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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나'라는 책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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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1 14:53 조회 5,89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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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책은 만화였다. 고우영의 『짱구박사』를 보며 특이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정파라는 작가는
순정만화였고, 『까불이 의사』의 경인은 웃겼다. 만화는 중독이었다. 집과 학교 사이에 만화 가게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큰형에게 걸렸다. 큰형은 만화 대신 보라며 내게 동화책을 몇 권 사주었다.
그중 특히 강하게 다가온 것이 강소천의 『꿈을 찍는 사진관』이었다. 만화가 일상에서 출발한 것이
라면 동화는 일상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환상이었다. 선천적으로 몽롱한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던
나는 동화를 만남으로 인해서 더욱 몽상이 심화됐던 것 같다. 겨울 거리에 성냥 파는 소녀 안 나타
났나 두리번거렸고, 왜 우리 동네엔 벌거숭이 임금님의 행차가 안 나타날까 궁금해하기도 했다.

동화의 환상 공간과 더불어 나의 책꽂이는 위인전으로 넘어간다. 이제야 뭐,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오빠(?)가 되어 평범한 사람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시절의 위인전 독서는 나에게
스타 의식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영향은 좋은 점도 있고 해악도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점은
위인이 되고자 막연하게나마 노력 같은 걸 했고, 그래서 성장 발전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실속 없
이 잘난 체한다거나, 실력 없이 오버했던 순간들은 지금 돌이켜봐도 머쓱해진다. 이후 십대들을
위한 프랜시스 버넷의 소설 『소공자』, 『소공녀』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정신적 메시지가 있
는 작품이라 하지만, 나는 그저 귀족적인 삶을 은근히 동경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 6학년부터 중학생 때까지 난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드러눕곤 했다. 이마를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러 뜨겁게 달군 다음 재빨리 어머니께 다가가 ‘아파요. 학교 못 가요.’ 이랬
다. 어머니께선 이마를 만져보시고는 결석을 허락하셨다. 나는 잠시 누웠다가 곧장 큰형의 책꽂이
로 달려가 월간 〈사상계〉 뒤에 실려 있던 한국의 단편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소설들, 허
무주의 냄새가 굉장히 강했다. 펜은 칼보다 강한 사회 변혁의 무기가 아니라 그 소설들 중의 많은 것
들은 칼이 없는 그 어딘가를 방황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연인들』을 보고 가난 그 자체만이 아름다운 걸로 착각하기
도 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신비로웠고, 이때의 정신주의가 나를 고독의 끝까지 걷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고독의 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참 오랜 여행의 끝에서 말이다. 헤세의
시집도 좋았다. 제목은 잊었으나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는 시구는 잊을 수 없
다. 천상병 시인의 작품, 「들국화」에서의 시구도 좋았다. ‘다시 올까/ 다시 올테지/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

10대 후반에는 기타에 미쳐서 책을 별로 못 읽었다(그래도 이광수의 『유정』, 『무정』을 읽으며 나
만의 사랑을 꿈꿨던 것 같다). 20대 초반, 책은 보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삼중당 문고로 기억되는데,
싼 문고판이 나와서 그걸로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신석정 시인과 한하운 시인의 시집 등을 꽤 읽
었다. 철학서는 쇼펜하우어가 좋았고, 『갈매기의 꿈』, 『러브 스토리』, 『어린 왕자』 같은 필독서도 좋
았다. 물론 〈실천문학〉과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도 그 시절의 청춘 에너지였다. 솔직히 읽고
싶은 책은 많았으나 마음껏 읽진 못했다. 그래도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부터는 돈이 생겨 책의 굶주
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방송국 도서관이 내 집필실이 됐으니 갑작스레 책 부자가 된 셈이었다.

지난날 나는 책 속의 좋아하는 인물들을 닮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런 멋진 인물들
을 창조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내 마음이 추구하는 완벽한 자유는 아니었던 것 같
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니는데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숱한, 정말 다양하
고 많은 사람들 눈빛 속에서 그들만의 개인사라는 책을 읽고 살아간다. 그 책들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게 되는 책들이다. 머리로 읽는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책들이다. 그렇다.
연봉의 무게는 달라도 영혼의 무게는 똑같다. 이제 나는 그들의 내밀한 소망들과 고요한 기도와 너
무 할 말이 많아 침묵으로 봉해버린 이야기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책 부자 정도가 아니
라 책의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이거나 책의 바다에 둘러싸여 행복한, 조촐한 섬 하나가 된 것이다.
어찌나 감사한지.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나, 구자형’이라는, 이놈의 책을 바라본다. 때론 억울하게 뺨 맞은 듯 뻘
겋게 부어올랐거나 멍든 이야기도 있을 테고 너무 외로운, 너무 추운 냉동 인간의 날들도 있었을 것
이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그런 상처와 아픔 들을 누군가에게 무진장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
과 하늘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다. 먹고살기 위해 죄지었거나, 나의 욕망을 위해서 어줍잖
게 실패한 사악한 기획들, 문득 따뜻한 눈물 한 줄기로 품고 용서한다. 그렇게 아직도 울게 하는 책
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있어서 가난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별한 아름
다움의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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