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②학교도서관 운영계획 세우기 도서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_ 이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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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6 21:45 조회 28,971회 댓글 0건본문
말은 날아가고 글은 남는다
글자를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이 권력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다수가 문맹인 사회에서 글을 쓰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은 곧 누군가를 지배할 힘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위대한 것은 글자가 권력인 것을 알면서 그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어리석은’ 백성들과 나누려고 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날아가는 말들을 붙잡아 글자로 남겨 두고 이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후대로 이어왔기에 위대하다. 역으로 문자는 죽어 남아 있고 말은 살아 움직인다. 라틴어 ‘Verba volant, scripta manet(베르바 볼란트, 스크립타 마네트. 말은 날아가고 글은 남는다)’는 문자의 지속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말’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결국 소통의 중요성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요즘에는 대부분 학교도서관이 하드웨어는 풍부하게 갖추고 있으며, 학교 관리자들도 도서관에 대한 지원에 그다지 인색하지 않은 편이다. 심지어는 도서관을 구축하고 시설을 확충하고 장서를 확보하는 일에 경쟁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나 도서관이 아무리 훌륭하게 갖춰져 있어도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장서가 아무리 많아도 활용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일년 동안 아이들과 무엇을 어떻게 할까
학교도서관의 지속적인 이용을 위해서는 실제로 도서관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를 담은 도서관 운영계획서가 필요하다. 학기 초에 도서관 운영에 대한 기본 틀을 담아 계획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도서관 활동이 결국은 학생들 활동과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계획서를 작성할 때 반드시 협조가 필요한 교사와 의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과 업무를 담당한 교사나 학급 담임의 협조 없이는 아무리 좋은 의도로 기획된 프로그램이 있어도 독서교육의 목적
을 달성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생들 참여율조차 저조하다. 초청강연을 해보면 학급별로 참석 인원 편차가 큰데, 이를 보면 담임교사와의 긴밀한 협조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 도서관 운영계획 수립하기
1. 학교 도서관 운영 목적
2. 예산 확충 계획
3. 중점 활동 사항
1) 교수학습센터로서의 역할 수행
2) 독서록, 도서관 소식지를 이용한 독서교육
3) 교육과정과 관련한 독서 관련 각종 행사
4) 치료와 휴식,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5) 지역 사회와 연계한 문화 구심점으로서의 도서관
4. 학교도서관 세부 교육 내용 및 일정
5. 장서 확충 계획: 구입 시기, 절차, 장서 선정 원칙, 도서선정위원회 구성
6 도서부 운영: 도서부원의 업무, 도서부원 선발 요건, 도서부 조직, 도서부원 활동 기간 및 내용
7. 기대 효과
위 내용은 인천 고잔고 ‘2011학년도 학교도서관 운영계획서’ 목차이다. 목차는 가감·변형할 수 있으며 내용은 학교 실정에 맞게 또 교사의 독서교육 목표와 의지에 따라 작성하면 된다. ‘학교도서관을 살리는 교사들’ 모임 등 인터넷에서 다른 학교의 도서관 운영계획서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올해 우리 학교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스스로 작성하는 것이 좋다. 학교도서관이 일반 도서관과 다른 점은 학생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고 또한 교수학습센터로서의 역할, 학생 문화의 구심점 역할, 지적·정서적 충족감을 주는 공간 등의 다중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하기
오른쪽 표는 위 도서관 운영계획서 목차 중 ‘4. 학교도서관 세부 교육 내용 및 일정’에 들어간 프로그램 예시이다.
독서록, 활용하기 나름
전년도에 실시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연간 실시할 프로그램을 3월에 계획했다. 그런데 사서교사 없이 혼자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두 과목에 걸쳐 수업을 하다보니 미처 독서록을 제작하지 못해 이에 따른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못했다. 기존의 독서록을 활용하는 방안이 있지만 아무래도 학생들 수준이나 학교 실정에 맞춰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에는 독서교육종합시스템을 이용하여 독서 기록을 누적하기도 하고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학생 각자가 독서 기록을 하고 있어 독서록이 꼭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컴퓨터에 축적된 자료는 시스템에 접속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독서 결과를 알 수 없고 그 권한이 주로 담임교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담임교사의 관심 여하에 따라 독서지도 편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독서록을 제작하면 학생들의 독서 과정을 수시로 지켜보면서 학생들의 독서 경향이나 수준 등을 평가하고 결과물을 축적해가는 과정을 체크할 수 있다. 이는 학생들의 독서 결과를 감독하고 평가하는 의미가 아니라 일반교사보다 좀 더 독서교육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있는 도서관 담당교사가 학생들의 독서 흐름을 살펴보고 조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독서록을 제작해서 활용해본 결과 정기적으로 독서록을 전시함으로써 학생들 상호 작용이 이루어져 유용한 측면이 컸다.
필독도서 및 수행평가 대상도서 선정
매년 학기 초가 되면 도서관 운영계획을 세우고 도서관과 연계하여 학습을 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조사했다. 선생님들의 협조를 구해 필독도서 선정이나 교과 관련 학습 참고용 도서 구입 등을 제공했다. 특히 교육과정 관련 필독도서를 선정하여 학생들에게 제시하고 가정통신문과 함께 학부모에게도 배포했으며 도서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도 올려 수시로 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과목별로 도서관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파악했다. 2011년에는 주로 도서관 담당교사가 속한 국어과 관련 행사를 도서관과 연계하여 진행했다. 또 체육과의 체육 관련 책 독후감 쓰기 수행평가를 위해 미리 도서를 확보해 두었고 독서토론 동아리를 위한 도서와 DVD를 신청을 받아 구입했다. 도서관의 서가 한 칸을 비워 필독도서, 수행평가 도서를 따로 꽂아 두면 학생들 이용이 편리하고 수행평가 책의 반출·반입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교육과정 관련 도서관 프로그램 진행
도서관을 담당하면서 독서교육 지향점을 ‘Leading through Reading 독서가 이끄는 나의 삶’으로 했다. 책을 통해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말이다. 또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며 길러진 독서 습관을 통해 지식 기반 사회에 필요한 정보 습득 능력을 신장하도록 했다. 또한 수동적인 지식의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인 생산자가 되도록 다양한 독서 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필독도서를 중심으로 독후감 대회, 독서 논술 대회, 가족과 함께 보는 영화·DVD 감상문 대회, 독서 퀴즈 대회 등 각종 독후 행사를 마련하여 독서 결과에 대해 적절히 보상함으로써 성취동기를 유발하고, 교육의 성과를 누적 기록하여 가시화함으로써 독서 의욕을 고취시켰다. 1학기 행사 뒤에는 2학기 필독도서를 상품으로 준다거나, 작가 초청 강연 후 소감문 작성 우수 학생에게 저자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을 주는 방법으로 다음 독서 활동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다.
초청강연, 친구처럼 만나서 수다처럼 나누기
도서관 담당교사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활동 중의 하나가 초청강연이다. 많은 학생을 강당에 모아 놓고 하는 것보다는 소규모의 그룹 활동을 통해 ‘작가와의 대화’ 형식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을 초청하면 좋고, 필독도서와 관련되었을 때 작가 섭외도 쉽고 학생들의 호응도 높은 편이다. 2011년 모두 다섯 번의 초청강연을 했고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한 번 더 실시하려 한다. 영화감독을 한 분 초청할 계획인데, 기말고사를 마친 학생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즐길 것이다.
지난해는 3월 『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의 작가 류대성 선생님을 초청하여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독서 컨설팅으로부터 독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봄가을 두 차례로 나누어 진로 특강을 실시했는데, 봄에는 문과 지망생을 위해 미국 일리노이 대학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에 수학 중인 이규호 씨를 초청해 ‘초보 인류학자의 학습 여행’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통해 문화인류학, 사회학 관련 진로 선택에 대해 알아보았다. 가을에는 자연계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박사를 초청하여 ‘인간과 미래’라는 주제 아래 과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변화와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인 철학자 강신주를 모시고 고교생을 위한 인문학 특강을 실시했다. 1박 2일의 전주 한옥마을 문화기행 때에는 그 지역의 복효근 시인과 ‘가을밤, 시인에게 듣다’라는 초청강연을 진행했는데, 시인이 자신의 시 창작 과정을 들려주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학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을 만난다는 설렘, 1박 2일의 기행이라는 여유로움, 40명 정도의 적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라는 점이 어우러진 덕이리라.
작가 초청강연은 학교 일정과 작가의 스케줄 조정, 강연료 문제 등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지만 잘되면 학생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으며 학생들은 저자 또는 전문가와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강신주 선생님이 쓴 글에 “빗소리라고 하지만 비는 소리가 없고 비가 어떤 사물(대상)과 부딪힐 때 내는 소리, 곧 연못에 땅바닥에, 양철 지붕에 떨어
질 때의 소리이다. 그리고 그 부딪히는 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는 학생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각기 다양한 울림의 소리를 내기 희망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알맞고 필요한 강사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지역사회 도서관과의 연계 사업
신설학교의 경우 도서관 제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지역사회 도서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교 도서구입 예산을 조기에 집행하고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대출 반납 업무부터 시작한 경우도 세 번씩이나 있었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도 개교 2년차의 신설학교인지라 예산 부족으로 운영비가 확보되지 않아 지역사회 도서관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도서부원 교육, 논술 교육, 문학기행 등 각종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받았으며 작가 초청의 경우 강사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학교도서관은 대부분 사서교사 없이 (필자의 경우 도서관 담당 6년 중 5년을 사서 없이 운영) 담당교사가 수업하는 틈틈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지역사회 도서관의 도움은 매우 유용하며 힘이 된다. 이미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학교도서관과의 연계 사업을 실시한 경험이 있고 따라서 다양한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본교의 경우 지난해 논술 교육, 책 읽어주는 사람들 공연, 문학기행, 진로특강 등의 프로그램에 인적·물적 지원을 해주었다. 학교도서관에 인적·물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당장 지역사회 도서관으로 찾아갈 것을 제안한다.
방학을 이용한 집중 프로그램
방학 중에는 학생들이 시간의 여유를 두고 집중적으로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나흘 정도 연속성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깊이 있는 책 읽기를 시도할 수 있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프로그램 참여 전에 관련 도서를 미리 읽도록 지도한다.
지난해 본교는 오전, 오후 보충수업 일정이 꽉 차 있어 학생들의 도서관 캠프 참석이 어려웠다. 따라서 매년 여름방학에 하는 도서관 캠프 대신에 ‘내가 만드는 독서 기행’을 실시했다. 방학 전 학생들에게 개인 또는 조별로 ‘독서 기행 계획서’를 제출하게 하고 내용을 수정 보완했다. 팀당 1만원씩의 활동비를 지급하고 개학 후 ‘독서 기행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굳이 ‘독서 기행’이라고 한 것은 도서관 이용이 문학 작품을 읽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한 진로 활동과 관련하여 깊이 있는 독서 습관을 갖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책 자체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작가 인터뷰를 할 것인가?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독서 토론 보고서를 쓸 것인가? 이런 모든 것들은 세 차례의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게 하였으며 보고서 형식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UCC, 신문, 보고서 등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이 나왔고 학생들의 성취감과 만족감이 꽤 컸다.
학년 초가 되어 도서관 운영계획서를 작성하다보면, 수업과 담임 업무 외에 맡은 도서관 업무가 때로는 버겁기도 하고 귀찮을 때도 있다. 또 대장장이 집 칼이 녹슨다는 말처럼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마저 없어 회의가 들기도 한다.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할까? 하는 도서관 운영계획서는 도서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서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독서 프로그램을 시도해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찾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