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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이들이 공부를 즐기게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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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3-16 01:59 조회 6,015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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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
 
공부에서 정떨어지게 하는 체계적인 과정?
10명 가운데 1등 하는 아이가 있다. 이 정도면 꽤 잘하는 학생 아닐까? 한 반이 34명이라 하면, 3~4등 안에 드는 빼어난 성적이다. 공부 좀 한다고 칭찬받아 마땅한 아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입시철의 언론 기사들을 찬찬히 살펴보라. 기사는 보통 SKY 등의 상위권 대학, 서울의 중위권 대학, 그리고 ‘중하위권’ 대학으로 예측 합격선을 찬찬히 일러 준다. ‘중하위권’이라는 표현 속에는 성적 낮은 아이들이 지원하는 대학이라는 느낌이 묻어 있다.
그러나 실제 그 대학들에 다니는 아이들은 공부를 무척 잘했던 학생들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려면 수능 평균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2등급이면 전체 수험생 가운데 11%, 10명 가운데 1등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이들을 ‘중하위권’이라 뭉뚱그려 부른다.
이런 식의 논리로 보자면, 반에서 3~4등까지는 중하위권, 나머지는 ‘그냥 공부 못하는 아이’일 뿐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일에서 흥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아이들은 공부를 무척 괴로운 일로 여긴다. 당연하다. ‘대학민국’ 청소년의 대부분이 죽어라 책을 파는 이유는 대학입시 때문이 아니었던가. 결과만 놓고 보자면 입시란 한 반에서 1~2명을 뺀 나머지는 인정도, 대접도 받지 못하는 게임이다.
학생들을 목숨 걸고 공부하도록 이끄는 입시는 학생들을 ‘공부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떨어지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십수 년 학창 시절을 거치는 동안, 대부분 학생들을 ‘공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탓이다.
 
토큰(Token) 공부의 해악
SKY는 입시 공부에 ‘올인’하는 학생들의 최종 목표다. SKY의 합격선은 대략 전체 수험생의 1% 내외다. 100명 가운데 1등을 해야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한 학년이 대개 300~400명 정도이니, 한 학교에서 전교 3~4등 안에 드는 최고 우수한 아이들만 이런 대학을 노릴 수 있다.
두말할 것 없이 공부에서만큼은 한 가닥 하는 학생들이라 하겠다. 게다가 이들은 긴 입시경쟁의 ‘승자(勝者)’들이기도 하다. 그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즐기게 되지 않을까? 현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한민국에서의 공부는 입시와 취직, 승진 목적으로 ‘어쩌지 못해 하는’ 활동이다. 공부의 즐거움? 길 막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공부가 즐거우세요?”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심리학에 재밌는 실험이 있다. 길거리 농구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몇 명 추려 내어 농구를 시켰다. 조건은 한 게임할 때마다 꽤 많은 ‘수당’을 주는 거였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뛰었다.
일당을 손에 쥔 아이들에게 실험자들은 앞으로도 농구를 하면 계속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다음 날, 아이들은 일찌감치 모여서 농구를 했다. 실험자는 약속대로 수당을 주었다. 그러나 액수는 전날보다 많이 적었다. 아이들은 이런 게 어디 있느냐며 투덜댔다. 그 다음 날, 아이들은 또다시 농구를 하러 왔다. 이번에는 실험자가 수당을 못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농구공은 코트에 덩그러니 버려졌다. 아이들이 신경질을 내며 집에 가버린 것이다. 그들은 농구를 무척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보상’이 사라지자 농구도 싫어졌다. 보상, 토큰(token)은 좋아하는 일에서 정 떼게 만드는 특효약이다. 취미일 때는 좋아했지만 직업이 되면 싫어지는 일이 어디 한둘이던가. 명문대 합격이란 ‘토큰’을 손에 쥔 아이들도 공부에서 멀어지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쓴맛의 즐거움은 훈련해야 느낀다
공부는 과연 지겹고 힘든, 어쩌지 못해 하는 활동일까? 단맛은 누구나 좋아한다. 단 음식에 입맛 당기는 것은 본능이다. 쓴맛은 그렇지 않다. 쓴맛을 즐기려면 상당 기간의 훈련과 반복이 필요하다. 믹스 커피는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아메리카노의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도 그렇다. 연예 프로그램이나 게임에 빠져들기는 쉽다. 반면, 공부의 즐거움에 단박에 빠져드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하면 공부는 세상 그 무엇도 주지 못할 깊은 즐거움을 준다.
아이들이 공부를 즐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마다 천 원씩 준다고 해보자. 그러면 마침내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될까? 토큰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엇이건 습관이 되려면 그 자체로 즐겁다고 느껴야 한다. 공부의 흥미를 제대로 느끼게 하려면 어찌 해야 할까?
 
행복=이룬 것–바라는 것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다. 공부는 왜 해야 할까? 진학, 취직, 승진에 필요 없어도 공부를 굳이 해야 할까? 이런 의문이 드는 이들에게 나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행복공식을 들려주고 싶다.
 
“행복〓이룬 것–바라는 것”
 
즐겁게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욕망을 틔워 많이 이루든지,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세상은 앞의 것을 좋아한다. 더 많은 수입, 더 좋은 집, 더 멋진 차를 가지라고 부추기는 식이다.
마음은 물욕(物慾)에 쉽게 끌린다. 많이 갖고 편안해지고픈 심정은 본능에 가깝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달달한 음식에 입맛이 끌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입맛 내키는 대로 단 것을 잔뜩 먹으면 어떻게 될까? 건강은 망가지고 성격도 광포해지기 쉽다. 튼튼해지고 싶다면 혀에 당기지 않더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행복 공식에서 ‘이룬 것’보다 ‘바라는 것’을 다듬는 데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배운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이들은 수준 낮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 욕심을 다스리며 체면 차릴 줄 안다. 그래서 늘 당당하다. 갖고 싶은 것, 이루고픈 것이 많은 사람은 유혹에 약하다. 자본주의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래야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괜찮은 집이 있어도 더 훌륭한 곳에 살아야 한다고 설득하며, 부족할 것 없는 삶도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데 왜 하지 못하냐며 다그친다. 그래서 언제나 생활이 쪼들리며 마음은 불안하다.
 
공부, 자본주의 최고의 생존 전략
이렇게 볼 때, 공부는 ‘자본주의 최고의 생존 전략’이다.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으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골프가 취미인 사람과 독서를 즐기는 사람을 견주어 보라. 골프를 치는 이들은 여가 생활을 위해 숱한 돈을 써야 한다. 독서가 일상인 사람은 어떨까? 1~2만 원으로 책 한 권을 사면 일주일 남짓을 즐겁게 보낸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볼 때는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공공도서관 이용은 무료이니 비용 걱정할 일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적다. 적은 지출로도 일상을 꾸리는 능력이 있는 덕분이다. 최저생계비 수준의 소득으로도 왕후장상(王侯將相) 같이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누린다. 정리해고가 일상화되고 누구나 늘그막을 걱정하는 시대다. 독서는 경제와 상관없이 행복한 삶을 꾸리는 최고의 기술이다. 청소년기에 지적 호기심을 틔우고 공부 습관을 길러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공부 습관을 기르려면
이제 앞의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어떻게 하면 공부 습관을 갖출 수 있을까? 공부는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다이어트는 꾸준히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금식과 폭식을 거듭하다 몸매를 놓아 버리고 만다. 공부도 그렇다. 무엇보다 가늘고 모질게 끝까지 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짧고 굵게 승부하려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과정을 거듭한다. 책을 엄청나게 사대며 장대한 계획을 세웠다가 작심삼일로 끝나 버린다는 뜻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는 나쁜 음식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 버려야 한다. 눈에 보이면 먹고 싶어지는 탓이다. 공부할 때도 다르지 않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소일거리들을 멀리해야 한다. 나쁜 먹거리에 길들여진 몸이 좋아지는 과정에서는 ‘금단증상’을 피하기 어렵다. 책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도 유혹은 끊이지 않는다.
좋은 환경이 좋은 습관을 만든다. 공부에, 책에 빠져들기 쉬운 장소를 가까이 하라. PC방과 노래방보다 도서관과 책방에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주변을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부모와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도,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매일 보고 느낀다. 책 보라고,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부모가, 선생님이 책 보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광경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음식 홍보가 된다. 즐기듯 공부하고 생각을 곱씹는 모습은 독서 흥미를 효과적으로 북돋는다. 안타깝게도, 공부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지하철 안에서 책 보는 이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TV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연예 프로그램에서도 ‘독서가 취미’인 사람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나온다 해도 앞뒤 꽉 막힌 소심한 인물로 그려질 뿐이다. 아이들이 왜 책을 멀리하고 공부를 지겹게 여기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비엔나처럼 될 수는 없을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천재들의 도시’였다. 프로이트, 클림트, 슘페터, 브람스, 비트겐슈타인, 호르크하이머, 츠바이크에서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위대한 과학자, 예술가, 문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엔나 출신들이다.
비엔나에는 왜 그토록 많은 천재들이 있었을까?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일에 있어 ‘사회 촉진자(Social Facilitator) 효과’는 무척 중요하다. 홀로 뛰는 마라톤은 포기하기 쉽다. 반면, 여럿이 무리를 지어 달릴 때는 훨씬 힘이 덜 든다. 밥도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공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지성을 나누는 분위기가 꾸려질 때, 공부의 결실은 훨씬 커질 테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비엔나가 그런 모습이었다.
우리의 현실을 당시의 비엔나와 견주어 보라. 우리 사회는 과연 지성이 자라날 만한 분위기인가? 공공 도서관 열람실은 입시생과 취업준비생으로 붐빈다. 공부를 ‘즐기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도 입시와 취업의 시기가 지나면 도서관은 칙칙한 기억으로 잊힌다.
공부는 욕망을 다잡고 마음을 추스르는 수양법이다. 누구에게나 평생 필요한 삶의 기술이라 하겠다. 제대로 인생을 살고 싶다면 공부하는 즐거움에 눈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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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벼이삭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가을벼이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선생님의 글에 대 공감 합니다.  즐거운 맘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때와  그렇지 못하는 때.  저만 느끼는 우울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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