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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등학교 독서치료 수업 이야기 - 우리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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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3:02 조회 11,4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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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사서교사로서 학교도서관에 발을 디딘 이후 줄곧 나의 화두는 만남이었다. 아이들과의 만남, 선생님들과의 만남 등 도서관에서의 모든 만남. 처음에는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하던 그 만남이 언젠가부터 귀찮고 부담스러워졌다. 이 길이 아닌가? 사서교사로서 4년째 되던 해 내가 꿈꾸던 것과는 다른 현실에 지쳐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교육청의 사제동행 독서토론 동아리 사업 공모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보며 막연하게 아이들과 독서치료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독서치료에 관해서 초급 과정의 연수를 들은 것이 다여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또한 초등학교나 어린아이들 혹은 성인들을 상대로 한 사례들은 제법 있었지만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한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끌려 독서치료 관련 책, 사례집, 상황별 목록 등을 찾아 검토하면서 나름의 치유도서 목록을 작성하고 진행 방법도 참고하여 수업 계획을 짰다. 그렇게 2010년 4월 8일 문수고 도서관에서 여덟 명의 아이들과 독서치료 10회기 과정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솔직했다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 시간으로 독서치료에 대한 설명, 수업 계획 및 진행 방법, 참여자의 역할 등을 안내하고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로서 경청의 자세를 알려주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에 충실하여 표현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자기소개는 간단히 자기를 알릴 수 있는 ‘알리고 싶은 나’와 자기의 역사를 정리해 보는 ‘타임라인 그리기’로 진행했다. 불리고 싶은 별칭도 정하여 수업시간에는 서로를 별칭으로 부르게 해 좀 더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였다. 자기 역사를 정리해 보는 ‘타임라인 그리기’를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아이들이 정성껏 그리고 솔직하게 써나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재밌었던 기억, 아팠던 기억, 왕따 당했던 기억, 가족 간의 불화 등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표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아이들이 민망해 하고 킥킥거리는 바람에 나 스스로도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일제히 몰입을 하기 시작했다. 다 읽은 후의 반응은 그림책이 아이들만 보는 책인 줄 알았는데 뭔가 생각하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게 있다며 놀라워하고 흥미를 보여 안심되었고, 내레이션이 좋았다는 아이들 말에는 으쓱하며 힘도 났다. 수업시간마다 그림책을 두세 권 읽어주었는데 나중에는 아이들이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이들이 공감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두 번째 시간으로 주제는 강박증, 치유도서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로 정했다. 진행 순서는 먼저 책을 읽은 느낌들을 자유롭게 나누도록 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치유적 글쓰기’를 하고 발표하도록 하였다. 다음으로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날 수업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아무래도 첫 시간이라 서로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 같아 ‘나는 이런저런 강박증이 있어’ 하며 먼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다 그것에 공감하는 아이들도 나오고 또 다른 자기의 강박증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서로 공감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며 분위기가 절로 무르익었다. 이렇게 분위기만 조성해주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흘러가고 진행되어 갔다. 나의 역할은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싶을 때 잡아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면서 다음 회기부터 자연스레 나의 얘기는 차츰 줄어들고 아이들이 한결 편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또한 아이들이 점점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은 든든했다
강박증 이후로 가족-상처, 관계의 소통, 성장의 아픔, 정신건강, 자존감, 삶과 죽음, 이성친구 등에 대한 주제들을 차례로 진행했다.

‘정신건강’이라는 주제에는 가토 다이조의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라는 책을 선정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참 좋았지만 고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에게는 좀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책 내용 중 아이들 문제는 부모님의 영향력이 크다고 언급되는 부분에 대해 불편해 하거나 못마땅함을 드러내기도 해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부모님한테로만 돌리는 듯 보이는 책 내용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내 마음의 풍경 살펴보기’, ‘내 마음의 선물바구니’ 같은 활동지로 대체하여 진행하기도 하였다. 꼭 정해진 틀로만 진행하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성친구’라는 주제는 아이들은 흥미로워했지만 내개인적으로 좀 다루기가 부담스럽고 어려운 주제였다. 아이들의 얘기를 어느 선까지 들어줄 수 있을지 아직 자신이 없어서 살짝만 다루고 넘어가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가족-상처’를 주제로 한 시간. 아이들 얘기를 들으며 때론 마음 아파했고, 때론 기특해 했고, 때론 든든함을 느꼈다. ○○이가 자기가 쓴 글을 읽다 목이 메어 울음을 터트렸을 때 따뜻하고 든든하게 지켜봐주던 아이들, 그 속에서 그렇게 울고 있는 아이, 그 아이들을 보며 짠하고 뭉클하고 행복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회를 지날수록 우리는 끈끈해져 갔다.



아이들이 변화했다
마무리로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감상하고 전체 독서치료 수업에 대한 소감문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아래 글은 아이들의 소감문 중 일부이다.

독서치료 수업을 통해 세상에는 나와 다른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 걸 좀 더 체감할 수 있었고, 또 나와 다른 사람들에 있어서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래?’ 하던 생각을 ‘아, 저 사람은 나와는 다르구나.’라고 이해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세상을, 사람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 시점에서 내 시각으로 보았던 예전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독서치료 수업을 통해 이론적이고 고리타분한 것들을 배우기보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진짜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많이 배운 것 같다. 독서치료 수업을 하면서 처음에 알긴 알았지만 진짜를 잘 몰랐던 친구들과 겉이 아닌 마음으로 소통한 기분이 많이 든다. –맥가이버의 소감문 중에서

전혀 예상외의 문제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로 고민하고 있는 친구와 후배 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놀라워하며, 나는 좀 더 사람들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장난스럽게, 하지만 격하게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위로를 건네지도 못했고, 우는 후배를 달래주지도 못했지만, 감정적으로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2년 동안, 아무리 노력해봐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이 독서치료로 인해 단번에 해내고 말았다.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고마웠다. –용용이의 소감문 중에서

글 쓰는 것도 항상 처음에 힘들어서 전전긍긍하다가, 후배들하고도 처음에는 조금 데면데면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글 쓰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후배들하고도 어느샌가 보면 친해져서 놀게 되어 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이 든다. 독서치료 수업을 함께한 친구들과 처음에는 서로에 대해 깊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약간은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독서치료라는 그 공동체로 조금 더 끈끈한 사이가 된 것 같아 정말 좋다. –달님의 소감문 중에서

이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예전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 틀 안에서 겉돌던 ‘만남’으로 허전하던 마음들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수용받는 ‘만남’의 경험을 통하여 관계에서 충만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를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더불어 마음이 따뜻해지고 뭔가 모를 힘이 생겨났다. 그래, 이거야! 나는 이렇게 책을 통해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는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 아이들과 이렇게 만나면 되겠다. 나의 소감을 아이들에게 얘기하니 위로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충만함, 행복감. 그래, 다시 힘을 내서 가보자. 독서치료 수업이 아이들에게도 참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시간을 통해 정말 많은 힘을 받아 다 꺼져가던 의욕을 되살릴 수 있었다.

아무렴 어떠랴, 우리는 만났다
올해 학교를 옮기고 다시 아이들과 독서치료 수업을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독서치료 중급, 미술치료 초급 과정을 이수했고, 상담 공부는 독서치료 연수 전인 2008년부터 꾸준히 계속해 오고 있다. 앞으로도 이 공부들을 계속해서 독서치료 수업에 책만이 아닌 다양한 요소를 섞어서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이번 수업에는 함께 영화관에 영화도 보러 가고, 미술치료도 넣어보았다. 이야기가 잘 풀릴 때도 있고 잘 안 풀릴 때도 있다. 그러면 어떠랴, 지금 여기 이렇게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만나고 있는데. 천천히 천천히 가보려 한다.

독서치료 수업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여덟 명 정도의 소규모로 진행하다 보니 많은 아이들과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행복한 만남을 더 많은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나의 역량을 키워 좀 더 많은 수로 진행해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수업시간에 전체를 대상으로 가볍게 다루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과 독서치료 활동을 하면 아무래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속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공부에 지친 아이들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성장소설을 읽히고 있다. 한 권 정도 읽고 나면 같은 책을 읽은 아이들끼리 모둠을 지어 서로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좀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시도해보고 나누면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독서치료 수업을 위해 아이들이 하나둘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어서 와, 책은 다 읽었니? 읽으면서 어땠어?”
오늘 우리의 만남은 어떤 빛깔로 그려질까?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오늘의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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