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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이들에게 책에서 걸어 나온 상상력을 먹이자 - 책위에서, 책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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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8:45 조회 7,23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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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살이 흐르고
갖가지 풀과 나무, 새들이 노래하듯
아이들 영혼이 평화롭게 숨쉬며
아름답게 자라는 그곳

나는 학교도서관이 이런 느낌이 살아 숨 쉬는 그런 곳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이나 마을도서관이나 무릇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라면 문을 딱 열고 들어서는 순간 산소가 가득한 숲처럼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아이들 가슴과 머리를 탁 열리게 해주면 좋겠다. 숲속에 온갖 풀과 나무와 짐승들이 함께 살고 있듯이, 도서관에 들어오는 아이들 영혼을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답게 채워주는 도서관이 자꾸자꾸 늘어나면 좋겠다.

학교에서 도서관은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사람 몸으로 치면 두뇌가 있는 자리다. 두뇌는 가장 신선한 산소와 깨끗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학교도서관도 학교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하고, 예산을 가장 우선으로 배정해야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책을 볼수 있게 꾸며야 하고, 어떤 책을 선택해도 좋을 만큼 좋은 책으로 넉넉하게 채워야 하고, 아이들이 책을 보며 아름다운 마음과 생각을 무럭무럭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따스한 눈으로 살펴주고, 아이들이 좋은 책을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사서교사가 필요하다.

도서관,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거늘
내가 1977년에 처음 서울문창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란 게 몇 가지 있다. 첫째가 한 학교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만 명이 넘었다. 둘째가 한 반에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거였다. 한 반 아이들이 80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큰 학교에 도서실이 없었다. 그때까지 도서실이 없는 학교는 생각도 못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작지만 도서실이 따로 있었다. 책 종류도 많았고, 언제든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어떨 때는 문을 닫는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책상 아래 엎드려 숨어서 캄캄할 때까지 읽었다. 어려서 눈이 좋아 그랬는지 몰라도 달이 안 떠서 아주 캄캄하지만 않으면 읽을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도서실 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로 창 넘어 들어오는 달빛으로 책을 읽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책을 읽은 게 아니라 마치 내 영혼 속으로 책이 들어와 마음껏 뛰놀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원주중학교를 다닐 때도 학교도서관이 꽤 큰 편이었다. 개가식이어서 마음대로 볼 수 있었다. 가끔 시 낭송회나 자유교양독서대회나 백일장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는 서울공업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교문을 들어서면 맨 처음 보이는 게 일제 때 지은 커다란 도서관이었다. 그때는 2층 전체가 도서관이었고, 역시 개가식으로 자유롭게 책을 뽑아 읽을 수 있었다. 빽빽한 장서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일제 때부터 있던 책들이 그대로 있었다.

일본어라 읽지는 못해도 대충 훑어보면서 책 냄새를 맡거나 묵직한 양장본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느끼는 기분도 좋았다. 시인 이상이 서울공고 선배라고 가을이면 이상 시화나 낭송회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끼리 하는 거라 조촐하지만 그래도 참 즐거웠다. 이웃학교문학반 여학생들을 불러오기도 했고, 지금 보면 더 알 수 없는 시들을 놓고 침을 튀기며 토론했다. ‘열세명의 아해’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럴싸하게 의미를 붙여서 떠들어 대던 생각이 난다.

나는 어느 학교나 당연히 도서실이나 도서관이 있고, 누구나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큰 학교에 아이들이 책을 볼 수 있는 도서실이 없었다. 어떻게 학교에 도서실이 없냐고 했더니 예전에 있었는데 교실이 모자라 없앴다고 한다. 그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았더니 연탄창고 옆 칸에 넣어 두었단다. 아무렇게나 묶어서 쌓아 놓은 책을 보고 어처구니도 없고 화도 났다. 세상에나, 책을 쓰레기 취급을 하다니. 그것도 교육을 한다는 학교에서. 책을 쓰레기 취급하는 학교가 교육인들 제대로 하겠나? 이러니까 아이들까지 쓰레기 취급을 하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가 책 더미를 헤집어서 교실에 갖다 놓을 만한 책을 골랐다. 빗물에 얼룩지고 쥐 오줌에 썩어버린 책 가운데서 그나마 볼 수 있는 책을 골라서 몇 상자를 교실로 갖고 올라와 학급문고를 만들었다.

영혼이 뛰노는 ‘두뇌’ 대접은 아직도 멀었다
전교조 결성으로 파면 당하던 1989년까지 서울 시내 초등학교 네 곳을 옮겨 다녔는데, 도서실이 창고로 쫓겨났거나 아예 없는 형편이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있던 도서실을 아이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교실이 부족하니까 다 없앴던 거다. 당시 나는 도서실이 없는 학교는 영혼이 없는 학교, 도서실이 쓰레기 같은 학교는 두뇌를 쓰레기로 채운 학교라며 비판하였다. 강의 다닐 때마다 비판했고, 어린이도서연구회 주요 사업으로 학교도서실 예산 확보와 학급문고 살리기를 펼쳤다.

학교도서실은 당장 어찌할 수 없지만 학급문고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급문고로는 많은 책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책을 골라야 했고,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한테 학급문고용 도서목록을 알리기 위해서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학급문고용 권장도서목록을 만들어서 배포하기 시작하였다. 그게 지금도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해마다 펴내는 권장도서목록의 시작이다.

1994년 복직했을 때는 아이들이 줄어들어서 교실에 여유가 나기 시작했고, 어린이도서 연구회에서 학급문고 살리기 운동 파급 성과에 힘을 얻어 마을 작은도서관 만들기, 공공도서관 어린이실 만들기, 학교도서관 되살리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복직한 학교에서 기껏 되살렸던 도서실도 컴퓨터실을 만들라는 교육청 공문 한 장 때문에 구석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영어전용실을 만든다고 도서실을 없애는 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학교도서실이 살아나기 시작하였고, 학교도서관으로 정착하였다.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을 하는 많은 단체와 교사와 독서운동 활동가들 힘이 컸다. 그러나 아직도 몇몇 학교를 빼고는 학교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맑고 밝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아이들 영혼이 뛰어노는 두뇌와 같은 대접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학교도서관, 책에 바탕한 문예공간으로 만들자
학교도서관은 먼저 아이들이 좋은 책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읽으면서 즐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 나아가 책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예술 공간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들은 책만 있으면 즐겨 읽는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은 책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독서문화 체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데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오감으로 책을 만나게 하고, 책에 담긴 내용을 풀어내도록 해야 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경험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책벌레들이 책 노예가 아니라 책 주인으로 자랄 수 있고, 책하고 가깝지 못했던 아이들이 책 동무가 될 수 있다.

곧 도서관에서 책을 바탕으로 놀이, 노래, 만들기, 그리기, 글쓰기, 책 이야기 나누기, 책읽어주기, 빛그림 보여주기, 원화전시회, 책에게 소원을 말해 봐, 시화전, 독서토론회,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 작은 책 만들기, 손바닥 책 만들기, 내가 만드는 그림책, 등장인물로 분장하기, 독서앨범 만들기, 책 사진 대회, 책에서 걸어 나온 노래 만나기, 시낭송회, 연극,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연극만 하더라도 인형극, 그림자극, 노래극, 손가락인형극, 막대인형극, 줄인형극, TP인형극, 마당극, 판소리극, 탈극…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미 학교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문화 활동만도 수십 가지가 되고, 앞으로 개발해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예술 활동 역시 무궁무진하다. 많은 내용들이 어린이도서연구회 문화부와지역 ‘동화읽는어른모임’들이 만들어 실천했던 활동들이 더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각급 도서관 문화예술 활동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 활동들이 계속 발전해서 도서관이 한층 풍요롭게 되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아직 좋아하지 않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오감으로 만나면서 평생 벗으로 사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도서관 활동들
그런데 가끔 각급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관에서 기획해서 진행하는 행사를 보면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도 있다. 독서골든벨이나 퀴즈대회처럼 너무 얄팍한 독서 지식과 개인 경쟁 중심으로 치우친 활동들이다. 지식보다는 감성을 일깨우는 활동, 경쟁 중심보다는 여럿이 함께 협력해서 무엇을 이루는 활동으로 나가야 한다. 독서교실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독후감이나 원고지 쓰는 방법이 주요 내용인 경우도 있다. 독서교실에서 왜 독후감 쓰기를 할까? 더구나 요즘도 원고지쓰기를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화예술 행사라고 일주일에 한 편씩 보여주는 영화 목록을 보니 로봇들이 나와서 칼싸움 하고 총싸움 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유치한 애니메이션도 많다. 그런 영화들이 과연권장할 영화인가? 더구나 영혼을 가꿔야 하는 도서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립이나 공립 도서관은 물론이고 학교도서관에서까지 그런 영화를 보여준다. 그런 영화로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그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어느 학교에 정보도서관이 잘 되어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아이들이 도서관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걸 보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이 책을 즐거운 동무로 만나게 하기가 어려운 까닭이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게임이나 영화가 한몫하고 있다는 걸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학교도서관은 좋은 책뿐 아니라 좋은 놀이, 좋은 노래, 좋은 연극, 좋은 영화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이런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도서관, 보다 즐겁고 아름다운 곳으로 거듭나라
나는 학교도서관에서 기획하고 진행해야 할 모든 문화예술 감상과 체험과 창조 활동은 누가 뭐라고 하든 좋은 책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좋은 책을 몸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을 깨우치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꿀 수 있는 감성을 자극하고 계발하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사계절출판사 책놀이터에서 아이들이 5일 동안 모여서 만들어 발표하는 그림자극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또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은 초중등 학생들이 만든 동영상 십여 편을 보았다. 경기도 화성 민들레 극장에서 『랑랑별 때때롱』을 전문 연극인들이 공연하고, 참가한 관객들이 직접 연극 속에서 체험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백창우는 좋은 동화책을 읽은 느낌과 생각을 노래로 만들어서 ‘동화책에서 걸어 나와 만난 노래’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있다.

요즘 어린이문화운동 단체들이 책을 바탕으로 만나는 문화예술 영역을 계속 확장시키고 있다. 이런 새로운 문화예술 공연과 체험과 창조 활동들이 학교도서관 현장으로 널리 퍼져나간다면 학교도서관이 훨씬 더 즐겁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런 문화예술활동까지 충분하게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고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요즘 여러 학교에 다니면서 도서관에서 강의할 때가 많다. 일단 장서나 공간 구성은 어느정도 만족할 수준이다. 사서가 있는 도서관도 많다. 이렇게 모양은 좋아졌지만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따스한 기운보다는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는 도서관이 아직은 더 많다. 또 최근 이삼년 사이에 새로운 책들이 넉넉하게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삼년 사이에 새로 나온 좋은 책이 많은데, 그런 책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에 좋은 책이 항상 넉넉하게 공급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좋은 책을 골라서 신청할 수 있는 안목과 정보력을 갖춘 교사들이 많아져야 하고, 책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전문 사서교사들이 확보되어야 한다. 단순히 문헌정보에 대한 지식이나 있고, 자기가 할 일을 도서관 청소나 책 관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서는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학교도서관을 우리 소중한 겨레의 아이들 영혼이 자유롭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자라날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때, 어린이와 어른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힘은 어린이 책을 읽는 교사와 학부모들한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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