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성장하며 나를 돌아보는 일
류지은 강릉중 사서교사
셀프케어가 필요한 중고 신입 교사
“초임 선생님만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이 긴장될까?”라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절대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싶다. 2022년 정식 임용되어 발령장을 받은 나는 중고 신입교사이다. 사서와 기간제 사서교사로 일한 경력을 꽤 길어서 신규 교사 타이틀이 민망할 정도였다. 내 경력에는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근무 이력도 포함되어 있다. 내 경력을 보고 어떤 공공도서관 관장님께서는 ‘누더기 경력’이라는 평도 하셨다. 하지만 나는 천을 조각조각 기워 만든 아름다운 ‘조각보 경력’이라고 자평했다. 다양한 경력 덕분에 급하게 인력이 필요한 시기에 대학생 근로장학생들을 뽑아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공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 권장도서 코너를 만들어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겉으로는 쾌활하게 과업을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학교도서관에서 맞이하는 새 학기는 늘 두렵고 떨린다. 새로운 학생들, 교사들과 만나야 하며 도서관에 대한 기대치를 내가 충족하지 못할까 봐 근심된다. 새롭고 기발한 행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만약 학교를 옮겼다면 낯선 교직원, 학생들, 공간과 마주할 때 두려움은 더 커진다.
2022년 3월, 첫 발령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다.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사까지 가야 하는 처지라 오만가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바닷가 아이들 성향이 드세진 않겠지?’, ‘사투리를 못 알아듣는 일은 없겠지?’, ‘학교도서관 리모델링은 되어 있을까?’, ‘장서점검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3월 개학을 앞두고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느꼈다. 수년 전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서선생님이 전임자였던 것이다. 스치고 지나간 실낱같은 인연이라도 동아줄로 꼬아대는 나의 절박함 덕분에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조언을 아끼시지 않으셨다. 그 뒤로도 강릉이란 낯선 도시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늘 함께하는 지역 사서교사 동료이자 멘토가 되어 주고 계신다. 새로 만난 학생들은 온순했고 장서점검도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전임 사서선생님께서 도서관 운영을 잘해 주셔서 관리자분들도 도서관 지원에 우호적이었으니, 나는 꽤 좋은 환경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학교에 오자마자 독서 수업이라뇨?
개학 첫날, 가장 먼저 찾아온 아이들은 도서관을 사랑하여 단골손님처럼 드나들던 도서부원들이었다. 나를 보고 당황하며 전임 선생님을 찾고 안부를 묻는 학생들을 보며 전임 선생님의 인기를 실감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도 학생들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사서 경력이 있는 나는 새 학기 업무에 금방 적응했지만 금세 겪어 보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개학 첫 주부터 1학년 아홉 반에 독서 수업을 해야 했다. 중간중간 찾아오는 수업과 공강 시간은 참으로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다. 일하다가 끊고 수업하는 것도 불편했지만 주 9차시 수업을 1학기 내내 하는 일은 처음이라 부담스러웠다. 나는 수업을 이끌 수 있는 교수 능력과 수업자료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나를 보는 아이들의 눈을 보며 한 시간 동안 말하는 수업이 가장 힘들었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짧다는 것과 나에게는 대중
을 휘어잡을 만한 말주변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극무대 같은 교단에서 노련한 교사를 연기하기 위해 ‘자기최면’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독서, 게임 등을 검색하며 콘텐츠를 찾아다녔다. 그때 우연히 <신서유기>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TV가 7년째 없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예인들이 즐겁게 게임하는 장면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바로 이거야! 수업을 게임으로 만들어 보는 거야. 게임하는 당사자도 유익하고 게임을 보는 사람도 즐거울 거야. 그러면 나 혼자 말하는 수업이 아닌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이 될 수 있을 거야!
독서 흥미를 북돋는 게임 활동을 꾸리다
“안녕, 얘들아∼ 나는 강릉에 이사 온 지 3일 되었어. 길도 몰라서 네비 없이는 못 다닌단다. 강릉은 바다도 너무 예쁘고 공기가 참 좋네∼ 너희들이 맛집만 알려 주면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추천 좀 해 줄래?” 학생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무슨 동으로 이사 왔는지 묻고, 자신들이 아는 맛집을 알려 주는 등 적극적이다.
나의 첫 수업 시간, 독서 수업에 책 읽는 시간도 있지만, 다양한 게임 활동도 한다고 소개한다. “무슨 게임이요?” “오늘도 해요?” 또 한바탕 난리가 난다. 어쩌지? 아직 계획을 완벽하게 못 세웠다는 말은 못 하고, 우물쭈물 연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서로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까 ‘독서 빙고’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 독서 빙고 활동지를 나누어 주며 말한다. 학생들은 “생일이 3월인 친구들 지워”, “『완득이』 읽어 본 친구들 지워” 하며 빙고를 만들어 간다. “투 빙고 나오면 선착순 세 명한테 간식 줄 거야!” 나의 핸드백 속 미니 초코바 개수만큼 어설픈 수업이 지나갔다. 다음 반 아이들 수업을 위해 간식을 빨리 마련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수업은 무엇을 할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험도 안 보는 수업인데 대충 놀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교육적 가치가 높은 수업을 해야겠다는 신념이 커졌기에 나는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다. 학생들은 걱정한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어른들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부탁을 하면 순수하게 응하고, 조언도 망설임 없이 얘기해 준다. 나도 ‘다음에는 문항을 줄이자.’, ‘문제에 오류가 있군.’ 하면서 보완할 부분을 꾸준히 수정하며 게임 수업을 다듬어 간다. 독서 시간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학생들이 책을 읽기 싫어해서 독서 분위기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게임을 하더라도 독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해야 하기에 책 읽기는 필수였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청소년소설을 선정하여 소설 앞부분을 흥미롭게 설명해 주면 읽겠다고 손드는 학생들이 생겼다. 수업시간에 읽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은 누워 버리거나 나랑 눈이 계속 마주쳤다. 그런 학생들은 내가 옆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책을 짚어 가며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15페이지 이상 읽어 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활동지를 작성하게 했고, 모든 활동지를 첨삭하여 다음 수업 시간에 돌려주었다. 학생들은 내가 빨간펜으로 작성한 피드백을 굉장히 좋아했고 갈수록 정성스럽게 활동지를 작성했다. 270명의 활동지를 첨삭하는 일은 피곤하지만 보람찼다. 아
이들이 활동지에 적은 어려운 어휘들에는 하나하나 뜻을 달아 주고, 문해력 신장을 위해 해당 어휘들로 단어 알아맞히기 스피드 게임을 했다. 웃고, 화내고, 웃으면서 단어를 설명하며 노는데 교실이 들썩들썩했다. 놀면서 배우는 아이들이 예뻐 보였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도전은 계속되기를!
전보다 더 친해지고 성장한 학생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쳤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초임 시절을 나고 있거나 새 학교로 발령 받은 동료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활동들을 소소하게 소개한다.
첫째, 지역 선생님들과 한 달에 두세 번씩 모인다. 선생님들은 수업 연구에 대한 열의가 높아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수업과 자료를 공개하셨는데, 이때 받은 자료들이 수업 준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외에도 교육청 연수와 게릴라 모임 등으로 한 달에 두세 번씩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지면서 동기애도 생겼고, 서로 친해지면서 궁금한 점을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둘째, 청소년소설을 많이 읽는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한두 권으로 제한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소설을 추천하고 싶어서 폭넓게 읽었다. 선생님도 읽은 재미있는 책이라고 추천하면 학생들도 잘 읽는다. “58페이지까지는 약간 지루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진짜 재미있어. 그때까진 참고 읽어 봐.”라고 조언도 할 수 있어서 학생들의 재미없다는 볼멘소리를잠재울 수 있었다.
셋째, 도서관으로 찾아오는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친분을 쌓고 자연스럽게 상담을 한다. 친분이 쌓인 학생들은 독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들로 인해 힘이 빠질 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 덕분에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기가 나의 성장을 이뤄 내는 발판이 되었다.
발령 초창기, 내가 진행했던 게임 수업은 획기적이지 않았다. 독서 골든벨, 단어 스피드 게임 등 널리 알려진 수업들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보드게임도 해 보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설명서가 길거나 자신들이 접해 보지 않은 게임은 기피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도전하기 쉬운 게임으로 수업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이번 학기에도 게임 수업을 할 예정이다.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 구상 중이다. 유튜브에 익숙한 아이들이니까 재밌게 읽은 책을 토크쇼 방식으로 소개해 볼까? 청소년들은 음악을 좋아하니까 책의 내용을 토대로 음악을 선정하고, 작사하며 글쓰기 실력을 키워 볼까? 저작권 교육을 게임으로 해 볼까?
완벽한 수업을 하기엔 나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교사이다. 하지만 실패를 무서워해서 시도조차 해 보지 않는다면 즐거운 수업을 찾을 기회도 없겠지. 장기간 독서 수업을 맡으면서 다른 사서선생님들의 수업 사례를 많이 찾아보고, 연수도 들었다. 용감하게 수업을 기획해 보고, 아이들의 솔직한 피드백을 통해 보완해 나간다면 조금씩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신규 사서선생님들도 실패는 성공적인 수업을 위한 ‘버그 잡기 시간’이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고 꾸준히 도전하길 바란다.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수업 사례를 다른 선생님들께 나눠 주는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시나브로 실현되기를!
사서선생님을 위한
스피치 기본기 다지기
장한별 웜스피치 대표
아무리 좋은 책도 읽는 독자가 없으면 땅속 발굴되지 않는 유물과 마찬가지다. 정성을 들여 꾸민 도서관도 찾는 학생이 없으면 단절된 세계에 불과하다. 사서선생님은 지식의 보고인 책을 이용자들에게 적극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읽히지 않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 전달자이자, 나와 타인을 둘러싼 세계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정보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이런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를 책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스피치가 탁월하다면? 도서관 이용자들은 사서선생님이 제공하는 ‘지식의 포털’에 더욱 쉽게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에 대한 흥미도 높아질 것이다. 하여 지식의 포털을 더욱 깊고 넓게 열어 주는 사서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스피치의 기술을 ‘A(Attitude)-B(Body)-C(communication)’의 단계로 소개한다.
1단계 스피치의 태도(Attitude) "나는 자격이 있고 이 내용은 가치롭다!"
“아이들이 내 수업(프로젝트)에 흥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집중 못 하면 어떻게 하지?”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나 독서활동을 시작하기 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의 작은 반응이나 청중의 딴짓 하나에 불안해하며, 결국 전하려고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지식의 포털은 열리기도 전에 닫히고 말 것이다. 스피치의 시작은 자신감이다. 자신감 있게 책의 가치를 전하려면 사서선생님은 독서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누구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할까?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의 스피치 스타일은 저마다 다양하다. 혹자는 제품의 강점을 스토리텔링하고, 혹자는 강력한 연설을 하며, 혹자는 측은지심에 호소한다.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 제품은 좋다’라는 확신이다. 타인을 설득하고자 한다면 나 자신을 먼저 설득해야 하고, 타인을 몰입하게 하고 싶다면 내가 먼저 몰입해야 한다. 이러한 확신과 자신감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빌 게이츠는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며 “오늘은 나에게 큰 행운이 생길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크게 외쳤다고 한다. 무하마드 알리도 “나는 세계 최고다.”라고 항상 말했고 마침내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자기암시’ 훈련은 내면을 자신감으로 채우는 데 효과적이다. 학교 및 기업에서 강의를 2,500회 이상 해 온 필자는 이 훈련의 효과를 수없이 경험하였다. 발표를 성공적으로 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나만의 암시문을 작성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척하면서 큰 소리로 반복하여 읽다 보면 점차 나의 내면에 메시지가 스며들게 된다. 발표에 대한 불안감으로 청중과 눈맞춤조차 못했던 한 연사는 자기암시 훈련을 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당당한 눈빛으로 발표하게 되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고 하지만, 때로 행동 자체를 바꾸어 암시문을 외쳐 보고 ‘자신감 넘치는 척’하다 보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자기암시문의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매일매일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안겨 주는 말이 술술 나온다.
사람들은 나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신뢰한다. 나는 매력과 자신감이 넘친다.”
- 『한 권으로 끝내는 스피치』(장한별)에 실린 ‘자신감 회복 암시문’ 중에서
“나는 귀중한 책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이 내용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나를 통해 사람들은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
- 독서수업을 앞둔 사서선생님을 위한 암시문 예시
2단계 내용 구성(Body) "빠져드는 이야기는 설계부터 다르다!"
한 분야를 섭렵한 최고의 전문가라고 해서 그 사람이 수업을 가장 잘하는 것은 아니다. 잘 아는 것과 말로 잘 전달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책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매력적인 스피치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첫째, 청중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선생님처럼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달변가였던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이 대답하였다. “말을 잘하는 최고의 비결은 듣는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나의 수업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학생들의 관심사나 트렌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청중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관심 두지 않으면서, 왜 청중은 수업에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또래집단 문화가 강한 학생들에게는 유튜브든 ‘짤(주로 인터넷상에서 회자되는 사진이나 그림 따위를 이르는 말)’이든 게임이든 두루 알고 즐기는 콘텐츠가 있다. 필자는 특정 학생 집단을 대상으로 ‘롤(LOL, 다인 온라인 대전 롤플레잉 게임)’을 통해 리더십을 기르는 방법을 전한 적 있다. 드라마의 인물(주로 남주)을 사례로 활용하여 강의한 적도 있다. 자신의 관심사가 나올 때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수업 내용을 잘 기억하는 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서선생님이 공감대를 끌어내어 학생, 동료 교사, 학부모의 관심사와 책 사이에 연결점을 만들어 준다면 그들은 당신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단, 식상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라면 청중은 오히려 귀를 닫아 버린다. ‘내가 아는 이야기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스피치에 집중할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청중은 나의 삶과 시선이 반영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반면에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이 계속 이어지면 시시하다고 여긴다. 공감의 스토리와 빤한 스토리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한 권으로 끝내는 스피치』).”
둘째, 스피치에는 명확한 핵심이 있어야 한다.
수업이나 발표를 하다가 막판에 시간에 쫓긴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내용을 전하고 싶은 욕심으로 시간 관리에 실패한 경우일 것이다. 계획한 내용을 모두 전하고 싶은 열정과 욕심이 때로 ‘비극적인 발표’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청중에게 주고 싶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말로 쏟아붓는 것은, 입맛 없는 사람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음식을 때려 붓는 것과 같다.
핵심이 명확한 스피치를 위해 ABO식 구성을 활용할 수 있다. 먼저 청중을 고려해서 적절한 수준의 ‘목표(Aim)’를 정하고 주어진 시간에 따라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그 목표를 뒷받침하는 본론(Body)을 3개 내외로 만들고, 청중의 취향에 맞는 사례들을 포함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예고편처럼 관심을 끄는 오프닝과 여운이 남는 클로징(Opening & Closing)을 구성한다. 스피치도 보고서처럼 ‘서론-본론-결론’으로, 또는 소설처럼 ‘기-승-전-결’로 구성한다. 명확한 주제를 강조할 수 있도록 내용을 취사선택하고, 주제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내용은 제거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1분이든 한 시간이든 이를 듣고 청중이 한두 가지 포인트를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발표이다. 참고로 청중의 집중력은 대개 성인 기준 15분∼20분 정도이다. 긴 시간 동안 집중하여 듣기 어렵기 때문에 인상적이고 짤막한 스토리를 들려줌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3단계 청중과의 소통(Communication) "청중을 VIP로 여기고 피드백을 주자!"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독자가 생각하고 곱씹게 만들어 주는 책이 마음에 남듯이 스피치도 마찬가지이다. 청중은 자기 이야기만 쉼 없이 늘어놓는 토크 폭주 기관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을 맞추어 주고받는 연사를 원한다. 어떻게 하면 수업과 발표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참여할 기회를 줄 수 있을까?청중과 소통하는 스피치를 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질문’이다. ‘SQ3R(survey question read recite review, 독자가 글의 중심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기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독서 방법)’처럼 읽기를 비롯한 독서법에서 질문을 통해 독자의 호기심과 사고를 자극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무엇일까요?”
“최고의 명장이신 이순신 장군님께서 즐겨 보신 책은 무엇일까요?”
발표하는 중에도 질문을 던져 청중과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간접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앞서 ‘내용 구성(B)’에서 나왔던 청중의 언어까지 반영한 질문이라면 청중의 눈빛을 기대감으로 빛나게 할 수 있다. 청중의 반응에 대한 사서선생님의 피드백도 이후 사람들의 참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는 한 강의에서 이러한 피드백을 청중에게 주는 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디 가서 그런 답변하지 마세요. 무식하다는 소리 들어요.” 이러한 피드백은 한마디로 ‘내 이야기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말라’는 엄포로, 청중의 참여 없이 홀로 스피치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청중의 리액션은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감개무량하고 감사한 일이다. 어떤 답변이든 긍정적으로 피드백을 주자.
“새로운 관점이네요!”, “좋은 아이디어네요.”
이도 저도 내키지 않는 답변이라면 “아, 그럴 수 있겠네요.” 하면서 최소한 상대의 의견을 인정해 주자. 연사의 피드백은 한 사람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것과 같음을 잊지 말자.
새 학기 스피치, 나에게 말한다는 마음으로
사서, 사서교사는 도서관에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빛나는 책의 가치를 전하는 포털을 여는 소통 전문가이다. 대부분의 지식 전달자가 그렇듯, 가치를 전하는 일은 입을 통해서 수행된다. 스피치라고 하면 목소리와 발음 등 외부적인 요소부터 신경 쓰기 십상이다. 그런 훈련이 일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목소리의 힘은 발표 이후 몇 분을 넘기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확신의 눈빛과 마음으로(A), 청중을 고려한 명확한 메시지를(B), 청중과 소통하면서(C) 전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자기만의 개성 있고 탁월한 스피치를 구사하는 사서선생님을 통하여 더 많은 이용자들이 신비로운 성장을 이루고 도서관의 세계로 발을 디디리라 믿는다.
미리 살펴보는
열두 달 도서관 기념일
이경아 여주 오산초 사서교사
직장인에게 월요병이 있다면 나에겐 ‘월말앓이’가 있다. 월말이 다가올수록 다음 달 도서관 행사 고민에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3년째 매달 다른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거의 고갈되었다. 그렇다면 매달 행사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번 행사를 진행하고 나면 “선생님, 다음 달에는 뭐해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있어 보람도 느끼고, 평소 책에 관심 없는 학생들도 행사 기간에는 도서관을 드나드는 것을 보면 행사를 그만둘 수가 없다. 도서관 행사를 잘 홍보하고, 행사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독서를 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하는데, 매달 해도 늘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관 행사는 도서관 공간을 얼마나 시각적으로 예쁘게 잘 꾸몄는지와 긴밀히 연관된다. 도서관을 새롭게 단장하고, 멋진 공간에서 도서관 행사를 기획하는 선생님들을 위해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학교도서관을 시각적인 효과를 더해 단장해 보자. 다양한 행사를 더욱 풍성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을 아무리 잘 꾸미더라도 방문하는 학생들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효과적인 도서관 행사 홍보를 위한 전략 네 가지를 기억하라고 먼저 일러두고 싶다.
매달 특색 있는 행사를 기획하고, 행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시각효과를 도서관에 더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해 보길 바란다. 오산초 학교도서관의 경우, 북카페, 책꽂이로 둘러싸인 원형 놀이 공간, 신간 코너 등의 특색 공간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북카페에서 코코아나 아이스티를 마시며 아기자기한 원탁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코로나 시기에는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여 거리두기 칸막이가 있는 곳에서 마시도록 하였다). 원형 놀이 공간은 눕거나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쿠션으로 둘러싸인 맞춤형 공간이다.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가에는 그림책을 꽂아서 저학년 학생들이 부담 없이 책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고, 서가 위쪽에는 주제 그림책을 전시하여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했다. 북카페 공간과 가깝고, 학생들의 손이 잘 닿는 서가에 신간을 꽂으면 자연스레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오산초 학교도서관 한해살이 : 상반기
3월! 두근두근 첫 만남! 처음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설렘을 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첫인상이 중요하듯 학교도서관도 첫 만남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3월이 오기 전 도서관에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신경 써서 단장한다. 도서관 문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줄 때는 아기자기한 풍선 장식을 활용하면 좋다. 작년에는 따뜻한 봄과 어울리는 파스텔 톤 풍선에 은박 줄을 달아 도서관 입구를 장식해 놓았다. 풍선만 달아 놓았을 뿐인데 학생들이 환호하며 좋아했고, 어떤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주제로 수다를 늘어놓기도 했다. 올해는 ‘hello 2023’이라는 이니셜 풍선을 준비했다. 학생들의 반응이 어떨지 벌써 궁금해진다
신입생 이용자교육이 있는 3월. 신입생은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다 보니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모르고, 도서관 예절도 모르기 때문에 2차시에 걸쳐 도서관 이용자교육을 진행한다. 학교적응교육 시간에 담임선생님과 도서관에 잠깐 들러서 이곳이 책을 빌리거나 볼 수 있다는 곳이란 정보를 알고 있다 보니, 나를 만나면 도서관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들도 있다. 사서선생님이라고 정정해 주어도 여전히 나를 도서관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학교도서관에 처음 발을 들이는 소중한 고객님들이기에 도서관 이용자교육에 정성을 들이게 된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도서관 기본용어를 알려 주고, 그림책을 이용해 도서관 예절을 스스로 깨달을수 있도록 한다. 이용자교육 중간중간에 쉬운 퀴즈를 내서 젤리나 사탕 같은 간식을 주면 집중력도 높아지고, 사서선생님의 인기도 상승한다. 사서선생님의 인기 상승은 도서관 이용률과 비례하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봄꽃이 만연한 4월에는 ‘세계 책의 날’을 주제로 원화 전시회를 진행하거나 책을 대출하면 장미꽃 막대사탕을 나눠 주기도 한다. 3월은 신간이 들어오는 달이기도 해서 책을 홍보하고 읽힐 수 있는 행사를 진행했다. 신간이 들어오면 눈에 잘 띄는 중앙 서가에 꽂는다. 다음 신간이 들어올 때까지 기존 신간이 자리를 지킨다는 걸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학생이라면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그래서 ‘책제목 찾기 빙고(저학년은 신간 그림책 제목 찾기)’를 하거나 신간의 표지를 엽서에 그리는 행사를 한다. 활동지에 제시된 책제목을 찾다 보면 신간 목록이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학생들이 그려서 제출한 엽서를 도서관 유리벽에 노끈과 집게를 이용해 전시해 놓으면 해당 도서를 대출해 읽기도 한다.
유리벽에 전시한 책표지 그리기 작품
감사의 달 5월에는 ‘감사의 꽃 나누기’, ‘내가 추천하는 책’, ‘사랑을 나눠요’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5월 추천도서, 감사와 관련한 북큐레이션 도서를 대출해서 읽으면 비누 카네이션을 나눠 주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해에는 ‘사랑을 나눠요’라는 행사명으로 카네이션 머리띠를 만들어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커다란 통에 비누 카네이션을 가득 꽂아 놓는 것만으로도 도서관 분위기가 환해졌고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만들기 행사가 있을 때는 동아리 학생들과 미리 만들어서 전시해 놓으면 학생들의 참여 욕구가 높아진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도전! 역사왕’, ‘태극기 가방고리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 호국보훈, 순국선열의 뜻을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각각의 뜻과 의미를 크게 프린트하여 도서관에 붙이고, 활동지를 받아 작성하도록 했다. 다른 해에는 ‘우리나라를 빛낸 역사 인물 가로세로 퍼즐’을 나눠 주고, 퍼즐을 완성해 오면 간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동아리 학생들과 태극기 가방고리를 만들어 전시하고, 도서를 대출하는 학생들도 태극기 가방고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3 <학교도서관저널> 3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