗이 잘 자라길 바라며, 앞으로도 동료들과 함께 학생들과 함께 꾸준히 공부를 실천해 나갈 것이다.
 
대상에 대해 더 알아가는 과정
강주현 안산 성포고 사서
살면서 하게 되는 수많은 경험, 도전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거름이 된다. 물론 계획한 대로 다 이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노력했음에도 실패할 수 있다. 대학 시절,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디자인 공부를 해 보기로 마음먹고 한 학기 동안 디자인 전공 수업을 신청하여 들었다. 살면서 하루가 그렇게 짧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론 수업과 실기를 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면서 모든 과제를 제출했다. 정신없이 한 학기가 지나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넘을 수 없는 벽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경험 이후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일단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을 먹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도서관, 책, 학생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조화롭게 공존하는 ‘살아있는 도서관’을 꿈꾼다. 그래서 다양한 직무연수와 협의회에 참여하고 독서를 통해 공부하고 이를 통해 얻는 새로운 정보를 어떻게 학교도서관 운영에 적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다.
공부란 어떤 대상에 대해 더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동기다. 또한 도전하는 용기도 함께 필요하다. 목표한 바에 완벽하게 이르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을 겪으며 조금 더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칭찬해 주면 어떨까 싶다.
 
‘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권희린 서울 장충고 교사, 『도서관 여행』 저자
학창 시절에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푸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계적인 행위의 공부를 했다. 그것이 인생을 모두 책임져 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학생의 꼬리표를 떼어 내고 건조하면서도 차가운 사회에 진입하면서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진짜 인생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다양성과 개성을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사람.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는 바로 여행을 통해서였다.
여행은 즐거웠다. 오랜 시간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아도 되었고, 영혼 없이 암기하거나 기계적으로 답을 찾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나의 행동을 제지하는 잔소리 섞인 목소리도 없었다. 그저 나는 낯선 장소로 몸을 옮겨 세상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배려, 소통, 양보와 같이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등장할 법한 미덕들은 모두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몸에 배어 갔다. 또한 여행은 나에게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했다. 친구들이 모두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백수였던 나는 혼자 유럽으로 떠나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내 안에서 꿈틀대는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또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3년차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혼자 터키로 떠나 나의 인생의 목표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여겨졌던 나의 삶에 대한 위로도 얻고 더 넓고 먼 곳을 볼 수 있는 지혜도 얻었다.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엄습했지만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은 잘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삽질로 가득했지만 늘 즐거웠던 여행처럼 말이다.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나의 목소리를 원하는 곳에서 강연을 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이것은 모두 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며 나의 방향성을 찾으며 인생 공부를 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자신만의 향기를 풍기며 정체성을 깨닫고 더 넓고 먼 곳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으면서 ‘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야말로 멋진 인생을 위한 진짜 공부가 아닐까?
 
공부는 내게 궁금증 해소의 길이다
백화현 서울 국사봉중 교사
나는 어려서부터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만 되면 해가 뜨는지, 달은 어째서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지 궁금했다. 또한, 나는 어디에서 왔고 인간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으며 우주의 끝은 어디인지 몹시 궁금했다. 때때로 땅에 줄지어 기어 는 개미들을 잡아 엉뚱한 곳에 내려놓은 뒤, ‘이 개미들은 어떻게 자기가 순간이동하게 되었는지 알까?’ 하며 몇 번이고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개미에게 나와 같은 존재가 내게, 혹은 우리 인간에게도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몹시 궁금해 했다. 좀 더 커서는 나는 왜 사는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고, 무엇 때문에 매일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반복적인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또한 인간은 어째서 평등하지 못한지, 어떻게 해야 평등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으며, ‘인간답다’느니 ‘선하다’느니 하는 말들의 속뜻이 궁금했고, 선거 때마다 어느 후보의 말이 더 옳은지,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정치도 옳게 잘할 것인지 궁금했으며, 평등과 자유, 이 두 가치가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공존할 수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이런 탓일까? 어린 시절 내게 학교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곳이었다. 교과서는 내게 날마다 새로운 지식을 안겨 주었고,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은 나의 궁금증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그리고 친구들은 나처럼 부족하고 엉뚱하기 짝이 없지만 때로 는 진지하게 때로는 킬킬대며 함께 답을 찾아 나서곤 했다. 눈만 뜨면 학교에 가고 싶고 새롭게 알고 깨달아 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부터, 학교에서 알려주는 지식은 전혀 새롭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주지 못했다. 되레 끝없이 반복되는 수업 내용과 획일적인 정답만을 중시하는 공부는 나의 생기를 앗아가고 영혼을 피폐시켰다. 이때부터 우리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며 학교 공부 외의 다른 공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독서와 사색, 글쓰기와 여행, 그리고 현장에서 실천하고 관찰하며 부대끼기. 이후 내가 선호하게 된 공부 방식이다. 사람은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렇기에 궁금증 또한 멈출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내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고 공부를 통해 나를 채우고 궁금증들을 해소해 나가고 싶다.
 
공부, 물음표와 몰입이 빚는 자유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꿈꿀 권리』 저자
나는 공부를 참 좋아한다. 공부 그대로 즐거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세상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자유로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종 공부를 ‘터부시’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아마 세 가지 조건으로 진짜 공부를 가르기 때문이아닐까 싶다. ‘삶에서 스스로 건져 올린 동기’, ‘몰입’, ‘머리와 몸의 균형’. 스스로 동기를 가질 때, 배움은 즐겁고 설렌다. 눈길 닿는 곳마다 물음표를 떠올리던 어린 시절, 우리는 ‘배움에서 떼어 놓기 힘든’ 존재였고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에 저절로 빠져들었다. 몰입의 학습효과는 어떤 포상이나 협박으로도 따라잡기 어렵다. 마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혼을 쏟아 붓는 경험은 심장과 근육을 담금질한다. 뿐만 아니라, 삶에 뿌리를 둔 배움은 시험지에 답을 적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나를 키운다. 나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세상과 소통한다는 자신감, 내가 세상에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를 얽어매는 두려움에서 놓여나게 한다. 동기와 몰입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공부가 늘 즐겁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던 것, 다르게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조직하는 것은 때로 고통스러울 만큼 어렵다. 그런데도 기꺼이 이어가려면 간절해야 한다. 두려움을 걷어 내는 실마리도 힘겨운 시간을 견디는 인내도 남다른 용기보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내가 간절하게 알고 싶은 것과 배우도록 요구되는 것이 다르다는 데 있다. 시작부터 어긋난 교실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려고 평가에 매달리지만, 평가가 목표가 되면 설렘은 두려움에 자리를 내준다. 잔뜩 얼어붙은 상태에서 몰입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
도서관 서가에는 온 세상이 꽂혀 있지만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학력이나 성적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누구든 삶 속에서 배우고 배움을 삶으로 살아갈 힘과 의지를 존중한다. 언제라도 그 문을 열어젖혀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조건은 하나다. 자신의 동기를 가질 것. 가르치지 않으니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을 사로잡은 것에 맘껏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 책과 사람이 만나는 도서관의 풍경에는 몰입의 기운이 담긴다. 교사도 없고 교과서도 없는 도서관에서 희망을 말하는 이유는‘진짜’공부를 할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늘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이용훈 서울도서관 관장, 도서관문화비평가
나에게 공부란 자신을 이해하고,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주변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 또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호기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제대로 질문을 하면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우선 그것에 필요한 정보나 지식, 지혜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 찾아봐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이나 관점들을 알고 배워야 한다. 예전이라면 책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정보원과 경로가 있기 때문에 검색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찾는다. 요즘은 워낙 읽어야 할 책과 자료가 많아서 어떤 것을 선택할 지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럴 때는 여러 단계를 거쳐 검증된 책과 자료가 있는 도서관을 활용하면 좋다.
나아가 관심이 비슷하거나 관련 분야 전문가를 만나 대화하는 방식도 좋다. 혼자 하는 공부는 방향을 잃을 가능성이 높거나 무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문제와 자료 등을 공유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여러 관점을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으면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회를 잘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활용하는 SNS 속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다만 그곳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주체성과 절제가 필요하다. 공부는 완성이 없다. 오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내일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변화는 점차 넓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평생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늘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공부 그 자체다.
 
내 몸에 들인 것을 딸에게 전하는 일
박성우 시인
산골 뽕나무밭집에 살았다. 뽕나무밭머리 뽕나무를 베어내고 지은 흙집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에섶 같은 그 뽕나무밭집에서 딸 넷과 아들 둘을 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딸 넷과 아들 셋을 냈는데, 거기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큰형이 끼어 있다. 큰형은 어린 시절, 몹쓸 병에 걸린 누에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시들고 말았다고 했다.
일찌감치 먼 세상으로 간 형을 빼고 나는 이 집의 다섯째다. 우리 육남매는 거기 뽕나무밭집에서 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비록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지만 누구보다 바르고 부지런하셨다. 못 배웠다고 해서 글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 사는 이치를 모르는것도 아니셨다. 철없는 내가 뒤꼍 갈매할매네 밭에서 우리 밭으로 넘어와 열린 애호박이라도 딸라치면 조근조근 야단을 치기도 하셨다. “아가, 노무 거는 호박잎 한나라도 욕심내는 거 아니다이.” 내 것이 아니면 호박잎 한 장도 탐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내 몸에 들인 ‘처음 공부’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뽕나무밭집의 누에들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엉키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면서 제각기 고치의 꿈을 키우던 새끼 누에들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촌스러운 옷, 거기에 어색하고도 해맑은 표정의 얼굴을 담은 흑백 가족사진 한 장 찍지 못한 가난한 집의 누에들이었다. 그렇지만 여섯 남매 모두 마음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어서 뽕나무밭집 여섯 누에들은 뽕잎 같은 날들을 사각사각 갉아먹으며 그냥저냥 잘 자랐다. 때론 눈물도 나눠 갉아먹고 지독한 빚도 갉아먹고 빗소리도 사각사각 갉아먹고 갉아먹다 갉아먹다 갉아먹을 게 없으면 어머니 아버지 속도 갉아먹으며 자랐다.
육남매를 끌고 도회지로 나와 청소부가 된 어머니, 막일을 하시던 아버지. 어머니는 뒷산 뽕나무처럼 늙었고 아버지는 호박잎처럼 시든 지 오래다. 어느덧 나는 아비가 되어, 초등학교 1학년 딸에게 울 어머니 울 아버지한테 배운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아가, 노무 거는 호박잎 한나라도 욕심내는 거 아니다이.”공부, 공부는 내 몸에 들인 것을 딸에게 전하는 일이다.
 
생명 혹은 삶을 위한 공부하기
최종욱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달려라 코끼리』 저자
공부를 공부라고 말하면 더 이상 공부가 아니다. 숨을 쉴 때 굳이 들이쉬다, 내쉬다를 의식하는 것과 같다.
사회에 첫발을 뗄 때, 이제 공부는 졸업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사회는 늘 새롭고 더 어려운 공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몇 해는 힘들었지만 내 안의 견디는 힘이 강해지고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정말 보탬이 되는 걸 알자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났다.
동물원에 들어와 한 공부는 나의 지식을 넓히고 무척 보람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공부는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소홀히 하면 한 생명이 죽고 열심히 하면 사는데 어찌 안 하고 배기겠는가? 처음 동물원에 들어갔을 때 야생동물에 대해 거의 모르다시피 했다. 단지 야생동물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과 동물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뿐이었다. 첫날부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어느덧 내 책상 위에는 생전 손도 대본 적 없던 외국서적들과 두꺼운 전공서적들이 산처럼 쌓여 갔다. 끝없이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 조그만 치료의 실마리라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건 시키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하는 진짜 공부였다.
우리 동물원의 코끼리가 새끼를 두 마리나 임신한 적이 있다. 국내 최초의 일이라 출산 경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당장 닥친 현실이었기에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넷에 몇 날 며칠을 ‘코끼리 임신 진단, 분만, 수유, 새끼 기르기’란 검색어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얘지고 손가락이 저릴 때까지 자료를 찾았고, 결국 음파로 임신 진단 방법을 알아내, 분만 시나리오를 만들어 사육사들과 함께 연습해서 분만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게다가 어렵다는 어미에게 젖 붙이기와 새끼 기르기를 해냈다. 모두 피나는 공부 덕분이었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코끼리는 아무때나 새끼를 낳아 버렸을 것이고, 새끼는 어미의 공격으로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공부를 즐기고 있다. 공부가 왜 소중한 지도 몸으로 깨닫고 있다. 동물원에서는 공부를 공부라 하지 않는다. 생명 혹은 삶이라 부른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진짜 공부
피노 ‘피노키오 책방’ 주인
학창시절에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기 위해 마지못해 공부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항상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무언가를 꾸준히 배워야 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진짜 공부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림책 전문 책방을 하다 보니 손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출판사에서 근무했었나요?” 아니면 “그림을 전공하셨나요?”이다. 그때마다 “전 출판업이나 그림 전공과는 무관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그런데 어떻게 책방을 운영하며 이렇게 좋은 책들을 고르고 가져다 두셨나요?”이다.
책방에서의 매일도 공부의 연속이다. 처음 책방 문을 열 때 주위 사람들도 의아해하며 걱정을 많이 했다. 그만큼 책과 책방 운영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을 대하고 책 정리하는 시간을 빼면 하루에 4~5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떤 책을 들여와야 손님들이 좋아할지 고민하고, 책을 선별하고, 출판사와 연락하고, 여러 언어로 된 책의 내용을 파악하며 꾸준히 공부한다. 특히 해외 원서의 경우 각국의 언어에 대한 이해와 작가 및 출판사 정보를 구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그러다 정말 좋은 출판사와 책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책을 손님들이 좋아해 줄 때는 학교 다니며 모르던 것을 배웠을 때보다 더한 기쁨을 느낀다. 또한 책들이 여러 언어로 되어 있다 보니 손님들이 책의 내용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영어로 된 책들은 낫지만 프랑스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으로 이루어진 책들은 내용을 알기가 쉽지 않아 사전을 펼쳐 놓고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어느 순간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꼭 손님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또한 내용을 알고 싶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을 더 보람 있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마음에 있다. 억지로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진짜 공부를 가능하게 한다.
 
꿈과 목표를 찾는 공부
한영준 공정여행가, 자칭 ‘꽃거지’ 
제 마지막 토익점수는 280점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강연을 하고, 외국인 친구들이 100명이 넘습니다. 전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벌써 3채의 집과 10채의 농장을 지었고, 학교를 건축 중에 있습니다. 전 경영과 비즈니스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비영리 단체의 리더입니다. 전 교육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른 살이란 나이에 학교 교장이 되었습니다. 전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국의 대학을 누비며 대학 강단에 서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7번의 개인 전시회를 열었으며 전세계의 가족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전 의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병든 사람들을 병원에 보내 주고 의사를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꿈이 있다면, 목표가 있다면 공부는 자연스럽게 된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세요.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덤비세요!
지금 전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볼리비아이기 때문이죠. 제가 천재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아이큐 92 나왔으니까!
 
오주 선생의 호기심
설흔 작가
 오주 선생은 다음과 같이 썼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고 절단된 근육과 뼈대를 다시 붙이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초신지』 같은 책에도 나와 있으니 그 기록이 전혀 허황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주 선생은 정색하고 썼지만 읽는 이로서는 그저 피식 웃을 만한 글이다. 피식 웃은 건 그 시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이상한 사람이라면서 손가락질깨나 해댔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오주 선생은 뜻밖에도 성인군자의 대명사 공자님을 들이댄다.
“시경을 배우면 조수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 했다. 그러니 박학다식은 군자가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모든 것에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미리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무조건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오주 선생이 자신이 쓴 글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사물의 기이한 면을 보면 일단은 써서 보관한다. 나중에 연구할 작정이다.”
나는 이 오주 선생의 말에 공부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의 시작은 호기심이다. 미리 재단하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밀하게 파고들어 판단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우선은 궁금해야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알고 싶기 때문에 자료를 찾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호기심의 크기에 비해 결과는 미미할 수 있겠다. 그럼 또 어떠랴. 세상엔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미리 결과부터 생각하는 것은 ‘처세’이지 공부는 아니다. 이 글을 읽고 호기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면 내 의도는 그리 빗나가지 않은 것일 터.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오주 선생이 도대체 누구인지부터 찾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인생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상률 작가
‘공부 귀신’, ‘공부 선수’, ‘공붓벌레’…. 귀신이니 선수니 벌레니 하는 말이 공부 뒤에 붙어 있다. 이런 말이 붙었다는 건 공부가 특별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때 말하는 공부는 정답 하나만을 고르는 것, 즉 정해진 답을 잘 찍는 시험 공부를 말한다. 정답 고르는 것을 ‘찍는다’라고 하는 걸 보면 시험 공부가 그다지 바람직한 공부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모두들 정답 찾기에 목매달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내가 50년 넘게 살아봐서 아는데!) 정답 찾는 게 아니고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생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오로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 좋은 질문은 이미 정답을 품고 있기도 하다.
정답을 품고 있는 질문. 그런 질문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또 하나의 정답을 대려는 이가 있다. 그런 이들은 오로지 정답 찾기가 공부인 줄 알고 있는 ‘공부 귀신’ 내지 ‘공부 선수’ 혹은 ‘공붓벌레’들이다!
질문을 잘하는 첩경이나 왕도는 없다. 다만 삶의 비의를 조금이나마 알고 살기 위해 우리는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도를 닦거나 명상을 해야 하는 ‘마음 공부’를 하는 것으로 짐작할 터.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도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잘 읽을 일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도를 닦으라는 것도 아니고, 영성을 키우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책만 잘 읽으면 된다.
그런데 책을 잘 읽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책의 저자와 등장인물의 의도를 아는 일이다. 의도는 무엇 때문에 아는가?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책은 읽은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낸다. 결코 하나의 의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다. 저자도 모를 의미를 아는 것. 사실 그게 저자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공부에 필요한 두 가지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공부라는 말을 들으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먼저 철이 들어야 한다. 모든 엄마의 가장 큰 불만은 아이가 좀 진득하니 앉아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느 집에서나 흔히 있는 엄마와 아이의 갈등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라 하소연을 했더니 선배가 선문답처럼 “공부는 철이 들어야 하는 거다.”란 말을 던졌다. 철이 든다는 게 뭔가?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 뜻을 정확히 이해한 건 나중에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다. 아이들이 12살 무렵이 되면 전두엽이 최고조로 발달해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억제능력도 생긴다. 공부를 하려면 다른 하고 싶은 걸 참을 수 있는 자제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부는 때가 되어야 하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각의 탄생』을 쓴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에피소드다. 그에게는 존이라는 수재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그가 참나무로 된 육중한 강의실 문을 열지 못해 끙끙거리자 다른 친구가 손잡이 부분을 밀어 쉽게 문을 열어 주었다. 수재 친구가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얼마 전에 배웠잖아. 토크방정식의 원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존은 회전축으로부터 어느 지점에 가해지는 힘이 가장 적은가를 단숨에 계산할 수는 있었지만, 그걸 실제 세계와 연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존처럼 공부한다. 사람들에게 공부가 지겨운 이유는 물리든 역사든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그저 억지로 하기 때문이다. 방정식을 공부하고 연도를 외워서 현실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니 그저 기계적으로 외워야 하고 세상에 공부만큼 재미없는 일은 없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청소년이 바이크나 팝에 미쳐 역사나 유행에 관해 조사한다고 하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왜냐하면 너무나 알고 싶고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부란 대체 지금의 나와 혹은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야 재미있는 일이 된다.
너무 태평한 소리인가 싶지만, 필요를 느낄 때까지 좀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실생활로부터 공부를 길어 올릴 줄 알아야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대상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에이코믹스> 편집장
공부를, 고3이 되어서야 겨우 시작했다. 이전에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고, 만약 가더라도 충실하게 수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대입을 위한 공부도 지극히 실용적인, 일종의 기술이었다.
나에게 공부란, 내가 관심 있는 세상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철학과 사회과학 세미나를 시작했다. 이 세계가 무엇인지, 어떤 법칙들을 통해서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서는 문화, 문학 이론에 대해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영화, 만화 등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했으니까. 그 과정들이 지금 평론가로 활동하는 데 꽤 도움이 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이 유용하다. 나의 생각, 입장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세계’를 파악하기에 좋으니까. 개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나에게 공부란 지금 흥미로운 대상에 몰두하며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다. 대학 때 영화를 좋아해서, 더 알고 싶어서 개론서인 『영화의 이해』를 읽었다. 영화의 개념이 무엇인지, 영화가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았고, 촬영, 편집, 연기 등등 세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세계영화사』를 읽고 영화 변화, 발전 과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사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사의 주요한 작품, 누벨바그 등 영화사조와 필름 누아르 등 장르의 대표작들을 보기 시작했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출연한 배우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시 관련 책을 읽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영화에 대한 글을 이곳저곳에 쓰다가, 영화기자가 되고, 영화평론가가 되었다.
영화처럼 만화, 장르소설, 일본문화에도 흥미가 생기면서 더 알고 싶어졌고, 책을 찾아 읽으면서 체계를 세우고 그중 더욱 관심이 가는 분야를 파고들다 보니 대중문화평론가로서 글을 쓰고 있었다. 진짜 공부는 다른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일이 끝난 시간에도, 퇴직을 한 후에도 자신의 인생을 살 수가 있다. 삶이란 결국 세상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이고 탐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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