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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책 읽어 주는 사람, 전기수의 역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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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13 08:55 조회 17,69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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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권
고려대 초빙교수,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 저자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한양의 교동(현 낙원동) 입구에서 한 이야기꾼이 사람들 앞에 서서 소설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마치 선비라도 되는 양 겉에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정자관을 쓰고 있었다. 원래 정자관은 학문하는 선비들이 방안에서 쓰는 모자였는데,그는 특이하게도 집 밖에서 정자관을 쓰고 있었다. 자기가 꽤 학식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또 한 손에는 책을 펼쳐들고, 다른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책은 그냥 멋으로만 들고 있고, 실제로는 전혀 보지 않고 외워서 낭독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꾼 앞에는 허름한 차림새의 청중들이 빙 둘러 서있었다. 앞줄의 몇몇 사람들은 뒤에선 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개 양반댁의 머슴이나 여종, 홀로 사는 노인, 코흘리개 아이, 그리고 다리 맡에 사는 거지처럼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었다.

이야기꾼은 문장에 가락을 붙여 마치 시를 읊듯이 소설을 낭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투를 연극배우처럼 흉내 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실감 나는지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야기 속에 푹 빠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일까? 청중들은 이야기 중간에 자기도 모르게 훌쩍훌쩍 울거나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이야기꾼은 한참 동안 정신없이 낭독하다가 별안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이야기 속에 푹 빠져 있던 청중들이 “아!” 하고 탄식하며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에잇! 그렇게 중요한 대목에서 이야기를 끊나 그래.”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서 이야기꾼 앞으로 엽전 한 닢을 던지니, 다른 사람들도 너나없이 엽전을 꺼내어 던지기 시작했다. 한 푼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 두 푼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새 이야기꾼 앞에는 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것을 일컬어 흔히 ‘요전법’이라 했다.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를 때마다 입을 꼭 다물어 청중들이 자기도 모르게 돈을 던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야기꾼은 비로소 목청을 가다듬고 소설을 마저 낭독했다.


책 읽어 주는 사람
그 이야기꾼은 바로 ‘전기수’였다. 전기수(傳奇叟)란 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노인’이란 뜻인데,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을 일컬었다. 요즘으로 치면 구연동화 선생님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먹고 사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강담사, 강독사, 강창사 등이 있었다.

강담사(講談師)는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가 남에게 들려주는 사람으로, 흔히 이야기꾼, 이야기 주머니, 이야기 보따리 등으로 불렸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인복, 민옹, 김옹(김중진) 등을 들 수 있다.
강독사(講讀師)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책인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는 사람으로, 흔히 전기수라 했다. 물론 이들은 소설을 읽는 전후에 짧은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소설만 읽는 것이 아니라 옛이야기도 들려주는 이야기꾼이기도 했던 것이다. 앞에서처럼 이들은 문장에 가락을 붙여 유창하게 낭독했을 뿐 아니라 내용에 따라 온갖 표정과 몸짓을 섞어가며 아주 실감나게 읽어 주었다. 조선후기 유명한 전기수로는 이자상, 이업복, 김옹(김중진) 등을 들 수 있다.

강창사(講唱師)는 어떤 이야기를 ‘창(唱)’에 얹어 구현하는 사람으로, 흔히 판소리 광대, 판소리 소리꾼이라 불렸다. 대표적으로 고수관,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전기수라는 독특한 직업이 생겨났을까? 조선후기에는 이야기책인 소설이 매우 유행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양반과 상민 할 것 없이 누구나 소설을 읽고 싶어했다. 그래서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가 성행하고, 싼값에 찍어낸 방각본 소설까지 나왔다. 또 날마다 한양 거리를 뛰어다니며 책을 파는 조신선 같은 책장수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가 많았고, 책값이 워낙 비싸서 책을 빌리거나 사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투로 된 고전소설은 눈으로 읽는것보다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보면, 시골 사랑방에서 목청 좋은 사람이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며 소설을 낭독하고, 동네 사람들이 일하면서 흥겨운 표정으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전문적으로 낭독해 주는 전기수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전기수는 아주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전기수가 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소설을 낭독하려 하면, 어느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심지어 부유한 아낙네들은 남편 몰래 전기수를 집안으로 불러들여 소설을 낭독시키기도 했다. 전기수는 비록 지체 높은 임금이나 큰 공을 세운 장수는 아니었지만, 그 무렵 백성들 사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전기수의 낭독문화
조선후기 문필가 추재 조수삼의 작품집 『추재기이』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를 보면 당시 전기수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고 있었다. 한글로 된 소설을 잘 읽었는데, 「숙향전」, 「소대성전」, 「심청전」, 「설인귀전」 같은 것들이었다.
매달 1일은 초교(종로 6가) 아래에서, 2일은 이교(종로 5가) 아래에서, 3일은 이현(배오개) 시장에서, 4일은 교동(낙원동) 입구에서, 5일은 대사동(인사동) 입구에서, 6일은 종각(보신각) 앞에 자리 잡고 소설을 읽곤 했다. 7일부터는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하여 한 달을 마쳤다. 달이 바뀌면 전과 같이했다.

전기수는 한양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즉 사랑방이나 활터, 약국, 담배가게 등에서 활동했다. 또한 전기수는 중국과 일본, 유럽, 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 전기수를 설서인(設書人)이라 불렀고, 일본에서는 강호시대 이후에 이야기꾼이 성행했는데 교양을 위주로 흥미있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떤 사람이 거리에 앉아서 「수호전」을 읽는데, 많은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 전기수는 머리를 흔들고 코를 벌름거리며 책을 읽었으며, 비록 글자는 모르지만 내용을 모두 외워서 매끄럽게 낭송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기수의 이야기책 낭독 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그래서 심지어 낭독을 듣던 한 청중이 전기수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18세기 정조 임금 때 어떤 전기수가 종로의 담배가게 앞에서 「임경업전」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신 김자점이 임경업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는 대목에 이르자, 청중 가운데 한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고는 담배 써는 칼을 들고 나와 소리쳤다.



“네가 김자점이더냐?”

그리고는 칼로 찌르니, 전기수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전기수가 이야기책을 너무 실감 나게 낭독한 탓에 그 남자가 전기수를 김자점으로 착각해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을 전해 들은 정조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런 허무맹랑한 죽음도 있으니 가소롭다!”

이처럼 전기수의 활약상이 늘어 가자 조정에서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전기수를 탄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선 고지식한 양반 남성들은 이야기책인 소설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여자들이 소설에 빠져 집안일을 게을리하고, 심지어 세책가에서 돈을 주고 소설을 빌려 보며 재산을 축낸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당시 전기수의 주요 고객은 무지한 서민층과 규방의 여성층이었다. 이들은 전기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식을 각성했고, 부정한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당연히 보수적인 양반층의 입장에선 그것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어떤 전기수는 여자로 변장하여 규방에 들어가 소설을 낭독해 주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 아녀자들과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영조 때의 한 전기수는 10여 세부터 눈썹을 그리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서 여성들의 언문(한글)을 배웠다. 또 소설을 잘 읽었는데 그 목소리조차 여자와 꼭 같았다. 어느 날에는 홀연히 집을 나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그는 양반 사대부가에 출입하면서 혹은 진맥을 볼 줄 안다고 하고, 혹은 방물장수라고도 일컫고, 혹은 소설을 읽어 주기도 했다. 나아가 비구니들과 함께 불공과 기도를 드려 주기도 하니, 사대부 부녀자들이 한번 그를 보기만 하면 좋아하지 않음이 없었고, 때로는 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기수는 많은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었다. 먼저 그들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규방에서 무료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 주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소설의 독자층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전기수는 조선시대 민중 교육자이기도 했다. 당시 민중들은 전기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웃고 웃으며 정서를 순화했다. 다시 말해 전기수는 일종의 ‘길거리 선생님’이자, 조선의 또 다른 ‘인기 연예인’이었던 것이다.

전기수의 전통은 근・현대에도 드문드문 이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설책을 파는 장사꾼들이 손님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소설을 읽어 주었다. 또 1960년대에는 경북 영주와 봉화, 영양 등에서 ‘글패’라는 무리가 함께 돌아다니며 책을 팔기 위해 소설을 읽어 주기도 했다. 그들은 장날이면 옹기전이나 나무전 앞에서 선비의 상징인 정자관을 쓴 채 소설을 앞에 펼쳐놓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손님들을 끌었다. 더 나아가 전기수의 후예인 정규헌 선생은 1960년대 후반까지도 「춘향전」, 「심청전」, 「조웅전」, 「장끼전」 같은 소설을 외워서 사람들에게 불려다니며 읽어 주었다고 한다.

전기수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같은 대중매체가 보급되면서부터였다. 그 매체들은 전기수보다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전기수의 이야기를 점점 듣지 않게 된 것이다. 또 현대에 들어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책이 흔해진 것도 전기수가 사라지게 된 까닭이었다.


왜 다시 전기수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물, 공기, 음식……. 그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이야기란 것이다. 이야기도 물이나 공기 및 음식처럼 늘 우리 곁에 있어서, 그것이 사라져 불편을 느낄 때까지는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먼저 우리 조상들은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곤 했다. 특히 어렸을 때 신화나 전설, 민담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를 배우고, 또 그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퍼트리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힘을 길러왔다.

또한 이야기는 상상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는가 하면, 저 멀리 구름 너머의 자유로운 환상 세계를 만들어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을 때로는 슬프게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통쾌하게 웃게 만들면서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역사도 이야기를 통해 전해져 왔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마을 어른들이 입에서 입으로 씨족이나 부족의 역사를 후대에 전했고, 문자가 발명된 뒤에는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를 이야기 형태로 기록해서 남겼다.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조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책도 모두 이야기 형태로 쓰여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생도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라. 어릴 적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잠들기 전에 부모님이 읽어 주시던 그림책 속의 이야기, 유치원 선생님의 구연동화……. 좀 더 커서는 친구들과의 수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채팅, 그 밖에도 드라마라든가 영화, 공연, 게임 속의 스토리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늘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다.

21세기에 전기수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다름 아닌 ‘이야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이야기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딱딱한 설명이나 논증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부드럽게 소통하기를 바라고 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 수학 스토리텔링이니, 과학 스토리텔링이니, 역사 스토리텔링이니 하면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서울시의 경우는 서울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여 이야기 지도나 조형물, 이야기 패널, 재현극 등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 관광 명소화하고 있다. 이젠 우리도 이야기로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좋은 이야기는 출판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 공연, 게임, 캐릭터 등 다양한 콘텐츠의 창작소재(원천소스)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젠 유능한 이야기꾼을 얼마나 많이 길러내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전기수가 다시 나타나 이야기책을 낭독해 주면 정말 좋겠다. 여러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전기수의 실감나는 낭독을 듣는다. 악한 인물이 나오면 함께 야유를 보내고, 주인공이 고난을 헤쳐 나갈 때는 함께 박수치고 환호하며, 전기수가 가장 절정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뚝 그쳤을 때는 “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영어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별도로 이야기책 낭독시간도 가져봤으면 좋겠다.

다행히 요즘 도서관에서 책 읽어 주기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아지고 있다. 서울시만 해도 서울도서관을 비롯해서 구립도서관 102곳, 교육청 관할 도서관 22곳, 국립도서관 2곳 등 126개의 도서관과 800여 곳의 작은도서관에서 책 읽어 주기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분들은 도서관에 온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시각장애인에게 책을 읽어 주기도 한다. 때로는 학교나 보육원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이분들의 활동 덕분에 책에 담긴 이야기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야기책 낭독문화는 인성 계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율리시스와 페넬로페』를 들으며 선과 악을 배웠고, 로마인들은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들으며 미덕과 악덕에 대해 배웠으며, 기독교인들은 수세기 동안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올바른 삶에 대해 학습했다. 우리 조상들도 「심청전」이나 「춘향전」, 「흥부전」 등을 들으며 효도와 정절, 우애 등을 배워왔다. 예로부터 효과적인 인성 교육에 있어서 이야기책 낭독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또 전기수의 이야기책 낭독문화는 여럿이 함께 하는 것, 즉 공동체 문화를 회복시켜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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