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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몸부림’을 마주하는 ‘지나가는 사람’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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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1-17 17:54 조회 7,68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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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엽 김해기적의도서관 사서
 
독서치료에 대한 오해와 이해 사이, 왜 모임을 하고 싶었나
 
“모임을 통한 가장 큰 변화는 ‘나의 마음을 내가 보살피게 되었다’는 거예요. 평소엔 내가 왜 우울한지 슬픈지 기쁜지 화가 나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냥 흘러가기만 하던 감정들을 정면으로 맞선다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좀 더 이해되는 게 많아진 것도 달라진 점이에요. 사실 전 독서로 ‘치료’할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에게는 치유할 상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을 때보다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 시간만큼은 다른 것 신경 쓰지않고 나에 대해서 또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치료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모임 중반까지도 진정한 의미나 이로 인해 내가 뭘 얻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늘 막연한 느낌으로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마치고 나서, 제가 모임에서 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기분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조절할 수있게 된 저를 발견하게 되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나의 감정과 맞서줄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주위의 친구들이 독서 ‘치료’라는 말을 듣고 쉽게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이나 정신적으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독서치료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 년간 독서치료 모임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의 후기이다. 이들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치료’라는 말이 주는 병리적인 뉘앙스 때문에 독서치료는 종종 여러 겹의 오해를 사지만, 독서치료는 단 한 권의 책으로,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마법처럼 ‘변신’하는 무엇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책을 읽고 자신을 정직하게 통과시키고 용기 있게 마주볼 때 조금씩 더 깊어지는 자기 이해이다. 책읽기를 통해 오랫동안 목에 걸려 있던 ‘가시’ 같던 상처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도무지 실체가 잡히지 않던 ‘남들’처럼 살지 않게 하는 의지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온전함을 긍정하고, 삶은 계속 흔들리는 중에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환상 없이 비약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남들 다 가는 대학’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들어가서 느낀 ‘문화적 충격’이 상당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수험생으로 살기까지 몸에 밴 성실하고 순종적인 태도로 무척 다양한 ‘다름’이 섞이는 곳에서 삶의 과제를 허덕이며 맞닥뜨려야 하는 생활은 마음의 갈피를 정하기는커녕 매번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유예하듯 진학한 대학원에서 만난 독서치료는 학문이거나 공부이기 전에 처음으로 나를 오롯이 들여다보고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소설가 김형경이 칼럼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가르친다면」(한겨레 <세상읽기> 2008.9.25)에서 “성교육이 사춘기에 시작되어 청춘기 초기까지 이어지듯, 그 시기에 인간의 마음과 발달에 대한 교육도 병행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고 몸이 성장하듯 마음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삶의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인식한다면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만 절망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한 것처럼, 마음을 읽는 독서치료를 통해 청소년들이 조금 덜 헤맬 수 있기를 바랐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긴장과 좌절의 연속인지 겪어 봤던 터라, 고등학생들이 아무리 입시의 최전선에 있느라고 도서관을 찾기 힘들다 하더라도, 독서치료와 접속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실제로 모임은 어떻게 운영하였나
외부인인 공공도서관의 사서가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교 내부의 승인과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왜 이 학교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지, 친구들과 하려는 독서치료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참가자를 모집할 것인지, 얼마나 자주 어디서 만날 것인지 등을 도서관이나 독서 관련 동아리를 담당하는 선생님과 접촉하여 의논하고 협의했다. 3년 동안 특목고와 인문계 고등학교 두 곳에서 모임을 진행하며 조금씩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방학 기간을 제외하고 일 년간 10회 모임을 운영하였다. 독서치료 모임을 위해 관심 있는 친구들을 따로 모집한 경우도 있었고, 이미 활동 중인 동아리 회원들을 만난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독서치료 활동은 책 읽기가 전제된 것이어서 기본적인 책 읽기가 가능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점이다. 시험이나 수학여행 등 학교 일정에 따른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모임의 주기와 장소도 대체로 일관성 있게 큰 원칙을 정해 두고 시작했다.
치유 도서는 성장하는 동안 자신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근원가족부터 사회문화적인 맥락까지 두루 살피고, 고등학생으로서 최우선 과제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돕는 순서로 배치하였다.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보다는 성인 독서치료 프로그램에서 ‘검증’된 책들을 주로 활용하여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날그날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그림책을 보조적으로 활용하였다.
첫 시간에는 앞으로 모임을 통해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공들여 안내하였다. 독서치료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던 기존의 책 읽기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단계를 통해 구체화되는지, 실제 모임에서 주로 하게 될 ‘치유적 말하기’에서는 참여하는 친구들이 어렵게 꺼낸 말을 귀 기울여 잘 듣는 일이 왜 중요한지 등을 설명했다.
 
① 먼저, 치유적 책 읽기(혼자서 한다)
• 선정된 치유서를 한꺼번에 또는 몇 차례에 나누어 집중하며 통독한다.
• 읽으면서 떠오르는 ‘나’의 생각과 느낌에 주목한다.
• 이 때 책의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마음으로부터의 공감이 중요하다.
 
② 다음으로, 치유적 글쓰기(혼자서 한다)
• 처음 치유서를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을 적는다.
• ‘나’에게 와 닿는 메시지의 강도를 적는다.
• 읽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파장을 적는다.
• 다 읽고 났을 때 정리되는 생각을 적는다.
•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 주변 사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적는다.
• 읽고 나서 떠오르는 얼굴, 읽기를 권하고 싶은 사람, 선물하고 싶은 사람을 적는다.
• 위의 내용을 메모 형식 또는 문장으로 솔직하게 적는다.
 
③ 마지막으로, 치유적 말하기(모임에서 사람들 앞에서 한다)
• 준비해 온 ‘치유적 글쓰기’를 바탕으로 입을 연다.
• ‘나’를 남김없이 한껏 열어 보이며 표현한다.
• 다른 친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다른 친구들과 서로 마주보며 토론한다.
 
모임의 진행자는 한 사람의 참여자로서 먼저 치유서를 정직하게 읽고 자신에게 와닿는 부분을 정리하고, 고등학생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 등 책에 대한 요약 자료를 준비했다. 말문을 열기 어려워할 경우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참여자들이 미진함을 느끼지 않고 충분히 발언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어느 한 사람이 발언을 독점하지 않도록 했다. 학생들은 털어놓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통해 나 혼자만 그런 것 같았거나 발설하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던 것들에 대해 꼭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하는 등 서로를 통해 촉발되거나 환기되고, 격려하거나 지지받는 집단치료의 ‘역동’이 일어난다.
비단 독서치료 모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는 사람이 갖는 불안과 부담감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특히, 심리학적 지식)을 다 알지 못한다는 점과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일 텐데, 진행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독서치료 모임에서 실제적인 치료사는 책이며, 엄밀히 말해 진행자는 참여자 개개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상담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참여자들끼리 ‘안아주기’와 ‘담아주기’가 유연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조정자 혹은 조율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독서치료는 ‘완치(cure)’의 개념이 아니라 ‘돌봄(care)’의 성격이 강하므로, 지속적인 책 읽기를 통해 진행자와 참여자가 함께 성숙의 길로 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1) 박성우의 ‘청소년 시집’『난 빨강』(창비, 2010)에 수록된 시 「몸부림」과「지나가는 사람」을 인용하였다. 고등학생 독서치료 모임을 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진행자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한다. ‘참 좋을 때다’, ‘그 시기엔 원래 모두 아픈 거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힘겹지만 치열하게 자신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친구들이 마음속에 무겁게 갖고 있던 말들을 나눌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만나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성하게 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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