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선 경기 지도초 사서교사
디지털 기기와 가상현실에 익숙한 학생들은 종이책을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학생들이 탄성을 자아내고, 그 책을 빌리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을 찾게 하는 책이 있다면 어떨까? 학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디지털 매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는 다양한 책을 톺아본다. 그리고 다양한 물성의 책을 활용하여 꾸린 수업 사례를 소개한다.
'여러 가지 모양의 책 읽기' 수업 방법
학교도서관활용수업은 도서관의 물리적 환경과 사서교사의 교육·정보 서비스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자원 기반 학습(Resources-based Learning)이다. 초등 교육과정의 여러 교과와 단원에서도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는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학생의 참여가 활발한 주제를 고르라면 ‘여러 가지 모양의 책 읽기’ 수업을 꼽을 수 있다.
수업 기획·준비하기
올해 학교 이동 후 도서관을 정리하다 대출·반납대 안쪽에서 여러 권의 팝업북(입체책)과 빅북(big book)을 발견했다. 별치 서가를 구입해 대출·반납대 앞쪽에 표지가 보이도록 책을 전시했다. 큰 판형과 화려한 속지는 학생뿐 아니라 도서관을 찾는 교사의 관심도 사로잡았다. 자연스럽게 1학년 부장 선생님께 국어교과 협력수업을 제안할 수 있었다. 초등 1학년 2학기 국어 1단원(「소중한 책을 소개해요」) 7∼8차시는 여러 가지 모양의 책을 찾아 읽고 책의 모양과 내용, 재미있게 표현한 점 등을 찾아 말하는 활동이 진행된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모양의 책이란 팝업북, 페이퍼 커팅북과 같은 입체 그림책이나 흥미로운 모양의 책, 글이 없는 그림책, 새로운 표현 기법으로 만든 그림책 등을 의미한다.1) 교과서에 소개된 병풍책(아코디언북), 팝업북, 그림자책, 방수책 외에도 학교도서관에는 다양한 모양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새로운 책을 찾아 수시로 구입하고, 서가를 탐색하며 책을 모았다.
1) 교육부(2019), 1~2학년군 초등학교 국어 1-2 교사용 지도서, ㈜미래엔, p.94
수업 실행하기
여러 모양의 책을 소개할 때 아이들이 친숙하게 여길 만한 책부터 소개했고, 약 10분 동안 책의 종류와 특징, 책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안내했다. 모둠 책상에 미리 준비해 놓은 다양한 종류의 책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살펴보게 했다. 빅북은 원본 그림책과 함께 제공했고, 전자책과 AR(증강현실)책은 태블릿PC를 들고 모둠을 돌며 차례대로 보여 줬다. 학생들은 그림자책으로 연극 놀이를 하거나 포티큘러북(Photicular book), 렌티큘러(lenticular) 렌즈를 사용해 보는 각도에 따라 도안이 변화하거나 입체감을 표현하는 페이지를 위아래로 빠르게 넘기며 연신 신기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소감 나누기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도서관에 방문할 다른 반 친구들을 위해 책을 정리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다양한 물성의 책이 주는 교육적 효과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예술과 문학, 비문학의 결합은 아이들에게 지식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 준다. 클라라 코르망의 『놀라운 곤충의비밀』은 어린이 곤충 애호가들의 눈을 사로잡는 책이다. 이 책은 곤충의 날개를 플랩으로 표현하여 마치 책 위에 곤충이 앉아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2차원의 책이 입체성을 갖는 순간 학생들의 심미성도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여러 가지 모양의 책은 특수 제작한 경우가 많아 대개 비싸다. 분실이나 훼손으로 인해 변상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비싼 책을 왜 들였냐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대출 불가인 경우가 많다. 대출·반납대 앞에 별치 서가를 처음 놓았을 때 책을 좋아하는 교장선생님께서 큰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들은 많은 학생이 볼 수 있도록 빌려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렇게 학생들의 손에 들려 교실로 간 책은 평소 책과 도서관에 관심 없던 학생들에게 놀잇거리가 되었고, 아이들을 도서관 이용자로 만들었다. 낯선 모양의 책은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평소 관심 있던 영역에 대한 흥미도 불러일으켰다. 페이퍼 커팅 기법으로 화석 발굴의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책 『살아 있는 화석』(막스 뒤코스)을 읽던 학생은 자기도 이런 일을 해 보고 싶다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떼지 않았고, 포티큘러북의 원리가 궁금했던 학생들은 렌즈의 올록볼록한 부분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태블릿PC로 앱을 실행 후 『움직이는 태양계』(미국 자연사 박물관 엮음)를 비춰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모습을 3D로 관찰하던 학생은 각각의 행성이 공전하는 속도가 궁금했다며 한참을 들여다봤다.
학교도서관의 자료는 전교생이 함께 이용하는 만큼 최대한 훼손되지 않도록 이용교육을 해야 한다. 펼친 병풍책을 다시 접을 땐 접힌 방향대로 접고, 포티큘러북은 렌즈 부분이 깨지면 활용할 수 없기에 도서 반납함이 아닌 대출·반납대에 반납하는 게 좋다. 3색 컬러 렌즈로 그림을 비추면 색에 따라 서로 다른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카르노브스키(Carnovsky) 작가의 아트북은 렌즈도 꼭 함께 반납한다. 협력수업을 하지 않고, 자료만 지원할 경우 책의 특징과 주의사항 안내문을 함께 제공해 학생들이 자료를 바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여러 모양의 책은 교사에게 창의적인 수업자료가 되기도 한다. 글 없는 그림책은 그림을 이야기로 바꿔 쓰거나 이미지로 맥락을 추론하는 수업에 활용할 수 있다. 『쩌저적』(이서우), 『흰둥이』(저우젠신)와 같이 기승전결이 분명한 그림책은 학생들과 뒷이야기를 상상하기 좋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제공하는 AR책은 동물과 식물, 우주, 인체, 안전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어 관련 수업에서 동기유발 자료로 활용하거나 스마트 기기를 처음 조작하는 학생들에게 증강현실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북큐레이션·독서프로그램 연계하기
펼쳐만 놓아도 전시회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화려한 팝업북은 눈에 잘 띄도록 사전대 위에 두었고, 학생들이 많이 찾는 그림자책은 펼쳐서 무대를 만든 후 모둠 책상 위에 세워 놓았다. 에런 베커의 빛 아트북 『모두가 빛나요』는 창가에 전시해 햇빛에 비춰 볼 수 있도록 했다. 별치 서가를 구성해 상시 전시하는 것 외에도 책의 특징을 살려 도서관 곳곳에 비치하자 학생들은 조금씩 관심을 보였다. 1학년 수업을 마치고 2주 후 시작된 독서교육주간에는 더 많은 학생이 여러 모양의 책을 볼 수 있도록 도서관 속 작은 전시회를 진행했다. 중·고학년 학생들도 아트북과 포티큘러북, 팝업북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림자책은 서로 읽으려고 줄을 서기도 했다. AR책은 독서교육주간이 끝난 이후에도 보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서 태블릿PC를 도서관에 계속 준비해 두었다. 망설임 없이 몇 번의 클릭으로 AR책을 능숙하게 조작·이용하는 걸 보며 학생들에게는 책의 색다른 물성을 그리 낯설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건 데일리는 저서 『독자 기르는 법』에서 아이들이 독서 경험을 스스로 통제할 기회를 기술이 제공한다고 말한다. 자막, 이미지, 소리 등을 조작하며 여러 종류의 텍스트를 통해 ‘놀이’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책의 생김새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거나 화면을 조작하고, 귀로 듣고, 코로 향기를 맡는 등 책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학생들은 ‘놀이 독서’의 맛을 알아간다. 다채로운 모양과 특징을 가진 책을 통해 학생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이 공존하는 도서관을 체험하고, 디지털 읽기로의 첫걸음을 안전하게 내디딘다. 다양한 물성의 책을 안전하고 공평하게 제공하며 교육과정 지원과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양한 물성의 책과 함께, 학교도서관도 변화하고 있다.
문미희 나누미촉각연구소장
촉각책이란 시각적 약자를 위한 만지는 그림 동화책이다. 일반 범주에서는 점자를 중심으로 제작된 책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촉각책을 직관적으로 정의한다면, 말 그대로 만져서 보고 느끼는 형태의 도서이다. 촉각책은 질감, 점자, 묵자(墨字)를 함께 실어야 하며, 특히 중도 실명으로 인한 시각장애인 부모가 정안인 아이에게 읽어 주는 동화책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형태의 고유 색상으로 표현해야 한다.
촉각책은 제작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인쇄 매체를 이용한 출판 도서와 손으로 직접 만드는 핸드메이드 도서이다. 출판 도서는 일반 종이책과 기본적인 물성이 같다. 그 위에 투명한 UV 인쇄가 볼록 올라와 손으로 만져서 이미지를 인지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와 다르게 핸드메이드 도서는 삽입되는 이미지에 따라 다양한 물성이 사용된다. 기본적으로 종이나 패브릭 위에 이미지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미지를 만들 때는 사물의 고유 질감과 유사한 재질의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인쇄 도서와는 달리 이미지의 형태뿐만 아니라 질감과 색상까지도 유사하게 표현하여 사물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시각장애인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다른 형태의 이미지로 인지하기에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표현되어야 어린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촉각책의 특장점과 학교도서관에서의 활용 방안, 그리고 촉각책을 다룰 때 주의할 점을 알아보자.
보고, 만지고, 느끼는 촉각책: 교육과정과 연계하기
시중에서 판매하는 오감 도서를 간혹 촉각책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오감 도서는 이미지가 중심이며 그 안에 일부만 촉감이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꽃 그림 일부에 꽃의 촉감을 넣는다. 하지만 오감 도서는 촉각보다는 시각적 효과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촉각책은 온전히 모든 이미지를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에게 정확한 형태와 정보를 전달해 주며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게 한다.
촉각책은 주로 맹학교나 점자도서관에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촉각책의 보급률은 저조하여 이를 접할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촉각책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변함이 없다. 시각장애 아이들은 촉각책을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듯하다. 그러나 접근 경로를 더욱 확장해 시각장애 아이들뿐만 아니라 비장애 아이들도 함께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촉각책의 저변 확대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나누미촉각연구소에서 제작한 『강낭콩 한 알』이라는 촉각책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책은 강낭콩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책이다. 초등학교 4학년 과학 ‘식물의 한살이’ 교과과정에 활용되기도 했다. 강낭콩 기르기에 성공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실패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책을 통해 강낭콩 기르기에 실패한 아이들은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만져 보고 살필 기회가 되었고, 성공한 아이들은 다시 한번 그 과정을 복습하는 계기가 되었다. 촉각책의 장점은 그림이나 사진 이미지로 보는 것이 아닌 실제 사물과 비슷한 이미지를 직접 만져 보고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촉각책은 제작하는 내용에 따라교과과정과 연계가 가능하며, 점자 교육을 통한 비밀편지 및 카드 만들기, 촉감을 통한 감각 교육활동과도 연계할 수 있다.
현재 대두되고 있는 문화 다양성과 관련하여 장애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겠다. ‘장애인의 날’이나 ‘흰지팡이의 날’에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며 전인교육 과정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촉각책 제작 키트를 활용하여 나만의 촉각책을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다.
촉각책, 어디서 구입하고 어떻게 다뤄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촉각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도서출판점자’이다. 도서출판점자는 점자도서 외에 촉각책, 확대도서, 라벨스티커 도서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도서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된 촉각책은 도서출판점자 홈페이지(www.kbraille.com)나 네이버 온라인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의 종류가 많지 않아 다양한 책을 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 판매 중지된 책도 여럿 있어 책을 구입하기 전에 본사에 직접 문의한다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
핸드메이드 촉각책은 현재 판매하고 있지 않다. 주로 기관에서 동아리를 결성해 제작하거나 일회성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나누미촉각연구소에서 제작하는 촉각책은 종류별로 1∼5권 정도 제작하고 있으며 판매 목적으로는 제작하지 않고 있다. 나누미촉각연구소가 지향하는 것은 촉각책을 제작하고자 하는 기관을 찾아가 교육을 통해 동아리를 형성하고, 자체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인쇄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촉각책은 내구성이 약하다. 주로 바느질이나 접착제로 고정되기 때문에 힘을 많이 가하면 형태가 망가지기도 한다. 패브릭으로 제작한 촉각책의 경우에는 불순물이 묻을 수 있어 손을 청결하게 씻고 만지는 것이 좋다. 간혹 패브릭으로 제작된 촉각책을 세탁해도 되느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지만 촉각책도 책이기 때문에 손세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탁하게 되면 이미지의 형태가 망가지고 재질이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촉각책의 특성상 망가진 부분이 생기면 다시 고쳐서 사용해야 한다.
더 나은 촉각책을 만나기 위하여
촉각책은 시각적 약자를 위한 그림 동화책이라는 점에서 그 수요층이 두텁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시각적 약자만 이용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 인지해야 한다. 촉각책을 제작하는 곳이 거의 없기에 책이 다양하게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제작 비용과 제작 소요 시간이 많이 들어 높게 책정된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촉각책을 제작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사항은 형태이다. 눈으로 보이는 형태와 손으로 만져서 느껴지는 형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촉각책을 제작하는 사람이 주로 정안인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요소를 아무리 배제한다고 할지라도 완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시각장애인과 함께 촉각적인 형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특히 인쇄 매체로 제작하는 촉각책은 시각적인 이미지 위에 UV 인쇄를 한다.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돌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 위에 또 다른 촉각적 이미지를 더해야 한다. 사물이 겹치는 부분은 분리해서 표현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국내 UV 인쇄 퀼리티가 업체마다 다르며 그에 따라 가격 차이도 크다. 맹학교에 기증되고 있는 인쇄로 제작된 촉각책 중 대다수가 복잡하고 알아볼 수 없어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촉각책은 다양한 질감이 담겨 있어 만지는 재미가 있다. 이러한 재미를 통해 읽는 사람의 감각을 깨워 줄 것이다. 책과 멀어진 아이들이 촉각도서를 통해 책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날 수 있으며, 스스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유럽에서는 2008년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촉각책을 만드는 국제대회가 개최되었다. 지역 학교와 가족들이 참여한 이 대회에 다양한 촉각책이 출품되었다. 촉각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참여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인 책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새로운 인식에 도전했던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는 출판 도서와 지역별 동아리 활동으로 제작된 도서가 명확하게 잘 구분되어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의 촉각책 생태계는 제작과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 현장에서의 활동을 통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책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모두를 위한 점자책을 소개합니다
홍근혜 국립서울맹학교 사서교사
점자책을 떠올리면 하얀색 종이에 도트가 올라온 두툼한 책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점자책은 시각장애인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발맞춰 점자책도 이용자인 시각장애인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는 양상을 보여 준다. 점자로만 이루어진 점자책과 점자와 묵자가 함께 인쇄된 점·묵자 혼용도서, 일반 그림책에 점자인쇄 스티커를 붙인 점자라벨도서, 그림의 형태를 점으로 나타내고 소재의 질감에 텍스쳐를 붙인 점·묵자 촉각도서, 점자 페이지마다 QR코드를 제공하는 점자음성도서 등이 있다. 네이버 클로바 램프라는 똑똑한 블루투스 스피커를 이용하면 묵자도서를 사람의 목소리로 읽어 주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의 독서를 도울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간편한 독서 도구와 환경이 점점 갖추어지고 있다. 서울맹학교 도서관에는 이러한 다양한 점자책이 주제별로 구비되어 있다. 네이버 클로바 램프도 3대 보유하고 있어 학생들의 독서 환경 조성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점자책이 낯선 선생님들을 위해 점자책을 구석구석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한다.
점자책과 종이책의 공통점은 종이에 인쇄된 책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점자책은 점자의 풀어쓰기 형식의 특징 때문에 책의 부피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 종이책의 2∼3배의 분량으로 인쇄된다.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분권으로 나누어 제본된다. 점자의 도트는 여러 사람이 반복해서 읽게 되면 도트가 눌려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점자책의 수명은 종이책보다 짧다고 보는 것이 정론이다. 요즘 점자책은 묵자, 촉각자료, QR코드 등과 혼용되어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서 시각장애인들의 편의성이 증대되고 있다.
|
점자책은 도서출판점자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판매목록을 참고하여 희망 도서를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다. 점자책의 가격은 도서의 분량과 제본 상태에 따라 다르다. 도서출판점자 출판사에 유선으로 연락하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점자책 기증은 시각장애학교, 시각장애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지며, 만약 특수학급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 학생이 있다면 한국점자도서관으로 연락하여 기증받는 방법을 문의할 수 있다. 점자책은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구매나 기증이 쉽지 않다. 한 가지 팁을 드리면 한국점자도서관 인스타그램 계정(@kbraille_library)을 팔로우하면 각종 점자도서나 점자 관련 행사 소식을 접할 수 있는데, 간혹 점자도서 중 사용 연한이 지난 책을 필요한 기관이나 개인에게 기증할 예정이라는 포스팅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점자도서관 인스타그램에 관심을 두고 종종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
점자책을 열람하거나 보관할 때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트 인쇄는 여러 번 읽으면 눌리게 된다. 점자책은 서가 배열 시에도 촘촘하게 꽂지 않도록 주의하고 여유를 두는 편이다. 도서관 리모델링이나 이전 시에도 점자책은 줄로 묶지 않고 박스 포장하여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점자책은 다소 큰 부피와 여러 분권으로 나누어진 점 때문에 이동 시 불편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림책이나 다양한 표, 그래프 등에 대한 설명까지 더해지면 책의 분량이 상당히 방대해진다. 이런 점 때문에 요즘 학생들은 점자파일을 활용하여 ‘한소네’라는 시각장애인용 단말기로 책을 읽는 경향이 짙어졌다. 서울맹학교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유관기관(국립장애인도서관, 한국점자도서관 등)에서 서비스하는 점자도서 파일을 확보하고, 이를 학생들이 수행평가, 여가 활용 목적으로 요청할 때마다 개인에게 제공한다. 서울맹학교 학생들도 비장애 학생들과 동일하게 베스트셀러나 웹소설을 많이 찾지만 신간이 점자도서 파일로 가공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도 점차 개선되고 보완되는 실정이다. 도서의 디지털화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자료의 신속성 면에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전자파일과 종이 점자책은 한동안 공존하며 보완하는 방향으로 유지되리라 생각한다.
손으로, 눈으로 만끽하는 책 읽는 즐거움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과 ‘점자’ 혹은 ‘점자책’을 주제로 독서주간이나 독서의 달 행사를 시도해 본다면 어떨까? 매년 10월 15일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흰지팡이의 날이다. 11월 4일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한국 점자의 날이다. 이런 날을 기념하여 도서관에서 관련 행사를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음소리 에듀케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독서프로그램을 꾸린다면 ‘나만의 점자책 만들기’를 하여 도서의 서지사항을 점자로 찍어 점자책을 만들어 봐도 좋다. 간단한 점자를 찍기 위해서는 ‘점판(문자를 찍기 위해 고안된 문자판)’과 ‘점필(점지를 새기는 도구)’이 필요한데, 행사 예산을 활용하여 네이버스토어 ‘마음소리 에듀케어(smartstore.naver.com/maeumsori)’에서 필요한 재료를 구매하여 준비하자.
점자세상
책을 읽고 느낀 소감 한 문장, 혹은 책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을 정하여 점필로 찍어 보자. 점자의 육점 구성과 점자일람표는 점자세상 홈페이지(
www.braillekorea.org/)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간단한 점자 강의도 무료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점자를 직접 손으로 찍어 보는 활동을 통해 점자의 구성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마음과 상황에 대해 공감해 볼 수 있다. 점자책을 활용한 장애이해교육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점역 봉사
학교 근처 맹학교, 시각장애복지관 등과 협력하여 청소년 대상 점역 봉사활동을 체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역을 필요로 하는 도서를 학생들이 나누어 타이핑하고, 파일을 기관에 기증하면 점자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점역 봉사를 신청할 때 기관마다 자체 규정과 양식을 요구하는 곳도 있으니 파일을 기증할 기관의 담당자와 사전 협의는 필수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녹음 도서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점역 봉사활동은 사회복지, 특수교육 분야의 진로를 꿈꾸는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독서와 문해력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활동이 될 수도 있다.
흰 지팡이와 점자는 시각장애인을 상징한다. 점자와 점자책은 시각장애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읽는다는 것‘의 숭고함과 가치를 일깨워 주는 특별한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손끝으로 간절히 읽어 내려가는 한 글자, 한 문장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 눈으로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모든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전달되어 모두 함께 ‘읽는다는 것’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학교도서관에서 점자책을 활용한 특별한 독서 행사 ‘흰 지팡이 독서 주간’을 꼭 꾸려 보기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3 <학교도서관저널> 11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