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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64점짜리 겨울방학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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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2-24 03:24 조회 5,96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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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서울 연가초 사서교사

64점이면 충분해
유태인의 시험은 100점 만점에 64점이면 합격이라고 한다. 더 높은 점수를 바라지 않는다. 꼭 시험 점수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64점이라는 평균치의 잣대에서 살아간다. 나는 그들의 교육관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살아 보니 각 단계에서 배워야 하는 모든 것들은 64점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저절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64점 이상을 받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필요할까? 그것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그 때, 그 나이에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는 것보다 64점 언저리에서 삶을 영위하고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신 나게 삶을 즐기고 놀 때 긍정적 에너지가 정신과 육체와 존재를 채워 준다.
나는 내 일에 대해서도 64점 정도면 만족한다. 훌륭해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포기한 사서교사라 할 수 있다. 오늘도 100점짜리 사서교사가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64점 정도의 나를 사랑하고, 내 주변의 많은 64점 언저리의 부족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갑자기 점수 얘기를 하는 이유는 곧 겨울방학이 다가오는데 벌써부터 들썩거리는 분위기가 겨울 방학도 100점으로 채우기 위해 안팎으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 보자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 『마지막 거인』(프랑수아 플라스, 디자인하우스)이란 그림책에 나오는 대사이다. 책을 덮고 나서 이 말이 자꾸 내 귀에 환청처럼 맴돌았다. 모험을 즐기던 주인공이 어느 날 거인들의 땅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싶은 욕심을 참지 못하고 거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결국 침묵의 땅, 거인의 세계는 떠들썩한 인간의 손에 의해 사라지고 만다. 여기서 파괴되어 사라진 거인은 자연이다. 최재천 교수님의 서평 중 이런 말이 나온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이다.” 방학조차 자꾸만 길을 내려는 지금 교육의 방향에서 반대로 가 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길을 내지 말자! 그냥 두자! 덮어 두자! 방학에는 진화된 문명의 교육에 지친 ‘나’를 ‘너’를, ‘아이들’을 가만히 두고 ‘자연’으로 돌아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자고!

방학에는 충분히 고독해지자
교사에게 방학은 연찬(硏鑽), 즉 성장의 시간이다. 우리는 그 성장을 방학 캠프, 행사, 독서교실 등으로 실적 쌓기를 직・간접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다. 교육을 꼭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는 시선으로 보는 것. 비우고 멈춰 있는 것은 교육으로 보지 않는 시선과 생각에서 비롯된 사회적 분위기이다. 오르기만 하는 것이 성장은 아닐 것이다. 침묵하는 것도 멈춰있는 것도 성장의 한 과정이다. 오히려 침묵하지 못하는 것, 멈춰있지 못하는 것. 이것의 정체는 ‘성장’이 아닌 ‘불안’이다. 나는 어른도 아이들도 고독의 힘을 느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독의 축복

                                   페터 회

고독은 내게 있어 은혜의 불빛이다.
나는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음을 느낀다.


‘불안’을 동력으로 열심히 애쓰던 욕심을 내려놓고 멈춰 있고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학기 중에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들의 기대를 채워 주기 위해 나를 소비했다면, 방학에는 내가 ‘나의 기대’를 채워 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 동안 몰입해서 단테의 『신곡』 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고 훌쩍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기도 하고 고양이처럼 게으르게 며칠을 멍 때리며 낭비해 보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충분히 고독을 누리고 잔뜩 내 기대를 채우고 나에게 사랑받을 기회를 듬뿍 주고 싶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아 물오른 나를 새 학기에 ‘짠!’ 하고 꺼내 놓고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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