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방방곡곡 사서人 인터뷰] 차순원 파주 정목중 사서교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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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스며드는
학교도서관의 비결
차순원 사서교사와의 만남
인터뷰·사진 최문희 편집장
군사도시, 변두리란 말은 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 출판도시라는 수 식이 붙기 전부터 파주엔 이야기가 넘쳤다. 그 중심부 월롱면엔 지켜야 할 유산과 자라는 사람들이 있다. 파주 토박이인 차순원 사서교사는 예로부터 농경산업이 발달한 월롱의 매력을 캐내, 우리 사회 공동체 기 억을 보존해 온 사람. 그리하여 지역 학교도서관의 교육적 소임을 다하 려 열린 도서관을 지향하는 사람. 공공도서관 사서와 짚풀공예 기술을 가진 어르신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학생에게 가르치고, 주민과 연결한 축제를 마련해 왔다. 문화센터 같은 생경한 곳이 아닌, 교실과 도서관에서. 인격을 기르는 일이 교육의 본질이라면, 어쩌면 오늘날 우 리 교육은 최신 학습법에 치중하느라 내가 자리한 곳의 이웃들을 이해 하는 식견을 넓히는 일엔 소홀히 했겠다. 공부의 이유가 나이도 생김새 도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눈을 넓히는 데 있다면, 가장 최신의 교육을 행하는 학교도서관이 이곳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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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토박이로서 ‘북한과 가까운 지역’으로 파주를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우리 동네를 제대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아요. 파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초중고를 파주에서 보냈는데, 서울에서 대학 다니면서 “너네 동네 간첩 안 내려오냐?” “북한 사람들 본 적 없냐?”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웃음) 실제로 군부대 훈련 때문에 도로를 통제해 지각한 경험이 있거든요. 동네 뒷산 가서 삐라 주워다가 경찰서에 갖다 주면 선물로 노트를 받곤 했는데, 대학생 무렵에야 제가 사는 동네를 사람들이 ‘전시 분위기를 가진 곳’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지역’으로 여긴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만 해도 파주는 ‘군사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지금은 아울렛이 생겨 쇼핑할 수 있는 공간, 임진각 근처 대형 카페와 자연을 아름답게 가꾼 벽초지 수목원(광탄면 부흥로 242) 등 볼거리가 많이 생겨 데이트하기 좋은 곳이 되었어요. (편집자: 파주는 사랑의 도시였군요.) 그럼요, 파주는 생각보다 예뻐요. 출판도시가 잘 형성돼 있고, 문화·예술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굳이 서울로 나가서 놀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지금은 서울 사는 친구들에게 파주 놀러 왔는데 맛집 알려 달라는 연락을 받곤해요.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학교도서관으로 일터를 옮기셨는데요. 계기가 있었나요?
문정과를 졸업하고 공공도서관에서 일하기 전, 군인으로 근무했어요. 3년간 장교로 일하다가 전역한 뒤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죠. (웃음) 사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전에는 사서 공무원을 더 안 뽑았거든요. 모집 공고만 기다리기엔 불안한 시절이었는데, 마침 파주시에서 정책적으로 도서관을 늘렸어요. 그렇게 2005년 처음 공공도서관에 들어갔는데, 정규 공무원이 아닌 ‘임기제 공무원’ 직군에 채용이 됐어요. 당시 파주시에서 임기제 사서 공무원을 여럿 뽑아서 새로 개관한 도서관, 중앙도서관, 작은 규모의 지역 도서관 등에 배치했어요. 네 군데 도서관을 돌면서 일하다가 결혼 뒤 아기가 생겼고, 그 무렵 파주시장이 바뀌면서 임기제 공무원 임원 감축이 있었어요. 아기를 낳으려 도서관 일을 잠시 쉬다가 출산 후 다시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공공도서관 일이 많이 힘들었어요. 주말 출근은 물론 ‘열람실’에서 밤 늦게까지 도서관을 운영해야 했고, 구제역 같은 사고가 나면 야간당직 근무에 투입 돼야 했죠. 공공도서관으로 돌아가면 어린 제 자녀에게도 안 좋을 것 같아서 학교도서관으로 일터를 옮겼어요. 탄현중에서 사서 일을 처음 시작했는데, 학교는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고 공공도서관처럼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경우는 적으니까요. 아이 키우는 데에도 학교도서관이 더 낫겠다 싶었죠.
동료도 많으실 것 같아요. 파주 내 사서교사 연구회에는 어떤 주제의 분과들이 있나요?
파주 학교도서관 사서연구회에서 동아리수업부터 창체수업·주제선택수업·진로독서수업까지 여러 수업지도안을 같이 만들었어요. 수업에 도움이 되는 길잡이를 만들고 나누자는 생각으로 각종 모임을 꾸리고 연수에 많이 참여하는 분위기예요. 최근 저희 연구회에서는 보드게임 독서교육을 주제로 보드게임 회사 개발자를 초청해 연수도 했어요. 그러다 ‘독서 주제 보드게임을 만들어 보자!’ 합심해서 기존 보드게임들을 해 보고, 학교도서관과 연결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모임을 꾸리게 되었어요. 작년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판타지소설을 바탕으로 한 보드게임이 있더라고요. 망해도 좋으니, 일단 재밌게 해 보자는 마음으로 뭉치고 있어요. (편집자: 파주 내 학교도서관 인력 현황은요?) 현재 파주 108개교에서 사서교사가 59명, 49명의 공무직 사서가 근무 중이에요. 비교적 인원이 반반인 편이죠.

책 속 우리말 퀴즈 등 다양한 독서프로그램과 수업을 이어오셨죠. 모두의 문해력 키우기가 교육 화두이신 듯한데, 요샌 어떤 일을 벌이고 계시나요?
저희 학교가 파주시 1호 IB 학교예요. 정식 인증받은 월드스쿨인데, 사서교사와 밀접한 학문적 진실성(Academic Integrity) 가치를 전담해서 학기초 교육을 하고 있어요. 정보활용 과제를 내주면 인터넷으로 무작정 검색하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1학기엔 3학년, 2학기엔 1학년을 대상으로 신문기사, 논문, 인터넷·책·영상 자료 등 다양한 정보원 출처를 바르게 표기하는 수업을 해 오고 있어요. 사실 IB교육 자체가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취지의 학습인데, 학생들이 그 훈련이 안 된 상태로 중학교에 오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최근엔 몽골 (국적) 선생님이 오셔서 몽골 책과 문화를 소개하고, 아이들과 몽골에 관한 조사 후 발표자료를 만들었어요. 몽골문화를 공부했는데, 다문화도서관과 연계한 협력수업이었죠. (편집자: 정목중에는 이주민 학생 비율이 몇 퍼센트 정도인가요?) 이주민 학생은 10퍼센트 정도예요. 이 친구들은 수업할 때 어려움을 겪잖아요. IB교육 정책에서도 포용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바, 모든 아이들이 모국어를 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언급해요. 저는 다달이 금촌에 있는 다문화도서관에 가서 몽골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모국어로 한국어 학습을 지원하는 책을 수준별로 빌려 오는데, 그 책들을 학생들에게 재대출해 줘요. 작년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중국어로 번역한 책을 빌려와 수업했는데, 중국에서 건너온 학생이 친구들 앞에서 시를 읽어 줬어요. (웃음) 무척 뿌듯해하더라고요. 발표가 끝나고 같이 박수도 쳤는데, 자연스레 서로의 문화를 익히며 어우러질 수 있었어요.
2019년부턴 학생 봉사단·채록단을 이끌며 살아있는 마을교과서1) 사업에 뛰어드셨죠.
그 무렵 파주 월롱에 공공도서관이 처음 생겼어요. 도서관과 학교가 협력사업을 맺었는데, 제가 공공도서관에서 일할 때 같이 일했던 분이 월롱도서관으로 오면서 의기투합(!)이 됐어요. ‘월롱 지역에 관한 기록사업을 해 보자!’ 해서 시작된 프로젝트 결과물이 바로 책자로 나온 『월롱, 그리고 나』(맨 앞장 인물사진 참고)예요. 우리 지역 어르신들 인터뷰를 하는 채록단 구성원이 지역 주민,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로 이뤄지면 좋겠다 싶었고, 저희 학교 학생들을 채록단 동아리로 지원케 했어요. 월롱도서관 사서선생님이 채록 방법에 관한 강의도 준비해서 들려주고, 방학마다 아이들이랑 채록하러 다니면서 동네 어르신들을 두루 만날 수 있었죠.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져서 채록 마무리를 못 했는데, 그 뒤 파주시교육청에서 살아있는 마을교과서 사업 공문이 내려와 인연을 이어갔어요. 월롱도서관 사서, 같이 활동한 채록단 선생님들, 주민 들과 의기투합해서 월롱면마을공동체연구회를 조직했죠.
1) 학교와 마을을 연계한 학생 체험 중심 교육과정을 말한다.“ 파주혁신교육지구 대표사업으로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미래교육 체제 구축”(출처: <파주에서신문> “살아있는 마을교과서, 마을교육과정 성과 나눔 발표회 개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짚풀공예 기술 보유자 장춘금 어르신을 학교에 모셨는데, 어떻게 수업을 구성하셨나요?
정목중이 자리한 월롱은 농경지가 많고, 도자기 사업도 활발해 가마터가 있던 마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볏짚으로 하는 ‘짚풀공예’도 발달했고요. 짚풀공예 하시는 어르신이 많이 생존해 계시다는 데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매해 파주문화원에서 짚풀공예 공모전을 열고 상을 받으시는 분들 중 월롱에 사는 분이 많아요. 그렇게 짚풀공예 잘하는 어르신을 수소문하다가 장춘금 어르신과 연락이 닿아 어르신 댁까지 찾아가서 공예를 배웠어요. 많이 모일 수 없던 팬데믹 때라, 연구회 사람들이 어르신께 직접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로 했는데 막상 배워 보니 너무 어려웠어요. 고급 기술로 갈수록 진도를 못 따라가는 분이 많았고, 어르신이 수업하시기에도 체력적으로 어려워서 소개받은 강사를 모셔 어르신들이 시범을 보여 주시면 강사들이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첫해, 짚풀공예 수업을 했어요. 재료 구하기도 만만치 않았어요. 벼농사가 끝나면 농기계로 짚풀을 말아 랩핑해 버리기에 주변에서 짚풀을 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집풀공예용 짚’을 파는 사이트를 찾아 주문해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꽤 비싸고 관리하기도 어려워서 강사들과 고민한 끝에 업사이클링 재료(플라스틱 빨대, 신문지, 아이스크림 막대)로 응용해서 수업을 이어 갔어요.

파주의 공예문화를 아이들과 공부하며 교사로서 책무감이 생겼을 것 같아요.
우리가 신경 안 쓰면 지역 전통문화가 어느 순간 정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자각을 그때 했어요. 하다못해 지금 어른들은 어렸을 때 줄다리기하면서 짚으로 짠 줄을 만져본 기억이라도 있잖아요. 장춘금 어르신께서도 마지막 수업 무렵에 “나는 언제든지 보여 줄 수 있는데, 내가 앉아서 보여 줄 데가 없다.” 말씀하셨어요. 당신 집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다 올 순 없으니,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마련되면 짚풀로 (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을 알려 주며 전통문화를 보존할 수 있을 텐데, 사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지원 사업이 끝나면 예산도 없어지고, 협력의 일환으로 공공도서관이 학교 수업 안으로 들어올 창구도 없어지니까요. 그럼에도 지역 기관들이 신경 써서 아이들을 위해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봐요. 내가 나고 자란 지역문화를 우리 지역 아이들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전통문화체험을 접하는 기회를 꾸준히 공조해서 열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테니까요.
주민과 학생을 초청해 짚풀공예 체험부스가 있는 달빛한마당도 여셨죠. 그후 ‘찾아가는 수업’으로 주변 초등학교로 직접 가셔서 지역문화를 공부하는 수업을 열어 오신 점이 신선했어요.
월롱면마을공동체연구회 일을 하면서 친한 선생님하고 (이 프로젝트를) 축제처럼 만들자 의견을 모아 빠듯한 예산으로 첫 축제를 열었어요. 아파트 단지와 동네 구석구석에 홍보지를 붙여가며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렇게 2021년, 축제를 열었는데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하더라고요. (편집자 주: 갖가지 짚풀공예 체험, 에코 비누 및 캔들 공예, 먹거리 부스 운영, 짚풀공모전 역대 수상작과 학생들 작품 전시 등 지역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꾸려 주민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22년에는 ‘축제를 더 크게 해 보자!’ 의기투합해 두세 명이 기획하던 축제에 뜻을 같이하는 동료 교직원 열댓 분이 도와주셔서 더 풍족하게 이끌 수 있었어요. 당시
축제에 왔던 아이들이 제가 근무하는 중학교에 입학해서 축제 엄청 재밌었 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학교라는 공간이 지역이랑 뗄 레야 뗄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역과 공조해서 학교가 문을 열어 주면 이해의 문이 넓어지고, 서로에 대한 시선이 더 깊어질 수 있겠다는 예 감이 들거든요. 저희가 달빛한마당 하면서 학교를 잠깐 개방했는데, 맨날 사고만 치는 중학생으로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다가 어쩜 이렇게 똘똘하 냐는 칭찬을 어르신들이 많이 하셨어요. (웃음) 아이는 어른을, 어른은 아 이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죠. 이후 인근 초등학교로 ‘찾아가는 수업 나눔’ 을 했는데, 짚풀공예 작품도 감상하고 짚 빗자루도 만들어 봤어요. 우리 학 교는 국영수만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 문화도 익힐 수 있는 곳이란 걸 홍보할 수 있었죠. | |
탄현중에서 인문고전 필사 동아리를 이끌던 시절, “건성으로 필사하던 학생이 필사를 잘 해내면 칭찬”해주고, “성의없이 필사한 것을 보면 근심거리가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셨다고요. 교육에 관한 근사한 결과물 너머, 선생님이 꿈꾸는 학교도서관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IB교육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학교 내 모든 교육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학교도서관과 사서 교사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순간, 나부터 학교도서관을 그동안 ‘변두리’로 생각한 건 아닌가, 반성했어요. 도서관을 단순히 책 빌리는 곳으로 여기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제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도서관을 동적인 공간으로 보는 사람들이 좀더 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저는 도서관 업무를 국한 짓고 싶지 않아요. 예를 들어 영어선생님과 다양한 협력수업을 해 볼 수 있고, 체육선생님이 운동 이론을 가르칠 때 도서관 자료를 통해 근육 기르는 법도 함께 익혀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학교 구석구석 자연스레 스미는 도서관이 제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이에요. (편집자: 사서교사로서 품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요?) ‘사서교사의 업무에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진 않나?’ 자문해 보면 어떨까요. ‘학교 도서관 교사’라고만 자신을 한정 지으면 더불어 성장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어요. 사실, 살아있는 마을 교과서 사업을 할 때만 해도 사업 담당자 중에 사서교사는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제가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을 연결해 지역민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교사의 영역이라 여길 수 있는 진로캠프도 사서교사의 눈으로 기획하면 재밌는 일이 될 수 있어요. 여전히 저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경계 없이 같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꿈꾸곤 해요. 그게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